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밤이 이슥토록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 마른자리에서 잠이 들었을까
바람이 불면 산은 온통 나무들의 아우성이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번져가고
바람이 잠시 잦은 틈을 잊지않고
부엉이는 소리내어 운다
사랑을 잃은 적막이야 어디 이 산에 비할까
가슴에 바람이 지나는 길을 내고
영롱한 별조차도 담겨지지 않는 큰 구멍을 내고
하루에 한 번은 꼭 소리내어 울어야 풀어지는 가슴
아주 멀리 가고 싶었다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여행, 돌아올 곳이 없어
더는 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인생
얼음 갈라지는 소리도 메아리를 남기는 산 속
흰 뱀이 겨울을 나는 동굴에 방 한 칸을 얻어
지친 다리를 쉬고 싶었다(2003)



사람은 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지친다.
일 따위야 하루 종일 한들 코피밖에 더 흘리랴마는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함께 하는 일 속에서
우리는 상처도 받고 미움도 생기고 지쳐서 허덕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하고 삶을 연장해나가는 방법은 사뭇 다르다.
더러는 신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찬송하고 고백하고 반성하기도 하고,
더러는 또 다른 사람의 품 안에 들어서야 그 모든 상처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은 산을 오르고 들길을 걸으면서 바람 속에 물가에 슬그머니 짐을 내려놓기도 한다.
아프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라서,
그 생애의 팔 할이 바람처럼 덧없는 것이기도 하고 구름처럼 가뭇없는 것이기도 해서,
일터에서 돌아와 누운 밤에는 통증이 온 몸을 훑어 꿈길조차 아픈 발을 절뚝거리며 걷게 만들곤 한다.
오늘 나는 무섬마을에서 온전히 하루를 쉬었다. 마음은 더없이 평화로웠고
한 점 사심없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영주 무섬마을을 다녀와서 2009.3.9.-
첫댓글 봄도 좋고 글도 좋고..사람들의 표정도 좋고 앙증맞은 고양이의 시선도 좋고 아가도 좋고 할머니도 좋고........그렇게 좋은 봄을 혼자서 봤나요? 욕심쟁이........그래도 이렇게 나누어주니 용서해준다. ㅋㅋ
오랜만에 쓴 병산의 글에서 싱싱한 감수성과 번뜩이는 시심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다.
노암에도 메발톱 새순이 돋아나고, 방부목 울타리 밑에는 작년에 내가 뿌린 할미꽃이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사진과 글에서 봄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상처라니? 관계를 통해서..... 참으로 바람처럼 흔들리는 병산의 마음을 보는 듯 해서 좀 거시기 합니다.
그림, 글, 특히 시가 참 좋다. 봄이 오고 있나 보다. '이산'과 '저산'도 보이고......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고...'이 노래가 귓가에 맴도네...조붓한...조붓한.음..
하여튼 사진 감각은 뛰어난 사람이요. 작년에 갔을때는 이보다 좀 늦은시기였지
오랜만에 카페에 글을 올리네요. 선생님들이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학부모회 회원만남의날 행사로 영주 무섬마을을 갔는데 저는 처음 갔거든요. 바람 한 점 없는 봄볕이 참 평화로웠어요.
힘들다고 술렁대는 세상속으로 묵묵히 다가온 봄이 느껴집니다...박재삼시인의 '무언으로 오는 봄'을 여기서도 만나네...이 길을 걷고 우리 다시 한 번 걸어보고 싶다고 했었지...저기 무섬다리 위에서 점심도시락 먹었는데, 그 때 병산은 결석?
아, 지난 해의 천진난만했던 우리들 모습이 기억납니다. 병산이 못 본 자란지 거북인지, 남생인지가 날으는 사진을 제가 찍었었는데.... 좋은데요. 봄날을 우리를 대표하여 병산님이 혼자 만끽하고 글을 올렸네요.
여긴 아직 겨울입니다. 비가 내리는데 치악산 꼭대기는 새하얗습니다. 5월이 되어야 봄이 온다는 우울한 소식
새하얀 치악산 꼭대기에 한 번 올라가보면 조을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