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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차림 과 버리기 총정리 6 마지막 회)
오늘은 마지막 단계인 [버리기]입니다.
급하신 분들은 맨 아랫부분에 방법을 적어 두었으니 보시면 되겠습니다.
매번 말씀드립니다만 이 글은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하는 글들이라 설명이 구구절절하답니다.
취향에 맞는 데로 골라서 보시라고 문단을 나누어 놓았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버리기는 수행의 최종 단계입니다.
버리기를 잘하기 위해서 알아차림도 하는 것이고 출가도 하는 것이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것이랍니다.
※ 버리기는 새벽에 더 잘 된답니다.
부처님도 그랬고 수많은 분들도 새벽에 많이 터졌답니다.
그렇다고 낮에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평시에 열심히 해두어야 무르익은 마음이 새벽에 잘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대부분 새벽 때가 가장 부드럽고 유들유들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초보자분들은 끊임없이 마음을 바라보고 비우고 버리는 연습을 하셔야 한답니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일순간에 터지게 되어 있답니다.
제 경우처럼 단 한 방에 쓸어버리면 가장 좋기는 한데 일반적으로 그것이 잘 안되다 보니까 알아차리기부터 하는 거랍니다.
혜가처럼 마음을 알아차릴 줄 아시는 분들은 바로 버리기로 하시면 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따라 해 보다가 된 경우라 많이 헷갈렸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도 고승들을 여기저기 많이 찾아다녔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보는 많이 들었지만 만족할 만한 진짜로 듣고 싶었던 답변은 얻지를 못했는데요.
그 뒤로 아무리 많은 동영상들을 들어보고 법문들을 들어보아도 제가 알고 싶었던 핵심 내용은 없었답니다.
이 공부는 처음에는 누구나 이렇게 버벅거리면서 할 수박에 없답니다.
부처님도 초기에는 엄청 고생을 많이 하셨답니다.
그래서 저도 이럴 바에는 차라리 직접 경전과 제 자신을 비교해 가면서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지금껏 공부를 그렇게 해오고 있는데요.
이것이 저에게는 때도 안 묻히고 수행을 잘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본답니다.
지금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수행자분들을 많이 찾아다니고 있는데요.
여러분들도 가급적이면 부처님에게 방법만 배워서 혼자 해 보십시오.
처음만 버벅거릴 뿐이지 자리가 잡히면 곧 안정이 된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알아차림이야말로 보배 중에 보배랍니다.
알아차림은 수행의 종합세트랍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을 통해 조견(照見)도 할 수가 있고, 버리기도 할 수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깨어서 알아차리는 순간 조견과 버리기와 마음을 부드럽게 갈아엎는 효과 등이 동시에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알아차림을 수행의 보배라고 하는 것이고 수행의 기초라 하는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단점은 알아차리기만 하면 버리기가 다소 약하다는 것이 문제인데요.
알아차리고 있을 때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완전히 털어내야 한답니다.
다시는 못 올라오게 완전히 털어내야 한답니다.
그래서 더 효과를 높이기 위해 부처님도 방편을 많이 쓰셨던 거랍니다.
방편과 버리기를 동시에 같이 해보라는 것입니다.
주리반다가처럼 알아차리면서 동시에 버리기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방편은 여러분들이 잘 되는 쪽으로 직접 찾아서 하셔도 된답니다.
제 경우는 처음에 알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보니까 신기하게도 경전대로 한 경우더라고요.
그래서 더 이쪽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고요.
저는 스님은 아니지만 수행 방법과 경험은 풍부하답니다.
시간은 남들보다 짧지만 6년 이상을 단 하루도 안 거르고 거의 이쪽으로 미쳐있는 상태이고
무엇보다 저의 수행은 현시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간화선이든 알아차림이든 하나만으로는 효과도 적고 왜 하는지조차 모르고 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답니다.
지금 수행법은 너무 한 가지 방법에만 얽매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절대로 안 그랬답니다.
방편만 해도 수백 가지랍니다.
제가들이고 싶은 말은 수행 방법을 다각화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본인과 잘 맞는 방법을 찾아서 해보십시오.
물론 기본은 [알아차림]입니다.
방법을 모르시면 저에게 언제든 물어보시고요.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현재 이 순간이 되었건, 화두가 되었건 뒤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아시는 분들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가르치는 사람들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멸에 해당하는 버리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시는 분들은 없었답니다.
만약에 버리기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이나 책이나 동영상 등이 있으면 저에게도 소개해 주십시오.
그 이유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버리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서로 공유할게 있으면 공유해 보기 위해서랍니다.
아무튼 부처님은 한 가지만 고집을 하지 않으시고 많은 방편과 방법으로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고 증득을 시켰답니다.
이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부처님도 대중들이 알아듣기 좋도록 먼저 방편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후 일불승을 말씀하셨는데요.
저도 이 방법이 좋은듯하여 그렇게 하고 있답니다.
그 이유는 이 방법이 초보자분들부터 고급반 분들까지 모두를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 내용이 다소 길더라도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오늘 내용은 가장 중요한 내용이니 끝까지 이해하시고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
알아차림도 버리기 방법에 해당합니다.
아주 기초적인 방법이지요.
그리고 이 알아차림은 깨닫기 전이나 깨닫고 나서나 평생을 죽는 그 순간까지도 들고 있어야 할 과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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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이란..
일반적으로 마음을 알아차리고 살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평시에 알아차림 연습을 하는 것이랍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알아차림의 확립]이라고 표현하셨답니다.
지금은 이해가 잘 안 가시겠지만 알아차림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깨닫고 나면 왜 알아차림이 중요한지 아시게 됨)
부처님 표현 방식으로 말하면 확실하게 알아차림이 확립되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된답니다.
활을 쏘려고 하는데 과녁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고 활시위를 당길 힘도 없이 쏘려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과녁이란 [마음] 하나를 뜻한답니다.
간화선뿐만이 아니라 모든 수행 방법의 끝은 [마음] 하나를 해결(버리기)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방법들이랍니다.
어느 수행을 통해서 하시든 끝에는 모두 마음 하나에서 만날 수 박에 없답니다.
이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재가자분들이 이런 질문을 자주 주셔서 잠깐 정리해 보겠습니다.
유튜브나 스님들의 법문을 듣다 보면 중생들이 옛날 사람들보다 근기(根氣)가 많이 하열해서 수행을 하고 깨닫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내용인데요.
그래서 우리 같은 중생들이 어떻게 수행을 하고 견성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랍니다.
오히려 정반대이지요.
그 이유는 중생들의 근기가 하열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님들의 근기가 하열해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오히려 중생들의 근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 스님들의 근기는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랍니다.
지금 시대에는 옛날과는 달리 오늘날의 문제점은 요즘 사람들의 근기에 맞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따라가지를 못해서 그것이 문제랍니다.
이 말은 절대로 스님들을 없이 여기거나 비하해서 하는 말이 아니랍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근기(根氣)의 사전적 의미는 [근본이 되는 힘.]을 나타내는데요.
쉽게 말하면 기초, 기본 등을 뜻하는 것입니다.
옛날 중생들보다 지금 중생들이 기초가 부족하다고요?
천만에요.
무엇보다 지금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 보다 훨씬 깨어있고 잘 받아들인답니다.
문제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랍니다.
저도 거기에 물론 포함이 되고요. (진실)
그래서 저도 이것을 어떻게 좀 더 쉽게 요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요즘 사람들에게 맞는 수행 방법은 없을까? 등을 많이 연구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멋진 중생들을 상대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답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오히려 지금의 중생들이 옛날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훨씬 더 깨어있고 똑똑하고 집요한 근기를 가지고 있답니다.
어떻게 옛날 사람들과 지금 사람들을 비교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랍니다.
저는 분명히 이런 질문을 주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의 중생들이 옛날 사람들 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근기가 출중하니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견성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잘못된 말에 현혹되지 마시고 열심히 부처님을 따라 해 보십시오.
그 이유에 대해 좀 더 설명드리면..
옛날 스님들은 최고의 지식인들의 집 단체였답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그랬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스님이 되려면 최소한 왕가나 귀족들이 아니면 출가를 할 수도 없었고 몇십 년 전만 해도 글을 모르면 출가를 할 수가 없었답니다.
반대로 옛날의 일반 중생들은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었고 더군다나 거의가 글을 모르는 무식한 중생들이 대부분이었답니다.
당시에 일반 중생들은 오로지 하늘과 땅에 큰 절을 올리면서 신(神)으로 받들어 모셨고 그것도 안되면 스님들을 찾아와 지혜를 구하곤 했답니다.
당시의 스님들은 근기뿐만 아니라 아주 높은 수준의 학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중생들이 스님들을 존경하며 잘 따랐고 스님들도 중생들을 위해 많은 힘들을 쓰셨고 중생들을 제도하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답니다.
자장율사나 원효스님이나 의상 스님 같은 분들은 모두 왕족 아니면 귀족들이었답니다.
그 외에 스님들도 이름만 안 났을 뿐이지 대부분 당시로서는 최고의 학벌과 사회경험이 풍부한 그야말로 최고의 근기를 가지고 있었던 귀족 출신들이랍니다.
반대로 중생들은 글도 몰랐고 경험이라고 해봐야 평생을 마을 안이나 읍내 안에서만 돌다가 집에 돌아오면 땅 파고 밤이 되면 잠자는 것이 전부였답니다.
불과 4~50년 전만 해도 그랬답니다.
농촌에서 생활해 보신 어르신들은 이 내용을 잘 아시겠지만 64년 생인 저만해도 그 당시 시골을 가보면 마을 사람들 중에는 한 번도 기차를 타보지 못한 사람들이 허다했답니다.
하물며 옛날에야 오죽했겠습니까?
어떻게 요즘 사람들과 옛날 가람들과의 근기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속된 말로 깨임 자체가 안됩니다..
그러니 이런 말에 현혹되어 수행을 멀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일반 스님들 보다 일반 중생들이 훨씬 지혜도 풍부하고 경험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하고자 하는 근기가 뛰어나답니다.
문제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 중생들을 공부나 수행 등으로 관심을 이끌지 못하는 거랍니다.
대부분 최고 어른들부터 정신들이 다른데 가 있는데 그것이 되겠습니까?
그렇잖아도 몇몇 스님들이 저에게 이런 소리 좀 하지 말라고 (거시기?)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랍니다.
저도 정말이지 스님들을 엄청 위하고 있고 열심히 수행을 하고 계시는 스님들이 있으면 너무 반가워서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거시기 하고는 있지만 정말이지 스님들은 수행 외에는 없어야 한답니다.
스님들이 열심히 해보십시오.
그러면 왜 중생들이 안 따라 하겠습니까?
아무리 말법시대라 해도 스님들이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들만 보여도 요즘처럼 질 좋은 근기를 가지신 분들은 반드시 수행처로 모이게 되어 있답니다.
요즘 세상은 일부러 정신병원이나 상담사들을 찾아다니는 세상이랍니다.
왜들 이러십니까?
그러니 제발들 좀 엉뚱한 곳에 의식을 보내지 마시고 마음자리로 좀 의식을 보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근대에만 보아도 경허선사나 그의 제자들 모두는 해박한 지식과 사회 경험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이랍니다.
가깝게는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만 해도 그렇고요.
이런 해박한 지식과 사회 경험 등이 있었기 때문에 더군다나 모범적인 출가 생활과 함게 삶의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중생들은 스님들을 존경하며 잘 따랐던 것이고 중생 제도도 그나마 가능했던 거랍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디 그런가요?
지금은 완전히 정반대랍니다.
특히 사회경험은 더 그러하고요.
사회생활을 모르시는 분들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일어나고 살아지는 수많은 마음들을 이해하고 어루만지고 지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사회에서 산전수전을 다 격은 중생들 마음을 어떻게 살필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지금 시대에는 중생들의 삶과 생활을 많이 보고 들어야 한답니다.
그래야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수가 있답니다.
저의 이런 말을 모욕적으로만 받아들이시면 안 된답니다.
전체적으로 내부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지 않으시면 어렵답니다.
그래서 자꾸 스님들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는 것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지금 누가 누구를 근기가 높으니 하열하니 하고 있느냐 이것입니다.
특히 최고 어른들은 지금 정신들 바짝 차리셔야 한답니다.
물론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는 지식이나 경험 등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은 다방면으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답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 사람들처럼 근기가 높은 중생들을 이끌어 나갈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설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고요.
세상 자체가 지금 뒤바뀐 세상인데 아직도 옛날 타령만 하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중생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고 이끌지를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중생들을 제도를 할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지식도 미천하고 사회 경험도 미천한 사람들이 요즘처럼 유식하고 경험이 풍부한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부처님만 해도 어려서부터 워낙 궁금증이 많으셨던 분이시기 때문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셨던 분이랍니다.
부처님도 이러한 것들이 밑바탕이 되어 수많은 방편들로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왜냐하면 방편 자체가 경험에서 오는 것들이거든요.
서울대학교다. 하버드다 해서 학벌만 좋으면 뭐 하겠습니까?
사회 경험이 없는데요.
마음에 관계되는 일들은 거의가 사회에서 발생되는 것들이 많은데 어떻게 사회에서 일어나고 살아지는 중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가 있겠으며 제도를 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마음이 아닌 머리로만 공부들을 하게 되는 거랍니다.
포장만 잘해서 내놓으면 뭐 하느냐 이겁니다.
부처님 표현대로 말하면 알맹이 없는 쭈쨍이들인데요.
그래서 책 장사나 하고 있는 거랍니다.
젊고 잘생긴 스님 신분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감성을 찾아서 만지작거리기만 해도 책들이 잘 팔리거든요.
이것이 현실이랍니다.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
그나마 괜찮은 진짜배기 스님들은 잘 포장된 스님들 때문에 묻혀있는 실정이고요.
이 글을 보시는 재가자분들 만이라도 이런 잘못된 말에 현혹되지 마시고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보십시오.
옛날 중생들 보다 요즘 중생들이 근기가 부족하다고요?
절대로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옛날 사람들 보다 차고도 넘칠 만큼의 근기들을 모두 타고 셨답니다.
그러니 열심히 해보십시오.
꼭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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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 질문들이 많이 들어왔는데요.
"한문으로 하는 법문이 너무 듣기 어려워요."
라는 질문들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제 한문 시대는 끝났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랍니다.
영어가 넘쳐나고 있는 세상에서 아직도 이쪽만 한문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입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랍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방편의 대가들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방편은 고사하고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냐하면 종범 스님이나 그 외에 몇몇 노스님들 빼고는 한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답니다.
자신이 직접 지어서 써놓은 벽에 걸린 글들을 가끔 보면 한자 문법이 뒤바뀐 경우가 허다하답니다.
한문은 문법에 따라 전혀 뜻이 달라진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선문염송 이나 옛 글들을 보면 정말 엄청나게 룰륭한 표현들이 많이 있답니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글들은 엉터리가 많습니다.
물론 다는 아니고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는 기분이 나쁘실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만 한문에 익숙지 않으신 분들은 그냥 우리말로 하시면 된답니다.
도반 분들이 이름은 되도록 밝히지 말라고 하셔서 누두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만
[마음을 안다]라는 뜻을 가진 식심(識心)이라는 글 자를 놓고 [분별심]으로 법문을 하시고 계시는 분들도 있답니다.
더 가관인 것은 그 밑에 있는 할머니나 아주머니 들은 그저 넋을 읽고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가르치는 사람들이 중생들의 근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랍니다.
인정을 할 것은 인정을 하고 하루빨리 개선을 하셔야 그나마 우리 불교가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운허 용하 스님이 일제 치하에서 교도소에 있을 때 기독교 목사들이 영어 성경 책을 한글로 번역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그나마 한글 개정판을 다소 내기는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이런 일들을 하실만 분들도 없을 것 같고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만이라도 한문식 표현이 어려우시면 무엇보다 견성성불이 중요하니 부처님이 알려주시는 방법으로 수행부터 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절대로 근기가 나쁜 분들이 아니랍니다.
여러분들이 뭐가 부족해서 못하겠습니까?
제 경우는 솔직히 한문식 표현을 좋아한답니다.
마음을 파고드는 효과는 입 소리보다 뜻글자인 한문식 표현이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입소리는 뜻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한문은 글씨 자체가 뜻글자이기 때문에 전달하고자 하는 뜻이 분명하답니다.
그러나 수행은 전혀 그렇지 않답니다.
방법만 알고 그냥 하시면 된답니다.
한문이든 한글이든 말이나 글자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은 모두 깨닫고 증득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랍니다.
그들은 그들끼리 그러고 놀라고 내버려 두십시오.
언젠가는 그들도 하겠지요.
문제는 여러분들이랍니다.
왜 이런 것들에 얽매여 계십니까.
제가 아주 황당했던 것은 이분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실만한 분이신데요.
양쪽 불교 방송국에서는 아주 유명하신 스님이시지요.
저도 방송을 보다가 하도 감명을 받아서 찾아뵌 분이신데요.
제 경우는 어려서부터 특징 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일이나 놀이나 물건 등이 있으면 반드시 가서 보고 듣는 편인데요.
이때도 그랬답니다.
이분의 법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가 한문으로 된 법문을 하시는 분이신데요.
당시에는 저도 깨닫기만 하고 불교 쪽 문화는 전혀 모르고 있을 때라 한국에 들어오면 스님들을 여기저기 자주 찾아가서 뵐 때랍니다.
하루는 스님 말씀이 "선문답은 본래 답이 없다"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무슨 소리야? 답(答)이 없는 문(問)도 다있나?"
하는 마음에 버르장머리 없이 노스님에게 살짝 선문답으로 건드려 본 적이 있었답니다.
계속하시는 말씀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시기에..
제가 경허선사의 선문부터 옛 조사들의 선문답 내용들을 몇 가지 해석해 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한문을 많이 아시고 계셨던 분이라 저의 한자 해석의 뜻에 얼굴이 벌게지시면서 식사 대접을 하는 자리에서 괜히 분위기만 멋쩍어졌던 경우가 있었답니다.
괜히 이런 일 때문에 스님과 좋았던 사이가 서로 발길만 멀어졌는데요.
이분은 분명히 깨달은 분이 맞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한문을 많이 알아도 속에 든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글자는 글자일 뿐이랍니다.
이런 것 가지고 지금 한국불교는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얽매여 있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선문답이나 글자나 뜻이 아니라 현재의 [마음]이랍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떠하느냐?
이것이 마음 이야기랍니다.
불교 안에는 선문답이 아니라 이런 마음 이야기들이 많이 많이 넘치고 또 넘쳐나야 한답니다.
이런 분위기로 만들어가야 한답니다.
어떻게 이런 선문답 같은 것으로 우주보다 깊고 오묘한 마음의 진리를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자리를 아는 것과 한문 속뜻을 아는 것과는 무관하답니다.
여러분들만이라도 이러한 잘못된 수행 문화에 속지 마십시오.
한문의 속 뜻은 공부를 할 때나 필요한 것이랍니다.
중요한 것은 수행이랍니다.
제 경우는 남방 스님들과도 친한 분들이 많은데요.
이분들은 아예 선문답 같은 것은 모른답니다.
그렇다고 이분들을 수행자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선문답 같은 것으로 깨달았느니 아니니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것이랍니다.
부처님에게 영어로 설법을 한다면 알아들으실까요?
이제는 불교계에서도 한문은 뒤로하고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개화가 되어야 한답니다.
지금이 당나라 시대입니까?
아님
조선시대입니까?
제 경우는 이런 한문식 법문이 훨씬 듣기도 좋고 재미가 있답니다.
이해가 팍팍 되거든요.
그러나 지금 젊은 친구들은 거의 99% 이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찮은 장사치 들도 확률이 높은 곳에서 확률이 높은 물건을 내놓고 팔고 있는데
아니 어떻게 방편의 대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곳에서 장사치들보다도 지혜가 부족해 보이느냐 이것입니다.
일반사회에서도 영업전략을 짜자면 소비자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정석이랍니다.
아직까지도 이쪽 분들만 공자왈 맹자왈 하고 있으니 부처님이 펼치셨던 방편력은 어디로 가고 아직까지도 좁은 틀 안에서만 계셔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불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고 젊은 불자들이 거의 없는 거랍니다.
더군다나 근기가 높은 사람들은 아예 발길을 끊고 있는 것이고요.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중생의 근기가 하열한 것이 아니라 근기가 출중한 중생들이 이쪽으로 관심을 안 갖는 거랍니다.
뭐라도 본받을 만한 것이 있어야 이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 옛 스님들은 그렇지 않았답니다.
오죽하면 왕이나 귀족들이 스님들을 서로 모셔가려고 했을까요?
지금은 어디 그런가요?
수행에 있어서도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건 뭐 한문 공부를 하려고 온 것인지 아니면 수행을 배우려고 온 것인지...?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허공에 대고 말하고 답하는 격이니 이래서야 무슨 공부가 되겠습니까?
아무튼 지금 사람들은 옛 날 사람들보다 훨씬 근기들이 좋으니 괜히 한문 같은 것 때문에 어려워하지 마시고 쉬운 부처님 방법으로 해보십시오.
수행은 너무나 쉬운 것이랍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시고 조금만 더 노력을 해보십시오.
아무쪼록 어느 것을 선택하시든 저는 죽는 날까지 준비가 되어있으니 여러분들만 포기하지 않으시면 저는 끝까지 가볼 생각이랍니다.
[어차피 누구나 죽는 것 여러분들도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고는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성공이니 꼭 성공을 이루시길 기원드립니다.
♡
초보자분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라 다시 한번 간단하게 전체 흐름을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입소리로 설명을 하기가 매우 어렵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색깔을 입소리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듯이 이것도 마찬가지랍니다.
파란색만 해도 종류가 엄청 많거든요.
그래서 부처님도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하실 수 박에 없었던 거랍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제가 비유하는 내용의 의도를 잘 이해해 보시고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비유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답니다.
손오공 속 내용 안에도 모든 내용들이 들어있고요.
이것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주파수가 정확히 맞아들어가야 라디오가 잘 터지듯..
이것도 여러분들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알아차림과 마음의 것들과 버리기가 동시에 잘 맞아들어가야 잘 터진다는 뜻입니다.
라디오가 다르다고 해서 즉 수행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잘 터지고 안 터지는 것은 아니랍니다.
수행 방법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답니다.
자기와 잘 맞으면 그것이 좋은 수행 도구라는 뜻입니다.
버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버려지는 방법이 장땡이라는 뜻입니다.
수행 방법은 하나가 잘되면 모두가 잘 되게끔 되어 있답니다.
수행 방법보다 주파수가 얼마나 더 정확히 잘 맞아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답니다.
물론 아무리 주파수가 잘 맞아들어가도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뽑아내기가 힘이 들 수박에 없답니다.
본인 스스로 힘껏 잡고 있는데 무슨 수로 뽑아버릴 수 있을까요.
평시에 본인들의 마음을 유들유들하게 만들어 두십시오.
전 편에서 말씀드린 내용들과 오늘 내용이 종합적으로 잘 어우러져야 한방에 떨굴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전편에 말씀드렸듯이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방법은 많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이 자주 내 마음을 바라보는 방법이 그나마 쉽고 효과도 좋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 마음을 바라보면 숙연해지기 마련이고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랍니다.
어느 수행으로 하시던 끝에는 모두 마음에서 해결을 하셔야 한답니다.
가장 훌륭한 수행은 현재 내 마음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비유를 잘 이해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의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비유 (1)
알아차리기를 하는 이유
알아차리기를 햇볕으로 비유하고 마음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들을 감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들판에 핀 곡식들도 햇볕을 많이 쬐어주어야 곡식이 잘 익듯이 여러분들 마음도 알아차리기를 자주 쬐어주셔야 잘 익는답니다.
감나무에 열린 감이 제대로 익으려면 충분한 햇볕을 받아야 하듯이..
이로 인해 충분히 익은 감은 저절로 떨어질락 말락 한때 밑에서 발로 한 번만 꽝" 하고 치기만 해도 툭" 하고 잘 떨어지듯이..
여러분들도 수시로 내 마음을 알아차려야 마음을 충분히 익힐 수가 있답니다.
부처님은 이 내용을 [알아차림의 확립]이라고 표현을 하셨는데요.
여러분들이 지금 하셔야 할 것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답니다.
하나는 마음을 알아차림으로 해서 정성껏 햇볕을 쬐여주는 일이고
또 하나는 충분히 마음이 익으면 떼어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용은 이렇게 충분히 익은 마음을 방편력으로 떨구는 방법을 배우시는 것이고요.
♡
비유 (2)
집에 불이 났습니다.
(내 마음에 불이 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은 불이 왜 났는지 그 원인을 알아봐야겠지요?
그러면 원인을 아는 것도 있고 원인을 모르겠는데 괜히 내 마음이 묵직한 경우도 있습니다.
원인을 알고 모르고에 따라 버리는 방법도 달리해야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원인을 모를 때에는 진실하게 내 마음에 참회를 해보십시오.
기독교인은 주안에서 회계를 해보십시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묵직한 그 마음(주안) 쪽을 향해 하셔야 한답니다.
불상이나 십자가에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이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셨는데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니 늘 주안에서 깨어 기도하라"가 여기에 해당한답니다.
[주 안]에 기도를 하는 것이랍니다.
[주 밖]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요.
여기서 말하는 기도가 알아차림이랍니다.
불교 기도수행법도 마찬가지랍니다.
본래 예수님의 기도 수도(修道) 법이 인도에서 배워갔다는 설도 있고요.
아무튼 무엇으로 하든 내 안으로 의식이 가있어야 한답니다.
이것이 수행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중에 핵심이랍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참나 와 마음과 불성은 하나이니 늘 이 안에서 깨어서 알아차려라"가 여기에 해당한답니다.
이것은 늘 내 안으로 의식이 가있아야 하고 참회를 하든 무엇을 하든 내 마음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답니다.
그 외의 방법으로 불을 끄려면..
1. 직접 들어가서 끄는 방법
2. 다 탈 때까지 바라보는 방법
3. 다 타고나면 잔불 처리를 하는 방법
4. 타기 전에 미리 막는 방법
5. 방금 이야기한 내 마음에 참회(반성) 하는 방법 등이 있답니다.
(지금 내용은 비유이고 뒤에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시든 내 마음에 불이 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셔야 한답니다.
이것이 숙달되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하고 있는 거랍니다.
제 경우처럼 마음을 알아차릴 줄 아시는 분들은 이렇게 어렵게 하실 필요가 없답니다.
그냥 마음을 상대로 직접 하시면 된답니다.
그것이 제 경우처럼 가장 빠른 방법이랍니다.
일단은 내 마음을 알아차려야 불을 끄든 말든 하겠지요.
아니면 불이 타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막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요.
버리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참 마음이 불타고 있는데 그것을 끄기란 좀처럼 힘이 들것입니다.
그러나 힘만 들고 안되더라도 이때에도 알아차리면서 버리기를 시도를 해보십시오.
그 이유는 이때 훈련이 많이 된답니다.
그리고 불이 다 탈 때까지 바라보십시오.
그냥 불타는 마음을 외면하지 마시고 바라보십시오.
마음이 다 탈 때까지 바라보자니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래도 외면하지 마시고 바라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에서 엄청난 훈련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령이나 무거운 물건을 들고 운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힘든 마음을 피하지 말고 보라는 뜻)
의식에 힘을 키우는 방법도 되고 근기를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 타고나면 잔불 처리만 잘 하시면 됩니다.
잔불처린란 비벼서 밖으로 쓸어버리라는 뜻입니다.
불이 탈 때 버리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안되고 힘들지 모르지만 주리반다가처럼 계속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떨어진답니다. (진실)
간화선을 하시는 분들도 흐름은 같답니다.
화두타파가 안되면 말짱 꽝이랍니다.
대부분 잔불 처리를 확실히 안 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또 닥치면 다시 불길이 타오르는 거랍니다.
(간화선에서도 잔불 처리는 매우 중요하답니다.)
문제는 많은 수행자분들이 화두를 바라보고 알아차리기는 잘하는데 화두 타파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감은 익을 때로 잘 익어서 살짝 건들기만 하면 떨어질 판인데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모르고 계시는 것과 같습니다.
대문으로 비유하면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문고리만 잡고 밖에서 만지작 만지작 하면서 어떻게 밀고 들어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요즘 수행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수행을 하시면서도 매일 그 자리에서만 빙빙 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부처님이 방편으로 가르쳐 주신 내용들을 전혀 못 알아차리고 있답니다.
오늘 그것을 배워가십시오.
저도 부처님과 옛 분들에게 배운 것이랍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여러 곳에서 부처님과 수많은 조사들이 방편으로 알려주시는 내용들을 못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리불은 곧 우리들도 해당이 된답니다.)
나는 이 법을 설할 때에 이승과 삼승을 먼저 설한 후에 일불승을 설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전해주려는 것은 이승과 삼승이 아닌 일불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승과 삼승은 방편이고 일불승이 진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수행자분들은 사리자와 같이 이승과 삼승 안에서만 머물러 있답니다.
사리자처럼 방편 안에서 머물면서 깨닫고 증득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주리반타가] 와 [흑씨범지]의 예를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두 가지의 예 외에는 일불승은 증득할 수는 없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1)
주리반타가
https://youtu.be/0q4Cf1jcadw
(2)
흑씨범지
[선문염송] (19편)
https://m.blog.naver.com/jisu2433/221621070349
,
내용을 살펴보면
주리반타가는 바보입니다.
이 내용은 부처님께서는 주리반다가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랍니다.
아무리 바보라 해도 의식과 마음은 살아있거든요.
누구에게나 의식은 살아있답니다.
이 의식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버리기에는 매우 중요하답니다.
이 의식으로 주라반다가처럼 버리기를 하는 거랍니다.
이 주리반다가의 내용에서 각자의 의식 상태를 잘 관찰해 보십시오.
모르시는 분들은 전편의 글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주라반다가처럼 나의 의식은 지금 어디에 가있느냐?
이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내용을 보면
주리반다가의 형은 물론 다른 수행자들의 의식은 모두 경전을 외우는데 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리반다가의 의식은 전부 부처님이 일러주신 주문에 가 있습니다.
이 주문이 바로 방편이고 이승과 삼승에 해당한답니다.
다행히 주리반다가는 바보지만 계속 주문을 외우면서 일불승을 스스로 인지한 것이랍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여기서 중요하다고 표현한 곳이 바로 여러분들의 [마음]이랍니다.
마음 쪽으로 의식이 가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대부분 보면 화두나 알아차림에만 가 있답니다.
화두를 통하든 알아차림을 통하든 마음에서 일어나고 살아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려보십시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이랍니다.
그러나 효과는 실로 엄청나답니다.
화두든 알아차림이든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바라보고 알아차리고 있는 바로 그놈..
주리반다가의 형은 동생에게 계속 잘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모든 의식을 자꾸 생각 쪽으로 가 있게 하는데 힘을 씁니다.
못 배운 늙은 목동도 이들이 외운 경전을 옆에서 얼마나 많이 들으면 외울 수 있을 정도랍니다.
주리반다가는 그런 그에게 위대한 수행자라고 하면서 큰절을 올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목동의 비유는 [누구나]입니다.
경전은 누구나 외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무식한 목동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외우는 것입니다.
남들은 경전을 외우는데 모든 의식이 가있는 동안..
부처님은 주리반다가에게 마음을 쓸어내는데 모든 의식을 쓰라고 가르치고 계시는 내용이 바로 이번 내용랍니다.
그리고 문득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주리반타가는 마음을 쓸어내는데 모든 의식이 꽂혀있습니다.
이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랍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 의식이 가 계십니까?
경전에 가 계십니까? 아니면 법문에 가 계십니까? 그것도 아니면 부처님 형상에 가 계십니까?
아니면 천도재나 죽은 망자들의 명패로 절 살림을 키우는데 모든 의식이 가 계십니까?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 스스로가 깨어서 한번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견성성불의 가장 큰 차이점이랍니다.
제 경우는 본 만화를 보고 또 보면서 느낀 점은 내용보다 주리반다가의 마음과 그의 의식이 빗자루 한곳에 쏠려있는 것을 보면서 제 자신도 그 당시에 그랬다는 것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그래서 주리반다가의 이야기가 제 마음에 와닫는 것이랍니다.
내용에서 부처님은 주리반다가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럼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이 어떻겠는가?"
즉
"내가 있는 불성 자리로 오는 것이 어떻겠는가?"
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거랍니다.
주리반다가는 아직은 이 이야기를 못 알아듣고 있지만..
끝내는 빗자루질을 하면서 알아차리고 털어낸 후 불성을 증득하는 장면이랍니다.
또 부처님은 주리반다가에게
"자신이 바보인 것을 알고 있으면 이미 바보가 아니란다."
라고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 말은 형을 포함해 모든 제자들은 바보라는 뜻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자신은 바보가 아니라고 폼만 잡고 앉아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가운데에서도 주리반다가는 계속 빗자루질을 하면서
"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자."
"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자."
"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자."
하면서 모든 의식이 마음의 때에 가있습니다.
주리반다가의 의식이 마음에 가있는 동안 똑똑한 형은 물론 다른 제자들은 엉뚱한 곳에 의식이 가 있는 모양을 그린 내용이랍니다.
주리반가는 드디어..
"더러운 것은 몸뿐인가?"
하면서 마음 쪽으로 의식을 돌리면서
"부처님의 말씀은 내 마음의 먼지를 털고 내 마음의 때를 없애라는 거였어.."
하면서 부처님의 속뜻을 문득 깨닫는 장면이 핵심 중에 핵심이랍니다.
(참고: 이렇게 알아차림과 버림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자." 하면서 반복하는 모습이 오늘 내용의 중요한 핵심이랍니다.
주라반다가의 빗자루가 화두인 셈이고 손오공의 여의봉인 셈이지요.
뒤에 나오는 버리기 방법도 이와 같답니다.
수행은 이렇게 반복하는 거랍니다.
빗자루질을 하듯이 걸래질을 하듯이 이렇게 반복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수행을 [닦는다]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고요.
이 내용은 주리반다가의 경전이 쓰일 정도로 실존 인물의 내용이랍니다.
주리반가의 예처럼 버리기에는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답니다.
의식만 살아있어도 주리반타가와 같은 바보도 얼마든지 아라한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마음의 것들을 쓸어버리기만 하면 끝나기 때문입니다. (※)
주리반다가 같은 바보도 하는 일을 왜 여러분들과 같은 분들이 못하겠습니까.
,
부처님이 흑씨범지에게 "선인아"라고 하는 것은 흑씨범지는 이미 깨달은 사람이랍니다.
그러나 아직은 마음을 버리지를 못해 해탈을 못한 상태이지요.
그것을 부처님은 흑씨범지에게 일깨워 주는 모습입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오늘 내용처럼 한결 쉽게 버리기를 할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의 대가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동안 만나본 선지인들 중에서는 이 자리를 뛰어넘은 분들은 아직 보질 못했습니다.
만약에 지금이라도 이런 분을 만난다면 저는 기필코 그분에게 삼배를 올리고 저의 스승으로 모실 것입니다. (진실)
♡
주리반다가의 마음으로 지금부터 제가 하는 내용들을 떨어질 때까지 반복적으로 해보십시오.
제 경우는 지금도 어쩌다가 걸리면 미친 듯이 반복하고 있답니다.
의식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의식을 빼고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의식을 구분하실 줄 아시는 분들은 의식의 힘으로 해보십시오.
그리고 또
내 마음에 왜 이런 것이 들어와 있지? 하는 원인을 알고 있는 경우와 모르고 있는 경우에 따라 버리기도 달리해야 하는데요 구분해서 기록해 두었답니다.
♡
방법은 5가지 방법입니다.
알아차림과 동시에 같이해 보십시오.
<1>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린다. (또는 바라본다.)
(현재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수행 방법임/간화선도 대상만 다를 뿐 같은 원리임/단점은 알아차리기는 좋은데 버리기는 다소 약함 그래서 주리반다가처럼 아래의 것들과 같이 해보라는 것임.)
의식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그냥 바라보고 알아차리기를 하시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동으로 구분하게 된답니다.
♡
<2>
의식의 힘으로 쓸어버리는 방법
제 경우는 이 방법으로 해결을 했답니다.
당시 뭣도 모르는 상태에서 반야심경에서 힌트를 얻고 따라 해 본 것인데요.
이 방법은 의식을 구분할 줄 아시는 분들은 매우 효과가 좋답니다.
내 마음에 묵직하게 뭔가가 들어 있을 때 의식의 힘으로 그 마음의 것들을 밖으로 밀어내 보십시오.
방법은 이런 느낌으로 해보십시오.
앞에 촛불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눈의 힘으로 그 촛불을 불어서 또는 밀어서 끄려는 그런 느낌으로요.
♡
<3>
참회(懺悔) 하는 방법 / 기독교는 회개(悔改) 하는 방법
이 방법은
내 마음에 왜 이런 것들이 들어있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하는 방법입니다.
108배 등을 할때..
기도를 할때..
유리하답니다.
내 마음을 향해 용서를 구하는 방법입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등등..
내 마음을 향해...
♡
<4> 손바닥으로 쓸어내기 방법
주리반다가처럼 손바닥이 빗자루라고 여기고 의식에 힘을 실어(※) 내 마음의 것들을 보면서 손바닥으로 밑으로 쓸어 버리는 방법입니다.
방법 <1>과 같이 동시에 하면 효과는 배가됩니다.
의식으로 밀어내면서 동시에 손바닥의 빗자루로 같이 쓸어내는 방법입니다.
모든 버리기는 의식의 힘으로 하는 거랍니다.
어차피 의식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손바닥이 아니더라도 여러분들이 잘 되는 쪽으로 직접 개발을 해서 하셔도 됩니다. (※)
손오공 내용이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손오공의 여의봉이 빗자루인 셈이지요.
간화선도 같습니다 화두가 빗자루인 셈이고 여의봉인 셈입니다.
<5>
이 방법은 고수들이 즐겨 하는 방법인데요.
내 마음에 들어오기 전에(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안착되기 전에) 미리 막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오랫동안 마음 보기를 해오신 분들은 금방 쉽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마음에 안착하기 전에 의식으로 미리 막는 방법입니다.
그러자면 마음 보기와 알아차리기와 의식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답니다.
이 방법은 효과가 매우 좋답니다.
초기 막지 못하면 위에 방법으로 해결을 하시면 되고요.
제 경우는 음악 등을 들으면서 소리를 막는 연습을 할 때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고 들으면서 의식의 힘으로 화면이나 소리 자체를 통체로 내 안으로 못 들오게 하는 연습 등을 많이 한답니다.
이해가 안 가시는 분들은 문자를 주십시오.^^
♡
(참고 내용)
제 경우를 예를 들면 경전을 보든 법문을 듣든 수행을 하든 아주 세세하게 반복해서 보고 듣고 또 보고 듣는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되었건 유마거사가 되었건 제 경우는 그분들의 말씀과 함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무진장 애를 쓴답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
.
오늘도 내용이 너무 길었네요.
꼭 반복적으로 열심히 알아차리시고 버리는데 힘을 써 보십시오..
여러분들에게도 행운이 있기를 기원드려봅니다..
지금까지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