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방금 전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윤상길의 방송톡톡] 드라마에서 미술과 그림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의 심리 상태, 숨겨진 비밀, 서사의 복선을 전달하는 핵심 상징 장치로 활발히 쓰이고 있다. 8월 10일 첫 방송에 나선 <욕망의 덫>(KBS2)은 여고생 미술전 수상 작품 선정 비리로 문을 열었다. 거액을 주고 산 유명 작가 작품을 자기 이름으로 출품한 부잣집 딸 강해라(주새벽 분)가 대상을 받고, 자기 실력으로 작품을 출품한 고은설(전혜원 분)은 금상에 그친다. 금수저와 흙수저 사이의 암투, 비리의 시작이다. 그 중심에 ‘복수의 화신’으로 꼽히는 장서희 배우가 자리한다.
MBC 일일드라마 ‘가족관계증명서’ 박세영 화실 속 그림은 한국화가 김현정의 작품이다.
<욕망의 덫>보다 조금 일찍 시작한 MBC 일일극 <가족관계증명서>의 주인공 나지니(박세영 분)는 불행한 가족사를 안고 사는 미술학도 출신이다. 그는 아직 작가로 데뷔하지는 못했지만, 붓 터치 하나에도 서사가 담겨 있고, 섬세한 표정으로 감정을 그려내는 천재이다. 최종 목표는 자신의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어 전 세계가 공감하는 K-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자신을 학폭 가해자로 만든 재벌집 동창생 도도희(박솔라 분)의 훼방으로 앞길이 막힌다.
이처럼 미술이 주요 기제로 쓰인 드라마는 많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2022년에 방송된 SBS 월화극 <그 해 우리는>을 꼽을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건물과 나무만을 펜화로 그리는 고독한 일러스트레이터 ‘최웅’(최구식 분)의 작품을 통해 인물의 깊은 외로움과 상처, 그리고 세밀한 감정선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JTBC 수목극 <너를 닮은 사람>에서는 화가인 두 여 주인공 정희주(고현정 분)와 구해원(신현빈 역)의 욕망, 질투, 죄의식이 미술실과 캔버스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난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림 자체가 과거의 사건과 비밀을 파헤치는 치명적인 매개체 역할을 한다.
‘욕망의 덫’에서 주인공의 불행은 그의 그림에서 시작된다. 사진출처=화면 캡처
tvN 주말극 <눈물의 여왕>은 재벌가 저택 및 주요 공간에 현대 미술품을 다수 배치하여, 등장인물 간의 권력 구도와 심리적 거리감, 향후 전개의 복선을 암시하는 세련된 기제로 활용했다. 또 tvN 주말극 <작은 아씨들>과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인물의 초상화나 상징적 회화를 통해 인물의 가문, 욕망, 혹은 사건의 숨겨진 단서를 직·간접적으로 제시했다.
드라마에서 그림이 스토리 전개의 기제로 작용하는 경우 못지않게 작중 화가 나 미술관 관계자로 등장해 흐름을 이끌어 간다. 극중 작가(화가·일러스트레이터) 캐릭터는 감정과 내면을 대변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의 상처, 욕망, 자아를 그림으로 드러낸다. 이 배역은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그림 속에 복선이나 비밀(진실)을 숨겨둠으로써 스릴러나 로맨스 전개의 핵심 키를 쥐는 역할을 한다.
갤러리 대표나 큐레이터 같은 미술관 관계자는 서사의 중재자이거나 사건의 공간을 제공한다. 예술품의 가치와 의미를 해석하는 인물로서, 작품 속에 담긴 인물들의 상처나 진실을 알아채고 보듬어주는 조력자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역할은 미술관이라는 고급스럽고 고요한 공간을 제공하여 극 전체의 분위기와 ‘톤앤매너’(색감과 분위기를 뜻하는 Tone과 태도·방식을 뜻하는 Manner가 결합된 개념)를 형성한다.
‘가족관계증명서’ 주인공 박세영의 극중 꿈은 최고의 K-애니메이터가 되는 것이다. 사진출처=MBC
이쯤에서 시청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극 중 등장하는 그림은 실제 누가 그릴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방송 종사자들은 이 질문에는 입을 ‘꾹’ 닫는다. 취재 결과 극 중 등장하는 미술품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수급 또는 제작된다.
첫째, 실제 아티스트와의 커미션 또는 협업이다. <그 해 우리는>에서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티보 에렘(Thibaud Hérem)의 펜화 작품이 실제 주인공의 작품으로 사용되었다. <작은 아씨들>과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김대유 작가 등 실제 회화 작가가 드라마 미술팀의 구상에 맞춰 맞춤형 초상화나 유화를 커미션(의뢰)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하게도 드라마 전개 이후 <가족관계증명서>에서 박세영의 화실에 등장하는 작품이 유명 한국화가 박현정 작가의 것으로 알려져 요즘 화제다. 이는 드라마의 서사와 캐릭터의 감정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며, K-드라마와 한국 미술이 만나 만들어낸 의미 있는 협업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해 우리는’에서 최우식의 작업실. 사진출처=SBS
둘째, 갤러리나 아트 컨설팅사를 통한 원화 대여의 방식이다. <눈물의 여왕>, <판도라: 조작된 낙원>의 경우는 전문 갤러리(표갤러리, 퍼블릭갤러리 등)와 협업하여 이정민, 황민선 작가 등 현역 현대미술 작가들의 실제 원화를 세트장에 협찬·전시했다.
셋째, 방송국 드라마 미술팀과 전문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경우이다. 배우의 스케치 장면, 손 대역, 수많은 소품용 미완성 그림 등은 드라마 미술팀 내부의 미술 전공자들이나 전속 대역 화가가 직접 작업한다.
‘너를 닮은 사람’에서 화가로 변신한 고현정. 사진출처=JTBC
드라마에서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미술(그림)작품이 직간접으로 서사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그만큼 미술이 일반인에게 가까워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방송 미술 관계자는 “앞으로 AI의 사용 빈도가 높아질 경우에 대비, 철저한 저작권 관리가 시급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관련기사
태그#드라마핵심장치#화가#드라마#욕망의덧#가족관계증명서#K애니메이션#화가여주인공#주말극눈물의여왕#전속대역화가#미슬여행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