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남을 우리랑 일본만 베트남이라 부른다니 일단 거기서부터 무언가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한 여행이었다.
10/25 인천공항에 집결하여 어린아이 소풍을 가듯 하하호호 재잘재잘 거리며 비엔남으로 출발 9시반 다낭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후덥지근한 날씨에 드디어 왔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숙소에 도착 가지고 간 소주가 상했나 안상했나 확인하며 첫날밤을 보냈다.
10/26 청룡부대 주둔지역과 하미촌마을 퐁니촌을 돌며 비엔남의 아픔을 어루만지다.
그리 덥지도 않은 좋은 날이다.
우리와 정서가 얼굴 생김이 전세계에서 가장 비슷하다는 비엔남.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땅의 개인소유를 인정하고 젊은이들 즉 35세 미만의 인구가 75%에 달하는 젊음의 땅 아니 기회의 땅 비엔남
중부지역에 있는 청룡부대 주둔지역 터를 첫 방문지로 잡은 것은 비엔남 전쟁의 상처가 거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었다. 빈터로만 남아있고 벽과 입구 기둥만이 쓸쓸히 지키고 있는 터를 보며 가슴이 저미어오는 것은 무엇일까?
전쟁에 내몰려 자신들이 어떠한 짓을 했는지 모른채 월남파병 용사라고 자랑스레 완장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왠지 모를 씁씁함을 뒤로한채 우리는 청룔부대가 138명의 민간인을 하루아침에 몰살시켜 버린 하미촌마을로 향했다. 이후 2001년 위령탑을 월남참전 전우회복지회가 건립을 했는데 학살내용에 관한 시비 때문에 또 한번 주민들을 죽이는....
외교관이 학살내용의 수정을 요구했는데 주민들이 왜곡해서 기록할순 없고 차라리 기록하지 말자고 하며 연꽃 문양을 그려 넣었다는....
그럼 왜 추모비를 세우려 했는지....
아직도 전쟁때는 그럴수 있다는 논리로 말하려는지....
그럼 625전쟁때 미군이 우리 백성을 죽인것도 일본놈들이 우리의 선조들을 죽인것도 어쩔수 없었다라고 이해 하려는지.....
미안하다는 우리의 말에 관심 가져줘서 감사하다는 주민중 한 할머니의 말이 너무나 가슴속에 파고 드는데 하필 그 할머니의 발이 뭉그러져 있는 것을 발견 했을때의 심정은 아직도 나의 가슴을 뻥 뚤리게 만들고 있다.
준비해간 자그마한 선물을 받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에 어찌나 미안한지...
겨우 저 정도 주려고 여기왔나 하는 마음에 너무너무 죄송하고.....
우리 자신이 너무 초라해보이고 작아지는 풍경이었다.
위령비에서 가지고간 소주 한잔을 따르며 우리는 ‘임을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위로했고 가족 16명중 12명이 비엔남전쟁에서 다 죽었다는 할머니 집을 방문하며 이야기를 듣는데 차마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주변을 방황하는 나 자신에 화가 났다. 집 입구에 있던 하루에 3번 조상을 섬기는 자그마한 참배하는 곳에 합장하며 1달러를 놓고 나오는 뒷모습 얼마나 쓸쓸하던지...
우리는 청룔부대가 74명의 마을주민을 학살한 퐁니마을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중 3/1이 10세 미만이라는 충격적인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제 그들이 총을 겨눌지 몰라 전쟁때는 다 적이다라는 논리가 허구임을 드러내는 10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총을 들을수나 있는지....
역시 우리의 사과와 주민중 한분이 감사하다는 말 ㅠㅠ
이러려고 온건 아닌데.....
역시 선물 드리고 위령비에 소주 한잔 올리고 그 마을에서 가족이 비엔남전쟁에서 다 죽고 아들 한명은 병원에 있다는 85세 할머니집을 방문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나는 주변을 배회... 나의 비겁함이란...
오후 일정은 우리는 낌뽕이라는 목각마을과 도자기 마을에 들러 예술가들의 삶과 접하였고 26일 일정을 마무리 숙소 옆에 있는 선술집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27일 장애인 친구들과 한때를 보내고 린옹사에 올라가 박00의 낙선을 빌다.
비가 오르내리는 날.
한국 기업이 설립했다는 장애인 아이들 보호시설. 그러나 지금은 지원을 안한다는 보호시설. 우리는 아이들에게 캐리커쳐를 해주고 풍물과 민요로 신나게 뛰어노는 즐거운 한때를 가졌다.
어제의 아픔을 씻어 내려는 듯...
무언가를 보여 주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상쇠를 잡은 나는 그저 그들과 하나되어 놀고 싶었다. 내가 무언가를 베푼다는 보여 준다는 것보다 그들과 내가 하나되어 논다는 개념으로 진짜 신나게 놀았다 손잡고 안아주고 온몸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참 잘놀았다. 원없이 잘놀았다. 놀았으면 됐지......
오후에는 바닷가가 보이는 린용사에 들렀다. 바다를 바라보며 전쟁을 맞이했을 부처의 눈에는 무었이 보였을까
이세상의 추악함과 더러움 속에서 부처가 할수 있었던일은....
전쟁후 상처를 풀어주는?
그건 아니다. 그럼 안된다.
난 정중히 부처님께 절을 하며 빌고 또 빌었다. 이번 대선에서 서민들을 외면할 박00가 꼭 떨어지게 해 달라고....
바닷가로 내려와 바닷가 바로옆 식당서 저녁을 먹고 모래사장에 뒹글며 파도를 온몸으로 맞이하면서 그리 하루는 지나갔고 숙소로 가서 이방 저방을 돌아다니며 소주한잔 기울이며 저녁을 맞이하였다.
첫댓글 전쟁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않는군요
아직도 보이지않는 전쟁을 계속하고있음을 글을 통해 느껴봅니다.
좋운 경험하셨네요™
와 정말 조은일 멋진일 부럽습니다ㅎㅎ
상쇠를 잡은 나는 그저 그들과 하나되어 놀고 싶었다." 이 한마디로 그들은 치유되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