추석을 앞두고 영광 법성포로 차를 몰았다. 추석 차례 상에 올릴 굴비를 본고장에서 구하기 위함이었다. 지인에게 소개 받은 가계를 찾아 굴비를 구입하고 점심때가 되어 그곳에서 유명한 굴비정식을 먹을 요량으로 한 식당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며 영광굴비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 어렴풋이나마 그 현실을 알게 되었다.
굴비의 본고장은 영광이지만 오늘날‘영광굴비’라는 브랜드로 유통된 것들은 대부분 추자도, 목포, 제주도 등 다른 곳에서 잡힌 조기들로써 영광에서는 굴비로 가공만 한 것이란다. 과거에는 영광에서 잡혀 가공한 것을 영광굴비라고 했지만 최근 들어 영광에서의 어획량이 줄어들자 다른 지역에서 조기를 가져와 가공만 영광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광에서 잡힌 조기로 가공한 진짜 영광굴비는 얼마나 되는지를 묻자, 전체 유통물량의 5% 수준에 불과하며 시장 유통은 거의 없고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을 통해 암암리에 거래되는 것이 고작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왜 아직도 국내 굴비의 80% 이상이 영광에서 유통되며 그 명성이 이어지는 것일까? 대개는 영광의 기후조건이 굴비가공에 적합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독특한 전통염장기법을 고수하며 굴비의 질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지역어민들에 대한 세상의 보답이리라.
‘굴비’는 소금에 절여서 말린 조기를 일컫는 말로써 지금은 순우리말이 되었지만 어원은 한자로‘굽을 굴(屈), 아닐 비(非)’이니‘굽히지 않다’라는 뜻을 지닌 셈이다.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고려 시대의 척신 이자겸 때문에 마른 조기가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이자겸은 딸을 고려 16대 왕 예종에게 시집보내 외손자를 왕(인종)으로 만들고도 모자라 자기의 또 다른 두 딸을 외손자인 인종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니 인종은 이모들과 결혼을 한 것이며 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임금보다 더한 권력을 가지게 된 이자겸은 나랏일을 좌지우지하며 역모를 꾸미다가 실패하고 결국 영광으로 귀양을 갔다. 그곳에서 소금에 절여 말린 조기를 먹고 그 맛에 반한 이자겸은 영광의 말린 조기를 왕에게 보내면서 거기에다가‘비록 귀양살이를 하지만 결코 비굴하게 굽히고 살지는 않겠다.’라는 뜻으로‘굴비’라고 적었다. 그때부터 소금에 절여 말린 조기가 굴비로 불리게 된 것이다.
영광굴비의 원재료는 동지나 해역에서 월동하고 해빙기를 맞아 산란하기 위해 북상하다가 이른 봄에 우리나라의 서남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참조기다. 그와 관련한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산란기 이전의 어린 참조기까지 마구 잡은 탓에 2000년대 중반까지 어획량이 떨어졌다가 2010년대부터 다시 회복되었다. 주된 이유는 그물코를 제한하고 금어기를 설정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예전에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던 명태도 남획으로 인해 더 이상 잡히지 않는다지만 서남해안 참조기는 그 전철을 밟지 않아 다행이다.
낚시와 관련하여 오스트레일리아 한 고고학자가 2011년 동티모르의 동굴에서 20,000여 년 전에 조개껍데기로 만든 세계 최초의 낚싯바늘을 발견했단다. 그런데 그 낚싯바늘은 남태평양 쿡 제도 원주민의 15세기경 조개껍데기 낚싯바늘은 물론 같은 지역의 20세기 금속 낚싯바늘과도 형태가 거의 같다고 한다. 이처럼 수만 년 동안 낚싯바늘이 변하지 않고 비슷한 모습을 유지한 것은 어부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물고기가 잘 잡혔기 때문이란다.
동물행동학자 조너선 밸컴은 그의 저서‘물고기는 알고 있다’에서“물고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인간과 닮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왜 물고기는 낚시, 그물, 함정 등 인류의 오랜 사냥 도구 피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오스트레일리아 해양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물고기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어법이 물고기가 진화를 거치며 터득한 포식자 피하는 법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첫째, 바다 피식자의 가장 중요한 회피법은 자기보다 큰 녀석을 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낚시는 눈에 띠지 않을 만큼 작은 데다 미끼로 위장까지 하니 물고기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둘째, 물고기는 물이 흐리거나 복잡한 지형에서는 오로지 후각으로만 포식자를 감지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포식자는 물속에 그런 운김을 남기지 않으니 물고기로서는 하릴없이 당하게 된다. 셋째, 물고기가 사람의 공격에서 살아남아야만 그 위험을 다른 개체에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공 어구는 탈출이 거의 불가능하니 어찌 학습이 될 수 있으랴.
오늘날의 지구촌은 물고기를 잡는 기술보다 보호하는 기술을 더 요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해양학자들이 “물고기가 진화하며 익힌 방어 수단들을 무력화한 유일한 포식자가 인간으로서 궁극적으로는 물고기가 사람의 어구를 회피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생태계가 탄력적으로 회복되어 어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지극히 이상적(理想的)이지만 앞으로 설령 물고기가 획기적으로 진화하여 놀라운 능력을 갖추더라도 만물의 영장(靈長)인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금방 물고기들의 방어수단을 무력화 시킬 수 있으리라. 따라서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오직 사람이 물고기를 가려서 잡으며 보호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물고기에게 인공 어구 회피능력이 있어 사람이 애를 써도 쉽게 잡히지 않고 자연적으로 생태계가 유지되어 어업이 지속 가능해진다면 오죽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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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raenews.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2060000&gisa_idx=11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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