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음식(韓國飮食) 이야기
한국식(韓國式)이라는 단어 중에서 국(國)자를 생략한 단어. 중국에서 한국식의 무언가를 한식이라고 표현한다. 실제 중국에서는 간체자를 쓰는 관계로 "韩式"이라고 쓴다. 주로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일명 한국식 수술등을 보면 그런 단어를 볼 수 있는데, 한국식 성형수술은 "韩式整容手术", "韩式整容", 한국식 포경수술은 "韩式包皮环切术", "韩式割包皮"라고 한다.
한국의 명절의 하나.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로서 보통 4월 5일이나 6일 쯤이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24절기의 청명과 날이 자주 겹친다. 그래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라는 속담이 있다. 주로 나쁜 일이 조금 일찍 일어나거나 늦어도 별 차이 없다는 뜻.
4대 명절 중 하나인데, 나머지 셋인 설날, 단오, 추석은 모두 음력으로 날짜를 정하지만, 한식은 양력 기반인 24절기로 정한다.
한식이라는 명칭은 이 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인데, 그 기원은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晉)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중국에도 있는 날이지만 한식에 하는 일을 지금은 다 청명에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겹치는 해가 많고 달라봤자 하루 차이긴 하지만. 그러느라 잊혀진 날.
개자추는 진문공(文公)과 19년간 망명생활을 함께하며 충심으로 보좌하였으며, 식량이 없어 문공이 굶주리자 자기 허벅지살을 도려내어 먹인 일도 있었다. 하지만 문공은 군주의 자리에 오른 뒤 그를 잊어버리고 등용하지 않았다. 실망한 개자추는 면산(緜山)에 은거했고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제대로 삐졌다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서 불을 질렀으나, 끝끝내 그는 어머니와 산을 나오지 않았으며 불이 꺼진 후 나무를 끌어안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를 개자추의 포목소사(抱木燒死)라 한다. 이에 진문공이 그를 애도하여 한해에 이날 하루는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겠다고 영을 내려 사람들이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는 것이 한식의 유래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보다는 고대에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 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이에 앞서 일정 기간 예전에 쓰던 묵은 불(舊火)의 사용을 금지하던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세시풍속
민간에서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사초(莎草)하는 등 묘를 돌아보는 일을 한다.
과거 식목일이 법정 공휴일이었을 때 한식이 식목일과 날짜가 같거나 하루이틀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식목일에 한식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식목일이 법정 기념일로 바뀌면서 이러한 풍속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 물론 식목일에 쉬지 않아도 그 주의 주말 즈음 해서 성묘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동학(천도교)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가 1860년 음력 4월 5일에 동학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래서 동학/천도교에서는 음력 4월 5일을 기념하였으나, 1908년에 천도교 4대 교주 춘암 박인호가 천도교의 기념일을 음력 날짜에서 그대로 날짜만 양력으로 옮겨 기리기로 정한 이후, 양력 4월 5일에 최제우가 계시받음을 기념한다. 그래서 천도교에서는 한식은 주요 명절이고, 식목일이 휴일 지정이 해제될 때도 이 때문에 천도교 측에서 반대가 있었다.
한국식 요리의 총칭. 한식(韓食)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한국의 전통식 요리를 뜻한다.
2. 역사와 분포
음식을 만드는 일을 '요리(料理)' 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에 시작된 일이다. 원래 요리는 일의 앞뒤의 모든 상황을 잘 판단하여 처리한다는 뜻이지만 지금은 식품을 잘 처리하는 일, 또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음식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 이 전에는 음식이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써왔고 지금은 둘 다 쓰이는 편이다.
한국 음식은 전통적인 한국 문화를 대표할 만큼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한민족(韓民族)이 한반도와 만주 등지에 정착하여 살면서 원시적인 채집·수렵·어로 등으로 식물을 얻어 날것으로 먹는 생활을 해오다가 언제부터인지 불을 쓰는 방법을 생활하는 데 도입하여 식료품을 찌고 굽고 하는 여러 가지 조리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사실 전통 음식을 제외하고 오늘날 우리가 흔히 먹는 요리들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것이 많고 대개가 산업화 이후에 형태가 정립된 것들이다. 예전에는 화력이 약해서 물에 담갔다가 굽는 것을 반복하여 고기가 질겨지지 않게 하던 것이 산업화 이후에 화력 좋은 설비와 가스, 냉장고의 보급과 육가공공장의 등장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먹는 고기 요리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특히 병천순대는 육가공업체가 등장하고 나서야 생긴 요리다.
농경생활이 정착되면서 진일보하여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석기가 토기로, 토기가 도자기로 연이어 발달, 대체되고 청동기, 철기 등 금속기도 만들어 쓸 줄 알게 되면서 식생활에 관련된 문화가 크게 창달되었다. 이 문화는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한국은 농경을 바탕으로 발전한 나라이므로 그 양상은 서구의 식생활 문화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가장 비슷한 맥락의 요리라면 터키 요리 정도가 있다. 적당한 고기 요리와 적당한 채소 요리가 어우러졌고 다양한 조리법을 응용한 손맛을 터키 요리에서도 중요시하기 때문.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을 참조할 것.
한국은 남북으로 뻗은 나라로서 남부, 중부, 북부의 기온 구분이 뚜렷하여 농산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동, 서, 남 삼면이 바다에 면하여 좋은 어장을 가까이하고 있어 어로도 점차적으로 발달하였다. 수산물은 생선류를 비롯하여 새우, 소라, 굴, 해삼, 전복 등 매우 다양하고 해조류도 미역, 김, 파래, 다시마 등 그 종류가 많으며 높고 깊은 산맥에서 흐르는 수많은 강물에는 여러 종류의 담수어가 서식하고 있다. 수렵도 매우 활발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차차 가축을 길러 농경에 사역하였을 뿐 아니라 그 고기를 식용하였고 나아가서는 돼지, 닭 등도 길러 육찬(肉饌)의 재료로 썼는데 그 조리를 매우 잘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채식으로 쓰는 재료는 주로 산야에 자생하는 각종 나물이었으며 밭에서 재배하는 채소도 종류가 많았다.
이처럼 곡식, 육식, 채식의 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한 동시에 이를 조미하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의 양조법도 매우 발달하였다. 주재료와 부재료를 배합하고 맛을 보완하는 고추, 후추, 생강, 파, 마늘, 부추, 산초와 같은 향신료를 쓸 줄 알았다. 또 음식을 만드는 원리가 매우 합리적으로 전수됐으며 이를 토대로 한 여인들의 음식 솜씨가 다양하고 훌륭하였다.
어느 나라나 사정이 비슷하지만 한국 요리 역시 현대에 흔히 먹고 맛볼 수 있는 요리들의 역사가 의외로 길지 않은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조선 초기까지는 고춧가루도 없었으니, 한국 요리에는 빨간 빛의 매운 요리도 없었다. 물론 매운맛을 내는 다른 재료를 쓰긴 했지만 맛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고대의 식습관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기록들이 여럿 전해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다.
(신문왕이)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의 작은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기로 하고, 우선 이찬 문영(文穎)과 파진찬 삼광(三光)을 보내 기일을 정하고, 대아찬 지상(智常)을 보내 납채(納采)하게 하였는데, 예물로 보내는 비단이 15수레이고 쌀, 술, 기름, 꿀, 간장, 된장, 포, 젓갈이 1백3십5수레였으며, 벼가 1백5십 수레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 3년(서기 683) 봄 2월
신라 국왕의 혼례였으므로 음식의 양도 많았는데, 고대 한국인의 식습관은 쌀과 쌀을 기반으로 하는 술, 식혜가 주류에 음식 조리에 필요한 기름과 꿀, 간장, 된장을 많이 사용했다. '포'는 일반적으로 말린 고기(육포, 어포)로 보는데, 왕의 혼례에 공식적으로 등장할 정도면 단순한 보존식품 위상이 아니라 당시 일반화된 음식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동궁과 월지의 호수 아래 뻘에서도 이런저런 음식을 보관할 때 꼬리표로 사용한 목간이 다수 발견되어 고대 한국요리에 대해 유추할 수 있다. 기사 강원도 고성에서 운반해온 젓갈, 가물치, 살아있는 전복, 동물의 내장, 돼지고기 등의 식재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한국은 지금도 쇠고기를 가장 잘 분류하는 민족이라 해서 고기를 잘 다루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고조선 때부터 맥적 등으로 알려진 고기요리의 맥은 삼국 통일 시대부터 고려 초 동안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금하다시피 하면서 많이 사라졌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맥적이나 너비아니는 전통적인 방식과 다른 요리다.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이 왔을 때 고기를 올려야 했던 때가 있었는데 도축하는 방법이 실전되어 불에 던져 넣거나 구타해 죽이는 방법을 썼고 그 결과 내장이 터지는 등으로 누린내가 났다는 이야기 있다. 고려도경 제23권 잡속(雜俗) 도재(屠宰)편에 나오는 얘기다.
고려는 정치가 심히 어질어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상신(相臣)이 아니면, 양과 돼지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 또한 도살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다만 사신이 이르면 미리 양과 돼지를 길렀다가 시기에 이르러 사용하는데, 이를 잡을 때는 네 발을 묶어 타는 불 속에 던져, 그 숨이 끊어지고 털이 없어지면 물로 씻는다. 만약 다시 살아나면, 몽둥이로 쳐서 (...) 죽인 뒤에 배를 갈라 내장을 베어내고, 똥과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 비록 국이나 구이를 만들더라도 고약한 냄새가 없어지지 아니하니, 그 서투름이 이와 같다.
물론 이자겸의 생일날 들어온 고기가 너무 많아 썩어났다는 기록 등에서 보듯 육류를 아주 안 먹은 것은 아니지만 특정 재료를 사용한 요리가 발달하려면 소비 계층이 폭넓게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적성국에서 온 사신도 아닌 우방국에서 온 사신에게도 저 정도 밖에 안되는 요리를 대접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 고려의 고기조리법은 크게 후퇴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 해산물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으로 보아선 당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네 발 달린 동물만 안 먹었을 뿐이지 해산물 및 조류는 즐겨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위의 이자겸에게 바쳐진 고기도 닭, 꿩 같은 조류라고 보면 상호모순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본격적으로 고기 요리가 재부흥한 것은 고려 후기 원나라의 지배기였다.
조선시대는 국가적으로 소의 도축을 법으로 일부 금했으나 사실상 상당한 수의 소를 도축하고 소비했다. 관련 기록에서 1844~1849년동안 일본으로 소가죽 수출량이 12만 714매로 연간 2만 119필의 소가 도축되었으며 1882년 이후 청나라로의 최대 수출품도 소가죽이었다. 박제가의 북학의에서 전국에서 하루에 소 5백필이 도축된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당시 소가죽은 수출하지만 쇠고기는 수출하지 않고 국내에서 소비한데다가 수출용 이외의 소의 도축량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의 소고기가 국내에 공급되고 있었다. 또한 중근세 일본에서도 쇠고기하면 조선이라는 인식이 있었을 정도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 서민들이 고기를 제대로 먹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고도성장기부터라는 것이다. 근현대 이후로는 대략 1970년대까지는 서민들이 제대로 고기를 먹지 못하고 잔칫날처럼 특별한 때를 제외하면 거의 채식주의자처럼 살았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당장 구글로 1970년대 밥상이라고 쳐보면 당대에 어떻게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삼겹살도 80년대 들어서 '로스 구이'란 이름으로 널리 퍼진 것이며, 그 전까지는 아예 없던 식문화란 것이 정설이다. 1970년 한국의 1인당 육류 섭취량은 5.2kg에 불과했다. 1980년에 이르러서야 10kg대를 조금 넘어서기 시작했고, 30kg대를 돌파한 것은 2000년대부터이다.
서구권에선 현대의 한국 요리는 고기를 많이 쓰고 자주 나오는 국물 요리에 소량이나마 고기를 넣는 경우가 많아 육식을 주로 하는 문화권으로 보고 있으며 채식주의자 입장에선 곤란한 식단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서민 요리의 경우도 역사적, 환경적인 이유로 인해 나물반찬 같은 채식 위주 반찬도 많지만 파나 마늘 같은 오신채 종류나 젓갈을 쓰며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이 사실상 세계 1위에 달해 페스코 정도의 채식주의자가 아니면 곤란하다. 다만 고기, 우유 등 동물성 식품의 물가가 지리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식물성 식품보다 여전히 비싼 편이다.
본래 조리 기술은 전문 조리사 격인 숙수가 아니고 가정의 부인과 이를 도와주는 찬모의 솜씨에 의해 발달한 것이다. 수륙(水陸)의 산물은 봄, 여름, 가을 등 기후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식료품을 생산해 주어 더욱 다양한 음식법이 발달하게 되었다.
또한, 출토되는 숟가락 등의 크기나 형태 역시 이후와 차이를 보이는 등 식생활 모습 자체에 있어 조선시대나 현재와는 많이 달랐으리라 여겨진다.
조선의 밥상은 밥, 국, 김치, 장류를 기본으로 추가되는 찬 수에 따라 3, 5, 7, 9, 12첩으로 나눴다고 한다. 3첩은 서민밥상, 5첩은 중산층, 7첩 9첩은 양반밥상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보통 밥상은 3첩 또는 5첩이다. 3첩 정도면 5대 영양소를 잘 갖춘 것이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시의전서에 나와 있는 반상차림은 조선시대 후기에 생겨난 부의 집중과 양반사회의 붕괴 사치 및 요릿집 문화 발달로 인해 음식문화가 왜곡 및 변질한 결과로 보인다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한정식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대령숙수들이 궁중에 나와 차린 음식점에서 한정식의 기원은 궁중음식이 된다는 입장이다. 사대부들의 호화로운 상차림은 크게 전라도를 통해 발전된 남도 한정식과 고려시대의 화려한 음식문화를 계승해 온 개성한정식을 크게 대별된다. 지방마다 한정식은 조금씩 다르다.
다만 오랜 역사상 전문 숙수가 있던 시기가 거의 없다시피한 만큼, 오래된 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전통요리의 대부분은 궁중음식이거나 어느 집안에서 내려오는 요리들이 대부분이다. 궁중음식의 경우는 당연히 최고의 재료들만 사용하고, 대표적으로 음식디미방과 같이 문헌에 남기는 요리의 대부분은 어느 집안에서 내려오던 비법을 남긴 것이라 역시 재료가 상당히 비싼 경우가 많았다.
맵다
실제로도 매운 맛에서 최상위권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대책없이 매운 맛으로 혀에 충격을 주는 '매운 맛의 강도'보다는 식사 내내 적당히 강렬하고 오래가는 매운맛을 오래, 무겁게 남기는 류의 맛으로 발달했다.
대외적으로 매운 요리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맵지 않은 요리도 충분히 많다. 예를 들자면 불고기나 나물류, 그리고 전 등. 세계의 다른 요리들과 비교해봐도 훨씬 더 매운 요리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후난 요리나 쓰촨 요리도 엄청나게 맵고 멕시코에도 자국의 고추인 하바네로를 사용한 매운 요리들이 있다. 그런데도 이런 이미지가 생긴 것은 한국 매운 요리의 비주얼이 빨간색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선진국 요리 중에서는 가장 매운 편에 속해서 그럴 수도 있다.
옛날에 한국에서는 고추나 고춧가루를, 그 전에는 생강, 초피 등을 사용하여 매운맛을 냈다. 삼국시대에 마늘이 전래되기 전에는 산채나 달래를 사용했고, 조선 중기에 고추가 전래되기 전에는 홍화씨로 매운맛을 냈다. 임진왜란 이후에 고추가 한반도에 전래되었고 고추의 매운맛을 이용해 비린내를 없앨 수 있게 되면서 김치에 젓갈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즐겨먹는 배추김치(남부지역식 김치)는 1700년대에 만들어졌고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 그 이전의 김치는 주로 소금에 절인 무로 지금의 백김치와 비슷한 형태였다.
마늘은 한식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고추 없는 한식은 쉽게 찾아낼 수 있어도 마늘 없는 한식은 거의 없다고 봐야할 수준이다. 이처럼 일상에서 뗄 수가 없는 수준이다보니 일인당 마늘 소비량이 전 세계에서 1위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음식이 중국이라든지 동남아 등 다른나라 요리에 비해 향신료를 적게 쓴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마늘 자체가 꽤나 향이 강한 향신료라 한국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과장 좀 보태서 너무 익숙하다보니 향신료로 생각 못하는 것 아닌가싶을 정도.
또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매운맛을 좋아한다는 정서가 있어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줘라' 같은 문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외국인에게 일부러 매운 음식을 먹이며 문화의 차이를 인식시키기도 한다. 한국인의 작은 신장과 매운맛을 이용한 '작은 고추가 맵다'는 이미 유행어를 넘어 속담화되었다. 실제로도 고추 품종은 크기가 작을수록 매워지는 경향이 있어서 부트 졸로키아나 프릭끼누, 하바네로 모두 한국 고추보다 반도 안 되게 작다. 반대로 고추 품종들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피망과 파프리카는 정식 순화명칭이 단고추다.
그리고 정서에 그치지 않고 비뚤어진 애국심과 결합, 흑화하여 매운맛 부심을 부리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외국인에게 매운 음식을 먹이고 좋아한다거나. 한식의 매운맛은 단맛이 섞인 소위 '맛있게 매운' 맛이지만 스코빌 척도에서 볼 수 있듯 프랏깨우(쥐똥고추)를 사용하는 태국 요리, 중국의 쓰촨 요리, 하바네로를 사용하는 중남미 요리, 인도 요리가 한식보다 훨씬 더 맵다. 이건 아예 스코빌 척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애초에 한식은 상대가 안 된다.
전 세계에서 매운 향신료를 모조리 긁어모은다는 인상마저 있다. 원래 사용하던 생강에 마늘부터 시작해서 부추, 파에 고추로 정점을 찍고 양파를 보더니 다른 데서는 다 익혀서 매운맛을 빼는 이 채소를 음식에 넣기 시작한다. 프릭끼누나 하바네로를 보고 어째선지 자존심 상해한 끝에 불닭이라는 차라리 마조히즘에 가까운 요리마저 만들어냈다. 현대에 와선 그냥 화학적으로 캡사이신을 추출해다 음식에 넣는 경우도 생겼다. 그렇다고 무작정 매운맛만을 추구하지는 않고 맛있게 맵다는 말에 굉장히 집착한다. 사실 맛있게 맵다의 실체는 설탕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갖은양념은 지금 이 시각에도 한국의 어느 주방에선가 진화하고 있다. 그냥 고춧가루만 해도 여러 고추를 모아다가 배합을 연구하는 등 생물학적으로는 그냥 '통각'에 불과한 매운맛을 이렇게 다각적으로 연구하는 민족도 얼마 없으리라.
다만 이렇게 집착하는 건 어디까지나 캡사이신, 알리신 같은 '뜨거운 매운맛'이고 겨자류나 고추냉이 등 시니그린이나 박하처럼 '차가운 매운맛'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일본인들의 현지화 김치인 와기무치에는 고추냉이가 들어가는데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걸 싫어한다. 그야 일본식이라 그리 맵진 않으니 먹을 수 없지는 않지만 먹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일반론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식에서 실제 활용도가 매우 낮은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되는 사실이다. 겨자류는 기껏해야 냉면에 시원한 맛을 더하기 위해 넣는 정도이고 애초에 겨자나 고추냉이를 키우기는 하는데 주로 잎을 따먹는다. 박하도 주로 달달한 과자나 사탕 등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메인요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나 넣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고추냉이를 싫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시로 든 일본식 '기무치' 같은 경우에는 고추냉이 문제도 있으나, 액젓과 젓갈의 사용유무로 인해 맛이 정통 한국식 김치와는 다르다는 점이 크다. 정통 한국식 김치에는 젓갈(액젓), 마늘 등을 아낌없이 집어넣는 반면, 일본식 기무치는 그렇지 않다. 이는 일본 위키백과에도 서술되어 있는 사실이다. 한국인이 일본식 기무치를 싫어하는 이유는 고추냉이와 매운맛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 김치에 익숙한 한국인이 변형이 심한 외국의 김치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오히려 회, 초밥, 메밀국수 등의 음식에선 고추냉이를 선호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한국보다 더 맵게 먹는 나라의 사람들도 한국 음식이 맵다고 손사래치는 이유는 한국 요리 하나하나가 매운 것도 있지만, 매운 요리들만 모아서 그 매운 음식들을 더 매운 음식과 합쳐서 먹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매운 고추장찌개에 반찬으로 생고추와 김치를 곁들이는 식. 또 그 생고추를 고추장 등에 찍어 먹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맵게 먹는 나라에서도 매운맛을 내는 재료를 생으로 먹지는 않는다.
외식산업에서 악용되기 좋다. 선도가 떨어져서 상하기 직전인 재료나 애당초 질이 떨어지는 수입 냉동육 같은 재료를 주재료로 넣어서 음식을 만들어도 웬만한 사람들은 매운맛에 가려져 그런 재료를 사용했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일본인들은 주로 짜거나 단 음식에 익숙한 반면 매운 음식엔 익숙하지 않아 비빔밥에서 고추장을 덜어내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충분히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신 주로 젊은층 위주로 한국 요리의 매운맛에 익숙해진 사람도 없지 않으며 한국 요리=매운 요리라는 의식 때문에 일본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일본 한식 식당들은 우리가 흔히 먹는 것보다 더 맵게 만든다. 그 외 부침개 같은 경우엔 지지미(한국어로는 지짐이)라 불리며 반응이 좋은 편이다.
뜨겁다
또 해외 요리에 비해 매우 뜨거운 요리를 선호하는 것 역시 특징이다. 돌솥비빔밥이 좋은 예이다. 물론 채소까지 무조건 익혀서 내놓는 중국과 달리 나물 종류는 차게 해서 내놓는 경우도 있고 익혀서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찌개, 찜, 국, 부침처럼 엄청 뜨겁게 푹 익힌 요리를 먹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의 평가는 혀에 화상을 입을 정도라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한국인도 가끔 혀에 화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일본과 달리 흙이나 돌로 집을 짓는 문화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불 사용이 매우 자유로운 편이었고 아래에서도 설명 하겠지만, 길거리 음식보다는 점잖게 앉아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날씨가 더울수록 더더욱 뜨겁고 맵게 먹는다.
기후도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에는 먼지가 날리니 음식을 반드시 뜨겁게 익혀야만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는 관념이 있어 그렇다는 말도 있다. 흔히 식중독 예방 캠페인에서 반드시 익혀 먹어라는 말이 나온다는 걸 생각해 보자. 또한, 이 때문에 일본과 반대로 길거리 음식이 불량식품이라 하여 천시되던 역사도 있었다. 현재는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나아졌지만, 한동안 한국에서는 길에서 들고 다니며 먹는다는 개념 자체를 예의나 품위 문제 이전에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해서 꺼리는 경향이 있다. 노점행위를 아예, 싸그리 불법으로 근절해서 퇴출시키려는 것과 군대에서조차 장병들의 보행 중 취식을 규정으로 금하고 처벌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도 사실 이러한 문화가 반영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한국만큼 익혀 먹으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적으로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한국(특히 삼겹살)의 특성도 연관 있는데 돼지고기를 덜 익혀 먹어서 감염되는 갈고리촌충이 쇠고기를 덜 익혀 먹어서 감염되는 민촌충에 비해 훨씬 치명적이기 때문에 과거 위생교육 시 돼지고기를 바싹 익혀 먹도록 했던 것이 위생이 나아진 현재에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쇠고기의 경우 돼지고기보다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구워먹을 때에도 바싹 익혀먹지 않는다.
짜다
2014년 한국인의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3,890mg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2005년 5,257mg을 정점으로 한 뒤 9년 간 26% 줄어든 수치이나, 여전히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나트륨 섭취 권고량 2,000mg의 2배에 달하는 높은 수준이다.
희한한 것은 음식 자체는 일본 요리에 비해서 훨씬 덜 짜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 갔다가 음식이 짜서 놀랐다는 경험담이 많은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별다른 향신료나 조미료를 쓰지 않는 일본 요리 특성상 소금, 간장만으로 간을 맞추는데다, 한국 이상의 고온 다습한 여름 기후가 있다보니 요리에 소금을 과다하게 넣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와 같이 한국이 더 앞선 결과를 보이는 것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짠맛이 일본인이 선호하는 짠맛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기에 역설적이게도, 고춧가루가 짠맛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의외로 해외로 나가면 일본 요리가 아니라 다른 나라 요리에 대해서도 짜서 못 견디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한국인들이 굉장히 많다. 적도 근처 나라에 간 한국인들의 경우 열이면 여덟 아홉은 현지 음식이 짜서 못먹겠다고 말한다. 스페인, 이탈리아와 같은 남유럽 국가, 멕시코부터 브라질까지 라틴아메리카 지역, 그리고 서양을 거쳐 들여온 동남아 음식만 생각하다가 깜짝 놀라는 본토 동남아 음식까지... 굳이 적도 근처의 소금 많이 먹는 나라로 가지 않고 정작 한국보다 소금 적게 먹는다는 영미권만 가도 짠맛을 못견뎌하는 한국인들이 꽤 된다. 아마도 한국인들은 국 문화와 고춧가루로 인해 정작 짠맛을 느끼지 못하며 나트륨을 몸에 들이붓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건 음식의 온도와 짠맛을 느끼는 정도, 그리고 한국의 음식문화에 기인하는 영향이 있다. 짠맛은 높은 온도일수록 잘 느껴지지가 않는데, 우리나라는 국이나 찌개를 팔팔 끓여먹는 국물위주의 식단이 주를 이루면서 높은 온도에서의 (짭짤한) 맛으로 간을 맞추기 때문에 일반적인 음식보다도 더욱 나트륨을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뉴스기사에서 한국인의 나트륨 과다섭취에 대한 특집 기사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높은 온도의 부대찌개나 짬뽕을 먹게 한 후, 다시 온도를 낮춰 식힌 온도에서의 같은 음식을 먹게 했는데, 온도가 높을 때는 칼칼하면서 짭짤하다고 좋아하던 사람들이 같은 음식을 식혀서 다시 제공하니 숟가락 한입 갖다댄 후 얼굴을 찌푸리며 짜서 못먹겠다고 반응하는 내용을 소개한 적이 있다. 간단히, 막 끓인 라면국물은 맛있지만 완전히 식어버린 라면 국물의 염도를 생각하면 된다. 훨씬 짜게 느껴진다.
매운맛 으로 다른 짠맛, 단맛을 덮어버리고 그 매운맛에 반응하는 몸은 혀를 속이고 그 매운맛을 더 느끼게 해달라고 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다량의 소금을 함유하면서 맛이 강렬한 음식인 김치, 젓갈, 국, 찌개가 나트륨 과다섭취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다. 그렇찮아도 짠 음식에 맵기까지 하니 한국인의 고혈압(소금), 위암(매운맛)의 발병률은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 개인마다 다르긴하겠지만, 김치나 젓갈류는 어디까지나 반찬이란걸 생각하면 결국 한국인이 가장 경계해야할 음식은 역시 뜨거운 국물류일것이다. 찌개를 먹더라도 밥과 함께, 국물이 아닌 건더기 위주로 먹는 것이 좋다.
달다
기본적으로 '매운 음식'의 이미지가 있는 한국 요리이지만 단맛이 안 들어가는 요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매운맛을 제외하고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맛인 '감칠맛' 을 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양념에 설탕과 엿기름이 들어가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특히 고기 요리에는 대부분 설탕이 들어가서 단맛이 난다. 설령 설탕을 넣지 않더라도 과일을 갈아 넣는 식으로 단맛을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 또 고기를 연하게 하려고 사이다를 넣기도 한다. 오죽하면 외국 사이트의 불고기 레시피에 십중팔구 스프라이트 또는 7up이 적혀있을 정도.
그 외 막걸리에도 설탕이 들어가는 등 현재 한국 음식에 설탕이 안들어간 음식이 없을 정도이다. 이를 허영만의 식객에서 부분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고추장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는데 다른 문화권의 고춧가루가 들어간 유명한 매운 소스들, 이를테면 두반장이나 타바스코가 매운맛을 기반으로 짠맛이나 신맛으로 맛을 내는 반면 고추장은 매운 양념 가운데서도 단맛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맵다고 헉헉 거리면서도 그 매운걸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단맛 때문에 매운맛이 중화되기 때문에 계속 먹을 수 있다고 몸이 말하는 것이다. 염분이 꽤 많은 장인데도 단맛 때문에 짜다는 느낌이 거의 안 들 정도. 이 때문에 단맛에 익숙하지 못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한국 요리는 너무 달다며 불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한식에 설탕이 들어가기 시작한 역사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고, 양식에서 설탕 쓰지 않고 비교적 쉽게 단맛을 낼 수 있는 재료인 양파도 조선시대에 고추보다도 더 늦게 들어왔다. 이외에 과즙이나 꿀, 조청 등의 감미료는 전부 귀하디 귀했을텐데 한식에서 단맛을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감칠맛을 위해 단맛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단맛을 찾기 어렵기에 감칠맛에 집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채소나 당화된 곡식이 아닌 감미료에 의한 강한 단맛은 한식에서 매운맛 이상으로 그 역사가 짧을 수도 있다.
냄새
음식은 그 냄새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데, 한국 요리는 대체적으로 냄새가 심한 편으로,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악취에 가까울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발효음식으로, 된장찌개, 청국장, 홍어요리 등이 대표적인 예다. 김치도 당연히 상당히 심한 편이라 위의 예시들보다는 덜하지만 김치찌개 역시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드는 냄새가 나기 쉽다.
덧붙여 그나마 마늘 향은 요리에 가까이 있거나 먹고 난 후 입냄새로 나는 경우가 아니면 괜찮은데, 된장찌개나 청국장은 아예 만드는 과정에서 집 밖까지 냄새가 퍼지다보니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겁을 한다. 서구권 국가에서는 아파트에서 된장찌개 요리를 하게 되면 집단으로 항의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외국인들은 한식에서 젓갈 냄새 또는 특히 마늘 냄새가 강하다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마늘은 향취가 강한 향신료인데, 한국은 전세계에서 1인당 마늘 소비량이 1위로 어지간한 서구권 국가와 비교하면 소비량이 10배를 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마늘을 많이 먹는다는 이미지를 가진 나라인 이탈리아도 1키로 정도인데 한국은 7키로쯤 된다. 거의 모든 음식에 마늘이 들어가다보니..
• 반도지형과 높은 산지 비율, 다양한 기후로 인해 상당히 다양한 채소 요리 문화가 발달한 편이다. 송이버섯과 산나물로 대표되는 다양한 임산물의 사용과 함께 김, 미역 등 해조류의 사용도 가장 폭넓은 편이다.
• 육류와 수산물 등 동물성 식재료들도 다양하게 사용된다. 쇠고기 항목에서 보듯이 세세한 부위 구분을 사용하며 중근세 일본에서도 쇠고기하면 조선이라는 인식이 있었을 정도다. 중국 및 북방의 육류문화의 도입과 반도의 특성 상 수산물 요리가 크게 발달하였다. 일제침략과 한국전쟁으로 생존에 급급한 요리로 전락했으나 경제성장 이후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다양한 수산물 사용과 육류문화가 빠르게 복원되었다.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이 일본조차 제치고 사실상 세계 1위에 달한다.
• 변화무쌍한 사계절로 인한 저장기술의 필요성 때문인지 독특한 풍미를 가진 발효식품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장맛으로 대표되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과 각종 김치류, 젓갈류 등을 사용하며 '슬로 푸드'(slow food)에 많은 면이 부합한다.
• 많은 조리 방법을 활용해 같은 식재료로도 다양한 식감을 낸다. 날것에서부터 삶기, 굽기, 절임, 조림, 튀김, 숙성, 발효, 우려내기, 쌈(육회, 보쌈, 삼겹살, 불고기, 짜글이, 산적, 장조림, 삼합, 곰탕, 구절판) 등 양식, 일식에 비해 조리법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상기한 발효식품 문화와 다양한 조리 방식이 결합되어 영양학적으로 균형잡힌 음식이 많다.
부정적 평가
• 심각한 냄새: 된장, 청국장 등 발효식품이 포함된 요리는 냄새가 상당하다. 자주 먹는다는 김치 역시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면 냄새가 심하다. 친한(親韓)인사 중 한 명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역시 한국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음식의 냄새는 못봐주겠다고 성토한 적이 있을 정도다. 앞서 말했듯 마늘냄새도 한식을 꺼리게 되는 원인 중 하나. 그러나 이 문제점은 한국 요리만의 문제점은 아니고, 한국 요리가 꼭 저렇게 냄새 나는 요리만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일부에만 해당한다.
• 해산물 섭취의 불편성: 갑각류의 껍질이나 생선의 머리, 꼬리, 뼈 등을 손질하지 않고 조리한다. 그래서 먹는 사람이 일일이 생선살을 발라내야 하고, 생선을 먹는 도중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는 일이 발생한다. 생선 찌꺼기를 밥상 어딘가에 둬야 하기 때문에 보기에도 비위생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섭취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이나 기도가 좁은 아동이 먹다가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해물탕을 먹을 때도 조개 및 갑각류 분해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분해하다가 갑각류 껍질에 손을 찔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요리가 전통 프랑스식 생선 스프나 그리스 식 생선 통구이, 포르투갈 식 생선 통구이 등 한국에만 존재하는 경우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요식업계에서 이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다는 점.
• 식재료 및 조리 방법의 계량화 미비: 요리를 할 때는 식재료의 종류와 상태, 온도 등에 따라 그 절대량과 배합 비율, 조리 방법 및 시간 등을 적절히 계산해야 하며 이를 수치화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적당량'이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으며 이를 '손맛', '은근함'으로 포장하는 사례가 매우 많다. 이는 매운맛은 맛이 아닌 통각이고, 짠맛은 설탕을 통해 중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정량을 넣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말해 조미료를 대충 넣어보고 간을 봐서 짜거나 맵다 싶으면 설탕을 더 넣어서(...) 마무리 짓기 때문이다. 다만 재료를 조절해서 첨가하는 게 아니라 고기 등의 식재료들을 일부러 푸짐히 얹어주는 경우도 있으니 서비스정신과 이어져있다고여기기도 한다.
• 국물 중심의 요리: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는 수프, 스튜 등 국물 음식에 대해 물을 넣어서 맛이 옅어지는 대신 양이나 불리려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천대 받지만, 한국에선 국물 요리가 굉장히 많다. 다만 국물 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보편적인 문화이며, 이를 '격 낮은 요리'로 보는 시각은 어디까지나 서구권의 시각일 뿐이란 점에서 반론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국물요리를 제대로 하는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국물요리는 식재료의 좋은 맛을 충분히 이끌어내면서도 나쁜 맛은 억누르고 재료간의 조합을 통해 맛을 풍부히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물요리에는 그렇게 풍부한 맛을 내는 경우가 드물다. 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설렁탕이나 곰탕, 돼지국밥의 경우에는 고기육수와 사골맛만 나고 거기에 해물육수나 닭육수를 섞는다든가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면요리인 냉면의 경우에도 삼삼하게 우려낸 고기육수에 동치미의 새콤한 맛만 더해진 평양냉면이 가장 보편적인데 고기의 맛이 진하게 우러나온 우래옥 스타일의 평양냉면이나 해물육수와 고기육수를 섞어 감칠맛이 풍부한 육수를 가진 진주냉면은 냉면 중에서도 별미 취급받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 재료를 섞어 국물 맛의 상승효과를 꾀하는 다른 나라의 요리방법에 비하면 감칠맛이 부족해지는 것이 당연하고, 부족한 감칠맛은 양념으로 때워버린다. 그나마도 '국물은 펄펄 끓어야 제맛'이라는 인식이 있어 국물 본연의 맛이 아닌 "뜨거운 맛"으로 국물을 찾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뜨거운 맛은 맛이 아니라 통각일 뿐이다.
• 국물을 한 냄비에 놓고 떠먹는 문화: 찌개를 한 냄비에 담아서 모두가 숟가락으로 떠먹기 때문에 비위생적이다. 조선시대에는 소반을 사용하며 독상을 받는 것이 기본 예절이었으나 일제침략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절대 빈곤상황에서 한냄비 문화가 되었었으나 최근은 다시 개인 접시를 이용해서 가져다 먹는 문화로 대체되고 있다.
• 과도한 향신료와 양념의 사용: 경신대기근 이후로 살균 소독과 부족한 맛을 보충하려고 향신료로 범벅된 음식이 발달했는데 현대에도 지나치게 매운 맛으로 다른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고, 먹기도 힘든 음식이 인기를 얻는다. 북한음식은 대체로 조미료를 쓰지 않고 싱겁고 맵지 않은게 특징인데, 북한에서도 그렇게 맵게 먹지 않는다. 탈북자들은 남한의 떡볶이를 처음 보고 기겁한다. 원래 한국 음식도 맵게 먹지 않았다. 이런 풍토는 프렌차이즈의 경쟁으로 최근에 생긴 것.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양념의 맛이 음식의 맛을 결정지을 정도로 양념을 많이 사용하는 점이다. 양념이나 향신료는 본래 본 재료의 맛을 돋구어주는 역할을 맡는데, 이게 과도하게 사용되면 질이 낮은 재료의 맛을 덮어주기까지 한다. 한국요리에는 간장과 된장, 마늘과 고추를 베이스로한 양념이 거의 모든 요리에 투입되고 이런 양념들은 하나같이 자기색깔이 강해 본 재료의 맛을 뒤덮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한국요리에서 조리의 핵심은 '양념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부분이 되어버리고 '본재료를 '어떻게' 조리할 것인가?'가 아닌 부분은 쉽게 경시된다. 당장 한국사람들이 스테이크를 먹을 때에는 레어, 미디움레어, 웰던 등으로 굽는 정도와 방법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반해 삼겹살이나 소고기를 구워먹을 때에는 쌈장에 찍어먹느냐 소금에 찍어먹느냐 하는 것에 주목하지 고기를 얼마나/어떻게 굽는가?하는 본질적인 질문에는 덜구웠다/다익었다 정도로 대충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우연이 아니다. 가뜩이나 조리법 또한 펄펄 끓이는 방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여기에다 상기한 양념까지 넣어버리면 막말로 재료맛은 거의 의미가 없고 천연msg의 맛으로 음식을 먹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열이 거의 없는 생선회나 육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 사시미는 간장과 와사비만 곁들여 먹는 것이 정석이며 그것도 횟감의 풍미를 해치지 않고 돋우어주는 수준에서 약간만 찍어먹는다. 반면 한국에서 (일식집이 아닌 횟집에서) 회를 먹는다고 하면 백이면 백 초장이 나오는데 초장은 회의 비린내 뿐만 아니라 맛마저도 지워버릴 정도로 강렬한 양념인데, 이걸 관습적으로 듬뿍 찍어먹으니 '초장맛으로 회를 먹는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육회의 경우에도 보통 마늘과 간장, 그리고 참기름을 베이스로 한 양념에 버무려먹는데 참기름은 그것만 밥에 비벼먹어도 맛있다고 느낄 정도로 강한 풍미를 지닌 기름이다. 그런 기름이 마늘과 만났으니 육회에서도 소고기의 맛이 지워지다시피한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에도 강한 양념을 사용한 요리법은 꽤나 보편적이긴 하지만, 일식이나 중식에는 재료 본연의 맛을 풍부히 살리는 다른 요리들도 많으며 양념이 강조된 요리는 음식문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요리에서는 양념의 입지가 주재료와 거의 동등하거나 때때로는 주재료에 쏟는 관심 이상으로 양념에 힘을 쏟기도 하는 등 주객전도가 빈번히 일어나며 이는 요리의 다양성이 제한되는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이렇게 양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요리문화는 아래에 설명할 요리에 대한 관심부족으로도 이어진다. 소위 말하는 "만능양념" 하나만 있으면 아무 재료로도 그럴싸한 맛을 낼 수 있는데 재료의 특성과 품질에 관심을 쏟는 것은 우리나라의 일상에서는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조리법의 체계화가 부족한 것과도 이어진다. 조리방법이 체계적이지 않아도 양념만 잘 쓰면 다 비슷하게 맛이 나오니까. 사실 이 양념 문제야 말로 한식이 가지는 장점과 한계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일 것이다.
• 요리의 수준과 맛에 대한 관심 부족: 과거 음식의 맛을 따지기보다는 '배를 채우기 위한' 용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먹고살 만해지면서 질과 맛에 대해 따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들 중의 하나가, 한국 백반집에 가면 밥을 대충 지어 나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을 찾기가 드물다. 대중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꽤 괜찮은 수준의 밥이 거의 항상 나오는 일본과 무척 비교되는 모습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라는데 밥에 대한 관심마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니 다른 식자재에 대한 관심은 더 말해 봐야 무의미할 지경. 국물요리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개량하고 발전시킬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 국물요리는 서민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조금만 복잡하고 고급화되어도 "무슨 냉면 한 그릇에 만 원이 넘냐" "집에서 먹는 둥지냉면이 더 맛있다"와 같은 비아냥이 들리곤한다. 요리에 대한 일반대중의 관심은 나날이 늘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미디어에 홍보되는 '맛집'을 방문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맛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유별난 사람, 오버가 심한 사람 정도로 취급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별로 맛이 없는 음식을 파는데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얻어 맛집으로 둔갑하는 일은 놀랍지도 않고, 심지어 그런 가게들이 맛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긴 하지만, 한식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요리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 건전하지 못한 술문화: 술을 천천히 음미하기보다는 무조건 퍼마시는 문화. 그에 비해 마리아주(Mariage. 술과 음식 맛의 조화) 문화는 전혀 발달하지 못했다. 게다가 과도하게 뜨겁고 매운 맛을 즐기는 풍토는 술 문화를 개선할 여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마리아주'는 요리에서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다. 마리아주는 와인에 한정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는 와인을 포함한 모든 술에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뜨겁고 맵기만 한 음식에 어울릴 수 있는 술은 결국 단맛과 탄산이 강한 희석식 소주와 '한국산' 맥주로 한정되어 이런 술들을 찾고 또 이런 술에 어울리는 뜨겁고 매운 음식들을 더 찾게 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
• 너무나도 높은 진입 장벽: 식문화는 근본적으로 어릴 때부터 먹어온 음식에 의해 가치관이 확립된다. 따라서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이라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음식 이라도 타 문화권에서는 혐오스러운 음식이 될 수 있다. 한국 요리의 짠 맛과 매운 맛, 어디에도 빠지질 않는 지나친 마늘 향 등 독특한 면이 많다. 따라서 저항을 받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진입장벽이란 말보다는 '한식'에 대한 정체성 확립이 안 된 것이 가장 크다. 실제로 고급 한정식 집에서 내오는 한식은 서양 또는 일본의 조리 기법을 사용하여 한국 '느낌'이 나는 음식과 어설프게 접목시킨 국적 불명의 퓨전 요리가 대부분이다. 멕시코 요리만 봐도 우리보다 몇 배는 더 매운 고추를 사용하고, 베트남 및 인도네시아 요리는 매운맛과 신맛이라는 우리가 생각할 때 다소 생소한 조합을 사용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국제적 요리가 되어 있다. 한식의 문제점은 '맛'의 생소함으로 인한 진입 장벽이 아니라 '한식'의 정체성, 즉 한식의 이미지 자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어필할 수 없다는 부분이 가장 크다.
5. 세계화 난항
(생략) 이 이야기는 한국의 관료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일지도 모른다. 러시아에서 한국 요리는 진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한국 전통 요리는 러시아 현지인들의 입맛과 상황에 맞게 개량됐다. 그 결과로 나온 음식이 한국 요리인지 아닌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구소련 지역의 수백 만 고객들은 이 음식을 즐겨 먹고 있다. -러시아에서 한국 음식의 진화. 러시아포커스,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음식이 세계화, 패스트푸드화가 어려운 이유는 밥, 국, 반찬을 한꺼번에 먹는다는 점(=일품요리가 적다)이다. 대부분의 탕, 국, 찌개 뿐 아니라 불고기, 갈비찜, 잡채 등의 요리가 밥과 반찬과 함께 먹는 것을 전제로 간을 하고 조리하기에 초밥, 탕수육, 피쉬앤칩스처럼 한 접시만으로 간단한 차림을 내기가 매우 어렵다. 때문에 김치와 같은 반찬을 한식 대표 메뉴라며 오랫동안 밀어주었다. 21세기들어 그나마 한그릇 일품요리인 비빔밥을 밀어주곤 있지만 쌀 문화권 혹은 매운 요리 문화권이 아닌 서구에서는 웰빙 음식 정도로 치부되며 서브 컬쳐에서 저변을 넓혀가는 상황. 때문에 최근엔 칼국수, 설렁탕, 떡국 등 한그릇 음식과 각종 지짐, 튀김, 육적, 수정과, 약과 등 안주, 간식류에서 새로운 국가대표 음식을 발굴/홍보하려 노력 중이다.
한국의 전통주(酒)는 지역마다 다양한 종류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쌀이출을 위해 곡식의 사용을 절약한다는 명목으로 가양주, 즉 집에서 술을 자체적으로 제조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의 가양주가 소실되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국의 전통주는 대량생산형이 아닌 집에서 소규모로 빚는 가양주의 형태로 전승되어왔는데 여기에는 부여되는 세금이 없었다. 그런데 일제가 조선을 점령한 이후 주세법을 세워 가양주에도 세금을 물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히 시장경쟁력이 떨어지는 가양주 제조주체들은 술을 빚지 못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가양주가 소실된 것이다. 사실 정상적인 행정력을 가진 국가라면 판매목적으로 빚는 술에 세금을 매기는 일은 당연한 일이긴 한데, 일제가 주세법을 마련하면서 조선의 전통주가 사라지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을테니... 다만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에서는 여전이 상당량의 전통주가 유통되었다. 주세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시장경쟁력을 가졌던 업체들은 기업화되어 번창했던 것. 태평양전쟁기간에야 일본의 점령지에서는 무지막지한 수탈이 일어났으니 한 톨이라도 아까운 쌀로 집에서 술 빚는걸 허용할 리도 없었다. 아무튼 일제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통주의 종류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해방이 된 이후에도 전통주를 복원하려는 노력은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광복 이후에도 전쟁을 거치며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아 계속해서 가양주 제조를 금지하였으며 대신 일반인들의 술 소비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희석식 소주라는 대체재가 등장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증류식 소주 등의 증류주와 혼성주 및 각종 양조주들이 소실되었다.
현대 한국 일반인들의 술 소비량 중에선 희석식 소주와 맥주, 정확히는 '한국산' 맥주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두가지 모두 술 자체로 보면 정상적인 술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술 문화는 술과 음식을 함께 천천히 즐긴다기 보다는 무조건 술을 많이 마시는 이상한 방향으로 정착되었다. 러시아 나오라고 해!(딸꾹) 《삼국지연의》 같은 데서 장비 같은 무장들이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항아리째로 술을 들이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때는 발효나 여과 기술이 완성되지 못한 시기라 술에 부유물이나 침전물이 남던 시절이었고 도수도 그리 강하게 만들 수 없었으므로 지금 볼 때처럼 무리가 가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는 공장에서 완벽한 발효, 여과, 증류를 통해 20도가 넘는 술을 얼마든지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절이다. 한국의 1인당 술 소비량은 세계 11위로 러시아(4위)에 크게 꿀리지 않는 수준이다.
전통주 중에서 그나마 양적으로 비중을 차지하는 술은 막걸리나 매실주, 청주 등 소수의 종류에 불과한 실정이며 이마저도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가양주의 쇠퇴와 양조의 편리성으로 인해 전통 누룩이 아니라 일본식 입국을 사용한 정체불명의 술이 흔한 편이다. 다만 요즈음에는 민간 중심으로 전통주복원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어 전통주의 복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고, 더 나아가 남아있던 전통주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통주를 만들어내려는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아직 전통주에 눈길을 되돌린 기간이 짧아서 그렇지 이런 노력이 지속된다면 잃었던 전통주를 되찾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주 문화가 더욱 꽃피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많다.
9. 지역별 특성
지역별로 음식의 특성들이 조금씩 다른 편인데 우선 기후의 특성상 남쪽일수록 맛이 자극적이고 양념이 강하며 북쪽으로 갈수록 양념이 덜 들어가고 맛도 심심해진다. 맛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덜 맵고 덜 짜고 덜 단 방향으로 간다는 말. 즉, 건강과 세계화에는 훨씬 유리하다. 제주도는 기후와 상관없이 비교적 심심한 편이다. 이는 제주도에선 전통적으로 소금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 소금인 자염은 갯벌이 있어야 하는데 제주도는 해안이 바위로 이루어져서 자염을 만들기가 곤란하였고 따라서 음식에 소금을 쓰기가 힘들었다.
한정식(韓定食, Korean Table d'hote)
한국 요리의 반상 차림을 서양의 정찬처럼 시간 전개형으로 격식을 갖추어 차려내는 음식으로 전채, 주식, 반찬, 후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차림으로 한국 요리의 정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조금만 생각해도 한정식의 으리으리한 밥상이 조선시대에서 유래되었다는것은 이상하다 느낄 수 있는데. 조선은 후기까지도 상업을 천시했으니 이러한 형태의 고급요식업이 발달 했을리도 만무하다. 게다가 수라상만 해도 대한제국에 와서야 황제가 되면서 12첩으로 늘어난 거지 조선시대까지 왕의 식단은 대체적으로 사대부와 같은 7/9첩상이었다.
애초에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일제시대까지 한국의 "정식'이란 궁중연회든 양반집이든 농민이든 여러 가지 음식을 1인분씩 개다리 소반 같은 독상에 차려 주는것이 기본이였다. 이를 위하여 마을마다 1인용 소반을 수십,수백개씩 보관하는 공동창고가 있었다. 80년대까지만해도 안동에서 큰 제사를 치르면 참가한 사람들에게 밥을 차려줄 때 1인상에 줬다고 한다.
이러한 형식은 일제강점기의 기생집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반찬을 다수 놓고 먹는 건 조선민화에서도 수차례 나온다. 그리고 기생집의 겸상은 기생집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편의상 겸상을 한 거지 정식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1950년대까지만해도 한정식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1960년대 와서 기생집이 세금문제로 간판 바꿔달고 음식점으로 바뀌면서 한정식이라는 적당한 이름 붙여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70년대 들어서 룸사롱에 밀리기 시작하며 순수 음식점으로만 남게 됐는데 이것이 지금의 한정식이다.
한국식 상차림의 기본인 밥, 국, 반찬과 김치, 장류에서 범위를 보다 확장해서 각 종류들을 늘려가며 상을 차린다. 보통 육류요리로는 구이, 조림, 전, 찜, 육회 등이 올라오고 국물요리로는 전골 내지는 찌개가 올라오며, 생선회나 조개류 같은 갖가지 해산물이나 생채 및 숙채 그리고 절인 반찬 및 젓갈 등이 올라온다.
제사상 또한 어느 정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일부 한정식집에서는 한상에 가득 나오는 것이 아니고, 코스요리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코스화된 한정식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의영향을 받은 조리법과음식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코스화된 점을 들어 이는 한정식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지만 가이세키 또한 에도시대 초기에는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아서 발전했다. 또한 프랑스 요리도 18세기까지는 코스요리가 아니었다. 음식이라는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것이다. 단순히 코스로 나오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한정식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혼자 한정식 먹기
한정식을 다루는 식당은 대체로 1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 고급 레스토랑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닌 연회나 접대를 겸할 목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전통 식문화에 겸상은 없고 혼자 먹었는데 이 무슨 소리인가?" 할 수도 있는데, 애당초 유래가 된 기생집부터가 정말로 고관대작이거나 부호가 아닌 이상 보통은 2인 이상 출입을 하는 게 보통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게다가 가게 입장에서는 전통보다 실리를 추구해야 하는 면도 있고...
다만 요릿집으로서의 한정식집이 아닌 일반 식당으로서의 한정식집 한정으로 1인 손님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러한 가게의 메뉴 구성은 가정식 백반에 가깝다. 어쨌든 일단 분위기 있는 한정식 집이라면 1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
5. 비판
식당에서 내놓는 한정식들을 보면 대부분 음식의 가짓수에 치중하여 많이 내놓는 데 급급하는 경우가 많다. 식객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대목이 나온다. 중점이 되는 음식이 따로 없이 정식 그 자체라는 틀에 맞추기 때문에 많은 음식을 내놓지만 막상 손대는 음식은 많이 없고 여러 음식이 섞여서 혼란스럽기에 음식 자체의 맛을 최대한 느끼기보다 그냥 많이 먹는 데 치중하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 다 먹지 못 하고 남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커다란 문제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가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다 포장을 안 해주는 집도 많고 포장해 가기도 그런 경우가 많아 남는 음식은 전부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 결국 한정식은 음식물 쓰레기를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이런 점을 떠나서도 한정식은 2010년대 정도가 되면 확연한 쇠락세이다. 이유는 2가지인데, 한정식에는 필연적으로 2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수많은 반찬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공간과, 그 반찬을 만들어대는 인력이다. 즉, 노동집약적이면서 동시에 주방이 엄청나게 넓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이것이 과거 가능했던 것은 말 그대로 최고급 접대용 요정이었기 때문인데, 현대에 와서는 이런 영업형태가 유지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이 때문에 인력을 줄이거나, 음식을 미리 만들어둔다거나 하는 행태가 보이면서 맛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결국 2016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1인당 접대 식대를 3만원으로 제한하자 접대 손님 위주로 장사를 해오던 한정식 업주들이 다 죽게 생겼다며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대놓고 불법행위를 하는 걸 보고도 입 싹 닫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셈.
한식당(韓食堂 / Korean Restaurant)
한국 요리(한식)을 파는 식당으로서 한국 본토가 아니라 주로, 해외에 위치한 식당을 일컫는다. 가깝게는 일본, 중국 대륙, 대만, 홍콩 등 아시아에서 좀 멀리는 영국, 유럽, 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메리카 등 서양권에도 있다.
주로 교민들이 운영하지만 고려인, 조선족, 한국계 미국인, 재일교포 등의 그 나라 한국계 현지인이 운영하기도 한다. 북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중국인이 운영하는 집도 꽤 있는 편이다.
식재료 등을 한국 본토에서 공수해오기 일쑤인데다 미국, 영국, 홍콩,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일본 등 선진국은 인건비도 비싸서 가격은 한국에 비해서 당연 비싼 편이고 고급화 여부에 따라 배 이상으로 뛰기도 한다.
한국의 본래 음식을 그대로 파는 식당도 있지만 현지화 전략으로 맛이나 재료가 바뀐 음식을 팔기도 한다.
주로 한국의 맛이 그리운 교민들 특히 유학생들이나 국외취업한 직장인들, 주재원들이 자주 이용하며, 한국 음식을 맛보고 싶은 현지인들도 이용한다. 미국이나 영국, 유럽보다는 한류 열풍이 강한 중국 대륙,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동남아시아 등에 현지인 손님이 많은 경향이 있다.
비빔밥, 김치찌개 등의 찌개류, 볶음밥류 등을 팔고 간혹 삼겹살도 판다. 소주도 파는데, 가격은 웬만하면 최소 8000원 이상이다.
2016년 미쉐린 가이드에서 한국의 식당 목록을 실은 바 있었는데 이 중 반절이 한식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