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종 모양의 분홍색 꽃… 줄기 껍질은 옷 만들 때도 쓴대요
개정향풀
▲ 6~7월쯤 피는 개정향풀 꽃의 모습. 바람에 실려 오는 향이 좋은 향수를 뿌린 것처럼 향기로워요. /국립생물자원관
우리나라에서 1910년대 이후 9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2005년 다시 발견된 식물이 있어요.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 한창 향기로운 꽃이 피는 '개정향풀'이에요. 개정향풀은 2005년 경기도 한 바닷가에서 군락지가 다시 발견됐는데 당시 학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크게 다룬 귀한 식물이죠. 개정향풀의 존재가 알려지고 난 후 현재는 경기 안산·시흥·평택, 인천, 강원 삼척, 충북 단양·청주, 충남 아산, 경북 영덕, 전남 신안 등 전국적으로 자생지가 10곳 정도 확인됐어요. 최근에는 씨앗으로 증식해 재배하는 연구가 성공해 자생지 복원도 가능하다고 해요.
개정향풀은 협죽도과(科)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줄기와 잎을 자르면 하얀 유액(乳液)이 나와요. 땅속줄기는 옆으로 뻗으며 나무처럼 단단해져요. 줄기는 높이 40~120㎝로 자라며, 털이 없고 흰색이 도는 자주색이에요. 잎은 대부분 마주나고, 길이 2.5~5.5㎝의 피침 모양 또는 좁은 타원 모양이에요. 끝부분에는 잎맥이 연장된 돌기가 있어요.
꽃은 6~7월에 줄기 끝에서 고깔 모양으로 여럿이 모여 피어요. 꽃 피는 기간이 긴 편이라 8월까지도 분홍색의 작은 종 모양 꽃을 볼 수 있죠. 꽃은 꽃부리 밑부분이 5㎜ 정도로 짧고, 윗부분은 5개로 얕게 갈라지며 뒤로 살짝 젖혀져 있어요. 개정향풀 꽃은 작은 분홍색 꽃이라고만 표현하기 아쉬울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죠. 맑은 느낌의 분홍색 바탕에 자주색 줄무늬가 있는 꽃이 참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향기도 정말 좋아요. 꽃이 한창 필 때 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향기는 좋은 향수를 뿌린 것 같아요. 열매는 길이 10㎝ 정도로 가늘고 긴 원통 모양으로 보통 2개씩 달려요. 가을에 잘 익은 열매가 갈라지고, 머리카락 같은 가늘고 긴 흰색 털이 달린 씨앗이 바람에 날려요.
개정향풀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유럽 온대 지역 강가·해안·모래땅 등에서 주로 자라요. 중국 등 외국에서는 생태적·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용한 식물로 알려져 있어요. 이 식물은 예부터 '나포마(羅布麻)'라고 해서 심장병·고혈압·신경쇠약 등에 효과가 있는 한약재로 쓰였어요. 잎은 염증·우울증·불안증 등에 효과가 좋은 차로 유명해요. 줄기 껍질은 '야생 섬유의 왕' 소리를 들으며 항균성이 있어 의류 산업에서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해요. 이뿐 아니라 염분이 많은 건조 지역 토양 등 불모지 복원에도 아주 적합해 생태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식물이죠.
개정향풀은 우리 곁에서 90여 년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못 알아본 것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같은 길을 걸어도 알아보는 식물이 서로 다른 것처럼요. 주변 식물들이 무관심으로 사라지기 전에 잘 보전될 수 있도록 우리가 더 관심을 둬야 해요.
김민하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