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7일 목요일 지역아동센터 평가를 앞두고
실무자 회의 때 동료, 유리샘 임영주 선생님과 깊이 대화했습니다.
점심을 같이 먹고 난 후 마주보고 앉아
"밥을 같이 먹어야 정이 들어요, 난 싫은 사람하곤 밥 같이 안 먹어요."
하시는 임영주 선생님.
지역아동센터 평가를 대비해 서류를 갖추시며
아이들과 지역사회를 잘 돕기 위한 서류보다
서류를 위한 서류가 많음에 탄식하십니다.
이 서류, 저 서류 제목은 조금씩 다르나
아이들 삶의 총체성, 아이의 지금 삶을 세우기보다
한 명의 아이를 교육, 생활, 정서, 가정 영역으로
나누고 쪼개 적어야 하고, 점수로 매겨야 하고
내용까지 중복될 수 밖에 없는 서류 양식에 안타까워 하십니다.
이전에 썼던 지역아동센터 연합회 양식이라며
지난 페이지를 들춰서 보여주시는 양식의 항목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생활)
위생 : 의복과 몸 상태가 청결하였다.
식습관 : 반찬투정을 하지 않고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였다.
이타성 : 남을 도와주는 일이 있었다.
능동성 : 소극적이지 않고 맡겨진 일을 적극적으로 처리하였다.
사회성 : 또래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교육)
학습 : 학습 진도를 잘 따랐다.
책임성 : 의도적으로 수업 시간에 늦거나 결석하는 일이 없었다.
자율성 : 떠들거나 장난치지 않고 자율적으로 수업에 참여하였다.
탐구성 : 모르는 문제는 반드시 알고 넘어갔다.
창의성 : 독창적인 학습수행 능력을 보여주었다.
(정서)
발달 : 생각이 나이에 맞게 고루 발달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인지능력 : 이해와 수용이 필요한 대상에 대해 적절한 수준의 반응을 보였다.
조절능력 : 감정의 조절이 잘 이루어졌다.
표현능력 :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다른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하였다.
행동심리 : 거친 행동이 없고 언행이 부드러웠다.
(가정)
가족애 : 가족구성원에 대해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표현하였다.
기여도 : 집안일에 적극 동참하였다.
신뢰도 : 가정으로부터 불안을 느끼거나 시달리는 일이 없었다.
만족도 : 가정에 대한 불만 표출이 없었다.
역할 : 가정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었으며 충실하였다.
한 명의 아이를 한 달간 관찰하여 1~5점으로 평가하는 이 항목들.
한 아이를 떠올리며, '이 아이가 이랬었나'하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수치화하는 것이 옳을까 생각하던 찰나,
"저는 이 양식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어요."하는 임영주 선생님.
그 말씀에
"이 서류, 아이에게 보여주기 당당할까요?
제가 아이라면 보고 자존심 상할지도 모르겠는데요.
조금만 점수가 낮으면 문제 있는 아이 같잖아요."하니
"그러니까요. 안 그래도 이런 서류는 비밀로 하는 거 있죠?
캐비넷에 넣어두고요.
제가 아이라도 기분 나쁠 걸요."
하는 임영주 선생님 말씀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
위 양식을 다시 보니
아이를 소위, 잠재적 문제의 대상으로 보기 쉬운 항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수가 조금만 낮다면, 얼마든지 문제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어 조심스러웠습니다.
또한 아이라는 당사자 체계에만 집중하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사자와 상관하는 지역사회는 온데 간데 없고
아이의 삶터를 둘러싼 환경 중 '가정'만 다루고 있으며
가정 내에서도 다른 체계나 다른 체계와의 공유영역보다
아이의 역할, 생각, 감정만을 변화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난 후,
천강희 선생님, 임영주 선생님과 뜻을 합쳤습니다.
지금도 위의 양식과 다른 아동관찰일지 양식을 새로이 만들어 쓰고 있으나
지역아동센터 평가 이후,
기관의 양식을 서류와 행정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당사자인 아이들과 지역사회 사람사이 사람살이가 살아있는 글,
읽으면 웃고 울고 감동하는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의 본연이 살아 숨쉬는 글을 담자고 했습니다.
평가가 끝나고, 월평빌라 다음 카페 기록들을 보고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임영주 선생님께서 "월평빌라요?"하시며 메모장에 적어두셨습니다.
"장애인 시설 같은 이름보다 사람 사는 건물처럼 일부러 이름 지었습니다."하니
"그래요?"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이용시설인 지역아동센터보다
생활시설인 월평빌라의 당사자 개인 파일 기록이 더 상세하기 쉬울텐데
이를 복지정보시스템에 입력할 때
당사자와 지역사회를 돋보이게 잘 기록했으니
보고 배우기로 했습니다.
임영주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생각이 고맙습니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우리 동네 아이들을 불쌍한 아이 만들기 꺼려 하시는 말씀,
아이들의 삶을 문제화하는 문서 양식에
반감을 보이시는 모습 모두 동료로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첫댓글 그 양식이, 아이의 문제를 드러내는 조서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이런 양식에 맞춰 기록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합니다.
설악산 배움터의 기록, 기대합니다.
임영주 선생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