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막가파 말투...^^;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콩쿠르 문학상이란 무엇인가? 1903년에 에드몽 공쿠르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이 상은 프랑스 문학상의 역사를 열었다고 말해도 손색이 없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다. 매해 출간된 산문 작품 중에서 가장 상상력이 뛰어나고 주제와 형식이 독창적인 작품을 선정한다는 수상작 기준을 정해 놓았다.
여기에서는 콩쿠르 문학상을 받은 몇몇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기준은 콩쿠르 문학상을 받은 것이며 읽는 순간 번쩍하는 황홀한 경험을 했다는 전제조건이 있을 경우이다.
첫 번째는 프랑스 문단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다. 이 작품은 1984년 콩쿠르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또한 노벨문학상을 제외하고 가장 상금이 많다는 리츠 파리 헤밍웨이 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의 배경은 1920년대 말 프랑스 식민치하의 배트남이다. 메콩 강을 건너던 프랑스 소녀가 백만장자인 32세 중국청년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시작하는 ‘연인’. 눈치 빠른 사람들은 예감했겠지만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름다운 소녀와 돈 많은 청년과의 사랑,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따른 비애와 슬픔. 그렇다. 줄거리는 그렇다.
그런데 줄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읽는 사람의 주변 공기 밀도를 단번에 바꾸어버릴 만큼의 신비함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열다섯 살 반. 그 나이에 나는 벌써 화장을 하고 있다. 눈밑 관자놀이 부분의 주근깨를 감추려고, 토칼론 크림을 바르고나서, 그 위에 화운데이션을 바른다. 그날 따라 나는 진홍색, 즉 앵두색 루즈까지 발랐다.”
“그녀는 그의 말 중에서 특히 그가 부자라는 것이 엿보이거나 그가 백만장자라는 것을 암시하는 따위의 말들에 귀기울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소녀는 로맨틱한 연예소설에 나오는 그런 여성이 아니다. 소녀는 청년이 백만장자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은근하면서 노골적이지 않은 유혹, 때로는 대담하게 때로는 못 이기는 척, 중국인에게 호감을 갖는 백인소녀의 대범함. 소녀는 전투적인 여성이면서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로 존재한다. 소녀는 돈 때문에 따라와서 섹스를 나누었다고 말하고 청년은 그것을 들으면서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위태롭기만 하다. 그것은 당시 세계관이 절묘하게 소설에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프랑스인의 집안과 부자이면서도 하위계층의 식민지 남자. 소녀에게는 자존심 강한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의 대리자인 큰 오빠, 허약한 작은 오빠가 있다. 소녀가 청년을 가족에게 소개시켜줄 때, 이들의 위태로운 사랑은 허망하게 모습을 감춘다.
“그런 장면은 매번 같은 식으로 반복되리라. 나의 오빠들은 그에게 말 한마디도 걸지 않을 것이다. 그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즉 그가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 역시 더 이상 그와 말하지 않는다. 나의 큰 오빠 앞에서, 그는 더 이상 나의 애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돈 많은 중국청년은 소녀를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여성과 달리 이 남성은 순하기만 하다. 사실 순하다는 표현보다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소녀가 청년과의 사랑으로 인한 모욕을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한 의지가 있지만 청년은 아버지의 명조차 거부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상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그 시대 페미니스트들이 극적으로 바라는 연인의 모습들처럼.
“우리 아버지한테는 내가 있으나마나지.... 백인 소녀와 함께 있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네가 죽는 꼴을 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가 옳아요.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들은 헤어진다. 온갖 소문에 결국 소녀는 프랑스로 돌아가고 청년도 아버지가 정해준 여인과 결혼을 하기로 한다. 청년은 소녀가 떠나는 날, 차 안에서 여자를 볼 뿐 잡지 않는다. 소녀도 잡으라고 하지 않는다. 너와의 관계는 돈 때문이다, 라는 인상만 주며 떠난다. 그런데 프랑스로 떠나는 배 안에서 문득 소녀는..
“그 음악이 바다로 퍼져 나가고 있는 이 순간,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과거 속에 묻혀 버렸다. 그가 그녀의 뇌리에 되살아났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사랑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는 콜랑의 그 남자, 그녀의 연인을 생각하고 울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작품은 결말에 도달한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소녀는 프랑스에서, 청년은 그가 있던 곳에서 살아간다. 시간은 늙어가고 그들도 늙어간다.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게 되고, 그 추억이란 것은 가슴을 죄어오는 슬픔과도 같은 무엇으로 생각되어진다. 서로의 소식도 모른 채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간다.
마지막까지도 간결한 문체로 억지로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지 않고 얄미울 정도로 냉정하게 일정한 톤을 유지하는 뒤라스. 아마도 그녀의 문체 때문에 마지막에 책을 넘기던 손은 전율하게 된다. 마지막 문단 그 한곳에서.
“전쟁이 끝난 몇 년 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이혼을 하고, 책을 쓰고, 그러는 가운데 그가 부인과 함께 파리에 왔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했다. 나야. 그녀는 첫마디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말했다. 그저 당신의 목소리나 들으려고. 그녀가 대답했다, 저예요, 안녕하셨어요? 그는 긴장하고 있었고, 예전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떨렸다. 그 떨림과 함께, 갑자기, 중국어 억양이 들려왔다. 그는 그녀가 책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사이공에서 어머니를 만났을 때 전해 들었다고 했다. 또, 작은오빠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면서, 그녀와 함께 슬퍼해 주었다. 그리고나서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 말을 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 사랑은 변할 수 없고, 그가 죽을 때까지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이 작품의 매력은 뒤라스의 문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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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guerite Duras |
또한 1인칭과 3인칭을 왔다갔다 하면서 서술하는 것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놀랍고 전율한다. 별것 아닌 단순한 이야기를 이렇게 극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더불어 큰오빠에 대한 증오와 무기력에 어머니에 대한 연민, 소녀의 욕망이 줄거리와 결합하면서 이 작품은 흔하고 흔한 섬세한 문장, 로맨틱한 스토리, 센세이션한 설정 따위가 없이도 심금을 울리게 만든다.
물론 이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지름길이다. 간결한 문장들의 연속인 탓에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2시간 반 가량이면 한번의 정독이 가능하다.
읽는 시간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많다.
봉효의 분가한 집...종종 구경들 오세요..^^
www.inews.org/book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