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선생님이 그림을 대하는 방식이 남다른 것 같다. 화풍, 기법, 기교와 같은 그림의 기술적 난이도를 중심에 두지 않는 것 같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냥 자신이 마음에 와닿는 그림부터 찬찬히 살펴본다. 미술관에 가서도 일단 한 바퀴 발길 닿는 대로 쭉 살펴본 뒤 순간 마음에 와닿는 그림 앞에 천천히 머문다고 한다. 누군가가 추천해 주는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당기는 그림 앞에 감정을 이입한다.
유명한 그림이라고 해서 누구나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림에 대한 안목이 얕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아무리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내 눈에는 그저 그림일 뿐이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소박한 사진보다도 눈길이 와닿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와 관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처한 지금의 환경에서 나에게 와닿는 그림은 자신도 모르게 그 앞에 발길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그림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화가의 의도를 알게 되면 더더욱 기억에 담아 두게 된다. 그림과 자신이 만나는 지점은 사람마다 각자 다를 것이다. 그림에 진심을 가진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뜻이다. 김태현 선생님도 자신이 가장 힘든 순간에 만났던 그림에 진심을 느꼈고 그 그림을 좀 더 알기 위해 공부를 했을 것이다.
'진심'은 통하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열정을 쏟게 만든다. '진심'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 '진심'은 향기가 있다. 멀리서도 향기가 느껴진다. '진심'이 있는 사람은 다르다.
공동체가 위태롭고 관계가 매끄럽지 못할수록 얄팍한 기술로 대충 덮으려 하기보다 '진심'으로 정면 승부하는 것이 최후의 승리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속임수가 난무하고 관계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고만 하며 손해가 되는 일에는 손절하는 사람들 관계에서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김태현 선생님은 수많은 그림 속에서 '다양한 시선'을 강조했다. 화가가 살았던 당대의 시선으로 그림을 바라본다면 그림에 담긴 진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의 시선이 아니라 화가의 시선으로, 지금의 시선이 아니라 그 당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쉬운 것 같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나도 모르게 내 관점으로 그림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바라는 관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 시선으로 바라보면 안 좋은 부분만 보게 된다. 부정적으로 흐르게 된다. 나와 성향이 맞는 사람만 좋게 본다. 본능이다. 그림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진심을 볼 수 있듯이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삶의 궤도를 보려고 애써야 그 사람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 던진 말 한마디에 속상해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던져진 그 말 한마디만 보기 때문이다. 왜 그 말을 던졌는지 '진심'을 보려고 한다면 덜 상처받지 않을까 싶다.
2학기가 시작된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직원들, 학생들, 학생들 뒤에 매와 같은 눈으로 학교를 바라보는 학부모님들, 학교와 관련되어 있는 지역 사람들. 우호적인 사람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따지려 드는 사람일지라도 '진심'을 다하자.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이 없다. 본능대로 툴툴거리고 뒤에서 부정적인 험담을 늘어놓는다면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일 뿐이다.
진심이 없다면 참 삭막할 것 같다. 법과 규칙, 매뉴얼과 규정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 관계를 단절시킨다. 하지만 진심은 다르다. 진심은 연결시킨다. 그림에 진심이라면 그림과 연결되듯이 사람에 진심이라면 사람과 소통하게 되지 않을까.
그림의 진심을 읽고 사람의 진심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