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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는 당선작 없음
제5회 혜암 아동문학상 동화부문 당선작
<동화 당선작>
당군아, 잘 가
박우나(본명 박혜정)
해가 뜨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할까? 내 손을 잡은 아빠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마을을 벗어나 굴다리를 빠져나와서도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아빠, 겨울엔 해도 늦잠 자나?”
“하하, 그런가 보네!”
내 말에 아빠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굴다리를 빠져나오면 가파른 산길이 나온다. 조금만 더 가면 예쁜 오솔길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길이다.
“아빠, 이게 무슨 소리야?”
눈이 온 것도 아닌데 발밑에서 뽀드득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쭈그려 앉아 자세히 보니 땅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땅이 얼어서 그래. 이게 서릿발이라는 거야. 흙이 얼어서 부풀어 오른 거지. 아빤 어릴 때 이거 진짜 좋아했어.”
“난 소보로빵 같아!”
표면에 오돌토돌 달콤한 쿠키가 붙어있는 소보로빵, 울퉁불퉁한 땅을 보니 소보로빵이 딱 떠올랐다.
“와, 정말 멋진 비윤데? 우리, 엄마한테 갔다가 빵집에 갈까?”
아빠 손을 놓고 소보로빵 같은 땅만 골라서 밟았다. 폴짝폴짝 뛰다 보니 어느새 엄마가 있는 곳이다. 마른 잔디 위에 하얀 눈 같은 게 반짝였다. 아빠가 이것도 서리라고 했다. 나는 엄마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쓰다듬었다. 엄마는 부드럽고 따뜻했는데, 비석은 너무나 차가웠다.
“엄마, 안 추워? 난 하나도 안 추워. 털모자도 쓰고, 엄마가 떠준 장갑도 꼈거든.”
“여보, 우린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잘, 잘’ 지키고 있어요. 우리 총명이도 많이 의젓해졌어요. 아, 이젠 까만 콩도 먹는답니다, 하하.”
‘잘, 잘, 잘’은 잘 먹고, 잘 누고, 잘 웃는 거다. 엄마는 이 세 가지를 늘 강조했다. 특히 ‘잘 웃기’는 엄마의 마지막 부탁이기도 했다.
아빠와 나는 엄마 앞에 나란히 앉아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구름이 분홍색으로 물들더니 해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모처럼 셋이서 함께 맞이하는 평화로운 아침이다. 앞산을 보는데 문득 당군이 생각이 났다.
“아빠, 저기 봐봐. 당군이 갈기 같지 않아?”
나무들 사이사이로 아침 햇살이 가득 비쳤다. 당군이 등허리처럼 길게 뻗은 산등성이에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이 꼭 갈기 같았다. 당군이는 얼룩말만큼이나 멋진 갈기를 가졌다. 당장 당군이가 보고 싶어졌다.
“아빠, 우리 빵집 말고 당군이한테 가자.”
“간식도 안 가져왔는데?”
“점심때 또 가면 되지!”
나는 엄마에게 뽀뽀하듯이 잔디에 입을 맞췄다. 차갑고 축축한 잔디가 코를 간지럽혔다. 엄마 가까이 이사 오기를 정말 잘했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당군이가 있다. 이사 온 첫해 겨울에 우리는 처음 만났다. 꿈만 같았다. 그림책에서나 보던 당나귀를 직접 보다니! 당군이는 눈 주변만 하얬다. 당군이의 하얀 눈가면은 판다의 까만 선글라스만큼이나 멋졌다.
우리 동네엔 이름도 근사한 호수가 있다. ‘백운’은 ‘흰 구름’이라고 아빠가 가르쳐줬다. 호수 중간에 작은 산 하나가 떠 있다. 스케치북에 물감을 쭉 짜서 반으로 접었다가 펼쳤을 때처럼 호수에 산이 그대로 비쳤다.
무엇보다 이 호수가 특별한 건 당군이가 있어서다. 당군이는 늙은 당나귀다. 브레멘 음악대의 동키처럼 늙어서 버려진 걸 호수 지킴이 할아버지가 데려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녀석은 호수에 올 때부터 늙어있었다. 나는 늙으면 윤기가 없어진다는 걸 안다. 아빠도 그랬다. 내가 사랑하는 둘 다가 자꾸만 꺼칠해져 갔다. 흰머리 하나 뽑는 데 1000원씩 안 받아도 되니까 엄마 있을 때처럼 아빠가 빛이 났으면 좋겠다.
봄부터 가을까지 당군이는 호수에 놀러 온 아이들을 태워줬다. 할아버지는 녀석이 힘들다며 작은 아이들만 골라 태웠다. 아이를 등에 태운 당군이는 꽤 늠름해 보였다. 한겨울에 콧물 줄줄 흘리며 밥 달라 울어대던 녀석이 아니었다. 옛날부터 당나귀와 사람이 친했다던데, 당군이도 자기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좋아하는 듯했다. 할아버지의 한 가닥으로 묶은 머리는 꼭 당나귀 꼬리 같았다.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당군이와 나란히 걷는 할아버지 발걸음도 경쾌했다.
“총맹이도 한번 타볼 텨?”
할아버지는 늘 나를 ‘총맹이’라 불렀다.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타보고 싶기는 했지만 당군이가 힘들까 봐서였다.
“당군인 총명이 태우고 싶어 할 것 같은데?”
아빠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당군이 등에 올라탔다. 허벅지에 당군이의 따뜻한 등이 느껴졌다. 우리가 온전히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녀석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할아버지가 고삐를 내게 넘겨주며 눈을 찡긋했다. 나도 당군이와 단둘이서만 호수를 돌고 싶었다. 호수 중간쯤에 왔을 때 오른쪽 고삐를 당겼다. 녀석이 기특하게도 오른쪽으로 비켜섰다.
하늘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저녁놀을 바라봤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당군이 집은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 있다.
“당군아~”
“우우우~”
녀석이 반갑게 인사했다. ‘우우우’ 다음에는 어김없이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아빠가 부르면 저 소리를 안 냈다. 내가 불러야지만 저렇게 대답했다. 당군이 집은 바람이 숭숭 드나들었다. 당군이는 똥이 널브러진 바닥에 앉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나는 따뜻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 핫초코도 마셨는데, 오리털 잠바에 털모자까지 썼는데, 눈만 내놓고 다 가렸는데…….
비닐로 막아놓은 울타리가 바람에 심하게 펄럭였다. 내가 당군이었다면 벌써 얼어 죽었겠지? 얼마나 오래 이렇게 떨고 있었던 걸까?
“아빠, 당군이 목욕시켜주고 싶어!”
“이 녀석 목욕시키려면 수영장 정도는 돼야지 않겠어?”
“뭐, 수영장? 우리 집이 아니고?”
고개를 홱 돌려 아빠를 째려봤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당군이를 거품 목욕시켜주고 싶었다. 몸도 개운하고 향긋한 냄새도 나서 솔솔 잠이 올 텐데, 나는 당군이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도 좋은데…….
“아빠, 집에 가서 당군이 간식 가져오자.”
“그럼 우리 택시 타고 후딱 다녀올까?”
아빠도 미안했던지 바로 오케이를 했다.
우리는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부터 뒤졌다. 사과랑 배랑 야채칸에 있던 홍당무도 잘라서 담았다.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싶었지만 일단 녀석이 좋아하는 것들로 챙겼다.
“그 담요도 주는 거야?”
아빠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파란 담요는 내 애착 담요였기 때문이다.
“응, 내가 담요에서 엄마 냄새난다고 했잖아? 당군이도 우리 냄새 맡으면 덜 추울 거야.”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히 천장을 봤다. 나도 눈물이 나려 하면 아빠처럼 한다. 눈물은 전염된다. 동화책을 읽어주던 엄마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면 나도 눈두덩이 뜨거워졌다. 그러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코끝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아빠는 엄마 별명인 ‘또우나’를 외치며 우리를 놀리곤 했다.
“우리 당군이 배고팠쪄?”
아빠가 혀 짧은소리를 내면서 간식 꾸러미를 풀었다. 당군이가 그 새를 못 참고 머리통을 디밀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밥그릇에 예쁘게 담아줄 텐데 저리 덤벙댔다.
“야, 좀만 기다려, 오늘은 껍질 말고 알맹이 줄게.”
그제야 녀석이 조금 물러났다. 재빨리 아빠가 밥그릇에 과일을 부었다. 당군이가 입김과 콧김을 뿜으며 허겁지겁 먹어댔다. 얼마나 춥고 배고팠을까? 아빠가 당군이 목에 담요를 둘러줬다. 아빠가 담요를 묶는 동안 나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든 어찌나 잘 먹는지 기특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똥 냄새나서 안 만진다며?”
아빠가 씩 웃으며 놀렸다.
“그땐 엄마가 떠준 장갑 처음 끼고 왔잖아!”
아빠에게 톡 쏘아붙이고 당군이 목덜미를 만졌다. 홍당무를 먹느라 목이 울렁거렸다. 녀석의 콧김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당군이도 엄마처럼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면 어떡하지? 덜컥 겁이 났다.
“아빠, 당군이는 여기 올 때부터 늙었었잖아. 요즘 우는 소리도 힘이 없어지는 거 같아.”
“그러게, 사람이나 동물이나 겨울나기가 참 쉽지 않지.”
아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잘 먹어서 다행이야!”
“어? 앗, 찌찌뽕!”
아빠와 내가 동시에 당군이 얘기를 꺼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녀석은 우리를 바꿔놓았다. 아빠 말처럼 언제나 녀석이 일빠다. 마트에 가서도 당군이가 좋아하는 배를 먼저 골랐다. 아빠는 과일 껍질도 일부러 두껍게 깎았다. 나는 간식을 많이 만들려고 과일을 꼭 챙겨 먹게 되었다. 억지로 과일을 먹이려는 아빠와 실랑이를 벌이곤 했는데 이젠 스스로 찾아서 먹을 정도다. 아빠는 나를 바꿔놓은 당군이에게 무척 고마워했다.
당군이에게 간식도 먹이고 담요까지 둘러줬더니 마음이 좀 놓였다. 그래도 혼자 두고 가려니 발이 쉽게 안 떨어졌다. 자꾸만 뒤돌아보며 ‘또 올게!’를 되뇌었다. 엄마 산소 다녀오는 길에는 꼭 당군이도 보고 와야겠다. 녀석에게 먹일 따뜻한 음식이 뭐가 있을지도 찾아봐야지.
아빠가 집까지는 걸어가자고 했다. 이참에 늘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아빠, 아빠도 날 떠날 거야?”
나는 아빠가 절대 아니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음, 총명이는 아빠가 진실을 말해주기를 바라지?”
나는 아빠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누구도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알 수가 없단다. 엄마도 자기가 우리 곁을 이렇게 일찍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야. 총명이를 두고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겠지.”
엄마는 엄청 바쁜 응급실 간호사였다. 아무도 못 말리는 열혈 간호사가 바로 우리 엄마였다. 외할머니가 저래서 병을 키웠다고 가슴을 치며 울었다. 병원 침대에 누운 엄마는 낯설었다. 늘 씩씩했던 엄마였는데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희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아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빠에게도, 총명이에게도,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어. 그걸 우린 받아들여야 해. 죽음을 피할 순 없지만 그래도 아빠가 이건 약속할게. 오래오래 총명이 곁에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엄마처럼 갑자기 떠나지 않도록 말이야. 총명인 아빠 믿지?”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이 뭔지는 잘 몰라도 슬픈 건 확실했다. 영영 헤어져서 다시는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사진으로밖에는 볼 수가 없다. 무덤에 찾아가도 잔디나 비석만 쓰다듬을 수 있을 뿐이다. 엄마는 우리 말을 다 듣고 있겠지만 우리는 엄마 대답을 들을 수 없다. 꿈에서라도 자주 만나고 싶은데 맘대로 잘 안 된다.
당군이에게 다녀온 뒤로 강추위가 이어졌다. 며칠을 집에만 콕 박혀있었다. 호수도 꽝꽝 얼었을 텐데, 당군이는 괜찮을까? 출판사 갔다가 현관에 들어서는 아빠에게 곧장 당군이한테 가자고 졸랐다. 그동안 모은 과일 껍질과 아빠가 사 온 홍시도 몇 개 주워 담았다.
“당군아~”
힘차게 녀석을 불렀다. 그런데 ‘우우우’ 대신에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잉, 총맹이냐? 잘 왔구먼. 당군이가 친구 보고잡아서 불렀나 보네.”
할아버지가 하늘을 보며 코를 팽 풀었다. 당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녀석과 헤어질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당군이는 옆으로 누워있었다. 이렇게 누워있는 건 처음 본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도 내가 부르면 벌떡 일어나던 녀석이었는데……. 쪼그리고 앉아 콧등을 만졌다. 콧등이 축축했다. 녀석의 속눈썹이 이렇게 긴 줄은 미처 몰랐다. 당군이는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푹 잘 자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나는 안다.
“총맹아, 우리 인자 당군이 고마 보내주자잉!”
할아버지 목소리가 동화책을 읽어주던 엄마처럼 가늘게 떨렸다.
“늙었다고 오데 보내뿐다는 거 민속촌에서 델꼬 온 기 엊그제 같은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얘기를 들으니 당군이가 더더욱 그리워졌다. 나는 울지 않으려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총명, 이럴 땐 그냥 울어도 돼!”
아빠가 내 앞머리를 흩트리며 말했다. 나는 녀석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가만히 당군이 목을 끌어안았다. 냄새난다며 숨을 참지도 않았다. 당군이 잘못도 아닌데 냄새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던 게 미안했다. 늦었지만 사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내 친구 당군아, 잘 가!”
<동화부문 심사평>
쓸쓸하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
제5회 혜암 아동문학상 동화부문에 응모한 작품 54편은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는 응모자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우리 동화문학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1차로 추린 10편을 거듭 읽으며 전체 적인 완성도, 이야기의 새로움, 상투성, 설득력있는 서사의 자연스러움 등을 고려하며 하나씩 내려놓다 보니 3편이 남았다.
<핵인싸 할머니>는 손녀가 할머니를 경로당에 입성 시키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하며 할머니의 캐릭터는 생생하게 잘 살려냈으나 웃음으로 끝나버린 아쉬움이 있고 거듭 읽으면 입성 첫날 경로당을 압도하는 능력을 가진 할머니, 경로당에 이미 아는 얼굴까지 있는데 손녀의 도움을 받으며 경로당에 가는 설정은 어색하게 읽힌다.
<암벽왕 시로>는 암벽타기를 잘하고 싶은 시현이 앞에 나타나 사람처럼 말하는 그리마(돈벌레) 이야기이다. 말하는 그리마가 어째서 시현이 앞에 나타난 것일까. 그라마는 매끄러운 벽도 어렵지 않게 기어오르는 벌레이다. 그렇기 때문에 암벽왕 그리마는 암벽타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시현이 마음으로 읽힌다. 그리마와 대화를 통해 시현이의 심리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당군아, 잘 가> 는 늙은 당나귀의 죽음을 엄마의 죽음과 연결시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나간 작품이다. 어느새 우리 동화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이 작품은 복잡하고 중장편감의 이야기지만 작가는 이야기의 굵은 줄기를 잘 정리하며 깔끔한 단편으로 완성해냈다. 군더더기 없이 안정된 문장으로 엄마의 죽음을 추억하며 세상을 떠나는 늙은 당나귀, 당군이와의 사랑을, 짧은 분량에 많은 의미를 담아 놓았다. 쓸쓸하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당군아, 잘 가>는 자칫 신파로 떨어질 있는 소재를 작가는 담담한 어조, 절제된 호흡으로 잘 마무리 하고 있다.
세 편의 작품을 거듭 읽고 심사평을 메모하는 동안 끝까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작품은 <암벽왕 시로>와 <당군아, 잘 가>이다. 이야기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당군아, 잘 가>를 당선작으로 정하며 제일 위로 올려놓았다.
송재찬(동화작가)
<당선 소감>
당선 소식을 듣고는 새벽 일찍 잠이 깼습니다. 바로 책 읽기에는 힘들 것 같아서 동이 트기를 기다려 산에 올랐습니다. 앞산 초입에 잘 가꿔진 천주교 공원묘지가 하나 있습니다. 가끔 묘비에 새겨진 이름과 연도, 글귀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합니다.
어느 날 새로 들어선 묘지에 시선이 갔습니다. 묘비를 읽어보니 아주 젊은 엄마가 아이 셋을 남겨두고 떠났더군요. 자주 꽃다발이 바뀌는 그 묘지를 살피며 아빠 손을 잡고 엄마를 만나러 오는 세 아이를 그려봤습니다. 아이들이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니 일순 먹먹해졌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날 아침, 근처 호수를 산책하다가 그림책에서 막 나온 듯한 당나귀와 마주쳤습니다. 당나귀는 콧김을 뿜으며 ‘우우우’ 울었습니다. 엄청 춥고 배고파 보였지요. 당나귀에게 당군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당군이는 간식으로 가져다주는 과일 껍질을 정말 좋아했지요. 우리가 만난 지 6년째 되던 겨울에 떠난 당군이에게 늘 미안합니다. 냄새난다며 숨을 참고, 제대로 만져주지도 못했거든요. 동화를 쓰기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당군이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더랍니다.
채 두 돌도 안 된 저를 두고 영원히 떠나야 했던 아빠는 얼마나 많이 뒤돌아봤을까요? 13년 전 겨울에 엄마도 아빠가 있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직도 엄마를 떠나보내지 못한 청개구리 딸은 비가 오지 않아도, 엄마 생각을 하며 웁니다. <당군아, 잘 가>는 이 세 가지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네 눈물샘을 자극한 그 지점만 잡아낼 수 있다면 창작이든 비평이든 다 가능할 거야”라는 신 선배의 말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어른들은 남 앞에서 울지 않으려 애쓴답니다. 하지만 저는 동화책을 읽다가 전철 안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급기야 굵은 눈물방울 뚝뚝 떨어뜨리는, “또 우나!”입니다.
시간 속에서는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요? 아이작 디네센처럼 모든 슬픔과 고통을 참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살았던 집은 방 하나 부엌 하나로 이루어진 아홉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습니다. ‘아홉 집’이라 불리던 그곳 다락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는 가난한 이웃들의 일상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복작거리던 이웃들이 다들 집에 들어가고 일순간 텅 비어버린 마당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사각 우물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동그라미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노라면 가슴 저 밑자락으로부터 까닭 없이 서러움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온전히 내 소유였던 다락방은 그야말로 ‘내 영혼의 쉼터’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제게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었던 이문도 선생님은 작가의 꿈을 심어주셨고, 고1 담임이었던 조향미 시인은 그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여러 장르에서 번번이 당선의 문턱까지 갔다가 미끄러져 상심이 컸습니다. 그때마다 많은 분의 응원에 힘입어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늘 믿고 기다려주신 이승하 지도교수님, 동화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하나하나 짚어주셨던 김서정 교수님, 섬세한 묘사를 몸소 보여주신 오정희 교수님, 팬데믹 상황에서 장편소설을 완성할 수 있도록 기꺼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신 방현석 교수님, 평론의 길로 안내해 최종심까지 오를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정은경 교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 가장 오랜 친구 은정과 미진, 내 모든 작품의 첫 독자인 수진 언니, 혜암문학상을 소개해준 유리 씨와 스토리 포인트 동지들, 중앙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원우들, 꼭 잘 될 거라 격려해주시는 도신 스님, 동화 보는 눈을 틔워준 조 선배, 정신적 지주이자 도반인 신 선배, 엄마 대신인 정애 이모, 세상에 하나뿐인 오빠와 올케언니, 조카 소현이와 나현이, 가장 어린 제자로 만나 나보다 훌쩍 커버린 민지, 도연이의 진심 어린 축하를 받았습니다.
엄마가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생각하니 또 목이 멥니다. 엄마가 아빠 제사상 앞에서 늘 하던 말, “남의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1대 99의 세상에서 99를 위한 철학을 하겠다던 루소와 칸트를 따라 약한 사람들을 위한 약자의 ‘약한 사유(Weak Thought)’를 통해 강한 실천으로 나아가는 글을 쓰겠습니다. 지금은 일명 돈벌레로 불리는 그리마와 같은 작은 생명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장편 동화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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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품도 당선소감도 여운이 남네요..
그러게요. 오래 도전한 이력도 그렇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