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양백산맥 원문보기 글쓴이: 文珙齋
가족
김 상 훈
인간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러나 정녕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의 검은 발자욱들을
눈은 펑펑 쏟아져 지운다
쏟아지지 않고는 못배기는 눈이다
질식할 정적(靜寂)이여 어둠이여
어둠을 퍼붓는 밤 하늘이여
이 밤 한사람의 천대받은 여인이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어 항변한
뼈아픈 이야기에 조시(弔詩)를 보내라
눈은 펑펑 쏟아져라
차고 하이얀 것이 사화(死花)처럼 지상을 덮으라
집은 천벌(天罰)을 기다리는 약한 즘생처럼 움추리고 있다
썩어 늘어진 대사립문은 닫을 필요조차 없고
까무러지고 싶어 못배기는 등잔 아래
돌쇠네 다섯식구는 돌멩이처럼 놓여 있었다
무슨 무섭고 커-다란 힘에
그들은 그렇게 앉혀져 있는 것이다
손까락 하나 꼼짝할 자유도 없다는 듯이……
누이동생 복례는 낼숨을 깨물며 울고 있다
돌쇠는 그게 아까부터 못마땅하다
더구나 그들의 어머니가 불어 보내는 한숨이랴!
이 폐부(肺腑)가 상해 나오는 한숨으로 하여
아버지 박서방의 얼굴이 각각(刻刻)으로 더 검어져 간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무섭게 다문 입술!
황토벽에는 다섯 개 검은 그림자가
우울한 정직으로 그들을 흉내내고 있다
눈과 어둠은 섯바껴 쌓이고
명부(冥府)의 어구처럼 밤은 무섭게 깊어
창살로 문틈으로 한기는 물밀 듯 밀려드는데
철비(鐵扉)같이 갇혔던 입술을 열어
할머니는 주검으로 통하는 침묵을 깨트렸다
“방우백이 그 논 닷마지기는
삼대째 우리가 부쳐오는 것이다
그 논은 우리들의 명맥이 아니냐
봇물싸움을 하다가 아버지가 죽잖었느냐
그 댁에서 해필이면 그 논을 떼다니
안될 말이지! 지신이 노하실걸……
내가 가서 다시 한번 빌어보마
이대로 앉아 고스란히 죽으라는 법이야 있느냐
내가 가서 다시 한번 빌어보마”
이지러진 문이 안쪽으로 열리더니
머리도 옷도 흐므레한 할머니가
표연히 물에 빠지 듯 어둠 속으로 뛰어들고
다시 안쪽에서 문이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무도 잡지 않았다. 이 밤에 달려간 할머니를
언덕이다. 숲이 신장(神將)처럼 우뚝우뚝 서서 본다
여울, 얼음 밑으로 물소리 포호(咆呼)하고
논두렁 밭두렁으로 오솔길은 위태로이
할머니의 발은 날쌔다
할머니는 간다
입술 악물고 쏜살과 같이
눈투성이가 되어
마지막 힘으로 두드린
지주 황참봉의 대문은 닫혀져 있다
검고 육중한 대문이여
노구의 마지막 길을 바로 막아선 대문이여
민족의 운명을 차단한 흉한 손이여
부르는 소리!
문을 좀 열어 주시요
굶어 죽는 사람들의 애원입니다……
부르는 소리 구천에 사무치는 부르는 소리
그러나 일찍 이 문은
자비라든지 동정이라든지 그런 말을 배워본 일이 없다
지열(地熱)처럼 툭 터져서
피듣는 머리로 문을 부시기엔
할머니는 너무 노쇠하다. 숨이 자지러지며 ――
오냐 주검으로써 하여 보리라
우리들을 죽이고야 네가 잘산다면
먼저 나의 늙은 몸둥아리를 이빨에 던지리라
최후의 시각에 눈알은 횃불처럼 탔다
대문에 목을 매어 달았다
목을 매어 단 것이다! 하늘아 땅아
각각으로 호흡과 혈액이 무섭게 변색해가는
이 늙은 여인의 체온에
눈바람은 불어닥치는 것이냐
눈바람은 마구 물어뜯는 것이냐
견디지 못하도록 아픈 입술이
마지막으로 누구의 이름을 불렀느냐
누구를 불러 저주하였는데
바람아 그 소리마저 너는 지웠느냐
비극은 끝났다
사자(死者)의 눈알만은 감겨있는 채로
지상엔 날이 밝았다
구장(區長)과 문장(門長)과 마을여인들의
찌푸린 얼굴에는 조소가 흐르고
자손들이 까마득히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엉터리 의사의 진단서가 쓰여졌다
황참봉도 연일 유쾌할 것은 없다
할머니의 주검의 댓가로
박서방은 논을 떼이지 않았다
불길한 인연이여
그칠 줄 모르는 농노의 밧줄은 다시 매어졌다
일만가지 억울한 것은 펑펑 내리는 눈 속에 파묻히느냐
눈은 며칠이나 내려 쌓일 것이냐
○
불놀이는 즐겁고도 두려운 장난이다
막대기에 불을 붙여서 함부로 휘두르면
먹빛 하늘에 타오르는 선이 꿈틀거리다 사라지고
흔히 손을 데이거나 옷을 태울 수도 있는
그리고 불이 꺼지면 어둠은 더욱 무서워지는
불놀이는 아이들만이 하는
불놀이는 해선 안되는 장난이다
황참봉의 맏아들 위우(渭雨)가
소작인의 딸 복례와 불놀이를 하며 자랐다는 것은
어른들에겐 그리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다
마을사람들 대대로 복을 빈
그러나 한번도 복을 주어본 일이 없는 느티나무 밑에서
황혼이 찾아들면 소년과 소녀는 서로 불렀다
아궁에서 꺼내온 막대기는
노래보다도 쉽사리 꺼져버리는 불
숨도 쉴 틈없이 허겁지겁 흔들며
하늘 땅이 저의 것인듯이 깔깔대다가
불이 떨어지면 올빼미 같은 눈알들로
뚫어지도록 보고 또 한번 웃고
손도 쥐어보고 허리도 안아보고
입을 맞추곤 울어버리기도 했다
그들은 그저 좋아갔다
사회와 도덕과 이해(利害)가 미처 거리를 일러주지 못한
이 천진한 무지가 피어오른 감미로운 목가(牧歌)시간에
위우도 복례도 노래를 불렀다
노래 소리는 물결쳐 산에 들에 퍼졌다
영원한 회귀 속에 그들을 괴롭힐
노래여 불타오르는 미궁의 자랑이여!
넘쳐흐르는 계절의 낙원
따의 장미, 바다의 해초, 하늘, 별, 초목들아
아아 이 「이브의 과일」의 풍요한 향기에 도취하라
격랑이 와야했다
이름도 모르고 익힌 그것이 사랑이라서
만나면 그저 그리 한 것이
잃어버리려면 심장을 졸라매는
사랑은 산호보다 붉은 상채기라서
그들은 어느새 괴롬을 배웠다
위우는 지주 항참봉댁 도령님
중학을 들어 서울에 갔고
복례는 헐 수없이 야초(野草)를 닮어간
신발만 커진 시골 처녀
부질없이 젖가슴이 부풀어 왔다
할머니의 시체를 넘어서도
사랑이여 기여코 타야 할 것이냐
그리움은 괴로웠다
망각은 더욱 괴로웠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속에
똑바로 원수를 찾아야하는
청춘의 자랑이여 숨을 거두라
지부(地府)의 광망(光芒)이 용구새 휘몰아 가는
둔탁한 격랑의 이쪽 저쪽에서
소년과 소녀의 충혈된 시선이여
○
복례는 삼벼기기에 바쁘고
위우도 방학이라 돌아온
어느 찌는 듯 더운 날의 이야기다
매암이소리 송도(松濤)처럼 일다 스러지고
노염(老炎)이 쨍쨍 위엄을 뽑을 무렵
돌쇠네 집에는 큰 손이 왔다.
지주 황참봉은 비단옷을 입고
지주 황참봉은 돼지처럼 비둔(肥鈍)해서
마름 앞세우고 왕자(王者)처럼 왔다
닭잡는 소리 밥짓고 술을 걸르는 소리
영문 모르고 황공, 불안해진 모습들
왕자는 친절하다. 가지가지 호의를 배설하며
석후(夕後)에야 신성한 야욕은 드러났다
“자식을 하나 더 봐야 겠오
논도 집도 돈도 줄터이니
복례를 나의 소실로 주구려……”
아아 이 잔인한 왕자! 너는 권력을 가졌구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정복되고 말리라
정복되고 말리라 빈한한 가족들아!
시선들은 석화(石火)처럼 부딪혔다
아버지는 딸을 보고 딸은 아버지를 보고
―― 명일의 부귀 때문이 아니라
소청을 안들으면 논이 떼이지 않느냐 ――
마을사람들은 구경인 듯 담너머 보고
어머니와 돌쇠는 상가처럼 부둥켜 울었다
차라리 한바탕 시원스리 죽어 버리자고
죽어 버리자고 돌쇠는 상가처럼 부둥켜 울었다
죽어 버리자고 돌쇠는 발을 굴렀다
복례는 침착했다
분바르고 긴 치마입고 눈물도 없이
선두(船頭)에 선 심청의 이야기처럼
눈을 감아 부모님의 복을 빌고
―― 할머니는 목숨을 끊었거늘
다시 나 하나의 몸동아리 쯤이야 ――
그물 속의 새는 반항 없이 들어갔다
밤이 해저같이 중암(重暗)하다
손님의 방에 불은 꺼졌다
쓰라린 가슴들에도 불은 꺼졌다
다만 하나 돌쇠만은 참지 못했다
인종(忍從)의 동앗줄아 그만 끊어저라!
대대손손이 아아 발광이라도 하자!
개나리 봇짐을 끼고
“나는 달아나리라
이꼴은 보고 못살리라
고별인들 왜 있어야겠느냐
너희들을 무찌를 칼을 사오리라!”
앞도 어둡다. 뒤도 어둡다
동구(洞口)엔 요마(妖魔)의 연막이 깔리고
이 밤도 눈이 쏟아진다
언덕을 올라
느티나무 밑을 지나가려니까
한사람의 그림자가 서있다
위우다! 아버지의 발길을 이까지 따라온
위우야 너는 왜 이처럼 못났느냐
너는 누구의 자식이냐?
말해라 너는 누구의 자식이냐!
돌쇠는 주먹을 쥐며
마음껏 위우의 뺨을 갈기고
어데론지 나는 듯 사라져 버렸다
○
천년 우거진 숲길을 돌아
실개천이 모래언덕을 감아 흐르고
향나무 뿌리깊은 우물을 지나면
퇴락(頹落)한 기와집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기와집은 풍우 백년 속에 늙어 오면서 양반들의 죄스러운 역사를 골고로 안다
그들의 잔학한 작동(作動)으로 체구 가득 상채기를 입었다
전복(典服)자락 밑에 흉계를 감추고
상한(常漢)과 중노배(中奴裴)를 말굴림을 시키며
야반(夜半)에 받아드릴 천냥 돈꾸러미 때문에
수상히 동료를 옥으로 보내는
엄청난 폭악(暴惡)이 점잖으로 허식된
패망 왕조의 유습이 조기(弔旗)처럼 남아 있다
여기서 그들은 도박(賭博)과 함께 정사를 논하고
주륙에 젖어 관직을 흥정했다
비녀(婢女)들 흔전히 살을 바치고
적서의 싸움은 서리가 날며
해심(海心)보다 시암(深暗)한 가지가지 비화(秘話)를
집은 서리서리 거미줄처럼 안고 있다
열해 전 어느 밤
사당에는 제촉(祭燭)이 타오를 때
쇠라도 녹일 첩들의 시샘에
규중에 무서운 살인이 났다
황참봉의 정실 현부인이
위우 위득 두 아들을 부르며
밤새도록 못견디어 몸부림을 치다가
자는 듯 한많은 긴잠이 들었다
죽은 자는 그냥 파묻혀야 했다
양반질이 발설을 엄금했다
이 천고에 슬픈 무덤은
두 아들의 가슴에만 피맺혀 있었다
그 다음 계모(季母)는 유리같이 찼다
편벽된 사랑은 칼바람이 일고
아버지의 자정(慈情)도 계절이 옮겼다
첩은 철철이
마(馬 )판에 말매이 듯 갈아 매었다
돈과 비단옷에 칼부림이 나는
청춘의 댓가는 사랑은 아니었다
이 호사스런 상품들 속에
주인은 인격을 시인하지 않았다
질투와 고자질이 심하면 심할수록
가장은 고소한 미소를 날렸다
소실 중에 가장 외로운 여인
설희(雪姬)의 괴롬은 더구나 딴 것이다
황금과 제도의 위력으로 하여
마땅히 황참봉을 사랑해야 할 운명이
설희는 남편의 작은 아들 위득(渭得)을 사랑했다
얼마나 혹심한 신의 장난이냐
아무리 제몸을 꼬집어도 물어 뜯어도
밤이면 꿈이 되어 품안에 들어오는
이것은 어느 사탄의 혓바닥의 소치냐
한 집에 살고 있다
조석으로 뻐-ㄴ히 바라보건만
정녕 숨을 못쉬도록 열애하는 남성이건만
그는 틀림없이 남편의 아들
위득은 설희를 어머니라 불렀다
왼하로 맞사리다가 또 해가 지고
왼하로 입술을 깨물다가 또 해가 지고
아아 목이 타는 듯한 안타까움 속에서만
체취만 엿보는 근거리 속에서만
모멸되는 여인의 실색한 시간이여
설희는 웃음을 잊었다
설희는 말을 잊었다
말은 모조리 행복된 사람들의 것이다
사랑도 설움도 꼴닥 삼키고
자는 듯 죽구 싶은 설희야 울어라
연정은 진정 눈먼 망아지
눈알에 잠긴 절망의 노을을
너는 등심(燈心)처럼 속으로만 태우느냐
달은 마경(魔鏡)인 듯 숲 위에 걸리고
풀버레 소란한 팔월의 밤이
난마(亂麻)처럼 사색을 뒤흔들어 놓았다
위득의 사랑도 단순치 않다
이젠 최후의 한 길밖에 안남은
혈액의 마지막까지 고민의 초토(焦土)가 된
도덕과 본능의 상극9相剋). 아아 신과 인간의 싸움
…… 어릴 적부터 각시놀음을 하다가
어느 틈에 어름어름 접근해버린
갑순이는 위득의 사촌누이다
너무나 담담한 영원의 비장(秘藏)
주검으로 환산되는 격애(激愛)의 범죄
위득은 몸부림을 쳤다
천지가 한번 뒤집어져야 했다
세대도 마지막을 고했다
불맞은 범같이 일제는 발악하야
청년을 모조리 사지(死地)로 내모는 날
주검과 마주 선 식민지의 자손은
스승도 어버이도 믿을 수가 없었다
황참봉은 만화처럼 국방복을 입고
지원병 권유 차로 팔방을 돌았다
급조(急造)된 애국자는 의기양양하여
자신의 거짓을 자신도 믿어 버렸다
이 해 위득의 나이 스물 하나
면할 길 없는 「명예의」 소집영장이 왔다
황참봉은 소를 잡아 갑종합격을 자랑했다
군수와 부장(部長)이 번갈아 치하(致賀)를 왔다
심장에 손을 얹어 보았다
위득은 정녕 살아있다
살구 싶다. 암석에 눌려서라도 살구 싶어
집 뒤 솔밭에서 갑순이와 밀회를 했다
“어차피 죽는 판이니
죽는 폭치고 우리 달아나자!”
달아나자! 사랑이거든 숨막히도록 깍지를 끼고
우리들만이 아는 푸른 하늘 아래 자리를 잡자!
흙 속에 두더지처럼 파묻히려
위득과 갑순은 달아났다
우선 북으로 북으로! 여긴 만주벌판
가문도 기와집도 없는 곳이면
죄로운 불길도 온전히 타리라
위득이 떠난 한달만에
설희도 죽어버렸다
주검이여 감미로운 귀환이여
눈같이 표백된 여인의 약점을
대지는 유아처럼 포근히 품으라
그리고 대지야
봄봄이 설희의 무덤에 꽃피우기를 잊지말라!
○
(8월 15일은 너무도 불의(不意)에 온 착난(錯亂)이다)
이처럼 중태의 환자에겐
과다한 양의 양염(陽炎)이다
미처 탈피를 준비하지 못한 노출이다
「만세」도 끝났다
절규의 여향(餘響)은 처연하다
대회는 차츰 전기(戰旗)를 세워야 하고
환호는 어느덧 아우성으로 변하고
짓밟힌 자들은 짓밟힌 채로
편은 두쪽으로 뚜렷이 갈렸다
국토에 다시 피가 젖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마는
석전(石戰)이 접근해 온다. 중간이 용납되지 않는다
(위우야 잎 진 가로수 밑에
기-ㄴ 모가지를 하고 선 너는 어느 편이냐?)
나는 대체 왜 여기 섰는 것이냐
이 폭풍의 계절 속에
빛없는 젊음이 방황하는 나는 누구냐?
위우는 스스로 물어보고
대답없는 자기를 또 미워한다
―― 아버지는 어느새 變節鳥의 습성을 배워
정당을 꾸미고 애국강연을 하지 않느냐
아아 물거품 위에 씌워지는 민족의 판단이여
어느 때는 물방울보다 쉽사리 사라지는 낡은 과거여
온갖 허위만이 해바라기를 부르는 위조된 광선이여
몸서리 처지는 생장(生長)의 동굴!
돌아눕지도 못할 조붓한 테두리
지옥을 모방하여 만든 사멸하는 태실(胎室)
그 음울한 옛집에 무엇을 남겨놓고 왔기에
옛집에 가서 누구를 불러 간찰히 이야기 하구 싶기에
나는 이렇게 돌아가구 싶으냐
돌아가구 싶은 마음이 박쥐처럼 암흑을 부르느냐
이마 바루히 싱싱한 실과처럼
젊은 태양은 붉게 걸려 있고
광기에 가까운 경이를 안고
새로운 세대는 물밀 듯 진군하거니
일순의 수면도 안한(安閑)도 용납되지 못하는
무서운 매혹을 나는 어찌 하겠느냐
어찌하여 여기 서 있느냐? 몽유병자처럼
비탄의 사회(死灰)를 맛보는 세기의 유기아(遺棄兒)냐
망설이는 마음아 나를 버리라
나는 달려 가리라
내 입으로 증거를 서야 할 일이 있다
내 눈으로 보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
위우는 느릿느릿 발길을 옮겼다
겨울이 오기 전 남국으로 까마득히
동무들을 떼지워 날려 보내고
혼자 뒤떨어져 우의(羽衣)를 여미는
한 마리 슬픈 후조(候鳥)의 걸음처럼……
위우는 촉화(燭火)같이 초조(焦燥)하며
지향없이 큰길로 발길을 옮긴다
전국여성들의 대회장 앞에서
문득 발을 멈췄다
박수의 격광에 싸여들어 보구 싶다
문을 들어섰다
기세가 회오리 바람처럼 인다
단(壇) 우에는 용사가 외치고 있다
복례다! 복례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꿈이 아닌가! 그러나 복례는 외치고 있다
위우야 네 귀로 들으라는 듯이
“나는 농노의 딸이올시다
지주의 수욕(獸慾)에 짓밟혔습니다
몸둥아리를 팔아서도 가세는 염염 가난해 갔읍니다
실공장에선 즘생처럼 사역되었습니다
약공장에선 손발이 모도 썩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잔인한 착취자에 우리는 반항합니다
반항 속에서만 우리들의 목숨은 빛날 것입니다……”
목석처럼 서 있었다
감전된 사나히
일생을 주고 순간을 얻은 사나히
위우는 사고조차 잊어버렸다
회(會)는 끝났다
복례의 놀라움도 대단하였다
구태여 감출려고도 들지 않는
오랜 상채기에서 흐르는 피……
피여 이젠 민족의 운명을 위하여
이 패리한 사나히를 취도(醉倒)케 하라!
―― 거리거리 삼림같은 혼잡 속에
그들은 말없이 걸어갔다 ――
○
“저는 다- 잊어버렸읍니다
그건 옛날에 끝난 불놀이니까요
오-랜 시간이 첩첩이 산맥처럼 가로막았읍니다
계절풍도 넘나들지 못하는
다른 풍토에서 우리는 살았읍니다
그동안 장가도 드셨다지요
부인도 위해 드리세요
다-잊어버렸고
다-잊어버린 걸로 해야지요
사랑이고 그런 것보단
민주주의만이 내겐 소중합니다
연애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흔히 방해스러우니까요
만용과 이기주의는 애인을 안고
소시민의 주택으로 도망가 버리니까요
사랑 때문에 이웃을 잊어버리고
동무를 팔고 조직을 파괴해 버리니까요
인민의 승리없이 무슨 행복이 있을라구요……
우리들의 길동무가 되려면
다만 한가지 민주노선을 걷는 것뿐일 겜니다
나도 연일 괴로워했읍니다
운명의 해후를 원망했읍니다
그러나 결론은 내렸읍니다
사랑하던 이여 우리들의 청춘을 걸어
연애보다 먼저 혁명을 배웁시다……”
도시의 일모(日暮)는 병수(病獸)같다
건물들이 모조리 현기(眩氣)를 뿜고
천가지 죄악이 다시 깃을 펴는 시각
위우와 복례는 이야기가 길었다
가슴 쓰라린 행복 속에서
「명일」은 더 큰 화제를 주었다
○
돌쇠는 늦게 돌아왔다
격론을 한 흥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일순의 휴식도 없다
눈에는 불이 듣고 머리는 흩뜨려졌다
저녁밥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와 안해를 불렀다
안해 「점이」는 모든 것을 준비해왔다
어둠 속으로 세사람은 나는 듯이 나갔다
어머니는 망을 보고
젊은 부부는 바람처럼 골목길을 휘몰려 다녔다
비통과 갈구와 격정이
압축된 말로 곳곳에 나붙었다
하늘에 별들은 신기한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밤은 빛을 얻어 새벽을 매련하기에 정성스럽다
광산터에서 어촌에서 고역장(苦役場)에서
일월이 솟지않는 칩복(蟄伏)은 길었다
살점 물어뜯는 채찍 아래 역사를 배우고
백사(白蛇)같은 허기를 참으며 인간을 외웠다
한조각 강철이 억천회(憶千回) 절망 속에서 능히 개성을 갖추기엔
겨레의 지방(脂肪)을 태워 불이 일고
뼈를 뽑아 바수는 진통을 참아야했다
해방된 다음날 돌쇠는 고향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죽고 없었다
어머니는 전신을 떨며 손을 놓지 않았고
영등포로 갔다는 복례는 소식도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머-ㄴ 산불보 듯
서울서 새나라를 세워보내기만 기다렸다
소작료와 세금과 빚나락을 물고 나면
올해도 역시 딸을 팔아야하는
이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쟁의를 몰랐다
양처럼 순종하다 죽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돌쇠는 진두에서 기를 흔들며 외쳤다
침식을 잃은 필사의 노력에도
보답은 아펐다. 쫓겨 가는 것뿐
아무래도 떠나야 되기로 결정이 내린 밤
돌쇠는 할머니의 무덤에서 통곡했다
다시 한번 칼을 사러 떠나야 하는
자신의 못난 그림자가 얼마든지 미웠다
어머니가 며느리감으로 골라 둔
부모도 없이 자란 「점이」가 따라나섰다
돌쇠는 앞서고
어머니와 점이가 뒤를 따르고
점이는 평생 처음 새옷을 입고 떠나는 밤길
(점아! 민며느리질을 갔다가 쫓겨온 점아
너만이 소같은 사나히를 독차지하는 기쁨에 떨고 있구나
행복이라곤 성도 모르고 자라온
너만이 새날 새로운 가족이구나!)
서울에선 산떼미같은 할 일이 쌓여 있었다
복례도 불러와야 했다
복례의 동무들도 거들어야 했다
바람과 안개가 마음대로 드나들고
밤하는 별을 가리지 못하는 이 스산한 판장집에서
어름짱같은 긴장과
초침을 다투는 약속과
눈알! 정확하게 쏘아보는 눈알들이
싸움을, 아니 명예스런 주검을 위하야 살고 있다
―― 아아 이 혁명과 함께 커가는 가족이여
위우의 눈에는 태양같이 이글거리는 힘의 상징
낡은 것은 허물어진다
지지하게 천석을 보존한 냄새나는 봉건
정녕 저것은 망하고야 마는 것
보라! 새것이 벌써 성장하지 않었느냐……
위우는 오늘도 태연을 꾸미지 못한다
―― 어느틈에 이처럼 엉킨 나의 쇠사슬이냐
하늘 바라 깃더 오르려는 지향이
아아 이 분명 올바른 새의 천성이
오늘도 왜 깃을 끌고 따우에 기느냐
사상도 감정도 통하지 않은 채
나는 이국인처럼 복례를 사랑할 것이냐
아직도 애정이 연소한 범죄의식 때문에
아직도 대학을 나온 서푼어치 자존심 때문에
나는 의연히 지주의 맏아들로
새것을 바라만 보며 일모(日暮)을 기다리겠느냐
아아 나는 그저 서 있구나
말해라 나라는 나는 누구냐 말해라
아버지의 집이냐? 복례를 따르겠느냐?
허수아비되어 영원히 여게 멈춰 있겠느냐 ――
태풍아
백만사람의 항의를 전하는
물끓듯 이는 민중의 바른 의지야
이 민사(憫死)에도 비길 고통하는 청년의 몸부림을 구하라
시간아 이 무능한 양심을 안고 몸부림치는
한 사람의 이탈을 위하야 어서 농축하라
○
싸움이 벌어졌다
오래 전부터 익어오던 청년단체끼리의 격노
그것은 흡사 벌의 집을 건드리는 배암의 머리같이
시민을 전율과 공포로 이끌었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청년의 명예를 건 싸움은 피투성이다
돌쇠는 야습을 당했다
소신을 홍수처럼 내뿜고
소리소리 지르며 끌려갔다
회오리바람에 몰려간 낙엽같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졌다
모든 보람이요 목숨이요 지열(地熱)인
아들을 위하야 어머니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궐연(蹶然)히 뛰어나갔다
백발 흩날리며 가두에 선
어머나는 아직 노쇠하지 않았다
“내 아들을 내놔라!
오직 정직하고 착하기만 한
내 아들을 너희는 어떻게 할 셈이냐
떼지어 몰리는 이리떼야
너희들의 영맹(獰猛)은 멸하리라……”
어머니의 노호(怒號)는 핏발이 섰다
주름살마다 터럭끝 눈시울마다
억울함과 분함이 갈갈이 치밀려서
사시나무 떨 듯 수족을 떨며
밤이 깊도록 노두(路頭)에서 외쳤다
어머니는 미치는 듯하다
어머니는 최대 반발을 감행할 모양이다
아들이 쓰다 둔 글빨을 날렸다
아들이 하구 싶던 말을 외쳤다
어머니는 아들의 목소리다
어머니는 아들의 의지의 새로운 표현이다
모든 것이 합류하였다
이 위대한 힘과
이 위대한 사랑이
합류하여 아우성이 일었다
화살을 번번히 과녁을 맞췄다
사람들은 올빼미처럼 놀라운 눈을 떴다
너무도 정직한 광염이
뼛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어머니의 가슴에도
돌팔매가 날러왔다
피가 흐른다 붉고 검은 피!
어머니는 쓰러졌다
살이 찢기우면서도 부르짖고
부르짖으면서 숨이 졌다
“정의는 반드시 이기리라
너희들의 야수같은 잔학으로 하여서도
사랑의 피는 헛되이 흐르지 않으리라”
아아 세계야
한 여인의 낙일(落日)같이 비장한 최후를 위하야
모조리 머리를 숙이라
백만의 병사로도 어찌할 수 없는
위대한 모성애의 찬란한 개화를 위하야
모두 손을 잡으라!
든든히 손을 잡고 서라!
○
한강 굽이쳐 흐르고
산맥들 난마(亂馬)처럼 휘몰려 다니는
여기 망우리고개
나무들 까마득히 하늘을 떠받고
바람도 지표(地表)에 뺨을 스치는데
가을 햇살이 따근히 퍼붓고
즘생들의 울음은 고요하다
무덤이 이루어졌다
어머니의 무덤이다
잔디풀 아직 뿌리를 못가리고
황토냄새 훈훈히 풍기는
대지의 가슴에 어머니는 묻혀 있다
돌쇠가 파고
위우가 거들고
점이와 복례가 관을 안아
어머니는 아무말 없이
자손들 앞에 세우고 묵점(黙點)히
집에 돌아가듯 지심(地心)에 안겼다
애절한 곡성도 없다
모도 무거이 고개를 드리우고
제각각 복잡한 생각에 잠긴다
노을에 젖은 사막길처럼
길고 답답한 어머니의 생애가
구비구비 그림폭으로 펼쳐서 나온다
지리(支離)한 인종 속에서도
오직 심장처럼 가슴에 품어온
뜨거운 사랑이 마지막 발화(發火)한
거룩한 절명이 눈 앞에 보였다
어머니는 여기 살아 있다!
젊은이의 가슴 가슴 속
영원히 잊지못하는 생각
민중의 소리, 가난뱅이의 몸짓
홍수처럼 내닿는 대오 앞장에
어머니는 죽지 않었다
주름많은 얼골 찢어진 치마
반나마 떨어진 짚신을 신고
어머니는 나를 보라는 듯이
어머니는 길이 살아 잇다
“모도 절을 합시다”
네사람은 절을 했다
“모도 손을 잡읍시다
어머니의 승리를 위하야
손에 손을 잡읍시다”
손들은 용접되어 버릴 듯이
격동하며 마조 잡혀졌다
“우리들의 손은
일생 잡혀져 있는 것입니다!”
돌쇠는 맹서하는 장군처럼
미동도 없이 굳게 서 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슬픈 이야기가 끝난 다음부터
살려는 노력은 개시되는 것이다
찬란한 명일을 기다리는 마음만이
뼈아픈 진통의 의의를 안다
쓰러지는 자를 위하야
엄숙히 열루(熱漏)를 걷우라
영원히 새것으로 밀려오는
우리들의 명일때문에 우리는 살아야 한다”
위우는 복례의 눈앞에서
처음으로 웃음을 배운 사람처럼 웃어보였다
“당신이 말한대로 길동무가 되리다”
복례의 우슴도 화심(花心)같이 붉었다
(『가족』백우사. 1948)
춘수(春愁)
상민
왼 하루
밭을 갈다
그만 지쳤다
일하는게
싫어서가 아니다
배는 고프고
풍년이 온다기서니
육활 도지 바칠 일이
미리 억울타
빚에 졸리고
올해 또
이렇게 살아야 하노?
꽃 핀 봄철이라서
문앞 개울에
낚시질 나온
마름집 자식
나물 씻는
어린 딸년 보고
희롱 붙이는
능글스런 수작을
보다 보다
배알에서 그냥
주먹같은 게 치밀린다
(『옥문이 열리던 날』신학사, 1948)
*육활 : 육 할
무궁화 필 때
유 종 대
짐승이랑 잎새랑 태울 듯이 햇살은
기울어진 하늘에 불을 지르고
산마루턱 한그루 초라한 무궁화 나무엔
시들을 듯 핀 꽃들이 애련히 웃음지우는데
주림과 피로에
지쳐 쓰러질 듯한 다리를 이끌며
머리 떨어뜨리고 고개를 넘는다
고향은 외어도 향수조차 없는 방안엔
허물어진 벽대신 검은 포대기가
깃발처럼 퍼덕거리고
감자 나부랭이로 아침을 이운 안해는
부른 배를 간직하며
조르는 아이를 달래고 있으려니
상 찡기고 문안에 들어서면
밥상 위엔 낡은 먼지와 함께
집비우라 재촉하는 주인의
빈정거리는 성화가 이글거릴게다
고개를 넘은 한점 흘러가는 바람결에
모진 꿈에서 깬 듯 고개를 드니
눈 앞엔 빛을 막는 고루한 이리 이리들
와락 고함치며 서슬처럼 푸른 칼날을 뽑아
에잇 원수가 원수가……
피묻지 않은 칼날을 들고 눈 부릅뜨니
쏠듯이 번쩍이는 서슬이 향하는
머-ㄴ 곳에 찬연히 빛나는 조국이 있어
진정 아름다운 무궁화 찬란히 필 때까지
나는 원수처럼 원수처럼 살아야 한다
(『신천지』1권 9호, 1946. 10)
유종대 : 혜화전문 졸업. 1950년 서울 철수 때 월북
산제비
김 용 호
시름 없어라 산제비 산제비 다시 어디로 찾아온 마을 조국의 산과 들을 뒤로 하고 또 호올로 날아 떠나야 하는냐 구월 산성 저무는 노을 아래 시름 없어라 산제비 산제비
내어다 보면 아득한 산맥이라 꿈은 아는데 아아(峨峨)한 봉우리마다 꿈은 일어 흐르는데 고향이야 서러웁구나 날리는 구름 날리는 노래 서러웁구나 날리는 넋이야
어떤 옷자락에 발자취도 없이 소리도 없이 스미어 오는 가을이라서 이제 메마른 마을 조국의 산천에 내 헌 손수건 흔들어 다시 어디로 가랴 산제비 산제비
나는 모르노라 대통령도 제왕도 군사령장관도 모르노라 당고초 조롱조롱 자꾸들 저대로 이어만 가는 언덕 무너진 산성 돌담 위에 앉아 그리노라 고향 따사한 고향의 새아침이야
제발 내 가슴에 총을 겨누지 말러마
내 머리 위에 푸른 칼날을 올리지 말러마 내 전생 무슨 죄가 있어서 쫓기어 달아나라는 말이니 나는 산제비
내사 죄없는 무리 하이얀 양의 무리 서로 흔들고 부비고 초목을 먹고 사는 인민의 조그만 동무 죄없는 동무 아아 양과 나와 끄나풀 목에 매어 늘게나 하러마
내사 자꾸만 이때 조국의 산천에 오는 봄이 그리워 구월 산성 저무는 노을 아래 꿈이요 노래요 자꾸만 그리워 아마 자꾸만 그리워 떨리는 가슴이라 나는 산제비 산제비
(『신천지』1권 9호, 1946. 10)
김용호 金容浩 : 1912.5.26∼1973.5.14
시인. 호 학산(鶴山)ㆍ야돈(耶豚)ㆍ추강(秋江). 경남 마산 생.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과 졸업. 1935년 [신인문학]에 시 <내 사랑하는 여인아> <첫 여름밤 귀 기울이다>를 발표 하면서 등단. 1938년 [맥(貘)] 동인이 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詩作活動)을 했다. 학생 시절에 시집 <향연>을 냈고, 이후 여러 시집을 내는 한편, 1946년부터 1950년까지 [예 술신문] 주간, 출판사 [남광문화사(南光文化社)] 주간, 문예지 [자유문학] 주간으로 활동 했다. 광복 후 한때 조선문학가동맹에 관여한 적이 있으나, 전향하여 한국자유문학가협 회에 가담하였고, 1962년 한국펜클럽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6ㆍ25 때 부산서 대학 강사, 1958년 단국대 교수, 동 대학 문리대학장 역임(1966∼ 1973 사망시까지). 4ㆍ19 기념시집 <항쟁의 광장> 편찬 등 문단에 공로가 많다. 심장병 으로 사망. 아시아자유문학상 수상(1956년)
그리운 거리에서
조 영 출
그날의 무수한 부랑카-드며 깃발이며 꽃들은 지금 어느 창고에서 해를 못보고 있는가
불길이다 참으로 치미는 불길이 동학 때부터 치미는 불길이 있어
세월없이 없어질 부랑카-드도 아닐께고
임자없이 없어질 깃발도 아닐께다
눈발이 퍼 나릴 듯한 거리에 서서
본부로 쓰던 삘딩을 보는 눈이 왜 이리 뜨거울까
친구랑 헤어진 때처럼
쓸쓸하고 또 든든하기란……
그날에 그 행렬 앞에서 기를 날리던 친구란
참으로 그리운 친구다
산을 넘어간 친구들
물을 건너간 친구들
이렇게 정다운 그날의 거리도 없으려니 왜 이리 눈발은 올려구만 하는가
꽃이다 꽃 친구랑 다시 만날 이 거리에서 꽃은 꼭 피리라
(『신천지』1947. 2)
조영출 : 일명 조명암(趙鳴岩)·이가실. 1913년 충남 아산(강원도 철원 태생이라는 설도 있 음)에서 출생하여 1916년 서울로 이주, 1932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41년 와세다 대학 불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5월 평양에서 사망.
그는 가요 작곡가로 조명암으로 불렸다. 1930년대초부터 대중가요의 작사가로 활동하며 〈목포는 항구다〉·〈선창〉·〈고향초〉·〈알뜰한 당신〉·〈꿈꾸는 백마강〉 등 인기가요 외에도 〈인도의 달밤〉(〈신라의달밤〉의 모체)·〈울어라 문풍지〉·〈울며 헤어진 부산항〉·〈낙화유수〉·〈시를 쓰고 싶었노라〉 등의 노래말을 썼다.
1942년 한국 출신 지원병이 전쟁터에 나가서 천황의 적자(赤子)로 목숨을 바친다는 노 래인 「아들의 혈서(血書)」(박시춘 작곡, 백년설 노래)는 OKEH 레코드사에서 출반되었 다.
중국 오지의 전쟁터에서 적의 철조망을 뚫고 돌격하는 결사대에 참가한 용사의 아내가 후방에서 나라님께 바친 참사랑을 거울 삼아 살아가겠다는 노래인 「결사대의 아내」, 한 국 젊은이들이 솔선해서 군대에 입대하는 「혈서지현(血書志顯)」과 「2500만의 감격」 등을 작사하여 남인수· 이난영 등이 음반취입하였다.
또한 1945년 2월 총독부가 주관하고 조선연극문화협회가 주최하는 소위 국민연극 제3 회 경연대회에 참가 작품으로 조명암은 「현해탄(泫海灘)」이라는 희곡을 썼고, 극단 신 생극단(新生劇團)이 동양극장(東洋劇場)에서 공연하였다.
해방 후인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산하의 연극동맹 부위원장으로 있을 때 항일 빨치산의 활동을 주제로 한 희곡 〈독립군〉을 썼으며, 이것은 1946년 동양극장에서 상연되었다.
1948년 8월경 월북한 뒤 6·25전쟁 때 종군작가로 참여했으며, 1954년 동독에서 열린 문학기념행사에 북한 대표로 참석했다. 1956년 10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57년 영화문학(시나리오)창작사의 초대 주필, 민족예술극장 총장, 1960년 10월 교육문 화성 부상, 1962년 12월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1966년 평양가무단 단장, 1977년 평양학생소년예술단 단장, 1982년 8월 조선중국친선협회 중앙위원회 부위 원장 등 북한 문예계 고위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 공로로 1982년 4월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와 국기훈장 1급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작품집으로 〈조영출 시선집〉(1957),〈조영출 희곡집〉(1961)·,〈온달전〉(1984) 등이 있다.
순이(順伊)
김 상 훈
순이는 아비 없이 자란 딸
가야산 솔바람만이 자장가였더란다
홍수에 단칸집을 잃던 해
어머니는 단보짐에 타향살이를 떠나고
월사금 때면 번번이 게시판에 이름이 올라
단돈 오십 전에 몇 번이나 울며 돌아왔던고
양반은 종이 되라고 했고
부자들 흔히 노리개감으로 사가려 들었다
가난과 설움이 번갈아 침노하는 써늘한 방
그래도 그리워하는 사람 하나쯤은 가졌어도
밤이면 고이 써서 가슴에 품어 보는 편지
받아 읽어야 할 사람은 철창에서 떨어 지내고
마음이야 장미처럼 붉게 탔어도
정성껏 심어 둘 한 줌 흙이 없어
가난도 뼈저리게 슬픈데
여자란 왜 그리 천(賤)하던고
끝없이 오지 않던 것을 기다려
이젠 지쳐 시들어 가는 순이
언제나 닥쳐올 새로운 해방이
눈물 섞이지 않은 밥을 주려나
(『대열』청구사, 1947. 봄)
호롱불
김 상 훈
석유를 그득히 부은 등잔은
밤이 깊도록 홰가 났다
끄으름을 까-맣게 들어마시며
노인들의 이야기는 죽구 싶다는 말뿐이다
쓸만한 젊은 것은 잡혀 가고
기운 센 아이들 노름판으로 가고
애당초 누구를 위한 농사냐고
이박사(李博士)의 이름을 잊으려 애섰다
곳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흉한 소문이 대소롭지 않다
이백 석이 넘어 쌓여 있는 곡식이
그들의 아들이 굶어 죽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까닭이다.
암탉이 알을 낳지 않고
술집이 또 하나 늘었고
손주 며느리 낙태를 했다고
등잔에 하소해보는 집집마다의 늙은이
잠들면 악한 꿈을 꾸겠기에
짚신을 삼아 팔아서라도
부지런히 석유만을 사왔다.
(『대열』청구사, 1947)
언제나 오느냐
임 학 수
언제나 살기좋은 날은 오느냐?
모든 기관을 우리 손으로
삼홉의 쌀은 배급되고
겨레의 좀들 말끔히 쓸어내
오리(汚吏)와 모리(謀利)라 하는 단어는 없어지고
전차는 타기 쉬웁고
기차 여행은 즐거웁고
들에는 풍년가 들리고
공장은 연기 뿜고
언론과 집회는 자유
아해들 다 학교에 가고
들에는 장미 피고
여인들 쾌할해
일하기 즐거웁고 살기 즐거운
언제나 보람있는 날은 오느냐?
(『필부의 노래』고려문화사, 1948)
임학수 : 1911년 전남 順天 출생. 1936년 경성제대 영문과 졸업. 해방 후 고려문화사 주간 을 거쳐 고려대 교수 역임. 조선문학가동맹에 간여하다가 월북.
<시> 朝鮮을 그르친 者 (조선주보4. 45.11), 獅子(중앙신문 45.11), 盟誓(개벽73. 46.1), 解放(동아일보 47.1.21), 기다림(민주조선3. 48.1), 가고파라(호남문화1. 48.5), 生命 이 있는 것9신세대30. 49.1), 눈(백민21. 50.3), 일어서라 외 2편(조선문학 58.4), 승 리자의 야회(청년문학 60.8)
<시집> 石榴(자상본 37.8), 八道風物詩集(인문사 38.9), 候鳥(한성도서 39.1), 戰線詩集 (인문사 38.9), 匹夫의 노래(고려문화사 48.7)
<평론> 文化의 民主的 性格(경향신문 47.10.5), 새 출발의 정리기(서울신문 48.12.22)
북으로 가는 동지에게
김 상 민
동지여
북으로 가는가
봄 돌아
꽃 피고
동면했던 싹
철철이 자라나는
동산
너의 고향
북으로 가는가
섭섭지 않은가
동지!
동치미 김치에
두부장 보글거려 놓고
이밤 새도록
마셔 보세나
남쪽 인민의
정성이라네
사양할 게 있니
멋처럼 주는 잔
먼저 들게 그려
수수막걸리
김이 서리어
우리보다 먼저
기억에 잠긴다
계급이라든가
세상이라든가
그런 것이야
아무 것두 아니던
어린 시절
회령서 온 소년과
강원도 놈이랑
만나면 서로
공연히 좋아하던
그 시절
가을날
고성(古城)기슭을
앞서고 따르며
낙엽과 다람쥐에
시를 느끼고
교정에 핀 산당화(山棠花)
연지빛 정열에
우정 감동하던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이네
시대의 흑조(黑潮)에서
몸부림도 많았네
깊은 괴로움 끝에
등불을 얻은 날
이제
모닝 코트에서
비린내를 맡고
기름과 땀에 절은
노동복에서
시를 배울 수 있는
우리는
변하기도 했네
이 순간도
낡은 시대와의
투쟁에서 살고
이래서 한 걸음씩
완성으로 향하는
우리 젊음이
자랑스럽구나
일터야 달랐거니와
밤에 돌아오면
너는 내 무릎 위에
곤한 머리를 눕히고
나는 너의 이마의
여드름을 짜며
혁명을 이야기하다가
코를 골고는 하더니
밝은 아침 너는
너의 고향
북으로 가는가
삼팔선은
길이 험하다
동지여!
부디 잘 가게
다시 한번 권한다
동지여!
이것은 이곳
인민이 주는 것이어니
아예 일과 투쟁 속에서
구더기 스멀거리고
북쪽 바라
목젖 내려 앉는
남쪽 형제를
잊지 말게나
(『옥문이 열리던 날』신학사, 1948)
별
박 찬 일(朴贊日)
머리를 짓누르는 어둠 속에
어디서 오는
이다지 가뿐 숨결들이냐
몸부림 치며 가슴 죄이는
억센 두팔을 드리운
노동자는
일터 잃고 돌아오고
외국상품을 팔러 거리에 나선
아낙의 등뒤를
쓰러져가는 널판지 울타리에
바람은 휘불어치는데
그리웠던 조국의 처마 밑에서
젖먹이 손끝에 가슴 헤치우며
뚫어진 교복 입은 열두살먹이
딸년의 손목을 잡고 또 쫓겨나
굶주리고 갈 곳 없어 두 볼이 검푸른
전재민(戰災民) 어머니는 떨고만 섰다
다시금 뒤쫓아오는
놈들의 발자욱 소리 들으며
적의 흉계를 알리는
새소식과
전투신호와
굳은 약속을 안고
뜨거운 혈맥이 흐르는
문틈마다 별을 뿌리고 간다
바라다 뵈는 하늘에 새날을 부르며
어느 날쌘 사내의 자취인가
골목 골목 바람벽은
벌써 웅얼거린다
그러면 드높은 곳에
수많은 내 사랑아
살 길을 가르키는 신호등이다
모두 눈짓을 하여라
이 컴컴한 골목마다 걸음 바쁜
우리 굳센 동지에게
이제 이 밤도 새면
툭 터져 내닫는 물결
가슴 가슴에 햇살을 받아
다같이 자유와 해방의 노래 속에
피 묻은 깃발
높이 퍼득이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자
1946. 12
(『조선시집』아문각, 1947)
박찬일 :
옛정
박 승 극
몇 해만이던가
다시 들어오는
나의 감방이로다
코에 익숙한 구린 냄새
무럭 옛정이 그리워.
우릿간 문을 들어서서
잠깐 두리번 두리번
벽에는 빈대피가
드럽게 한을 쳤고
똥통 뚜껑은
차마 손을 댈 수 없도록
지저분하다.
온종일 참았던 오줌
마음 탁 놓고
쏴 쏟아놓자.
「자유해방」의 첫선물이
또 다시 철창이던가
아무려나 며칠동안
고요히 쉬는
혁명적인 수도장(修道場)이 되렴
시련이다!
결의는 또 한번 굳어져.
이 마음!
동무들의 마음과 통하렸다.
(『인민』2권2호, 1946.3)
박승극 : 1909년 12월 경기도 수원군 양감면 중소지주 집안 출생. 대표적 사회주의 청년운 동가, 소설가, 일본대학. 1928 년 카프 가맹. 조선일보 수원지국, 신간회 수원지회, 수원청년동맹, 카프 수원지부, 수진농민조합 등 가입, 조직, 활동. 25차례 구금 및 석방. 해방 이후,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참여, 남조선문학가동맹 중앙상무위원. 19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 참여. 1948년 8월 월북, 대의원, 국립출판사 사장.
마지막의 밤
임 선 장
비가 퍼부어서
갈길을 못감이 아니오
이 밤은 아버지 모시고
껴안아 드리고자
껴안아 잠들고자
찾아왔소이다 아버지시여
한사코 아래목에서 자라고
권하시던 아버지는
괴로운 탈과 같이 잠드시었고
어이한 나는 뒤척거리기만 하고
수염은 이불깃에 버석거리고
버석거릴 때마다 밤은 자꾸만 깊어가고
아 오늘밤엔 한 이불 속에서
옛날 어머니 파묻던 날 그밤에 하듯
아버지는 어째서 나를 껴안지 않나
잿빛 수염 속에 흐지부지 사라지는
늙어버린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
벽에 축 처졌던 비젖은 옷도 거의 다 마르고
오래간만에 지극한 효성이 복받치는 이 밤중
사과에 떨며 나의 손은 당신을 끼어안으려
겁스럽게도 더듬적거렸소이다
몇 번이던가 몸은 닳고
기어이 당신을 끼어안지 못한
내 손은 끝까지 흉측스러울 뿐
오직 눈물을 씻는 수 밖에
아버지시여!
제 몸에 일은 불이 귀까지 태우므로
언제나 아버지의 부르심을 못들은 것이외다
이 밤이 새어
이 마지막의 밤이 새어
설혹 비가 억수라 할지라도
당신이 그렇게 꾸짖으며 몸서리치던
저 무덤으로 가고 말겠소이다
(「신천지」1권6호, 1946. 7)
임선장 :
8월 데모행렬에 부치는 노래
김 기 림
바람에 떨리는 수천 깃발은
창공에 쓰는 인민의 가지가지 호소다
소리 소리 외치는 노래와 환호는
구름에 사무치는 백성들의 횃불
타다 타다 빛도 없는 8월의 횃불
아스팔트로 뒤흔들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발자국의 조수는
이둔 별 설레는 파도소리냐
다가오는 새날의 발울림이냐
(「현대일보」1946. 8. 9)
어머니
김 상 훈
포근히 등에 숨어서
찬바람을 피하던 제가
수염이 나고 이렇게 커진 것을
당신은 놀랍게 보십니까
위원회 패라고
싸움통에 잘뛰어 든다고
두려운 눈초리로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얼굴에
불시에 주름살이 늘어갑니다
천사람이 무어라고 해도
제가 걷는 길은 바릅니다
과일밭에 돌팔매를 던지던 저일망정
젖가슴에서 받은 봄볕같이 따스한 사랑을
인민의 가슴 속에 골고루 전해주는
그런 동무들의 뒤를 따라갑니다
어머니들이 흙 속에 들어가시고
입솔과 부드러운 손이 모두 없어지면 흙을 움켜쥐고 어머니를 부르지 않겠습니까
이 나라의 흙을 사랑하는 것이
어머니를 위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신천지」1권 11호, 1946. 12)
거리에서
이 용 악
아무렇게 겪어온 세월일지라도 혹은 무방하여라, 숨막혀라, 잔바람 불어 오거나 구름 한 포기 흘러 가는게 아니라 어디서 누가 우느냐.
누가 목메어 우느냐, 너도 너도 너도 피터진 발꿈치, 피터진 발꿈치로 다시 한번 힘 모두어 땅을 차자. 그러나 서울이여, 거리마다 골목마다 이마에 팔을 얹는 어진 사람들.
눈보라여, 비바람이여, 성낸 물결이여, 이제 휩쓸어 오는가, 불이여 물결이여, 노한 청춘과 함께 이제 어깨를 일으키는가.
우리 죄그마한 고향 하나와, 우리 죄그마한 인민의 나라와, 오래인 세월 너무나 서러웁던 동무들 차마 그리워, 우리 다만 앞을 향하여 뉘우침 아예 없어라.
(「신천지」1권 11호, 1946. 12)
이용악 : 1914 함북 鏡城 출생. 일본 上智대학 신문학과 졸업. 귀국하여 토착적 정서를 바 탕으로 서민의 애환을 치밀하게 표현.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 가담. 6 ․ 25 당시 월 북. 1971년 사망
<시> 시골사람의 노래(신문예1. 45.12), 항구에서(민심2. 46.2), 나라에 슬픔 있을 때(신 문학1. 46.4), 하나씩의 별(민주주의4. 46.8), 흙(경향신문 46.12), 기관구에서(문학 임 시호. 47.2), 하눌만 고옵구나(개벽76. 48.1), 비빨 속에서(신세전21. 48.1), 이선 민청 호(조선문학 55.7), 평남 관개시초(조선문학 56.8), 영예군인 공장촌에서(조선문학 59.12), 빛나는 한나절(조선문학 60.1), 열 살도 채 되기 전에 외 1편(조선문학 60.4), 어느 한 농가에서(조선문학 68.4)
<시집> 分水嶺(동경삼문사 37.5), 낡은 집(동경삼문사 38.11), 오랑캐꽃(아문각 47.4), 李 庸岳(현대시인전집 1) (동지사 49.1), 『리용악시선집』(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63)
<평론> 李庸岳現代敍情詩抄(조선주보12. 46.6), 全國文學者大會印象記(大潮2. 46.7)
연가
김 상 훈
혁명 속에서만 타는 것이다
가슴 맞부비며 맹서하는 말이
함께 나가 싸우리라
어둠 속 쏘아보는 네 눈알 속에
입술 깨무는 내 얼굴이 삭여져
함께 싸우리라
깃발 드높이 세우고
전우로 너를 얻어 오리라
아버지와 오빠가 한사코 말리는 길을
깍지를 끼고 함께 가자는 길
매서워지거라 희(姬)야
아주 당돌한 맵시로 손을 쥐여 봐라
아양이고 꽃봉투는 찢어버린 것
거칠어지는 모양에 서로 홀려서
혁명 곳에서만 타는 것이다
(『대열』청구사, 1947)
나의 길
김 상 훈
나는 이제 두살박이다
지주의 맏아들에서 가난뱅이의 편으로 태생(胎生)하였다
살부치기를 모조리 작별하고
앵무새처럼 노래 부르던 버릇을 버렸다
나는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모른다
다만 조국을 사랑하는 한 가지 길밖에
인민을 위한 인민의 나라를 세우는 것밖에
나는 이래서 시를 쓴다 그리고 가장 자랑스럽다
지하에서 지열(地熱)을 안고 솟아나온
위대한 혁명가가 노선을 지시하는 단(壇)아래
내 눈물 고인 가슴이 감격을 참지 못하고 섰으면
만세소리 조수처럼 낡은 성채에 부딪히고
아아 나의 미칠 듯한 기쁨이 거기에 있다
우리 공화국을 방해할
간악한 부르조아야 거기 있거라
왜적의 개 이제 또 누구에게 충성을 맹서하고
동족을 쏘는 피묻은 총알을 얻느냐
죄 지은 놈이 삭은 동아줄에 매달려
묘혈(墓穴)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 한량없이 기쁘다
시위를 하자! 행렬에 기를 세워라
인쇄공 선반공 실 공장의 소녀들
붉은 기폭에 싸여 동무들 죽어가도
목이 찢어져라 해방을 외치면
나의 목숨이 횃불처럼 타서 빛난다
착취와 탄압과 기만과 군림
자라온 집에 불끄럼이를 던지는
내 용감한 방화범인이 되리라
방화범인(放火犯人)이 되리라!
(『대열』청구사, 1947)
* 불꾸러미 : 불씨를 옮기려고 잎나무나 짚뭉치 따위에 싼 불
만가(輓歌)
유 진 오
―― 꼭 또 오세요 하는 말에
저도 모르게 끌려가곤 하던
그 길과 밤과 계집일랑 탓하지 말자
잔을 기울여 눈알을 흘리던
파리한 인텔리
감상에 젖던 그날이야
거기 증오와 함께 묻어두라
허덕이며 매질하던
언제나 역시 회오(悔悟)로만 그치던
값없는 자책만으로
이 문턱을 ○럽혀서는 못쓴다
아아 까마득히 물러나는구나
어두운 침상 위에 괴로운 꿈아
불논 잔디 위에 새싹이 돋아나듯이
가슴 풀어헤쳐 태양을 안고서
역사의 부름 앞에 나는야 일어섰다
숨가쁜 가슴아!
오월의 제비처럼 날고 싶어도
매서운 표범처럼 울고 싶어도
너는 먼저 노○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왼갖 연상(連想)이 너를 꼬여도
환한 미소로서 물리쳐 버리고
길들인 소시민이 파묻힌 터에
진실로 무장한 투사가 서야 한다
(『창』정음사, 1948)
* ○럽혀서는 : 더럽혀서는, 어지렵혀서는
노○의 지혜를 : 노동의 지혜를
이대로 가자
유 진 오
죽음인들 대수로우냐
이대로 가자
괴로움이면 차라리
뼈를 앗아라
사나운 바람 속에
눈물 어려 살아왔다
가야만 할 길이다
꽃잎처럼 떨어지자
하나 둘
헤일 수 없이
짓밟혀 간다
아까운 목숨들이
악착스리 짓밟힌다
사나운 발굽 밑에
꽃잎이 있다
번쩍이는 총칼 밑에
목숨이 잇다
꽃같은 목숨이
땅 위에 떨어졌다
떨어진다
허수이 죽는 게 아니다
그냥 스러지는
꽃같은 목숨이 아니다
땅 속에 흙 속에
다시 피리라
죽어도 떨어져도
꽃은 피고
꽃은 남는다
죽음인들 대수로우냐
이대로 가자
괴로움이면 차라리
뼈를 앗아라
(『창』정음사, 1984)
거리에서
이 병 철
웃을 때마다 보조개 우물지는 아내를 콧구멍이 빠꼼빠꼼한 어린 것들을
낙동강 건너마을에 버리고 쫓겨왔다.
하두 바람부는 날이기에 자락을 거슬러 젊음을 버티면서
몇몇 동무들은 시장한 회관에서 나를 기다릴텐데.
아 이 어인 바람이 멎지 않아
휘몰리는 발걸음을 바로 고누우려는 발걸음을 비틀거리면서,
바람벽마다 전봇대에 누더기진 삐라를 읽는다.
흰 손이 좀 부끄러웠음인가 내가 내 등뒤에 숨으려는 나를 헐벗은 틈에서 새삼 보았니라, 어서 굵다란 첫획을 그을 붓과 잉크를 사가지고 건너가자.
1946. 9, 다시 서울에서
(『전위시인집』노농사, 1946)
* 낙동강 건너마을에 : 1946년 9월에 안동농림학교 교사이던 이병철이 우익에게 쫓겨
上京하고 쓴 시. 안동교 건너 수하동일 거다.
뒷골목이 트일 때까지
이 병 철(李秉哲)
또 다시 뒷골목으로 숨어다녀야 하는
우리 서로 조심스런 길머리에서
가끔 손에서 퇴비냄새가나는 시골친구들을 만난다.
나의 아누와 아우의 어진 동무들과 그리고
끼니때마다 아비를 찾는다는 어린 것의 엄마까지를
삼팔식 보병총으로 앗아갔다는데
아 ― 나는 불기둥처럼 서서 엉엉 울어야만 하는 것일까
참나무 빗장을 여닫을 때마다 강아지만한 무쇠 자물쇠 여닫는 소리마다
하나씩 이슬처럼 사라지는 사람들 눈망울마다
눈망울마다 감고 간 원수의 모습을 나는 잊지 않으리.
너희들 매운 채찍에 멍들어 절름거리는
젊음을 오히려 시퍼러니 앞세우고
나는 간다 뒷골목이 트일 때까지 나는 간다
1946. 10
- 옥에 있는 병권(柄權)에게 -
(『조선시집』아문각, 1947)
산
유 진 오(愈鎭五)
아무데서나 산이 보이는
티끌 날리는 서울
검푸른 산마루에
그림같은 붉은 구름이 걸리면
어수선한 발자욱들이
바삐 움직여가는 거리
속삭임을 주고 받을
동무를 기다려
누렇게 물드는 가로수에
등을 기대면
갑자기 시장끼가
벌레처럼 기어내린다
밀려가는 사람들 사이
이따금 얼굴익은 동무들이
악수도 없이
눈만을 끔벅이고 지나치는
쌍, 가슴 아픈 오늘날이다
지난 해 가을 이맘 때
모퉁이 모퉁이 산마다에
횃불이 있었드라만
시방 이 가을엔
그때를 그리우는 마음이
머얼리 어두워가는
산을 노린다
전차, 자동차, 마차, 트럭,
찦, 찦, 또 찦……
목마른 서울거리엔
먼지만 휘날리느냐
정각이다
동무는 헐떡이며
손을 쥐었다
집 없는 우리들이다
어깨를 부닥드리며
네거리까지 걸어가자
재빠른 속삭임이 끝났다
약속한 날까지
우리는 헤어지자
어지러운 거리
숱한 사람들 속에 끼어
동무는 보이지 않는다
아아 부푸는 숨결로
네거리에 서면
더한층 검푸러
자주빛 구름 휘감아 도는
산은 나의 가슴 속 깊이
영웅들의 모습을 그려주는구나
아무데서나 산이 보이는
티끌 날리는 서울
거리 거리에
산은 가슴마다에 있고
밤이면 머얼리 아득한
별빛 그리워
마지막 가는 날에도
부를 노래
가만 가만 불러보며
어수선히 디디고 간 발자욱
먼지 속에 쌓인 어두운 길 위
타박거리던 발길이 가벼워
간다
1946.10
(「문학」7호, 1948.4)
손
최 석 두
안개 자욱한 이른 새벽
채 눈이 뜨이기도 전에 손이 왔다
손은 수염 검숭검숭
눈만 날카롭게 살아 있어
아 쫓기어 다니는
민주주의 애국자
우리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
주섬주섬 옷고름을 여미고
부엌으로 나갔다
초라한 끼니를 끓여보자
석화사란 소리를 살며시 불렀다
―― 한그릇 사십 오원
알주먹 십원어치 흥정은
생각조차 말아야 할 것을 ――
소금물같은 간장과
시늉만 한 깍두기가
왼통 차지해버리는 상을 바쳐
뜨거운 밥만 내보았다
손은 유독이 달게 먹었다
손은 무슨 일에 삐쳤음인지
그만 취한 듯 곤히 잠들어버린다
검숭검숭한 수염
무거웁게 울려나오는 숨소리
그러나 참히 맑은 얼굴
누구네가 잘살게 되기에
저렇게도 고생을 하는 건가
한 시도 잊을 수 없는
근로인민이란 네글자가
눈 앞에 커다란 나래를 편다
1946. 11. 4
(「문학」7호, 1948. 4)
* 석화사 : 石花 굴을 넣은 고급 음식. 알주먹 : 깐 굴 한 주먹
[崔石斗]
1917년 9월 19일 전남 함평군 함평면 기각리에서 출생하여 1924년 함평 공립보통학교 입학. 1931년 4월 광주 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여 광주로 생활의 근거지를 옮김. 1936년 광주 농업학교를 졸업, 그해 4월 경성사범 단기 강습과에 입학, 특히 이 짧은 시기에 그의 거의 유일한 친구인 작곡가 김순남을 만나서, 음악과 문학 그리고 혁명적 삶의 동반자가 됨. 이후 최석두는 경기도 여주군 점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김순남의 새벽길 발문에 의하면 이즈음 건강이 몹시 안 좋아 고생이 심했다고 함. 1939년 독서회 사건에 연루되어 잠시 형무소 생활. 둘째 동생 연봉의 친구인 최판례와 결혼하여 이후 2남 1녀를 낳음.
해방을 맞아 광주에 거주하면서 지하 운동을 활발히 전개. 광주에서 <조선문학가동맹>의 전남 지부의 책임자로 있었으며, 이후 광주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서울에 올라가 지하 활동을 계속. 이런 와중에 조벽암 등의 도움으로 1948년 8월 그의 시 일부를 모아 시집 '새벽길'을 조선사에서 간행. 그러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구금.
1950년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이용악 등과 6월 28일 풀려나 북행을 하다가 기총 소사에 맞아 부상을 당함. 그 후 그는 압록강변의 통군정에 있는 구호 병원에서 치료를 하면서, 열정적으로 시를 창작하다가 회복되어 평양으로 나옴. 1951년 10월 22일 폭격을 맞아 사망. 그후 1958년 그의 유고들을 모아 북한에서 다시 '새벽길'을 간행.
빗발 속에서
이 용 악
대회는 끝났다 줄기찬 빗발이여 빗발치는 생명이라
문화공작대로 갔다가 춘천에서 강릉서 돌팔매를 맞고 돌아온 젊은 시인 상훈도 진식이도 기운 좋구나 우리 모다 깍지 끼고 산마루를 차고 돌며 목놓아 부르는 것 싸움의 노래
흩어지는 게 아니라 어둠 속 일어서는 조국이 있어 어둠을 밀고 일어선 어깨들은 미움을 물리치기에 천 만 채찍을 참아 왔거니
모다 억울한 사람 속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고함소리와 한결같이 일어나는 박수 속에서 몇 번이고 그저 눈시울이 뜨거웠을 아내는 젖먹이를 업고 지금쯤 어디로 해서 산길을 내려가는 것일까
대회는 끝났다 줄기찬 빗발이여 승리가 약속된 제마다의 가슴엔 언제까지나 싸움의 노래를 남기고
1947. 7. 27
(『현대시인전집』1권, 동지사, 1948.12)
유정에게
이 용 악
요전 추위에 얼었나보다 손등이 유달리 부은 선혜란 년도 입은 채로 소원이 발가락 안나가는 신발이요 소원이 털모자인 창이란 놈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겨울에는 역시 엉덩이가 뜨뜻해야 제일이니 뭐니 하다가도 옥에 갇힌 네게 비기면 못 견딜게 있느냐고 하면서 너에게 차입할 것을 늦도록 손질하던 아내도 인젠 잠이 들었다
머리맡에 접어 놓은 군대 담요와 되도록 크게 말은 솜버선이며 고리짝을 뒤적거렸자 쓸만한 건 통 없었구나 무척 헐게 입은 속내복을 나는 다시 한번 어루만지자 오래간만에 들린 우리집 문마다 몹시도 조심스러운데
이윽고 통행금지 시간이 지나면 창의 어미는 이 내복 꾸러미를 안고 나서야 한다 바람을 뚫고 바람을 뚫고 조국을 대신하여 네가 있는 서대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1947. 12
(『현대시인전집』1권, 동지사, 1948.12)
어머니에게 드리는 노래
김 상 훈
이젠 모두 피투성이다
눈물을 머금고라도
챗쭉 아래 아양을 떨지 못한 허물로
남편을 빼앗기고 산 어매야
머리털이 실같이 희어서
부총회관(婦總會舘)으로 가는 어매야
쌀을 빼앗기고
자식을 잡혀 보내고
가난했던 허물로 상전의 개에 물려
이제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서
궐연히 싸움터에 선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와 함께 간다
어머니는 편지 읽듯이 혁명가를 외이며
늙었으니 앞장서겠다고 벌판으로 달려간다
동무야 주먹을 쥐자
어머니와 함께 싸우러 가는 길이다
거리마다 피투성이다
누구에게 물려받은 총알인지
거리마다 피투성이다
누더기 속에서 버리밥을 너흘어
제비새끼처럼 입맞추어 먹여 기른
이 땅 아들들이 함부로 쓰러지는 것들
어머니를 부르며 「어머니 나라 만세!」
풀뿌리를 짓씹으며 쓰러지는 것들
눈보라 얼어붙은 땅 위에서
몇 날 몇 밤을 안고 우는 어머니
먼지와 바람과 가난에 결어
어머니의 눈알이 노(怒)해서
노한 눈알이 도적을 노린다
동무야 힘을 얻자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 피를 모아 자라온 우리
발을 맞추어 뭉쳐 걸어가는 곳은 어머니의 가슴
깃발 들고 노래 부르고 뛰면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이 웃는다
낡은 행주 치마에
눈물도 아롱진 채
자식과 며느리와 딸의 목숨을 지키려고
총알받이나마 싸우러 가는 어머니
편지 읽듯 혁명가를 외우며
바람 속에 내닫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 당신의 아들들도
이렇게 함께 갑니다
(『대열』청구사, 1947)
기관구(機關區)에서
-남조선 철도파업단에 드리는 노래 -
이 용 악(李庸岳)
핏발이 섰다 집마다 지붕 위 저리 산마다 산머리 위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핏발이 섰다
누구를 위한 철도냐 누구를 위해 동트는 새벽이었냐 멈춰라 어둠을 뚫고 불을 뿜으며 달려온 우리의 기관차 이제 또한 우리를 좀먹는 놈들의 창고와 창고 사이에만 늘어놓은 철길이라면 차라리 우리의 가슴에 아내와 어린 것들 가슴팍에 무거운 바퀴를 굴리자
피로써 물으리라 우리의 것을 우리에게 돌리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생명의 마지막 끄나풀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아느냐 동포여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다가서는 틀림없는 동포여 자욱마다 절그렁거리는 사슬에서 너희들까지도 완전히 풀어놓고자 인민의 앞잡이 젊은 전사들은 원수와 함께 나란히 선 너희들 앞에 일어섰거니
강철이다 쓰러진 어느 동무의 소리가 바람결에 들릴지라도 귀를 모아 천길 일어설 강철기둥이다
며칠째이냐 농성한 기관구 테두리를 지키고 선 전사들이여 불꺼진 기관차를 끼고 옳소 옳소 외치며 박수하는 똑같이 기름 배인 검은 손 들이여 교대시간이 오면 두 눈 부릅뜨고 일선으로 나아갈 전사 함마며 핏켙을 탄탄히 쥔 채 철길을 베고 곤히 잠든 동무들이여
핏발이 섰다 집마다 지붕 위 저리 산마다 산머리 위에 억울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승리를 약속하는 핏발이 섰다
1946. 9
(「문학」임시호, 1947. 2)
2월의 노래
저 10월 인민항쟁이 잇은 지 다섯달만인 2월 13일 ‘문화옹호 남조선문화인 예술가 총궐기대회’에서 ――
한 진 식(韓鎭植)
다섯달이라 피맺힌 채찍의 다섯달이라
연약의 습성은 반동보다 자랑할 게 못되어 저마다 남모르게 채찍질하면서 언제이고 뛰어 나는 폭풍 속에서
붓자루를 던지엇다, 비오롱을 팽개치었다, 무대에서 학원에서 서실에서 쫒아나왔다, 일제히 이렇게 우리들이 일어서는 날 우리들의 10월은 다시 있어라
총칼밖에 겨누지 못하는 불쌍한 놈들이 끓는 지역에 유물론 유물론의 무장(武裝)이여 빈 주먹에도 이렇게 힘이 솟는 것
불 붙인 인민의 인민의 항쟁은 타는 것이라 불 붙인 10월은 타는 것이라
(「문학」임시호, 1947. 2)
한진식 : 월북하여 1950년대 북한에서 시문학 지도 활동
회장(會場)
김 상 훈
모조리 부숴진 들창으로
칼바람이 쑤시고 가는
회장은 어두워지는데
박수소리 아직 우뢰같이 인다
「항쟁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우리의 시월을 기억하자」
타는 듯 피를 뱉는 듯
이마에 획진 흠집이 있는
노동자 동무의 외치는 소리
「동지 박헌영에 자유를 주라」
긴급동의요 쌀을 달라고
투쟁위원회를 만듭시다
내일은 피의 진군
대오를 짜는 눈초리들
눈에 불이 떨어지는
권태를 모르는 구릿쇠빛 얼굴들
「인민공화국 건설 만세!」
암벽을 치는 노한 물결처럼
쥐어진 두 주먹이 왈칵 깃더오르고
해방의 노래
인민항쟁의 노래
깃발을 덮어다오
전서(戰死)를 맹서한 기폭 아래
우리 싸우다 죽으리라는
젊은 놈끼리의 힘찬 맹서
밤은 식어 얼어붙는데
젊은 놈끼리의 뜨거운 맹서에
회장은 용광로처럼 달아 이글거린다
(『대열』청구사, 1947)
고개가 비뚤어진 동무
- 이인동(李仁同) 동지에게
김 상 훈
무엇 때문인지 고개가 비뚤어진
「긴급(緊急)을 「진급」이라고 읽는 사나이가
의장(議長)을 본다
그의 반생은 인쇄직공
진저리나게 짓밟혀 오면서
혓바닥이 반드라운 영리한 것들의
속속들이를 빠-ㄴ히 들여다 보았기에
해방의 조화(造花)나 사탕발림에는 속지 않아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건만
싸우지 않으면 죽는 것을 안다
십 리만 걸으면 발이 붓기에
자전거 타고 연락을 다니는 동무
줄이 고르지 못한 앞니와 입술에선
지나쳐 정직한 말이 떠듬거리며 나왔다
들어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부지런히 심부름을 해주고 싶은
소를 닮아 쉴 줄 모르는 버릇
소같이 미더운 사나이가 의장을 본다
인민의 진두에서 피나게 싸우는
전국대표의 불같은 시선 앞에
부끄러운 듯 두려운 꽃을 달고
어린아이마냥 볼을 붉히는 모양
“시월의 동무들은 죽으면서
우리에게 싸워 이기라고 했소”
서투른 폐회사에 가슴이 벅차
청중보다 먼저 감격해 눈물을 삼키는
무엇 때문이지 고개가 비뚤어진
미더운 동무가 의장을 본다
(『대열』청구사, 1947)
“산 사람들”
이 수 형
××포 해풍 속에서 「어머-ㅇ」「어머-ㅇ」
부르다가 차돌같이 자라나 허벅구덕 지고
물긷기 바쁘던 비바리도 해수를
자 러 머흘머흘 살아오던 그 어멍
끝끝내 “산사람” 되었단다.
원으로 오르내리며 나뭇군으로 겉늙다가
「왜놈이나 모색 다를 놈이나 인젠 어림없다」고 두 눈 부릅뜨고 ×××××에
들어갔던 오라방도 어처구니 없어 ×× 잃은 채 ×× 든 채로 ××× 속을 도망질쳤단다.
천길 만길 억울히 한많은 조국의 “산사람”들의 눈물인 듯 피인 듯 터져버린 화산 구멍에 백록담을 받쳐든 ××× 중허리 모퉁이 벌집같은 굴 속에선……
무얼 먹고 싸우느냐구요
초밥과 소금만으로 눈이 어두워지는 일도 생긴다마는, 탕 탕 총소리 들으면서도 나팔 불며 꽹과리치며 메―데―를 행사하고 돌비알 아득히 진달래 꽃사태 속에선 연기가 어엿이 나불거려 오른단다.
정든 부락에선 보리는 익은 채 선 채로 썩어가고 밭에서 붙잡혀간 외삼촌은 재판도 없이 간데 온데 없어졌단다.
「네 아들 내놔라」는 모진 ××에 늙은 아방은 초옥 자빠진 돌벽 앞에서 두 눈이 빠진 채 숨넘어 갔단다.
요즈음은 어떠냐구요
물페기 꿈틀거리는 아름드리 통나무 충충한 산중에서 돌바위 나뭇잎을 베고 덮고 깔고 어한을 하면서도, 기관지를 성명서 삐라를 인쇄하고 감물들인 흙자주빛 갈중이랑 ××복장이랑 입은 “산사람”들이 시뻘건 머리수건 동이곤 ××엘 달려들 땐 아이구 정말……「주구키여」란 말 한마디도 없었단다.
아 ― 정월 대보름때 바닷가 달 아래서 꼬깔쓰고 북치고 꽹과리 치곤 놀던 사람들, 지금쯤 어느 바위틈바귀서 대나무 창 칼을 깎고 있는 것일까.
(註)
허벅구덕은 물갈을 때 쓰는 물독
비바리는 순결한 처녀
어멍은 엄마
원은 밀림지대
아방은 아버지
오라방은 오빠
갈중이는 잠방이와 같은 것
주구키여란 말은 어떤 동작 후 피곤에서 발로되는 특유한 감탄사
(「문학」1권 8호, 1948. 7)
이수형 : 함북 경성 출생. 일찍이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시현실” 동인인 함형수, 천청송, 김북원, 유치환, 김달진 등과 함께 『재만조선시인집』(김조규 편 ; 간도 예문당, 1942) 에 모더니스트풍 시편들 발표. 조선문학가 동맹 회원. ‘4 ․ 3 제주민중항쟁(1948.4.3) 에 참여한 일반 민중들의 삶을 형상화한 「산 (山) 사람들」, 귀향 유이민들의 집단 적 비극을 훌륭하게 노래한 「행색(行色)-고국을 찾 은 사람들」(임학수 편 『시집』 한성도서주식회사, 1949)」 등의 기억할만한 작품을 남 겨놓고 있다. 시집 『산맥』 (현문사)의 발간이 조선문학가동맥 기관지 『문학』(1947, 7) 에 예고된 바 있으나 실제 간행 여부는 불분명하다. 6 ․ 25 동란 중 월북했다.
<시> 「권양기 운전공 처녀」(『조선문학』1957. 6), 「어머니」(『조선문학』1964. 1)
<평론> 「시의 진실과 문학적 정서」(『문학신문』)1962.2.2), 현지보고 실기 「고래 잡 는 사람들」(『문학신문』)1959.8.28)
치술령
한 진 식
불질 소리에 틀림없는 그러한 묵중한 울림이었다
놀랜 짐승처럼 숯가마 밖을 뛰쳐나온 문(汶)과 쇠는 산마루에 기어올랐다
가파른 비탈 내리지른 저기 역력히 바라보이는 움집 좁은 마당에 숯장수 박첨지 쇠아버지는 이미 거꾸러져 있다.
……이 모질게 늙은 놈아 어서 네자식 놈과 문이 놈이 숨은 곳을 알리라
××떼처럼 몰려온 놈들의 막대기와 ××는 함부로 쏟아졌으나 거꾸러진 몸둥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아배 아배요 아배는 죽었다
노하면 맨먼저 도끼를 높이 쳐들고 아름드리 기둥을 찍어내린 쇠였다
아니다 동무
어디까지 엄한 낮은 목소리의 함○ 문의 팔은 어느새 쇠의 목을 껴안았고 손바닥은 입을 막은 것이다
한바탕 불맞은 멧돌처럼 비탈을 뒹굴던 쇠는 이윽고 일어났는데
오늘도 상목골 이십리 연락을 간 어머니는 이제 어드메 쯤 돌뿌리에 채며 돌아오는가
치술령 꼭대기에 아직도 긴 4월의 해는 지지 않았다
(「문학」8호, 1948. 7)
푸른 산맥을 타고
김 철 수(金哲洙)
푸른 하늘을 나는 간다
푸른 산맥을 타고서 나의 핏빛 젊음이
사슴처럼 출렁이는 풀숲을 헤쳐간다
주둔군의 파수병을 저리 돌아 오르면
거기 대열져 뻗어가는 산맥!
게딱지같은 초가들이 군호를 기다리듯 엎드려 있고
새떼 숨어서도 무어라 저리들 우짖는 것일까
열 일곱 나의 소년을 배반하고 돌아선 연이란 계집애도 이런 봄에 떠났더란다
망건 쓰고 자전차로 누구찌상을 찾아 다니던 아버지의 상여도 이런 마을을 갔더란다
자유를 달라! 만세를 부르다가 헌병대에 잡혀 간 아저씨도 이런 산에 숨어 싸웠더란다
병든 어버이와 굶주린 아내와 철 모르는 자식들을 멀리 생각하면
전쟁과 평화와 민족반역자와 먼 날의 빛나는 조국을 생각하면
산새야 산을 안고
통곡하고 싶으냐
그래 이렇게 가는 게란다
뜨거운 손길의 미더운 벗을 찾아
대열진 산맥을 타고 가는 게란다
산맥을 타고 서면
아 저 넓은 하늘
복사꽃 붉은 언덕에
내가 섰구나
(『추풍령』산호장, 1949)
김철수 : 1930년 <처녀송(處女頌)>, <기적(汽笛)아 울지 말아라> 등의 시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해방 후 <역마차>(신천지, 1948. 2), 담배장수」(『아동문 학』3호) 등 발표. 시집 『추풍령』(산호장, 1949. 2.15)에 김광균이 발문.
역마차
설움 많은 밤이 오면은
우리 모두들 역마차를 타자
반기어주는 이 없는 폐도(廢都) 여기 별없는 거리
자꾸 그리운 합창이 듣고파 내 오늘도
또 한 잔 소주에 잠겨 이리 비틀거리는 사내이구나
흔들려 부딪치는 어깨 위에
저 가난한 골들이 형제요 동포이라는 나의 외로움 속에서는
우리 좀더 정다운 나그네여서 따뜻한 마을을 찾아가는 것이냐
이제는 통곡조차 잊어버린 사람들……
열리는 아침을 믿어 가는 길인가
그러면 믿븐 사람이여 어디 있는가
높은 곳에 기다리는 공화국의 문이여 어디 있는가
절름거리는 궤짝 위의 차거운 꿈에서도
역마야 너와 나와는 원수이지 말자
미친 채찍이 바람을 찢고
창살 없는 얼굴에 빗발은 감기는데
낙엽도 시월도 휘파람 하나 없이
이대도록 흔들리며 폐도의 밤을 간다
* 믿븐 : 믿음직한.
신천지 (1948.2)
아 드디어 다 했다 2016년 8월 8일 23시 21분에!
첫댓글 경력은 빼고 작품만 올렸으면 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오늘도 활기차고 행복한 시간 이어 가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주심 감사드립니다 길게 주시면 읽는 사람이 건너 뛸수가 있으니
작품을 조금씩 나누어 소개해 주심이 어떨런지요 ?
시작에 많은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