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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유럽, 웬만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다 간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하랄드 시구르트손, 후대에는 하랄드 하드라다라고 불리게 될 인물이지. 그가 태어난 시대는 북유럽에 기독교가 들어오고, 서유럽식의 봉건 왕국들이 형태를 갖춰나가며 밀레니아 이전 시대에 악명 높았던 약탈자들의 명성도 차차 수그러드는, 바이킹의 황혼 시대였지. 그리고 훗날 역사가들은 이 하랄드 하드라다가 유럽 최후의 바이킹이라고 일컫는다.
대충 이런 녀석들이 설치고 있던 북유럽. 하랄드는 1015년, 노르웨이 왕의 서자로 태어났다. 훗날 왕이 될 형 올라프와의 나이 차는 스무살이었고, 형제간의 우애는 꽤 돈독했다고 하지.
크누트의 북해 제국. 덴마크가 영국과 노르웨이를 통일하고 북해를 내해로 만들었던 시기의 지도다. 이게 언젯적 얘기냐? 하랄드가 어린 시절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덴마크인들에겐 영광스러운 역사고 크누트 왕 역시 위대한 전사로 칭송 받아 마땅하지만, 노르웨이 왕가의 일원으로 태어난 하랄드에겐 파란만장한 인생의 시작이었지. 누군가의 영광이 누군가의 불행인 셈이지만 세상 만사가 다 그런거 아니겠나. 여기서 짐작했겠지만, 하랄드의 형 올라프는 왕위를 그렇게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노르웨이에 기독교를 도입한 공으로 훗날 가톨릭 성인으로까지 추존되는 그이지만, 당대엔 옛 종교를 믿는 귀족들의 반발이 극심해서 덴마크의 침공을 막아낼 수 없었거든. 간신히 몸만 건져 도망친 형을 따라, 어린 하랄드도 망명길에 나선다.
하랄드가 15살이 되던 1030년, 크누트가 노르웨이에 세워뒀던 꼭두각시가 항해를 나갔다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바이킹들이야 맨날 배 타고 다니는 놈들이고 배 타는 놈이 바다에서 사라지는 것 쯤이야 존나 흔한 일이었는데, 어쨌든 올라프는 이걸 복귀의 기회라고 생각했지. 올라프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노르웨이로 돌아오는데, 이때 예상밖의 대군이 그를 막아서. 그 군대는 덴마크군이 아니었어. 올라프를 쫓아내고 크누트에게 무릎을 꿇었던 노르웨이 귀족들이 올라프를 민주화시키러 온 거지. 올라프는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하랄드는 큰 부상을 입고 간신히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추격을 뿌리친 하랄드가 스웨덴에 도착한 것은 1031년, 즉 그의 나이 16살 때였어. 덴마크 군이 처음 침공했던 시절부터 올라프를 따랐던 충성스러운 전사 2~300명은 이제 하랄드를 대장으로 섬기고 있었지. 하랄드 시구르트손은 16세의 나이로, 고향에서 쫓겨나고, 믿고 따르던 형까지 잃어버린 채 노르웨이 옛 왕가의 지도자가 된거야. 하랄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키예프로 망명하기로 결정해. 키예프 대공의 부인이 하랄드의 먼 친척이었거든.
대충 이 시기의 키예프. 이때까지만 해도 슬라브 족의 중심지는 모스크바가 아니라 키예프였으며, 이들 슬라브족들을 다스린 것은 다름아닌 바이킹들.
성인이 된 하랄드는 누가 바이킹 성님 아니랄까봐 190cm가 조금 넘는 엄청난 장신이었다고 하는데, 16살이었으면 190까진 아직 덜 자랐어도 하여튼 엄청난 덩치였을거야. 키예프 대공은 망명해온 하랄드가 척 봐도 싸움깨나 할 것처럼 생겼으니 장군으로 삼았지. 아무 기반 없는 망명자로서 밥값을 칼로 치루게 된 소년 하랄드는, 이 곳 키예프의 궁정에서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게 돼. 그것은 바로 키예프 대공의 딸, 엘리시프였지.
엘리자베스라고도 하고. 노르웨이 식으로 하면 엘리시프다.
하랄드는 정신이 나가서 키예프 대공에게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징징대지만, 키예프 대공이 미쳤다고 집도 절도 없는 망명자한테 귀한 딸을 내주나? 당연히 거절당하고 말았어.
얼마 후 폴란드가 키예프를 침공하고, 전쟁에 나간 하랄드가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폴란드 영토에 침입해 반격까지 하고 돌아왔지만 키예프 대공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어. 빡친 하랄드는 '내가 당신 딸이랑 결혼할 자격을 갖추고 올테니 그때까지만 딸 간수 잘하쇼'라고 선언하고는, 500명으로 불어난 추종자를 데리고 키예프를 떠나버려. 그의 나이 18세, 1033년의 일이야.
그가 향한 곳은 어디였을까?
당대 유럽 최고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이었어.
당시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북유럽 출신 전사들을 모아 '바랑인 친위대(Varangian Guard)'라는 친위대를 운용하고 있었어. 애초에 '바랑'이란 말 자체도 바이킹의 발음이 약간 변한거지. 하랄드는 자기가 이끌고 온 부하들과 함께 이 친위대에 입단한거야. 당시는 동로마의 군사적 전성기를 이끈 황제 바실레이오스 2세가 죽은 뒤, 황제가 살아 있을때는 찍소리도 못하던 주변국들이 슬슬 제국을 건들기 시작한 시점이었어. 제국 사방천지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곳이 없었고, 황제가 투입할 수 있는 최고의 정예 병력인 친위대에 입단하는 것은 잘만 하면 엄청난 전공을 쌓을 수 있다는 뜻이었지. 과연, 하랄드는 친위대에 입단한지 1년만에 승진을 거듭해, 대대장 비슷한 직함까지 받아. 하랄드가 몇년 동안 뛰어다닌 전장은 시칠리아, 남이탈리아, 불가리아, 지중해의 해전,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 등 거의 제국 전역이었지.
일게이들 제일 멀리까지 여행 가본게 어디냐? 지금으로부터 1천년 전, 노르웨이 출신 젊은이는 별자리조차 낯선 지중해 세계까지 흘러 들어와, 이 땅을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뛰어다녔다. 시칠리아의 해변에선 베르베르 침략자들의 목을 베고, 남이탈리아의 계곡에선 동족 노르만족들의 골통을 부숴버리고, 불가리아의 산골에선 불가리아 반란자들을 진압하고, 고향의 바다와는 너무나 다른 따뜻한 지중해의 배 위에서 절박한 백병전을 벌이고, 메소포타미아의 모래폭풍 속에서 급작스럽게 기습해오는 아랍인들의 화살비를 방패 하나로 막아내며 살았단 말이다. 가는 곳마다 피를 뿌리며, 말조차 통하지 않는 아군들과, 똑같이 말이 통하지 않는 적들, 그것도 매번 다른 적과 매번 다른 환경에서 도끼 한 자루 들고 피칠갑한채로 살았다는거야.
이 생활도 거의 8년, 하랄드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뿐 아니라 황제의 하사품, 새 황제가 등극할 때 내려지는 특별 보너스 같은 것들을 착실히 쌓으며 상당한 부를 모았어. 그뿐만이 아니지. 하랄드의 혁혁한 전공, 현대 기준으로도 크지만 당시 기준으론 거의 거인에 가까운 키, '노르웨이의 왕자'라는 소문 등으로, 황실에서도 하랄드를 총애했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랄드가 26살이 된 1041년, 새로 황제로 등극한 미카일 5세는 갑작스럽게 하랄드를 '황실 재산 횡령 혐의'로 투옥했어. 이 죄목이 진짜였을까? 확실한건 몰라. 단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황제가 된 미카일 5세가, 선제에게 충성스러웠던 하랄드를 믿지 못해서 제거했던걸지도 몰라. 하랄드의 운은 거기서 끝인 것처럼 보였지.
하지만 하랄드가 감옥에 갇힌지 1년도 지나기 전에 기회가 찾아왔어. 미카일 5세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제의 황후가 그를 지지해줬기 때문인데, 황제가 된 미카일 5세는 이제 그녀의 영향력을 달갑게 여기지 않게 된거야. 그래서 미카일 5세는 황후를 구금했는데, 이게 큰 실수였지. 황제보다 황후가 인기가 좋았거든. 광우뻥 폭동을 100배는 능가하는 대폭동이 콘스탄티노플에서 벌어졌고, 이 혼란의 와중에 하랄드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탈옥하는데 성공해. 황제는 어떻게 됐냐고? 폭도들한테 잡혀서 산채로 눈이 뽑혀버렸지.
새로 등극한 황제는 하랄드에게 굉장히 우호적이었어. 그는 하랄드가 친위대에 남길 원한다고 밝혔지만, 하랄드는 사직서를 쓰고 짐을 꾸렸어. 황제는 사직서를 반려했는데, 이미 하랄드는 부하들과 함께 사라진지 오래였어. 황제는 아쉬워하면서도 추격대를 보낸다던가 하진 않았지. 하랄드는 키예프로 돌아간거야.
한편, 하랄드가 얻은 명성은 키예프에까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었어. 하랄드가 콘스탄티노플에서 모은 막대한 부와 함께 나타나자, 키예프 대공도 이제는 흔쾌히 결혼을 승락했지. 1042년, 하랄드의 나이 27세의 일이야. 조국에서 쫓겨난 망명 왕자가, 낯선 대제국에서 전공을 쌓고, 러시아 공주를 쟁취한거지. 근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대충 지금부터를 2부다.
하랄드가 남쪽 동네에서 한참 뛰고 있을 무렵, 노르웨이의 상황은 급변하고 있었어. 올라프를 내쫓았던 노르웨이 귀족들은 덴마크의 지배를 10년 이상 받다보니 '구관이 명관이요'라며 불만을 품게 된거지. 크누트 대왕이 죽고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으로 그의 어린 아들이 즉위하자, 노르웨이 귀족들은 곧바로 반란을 일으키고 올라프의 서자를 찾아내 노르웨이의 왕으로 추대했지. 키예프에서 신혼을 즐기고 있던 하랄드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져. 하랄드는 당장 부하들을 이끌고 노르웨이로 출발했지. 1045년, 하랄드가 서른살이 됐을때의 일이야.
노르웨이에 도착한 하랄드는, 조카에게 이렇게 말해. '니가 올라프의 아들인건 맞지만, 적통은 아니지 않느냐? 그럼 올라프의 동생인 내 권리도 너랑 대충 비슷한 수준 아님?' 하랄드도 올라프의 '이복' 동생이었긴 했지만 뭐 이런 문제는 대충 넘어가자.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하랄드는 마음만 먹으면 노르웨이를 엎어버릴 수도 있었고,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사실이었어. 조카는 하랄드에게 공동 왕위를 제안했고, 하랄드는 이걸 받아들였지. 그리고 몇년도 안돼서 이 어린 조카는 '의문사' 해버려. 하랄드가 암살한걸까? 뭐 당대부터 그런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증거는 없어. 심증만 있을 뿐이지.
하여튼 하랄드는 노르웨이의 단독 왕이 되었어. 그가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덴마크 침공이었지. 덴마크라면 이가 바득바득 갈릴 인물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어. 하지만 여기서 좀 문제가 생기는데, 8세기든, 11세기든, 15세기든간에 노르웨이보단 덴마크가 남쪽에 있어서 살기도 좋고 인구도 많단 말이야. 즉 원래라면 노르웨이는 덴마크에게 개길 수가 없는 상황이야. 하랄드는 덴마크군을 여러 차례 격파하고, 덴마크 왕이 덴마크를 버리고 폴란드인지 어딘지로 도망가는 사건까지 벌어지지만 끝까지 덴마크를 정복할 수는 없었어. 하랄드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위해 신민들을 가혹하게 쥐어짰고, 반대파는 무자비하게 숙청했어. 결국 그에겐 '하드라다'라는 별명이 붙지. 노르웨이어로 하드라다, 영어로 하면 Hard Ruler야. 빡센 지배자라는 뜻이지.
하지만 하랄드가 아무리 빡센 인간이라고 해도, 안되는건 안되는거였어.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전쟁을 벌인 끝에, 1065년, 하랄드는 덴마크 왕과 평화 조약을 맺고 전쟁을 그만뒀어.
50살이 되었지만, 하랄드는 여전히 혈기 넘치고 야망으로 가득한 모험주의자였어. 그의 인생 경력이 그를 그렇게 만든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그는 바이킹이었으니까. 덴마크와 평화 조약을 맺긴 했지만, 하랄드는 도저히 노르웨이 안에서 짱박혀 있을 수가 없었지. 이때, 왕위 계승 문제로 혼란에 빠져 있던 잉글랜드에서 하랄드에게 지원 요청이 날아와.
잉글랜드에서도 이 비슷한 무렵 왕위 계승 분쟁이 터졌었는데데 이게 거의 정리되어가던 무렵, 다툼에서 패배한 놈이 하랄드에게 SOS를 친거야. 하랄드는 옳다꾸나 하고는 거의 1만에 달하는 병력과 함께 출발하지.
요크에 상륙하는 하랄드. 키 존나 크고 왕관 썼고 도끼 든 놈이 하랄드다. 저 시대에 삽화 그릴 때부터 키를 무척 강조했다는걸 알 수 있음. 당대에도 키로 유명했거든.
잉글랜드 북동부의 요크에 상륙한 하랄드는 현지의 병력을 개박살내고, 노섬브리아를 점령했지. 노섬브리아의 영국인들에게 하랄드는 '뒤지기 싫으면 스탬포드 다리로 보급품을 보내라'고 명령하고, 남쪽으로 행군하기 시작해. 하지만 잉글랜드 왕 해롤드 고드윈슨은 만만한 놈이 아니었어. 그는 하랄드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속도로 북상하여, 하랄드가 스탬포드 다리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노섬브리아를 탈환했어. 노섬브리아인들에게 하랄드의 행군로를 전해 들은 해롤드는, 이번에도 엄청난 강행군을 하여, 노르웨이 군을 기습하려 했지.
한편, 노르웨이군은 갑옷과 보급품의 대부분을 배에 실어 보내고, 몸에는 무기와 식량만 지니고 행군하고 있었어. 스탬포드 다리에는 노르웨이 함대와 노섬브리아인들의 보급대가 도착할 예정이었고, 노르웨이군은 함대보다 먼저 스탬포드 다리에 도착하지. 노르웨이 군은 이제 다리를 지나 강을 건너는데, 그때, 다리를 건너고 있던 노르웨이 군의 정면에 잉글랜드군이 나타나. 해롤드가 기습해온거야.
기습당한 노르웨이 군의 선봉은 그야말로 작살이 나버렸어. 다리 저편으로 넘어가 있었던 병력은 완전히 학살 당하고, 살아 남은 병사들은 다리를 건너 도망쳐 왔는데, 다리 이쪽에서 긴급히 대열을 정비하고 있던 노르웨이 군에 혼란만 더 가중될 뿐이었지. 그리고, 잉글랜드 군은 질서정연하게 다리를 건너오기 시작했어. 갑옷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숫적 열세까지 짊어진 노르웨이군은 차츰차츰 밀리기 시작했지. 그리고 노르웨이군을 결정적으로 와해시킨 대사건이 벌어져.
중앙의 파란 옷이 하랄드.
갑옷도 걸치지 않고 싸우던 하랄드가 목덜미에 화살을 맞고 전사한거야. 왕의 죽음을 목격한 노르웨이군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전투는 잉글랜드군의 압승으로 끝났어. 파란만장한 삶의 끝이자, 바이킹 시대(Viking Age)의 종언이었지. 하랄드의 죽음 이후로 북유럽은 완전히 중세화되며 바이킹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져버려. 그래, 앞에서도 말했듯이. 하랄드는 마지막 바이킹이었지.
후일담으로, 승리에 취한 잉글랜드 왕은 남부 해안에 상륙한 새로운 적도 쉽게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그는 강행군으로 지쳐 있는 병력을 또 재촉해가며 잉글랜드 남부까지 갔고, 세계사적으로 매우 유명한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전사하고 패배해버려. 해롤드 고드윈슨을 꺾은 자가 바로 노르망디 대공, 정복자 윌리엄이고 그가 잉글랜드의 새로운 왕이 되었지.
요약? 한 바이킹 왕족이 있었다. 왕가의 서자로 태어났고, 어린 시절 모든 것을 잃고 정처없는 망명 생활을 시작하고, 망명지에서 사랑에 빠지지만 여자의 높은 신분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했지. 당대 최강의 제국에서 황제 친위대로 복무하며 명성을 쌓았고, 결국 돌아와 잃어버린 왕관과 여자를 모두 얻지만, 모험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과 상관 없는 나라의 분쟁에 함부로 개입했다가 전장에서 죽음을 맞았어. 너무 완벽해서 지어낸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바이킹스러운 이야기지만, 이건 엄연히 현실이야. 의심스러우면 구글에 Harald Hardrada 쳐보던가
첫댓글 굳 꿀잼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