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시인 김기림
한학자였다는 백부가 지어 줬다는 이름 기림(起林)
시인은 이름에서부터 시인의 운명을 갖고 태어났는가 보다.
그의 이름을 천천히 읊어 본다.
새가 날고,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리며 숲이 일어선다.
1908년생, 무신년 잔나비이다.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되기 전 알 수 없는 먼 곳에서 돌아가셨다는 시할머니와 동갑이다. 나도 무신년생이고 잔나비 띠이다. 나와 시인과 할머니는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돈다.
시인‘이상’이 형이라 불렀던 사람, 어린 이상이 다방에 앉아 랄로의 음악을 들으며 그리움의 편지를 쓰게 한 사람, 이상의 영전에 ‘쥬피타 추방’이란 시를 바치며 ‘너는 세기의 아픈 상처였다.’라며 아파하던 사람, 그 아픔이 전해져 종일 몸살을 앓게 한 사람,
그의 시 ‘길’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아련한 아픔 때문에 시인처럼 나 또한 몸살을 앓았었다.
간절함은 이뤄지는지 그 시속에 나오는 배경의 물리적 모양을 갖춘 풍경 속에서 십여년을 살았었다. 바다와 인접한 강이 있는 곳 겨울이면 어김없이 까마귀가 날아오고 봄이 되면 어김없이 까마귀가 떠나가는 강가에서 그 길옆에서 살며 수없이 기림의 시를 생각 했었다.
길 /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
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
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
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에 멍
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