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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축구 / 문인수
은하수 추천 0 조회 14 18.06.20 06: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축구 / 문인수


파죽지세의 응원이 계속 끓어오르고 있다. 옆의 사람을 와락, 와락, 껴안고 폭발적으로 낳는 열광이 '붉은 악마'. 한민국 대한민국이 지금오 천 년 만에 처음 그늘진 데가 없다.

 

가을날의 내장산이나 설악의 바람같이 번지는 춤, 우는 이도 많다. 저런 표정에도 곧 바로 마음이 건들리는, 불의 뿌리가 널리 동색이다. 다스리지 않았으나 눈물이 기름이어서 잘 타오르는 것이다.

 

그 힘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저 흰 출구.

 

전국의 인구가 모처럼 다 몰려나와 있다. 뜨겁게 펼쳐지는 씻김굿 한 판이, 해방이 참 광활한 대륙이다.



- 시선집풀잎의 말은 따뜻하다(한국시인협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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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생생하게 붉은 악마~한민국목청이 들려오는 것 같다. 그땐 정말 처음 그늘진 데없이 지역과 이념, 세대를 넘어 함성과 박수 소리로 온 반도를 뒤덮었다. 껴안고 울고 소리쳤던 그 영광과 환희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 세 차례 월드컵이 더 치러졌고 다시 또 4년이 흘렀다. 4년 단위로 뭉텅뭉텅 흐른 16년이란 세월은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색케 하였다. 4년마다 국회의원이 바뀌는(혹은 바뀌지 않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세월의 인식 단위이다. 그렇게 따지면 내 인생에서 앞으로 몇 번의 월드컵을 더 만날 수 있을지.

 

 어제 우리는 모처럼 다시 그늘진 데없이 결집된 애국으로 한민국을 외치면서 감동의 재현을 소망하고 응원했다. 그랬건만 바라는 대로 되지는 못했다. 역시 스웨덴은 우리보다 한 수 위였다. 그나마 조현우 골키퍼의 선방은 유일한 볼거리이자 위안거리였다. 대구FC 소속인 것은 알았지만 그만큼 잘할 줄 몰랐다. 우리가 상대한 스웨덴은 지역예선에서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본선진출을 가로막은 팀이 아닌가. 아쉬움은 있지만 할 만큼 했다. 우린 단 한 게임을 치렀을 뿐이고 무려지난 월드컵 챔피언 독일과 같은 순위이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승패를 떠나 국민들은 골에 더 목이 말라있다.

 

 축구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가장 가까운 스포츠다. 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발로하는 단순한 운동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몸에 남아있는 원시시대 사냥꾼의 생존본능과 유전자를 가장 충실히 구현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렇다. 먹이를 두고 전력으로 질주했던 집단사냥의 변형된 모습이 축구다. 그래서 세계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며, ‘3의 길로 유명한 앤서니 기든스는 세계화란 곧 축구다란 말까지 했다. 쉽진 않겠으나 남은 경기 공격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해주길 바란다. 붉은악마들의 함성에 우리는 하나가 되고, 응원의 북소리에 우리 심장이 다시 고동쳐주길 간절히 바란다.

 

 다시 불의 뿌리가 널리 동색이다공만 잘 차준다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 같다. 고양된 민심에 축포를 쏘아 '눈물이 기름이어서 잘 타오르는' 감격을 안겨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다. 그래서 이 '축구'가 지난 세월의 모든 과오와 오만과 편견들을 일거에 씻어줄 한 판 '씻김굿'이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혈관 가득 흐르는 축구의 피는 여전히 빠른 피돌기를 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저 흰 출구에서 축구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우리의 16강 진출 여부와는 무관하게 신명의 굿판에 좀 더 오래 머물며 축구의 신들이 벌이는 지상 최대 쇼를 최대한 즐기자. ‘해방이 참 광활한 대륙으로 가자.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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