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 41권, 고종 38년 5월 29일 양력 1번째기사 1901년 대한 광무(光武) 5년
법부 대신 이재곤이 치죄 문제를 아뢰다
법부 대신서리(法部大臣署理) 이재곤(李載崐)이 아뢰기를,
"평리원 재판장(平理院裁判長) 구영조(具永祖)의 질품서(質稟書)를 받고 그 내용을 보니, ‘피고 김태웅(金太雄), 박명중(朴明重), 윤 소사(尹召史), 강문현(姜文賢), 김윤명(金允明), 김원극(金元克), 김형극(金亨克)의 안건을 검사(檢事)의 공소(公訴)에 의하여 심리하니, 피고 김태웅은 5년 전에 귀신이 몸에 붙어서 종적이 섬광(閃光)처럼 빨랐는데, 고금도(古今島)에 있을 때는 꿈에 기이한 아이를 얻었고, 광주군(光州郡)에 가서는 꿈에 하늘이 주는 조복(朝服)을 얻어 몸에 입었으며 하늘이 장검(長劍)을 주면서 위험을 없애고 오래 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지리산(智異山)에 가서 기도를 드리려고 운봉산(雲峯山) 안의 동리에 가서 묵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음력 윤8월에 황근묵(黃根墨)을 만나 전후하여 경험한 꿈 징조를 자세히 말하니 황근묵이 피고에게 말하기를, 「너는 하늘이 내려보낸 사람으로서 앞으로 천자(天子)가 될 사람이다. 내가 관상을 보고 또 왼 손바닥을 살펴보니 성인 성(聖)자가 있고, 오른 손바닥에는 우물 정(井)자와 임금 왕(王)자가 있으니 이것은 큰 성인 격이다. 내 집이 진주(晉州)의 진주암(眞珠庵)에 있으니 뒤에 찾아오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피고가 그의 말대로 찾아갔더니, 황근묵이 나무 도장〔木圖章〕과 《경갑역(京甲易)》등의 물건을 꺼내 보이며 말하기를, 「이것은 내 집 뒤 진주산(眞珠山)에서 100일 동안 기도를 드리고 나서 얻은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축문(祝文)을 주었는데 그 글에, 「정수민(鄭秀民)은 나라 백성의 성스러운 천자가 될 것이고, 황기(黃璣)는 유학자와 불자(佛子)의 성스러운 천자가 될 것이다.」라는 등등의 말이 써 있었습니다.
피고는 황근묵, 박명중, 고두산(高斗山), 강위련(姜渭連), 강문현등 10여 명과 함께 하루 건너 기도를 드리면서 여러 번 길몽(吉夢)을 꾸었는데, 그 뜻은 천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황근묵이 피고에게 말하기를, 「네가 천자가 된 후 박명중과 고두산은 정승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피고는 또 황근묵의 중매로 윤씨 성을 가진 여자와 혼인을 하고 살았습니다. 9월 초에 우연히 한 꿈을 꾸었는데, 지리산 산신령이 두 아이를 안아다 주는 것이었으므로 괴이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 후로 피고와 처인 윤씨 성을 가진 여자가 다같이 잉태하여 뱃속에서 아이가 움직인다고 하는 여러 가지 황당한 말을 하였습니다. 비록 진실이 결여되나 일이 흉악하고 고약하기 그지없습니다.
피고 박명중은 지난해 음력 9월에 묏자리를 구하던 차에 황근묵을 만났습니다. 황근묵이 《경갑역》을 내보이며 말하기를, 「나의 큰 선생이 여기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강위련의 집에 같이 가서 김태웅(金太雄)을 만났는데, 그날 밤에 황근묵과 김태웅이 함께 하늘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그 축문을 보았더니, 「천자 정수신(鄭秀臣)」 이란 구절이 있었습니다. 괴이해서 물으니, 황근묵이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주역(周易)》을 읽고 이치를 통달했다. 운수를 보건대 경자년과 신축년에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온 나라의 바른 선비들이 모두 운봉(雲峰)과 함양(咸陽) 사이에 모이고 아홉 사람의 정씨가 서로 싸울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아홉 정씨를 쓸어버리고 진짜 천자가 될 사람은 바로 김태웅이다. 그의 성은 김씨가 아니라 정씨이며 이름은 수신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책 속에서 글을 적은 종이를 꺼내 보이기에 피고가 보고 난 뒤, 황근묵이 또 피고에게 말하기를, 「임인년과 계묘년에 세상이 어지러워질 때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모두 함양과 운봉 등지에서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황근묵의 생일날 피고는 장기포(張基包)와 함께 찾아가서 술과 떡을 얻어먹었고, 하늘에 지낸 제사의 축문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피고는 정승이 된다는 말을 애초에 황근묵에게서 듣지 못했으며, 진주부(晉州府)에 잡혀가서 취초(取招) 받을 때, 고두산과 피고가 수령과 감사가 된다는 말을 김태웅이 횡설수설 공술(供述)하는 자리에서 들었습니다.
피고 윤 소사는 지난해 음력 윤8월에 황근묵의 꼬임에 빠져 그 달 25일 이춘협(李春俠)과 함께 황가네 집에 갔더니 황근묵이 그 여자에게 권하기를, 「김태웅의 손바닥에 임금 왕자와 우물 정자, 성인 성자가 있으니 내세에 틀림없이 큰 성인이 될 것이다. 7년 동안 지리산에 기도를 드리고 꿈에 나무 검과 나무 도장을 얻었으니 내세에 천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각 처의 부유한 사람들이 나와 모두 친분이 있으니 너희 내외를 주리게 하거나 추위에 떨게 하지는 않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각이 없는 탓으로 할 수 없이 혼인을 하고 한집에서 함께 살았으며, 그 해 9월에는 아이를 배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태웅이 기도를 드릴 때, 같은 무리 30여 명이 모여 소고기, 돼지고기, 술, 떡과 같은 물건을 차려 놓고 목욕재계를 하고는 산에 올라가 축문에다 「천자 정수신」이라는 말을 썼다는 말을 듣기는 하였으나 애초에 함께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피고 강문현은 황근묵과 이웃에 살면서 서로 친했는데 피고의 형인 강위련이 황근묵이 시키는 대로 자기 집에다 김태웅을 머물게 하였습니다. 황근묵이 늘 김태웅은 이웃에 사는 정 노인의 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해 9월에 황근묵이 요청하여 가보았더니, 황근묵이 김태웅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기이한 꿈을 꾸었으니 반드시 내세에 천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피고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섬뜩하고 뼈마디가 싸늘해서 대답하기를,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는 법인데, 설사 꿈 징조가 있더라도 어찌 이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는가? 당장 집으로 돌아가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드릴 때 종종 가서 참가하였다는 것은 김태웅의 공사(供辭)에서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피고 김윤명은 이웃에 사는 황근묵이 김태웅이 머물고 있는 강위련의 집으로 오도록 하고 후하게 환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큰 선생이다.」라고 하기에 여러 날 상종하였습니다. 김태웅이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므로 김원극 형제에게 그의 행장(行裝)을 꾸려서 보냈으며, 김태웅이 지술(地術)을 잘보는 신안을 가졌다고 하길래 시험해 보려고 하동군(河東郡) 백운산(白雲山)에 함께 갔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김태웅을 취초할 때에야 스스로 천자라고 하면서 귀신이 자기 몸에 붙어 의탁하고 하늘이 준 옷을 입었다거나 하늘이 장검을 주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러나 김태웅을 따라갈 때, 황근묵이 피고에게 권하기를, 「김태웅이 이번에 《경갑역》을 가지고 하동군에 가니 틀림없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너는 꼭 따라가야 한다.」라고 하기에 그 말대로 따라갔다는 것은 도(道)와 군(郡)에서 취초한 내용에 명백히 실려 있건만, 여러 번 신문하였는데도 버티면서 남에게 넘겨씌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묏자리를 잡기 위해 따라갔다고 말한 것은 꾸며낸 말이라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피고가 김태웅과 여러 날 상종하였다는 것을 선뜻 자복한 이상, 천제(天祭)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럴 리가 없습니다.
피고 김원극과 김형극은 모두 산골의 어리석은 백성들로서 나이가 어리고 지각이 없습니다. 지난해 음력 9월에 황근묵이 와서 말하기를, 「김태웅은 풍년과 흉년, 지리, 점치기〔卜筮〕 등의 이치를 통달한 사람으로서 손님들 찾아오는 것이 너무 시끄러워 궁벽하고 조용한 곳으로 피하려고 한다. 그러니 얼마동안 방을 빌려주어 그가 묵도록 하라.」라고 하기에 그의 달콤한 꼬임에 넘어가 집에 묵도록 하였습니다.
그 달 28일 김태웅이 하동 민포군(民砲軍)들이 염탐하는 기미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겁에 질려 피신할 때, 김윤명이 시키는 대로 품삯을 후하게 주기 때문에 그의 행장을 지고 따라갔다가 하동에서 붙잡혔습니다. 그러니 꼬임에 넘어간 사실은 불쌍하지만 집에 묵게 하고 따라간 데 대해서는 완전히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황근묵, 고두산, 강위련은 도망가서 붙들지 못하였습니다.
이상 여러 사실은 피고 등이 진술한 공술에서 명백히 자복하였습니다.
피고 김원극과 김형극은 《대명률(大明律)》 〈잡범편(雜犯編) 불응위조(不應爲條)〉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여 사리로 볼 때 중한 자에게 적용하는 율문(律文)에 따라 모두 태(笞) 80대를 치겠습니다.
피고 김태웅(金太雄)은 《대전회통(大典會通)》 〈추단조(推斷條)〉의 상(上)에게 저촉되는 불온한 말을 하여 인정과 사리로 볼 때 매우 해로운 자에게 적용하는 율문, 《대명률》 〈제사편(祭祀編) 금지사무사술조(禁止師巫邪術條)〉의 바른 도를 어지럽히는 간사한 방법으로 그림을 은근히 감추고 향을 피우며 많은 사람을 모았거나 밤중에 모였다가 새벽에 흩어지며 좋은 일을 한다는 핑계로 아래 백성들을 선동하고 유혹시킨 주모자에게 적용하는 율문, 《대명률》 명례(名例) 중 두 가지 죄가 동시에 드러났을 경우에는 무거운 쪽으로 따진다는 법조문에 적용시켜 《형률명례》 제6조대로 참형(斬刑)에 처할 것입니다.
피고 박명중, 윤 소사, 강문현, 김윤명은 《대명률》 〈제사편 금지사무사술조〉 무당의 간사한 술법을 금지하는 조목 중 바른 것을 문란시키는 간사한 방법으로 그림을 은근히 감추고 향을 피우며 많은 사람을 모았거나 밤에 모였다가 새벽에 흩어지며 좋은 일을 한다는 핑계로 아래 백성들을 선동하고 유혹시킨 자에게 적용하는 율문에 따라 태 100대를 쳐서 종신 징역에 처할 것을 선고(宣告)하겠습니다.
이를 질품(質稟)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해당 범인 박명중, 윤 소사, 강문현, 김윤명은 원래 의율(擬律)한 대로 처결하라는 뜻으로 해원(該院)에 명령하고, 김태웅은 원래 의율한 대로 교형(絞刑)에 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각도 재판소에서 심리한 살옥죄인(殺獄罪人) 장 소사(張召史) 등 30명을 교형(絞刑)에 처하는 안을 개록(開錄)하여 상주(上奏)하니, 윤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