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끝,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 말
어느 때보다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아마도 사랑일지 모릅니다.
흰 마가렛과 붉은 튤립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가렛은 서양들국화인 데이지의 한 종류입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꽃잎을 하나씩 떼어가며 사랑을 점치는 그 꽃이죠. 꽃말도 ‘진실한 사랑, 사랑을 점치다’ 입니다.
‘사랑의 고백, 영원한 애정’ 이라는 꽃말을 지닌 튤립은 한때 욕망과 투기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튤립은 16세기 후반 유럽 전역으로 퍼졌는데, 이색적인 모양으로 귀족과 대상인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였습니다. 자연스레 신분 상승의 욕구를 지닌 사람들도 튤립을 선망하게 됐고, 황소 1천 마리를 팔아야 튤립 구근 40개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값이 비싸졌습니다. 튤립만 있으면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 사람들이 늘면서 급기야 투기의 대상이 되었죠.
욕망의 상징이었던 튤립이 어떻게 사랑의 상징으로 변했을까요? 사랑 역시 욕망의 하나여서일까요?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랑을 좇고 있는지 고민하며 마가렛과 튤립을 함께 그려보았습니다. 꽃잎을 하나씩 떼어가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점치던 순수한 설렘이 점차 욕망으로 변해버리는 과정과 우리가 말하는 사랑의 형태는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신형철 작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사랑과 욕망의 주된 차이가 상대방에게 ’있음‘을 원하는지, 상대방에게 ‘없음’을 원하는지에 있다고 봅니다. 상대방에게 있는 것을 원해서 그 사람을 선택한다면, 그것이 사라졌을 때 더 이상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게 없어 실망한 채 그의 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없는 것을 좇는다면, ‘없음’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므로 우리는 영원히 이별할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죠. 서로의 빈 공간에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듯 우리를 하나의 단단한 사랑으로 묶어주는 것은 ‘없음’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여태껏 무엇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좇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어떨까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이 되었든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있음에 온 신경을 쏟습니다. 비싼 명품가방, 외제차, SNS에 자랑하고 싶은 근사한 식당에서의 저녁 시간. 내가 가진 것과 남이 가진 것을 비교하느라 바쁩니다.
무언가로 나의 있음을 과시하는 대신 나의 없음을 드러내고 그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나의 부족이 만들어낸 공간에 따뜻한 봄바람이 들어올 수 있을 때,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일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는 욕망이 아닌, 서로의 결여로 만들어낸 사랑을 찾고 싶습니다.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 함께 밖으로 나가 길가에 핀 꽃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풍경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습니다. 무향, 무취, 무색의 세상도 함께라면 무의미하진 않을 테니까요.
(행복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