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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19편)
202112011
남악양 선사가 처음으로 6 조를 뵈니 6조가 묻되 "어디서 오는가?" 하니 남악이 대답하대 "숭산에서 옵니다" 하였다. 6조가 다시 묻되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하니 "한 물건이 해라도 맞지 않습니다" 하였다. 6조가 다시 묻되 "닦아 증득하는가?" 하니 "닦아 증득하는 일은 없지 않으나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6조가 말하대 "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 부처님들이 아끼고 염려해 주시는 바이니, 그대가 이미 그렇고 나도 역시 그렇노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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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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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불자라면 누구나 몇 번씩은 들어본 육조 혜능과 남악 선사와의 선문답 내용으로 법문에 자주 휘자되고 있는 유명한 내용이지요..♡
오늘 내용의 핵심은
"닦아 증득하는 일은 없지 않으나 더럽힐 수는 없다"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더럽힐 수는 없다]라는 말은 [마음을 더럽힐 수 없다]라는 말인데요.
깨닫고 본성을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더럽혀질 수가 없다는 뜻이랍니다.
전체 내용은 [본성은 본래 닦을 필요도 없이 깨끗하다]라는 뜻이랍니다.
그래서 옛 분들은 본성(불성/성령/마음)을 거울이나 허공 또는 맑은 구슬 등에 많이 비유를 하셨는데요.
다른 표현으로 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청정하다." "여여하다." "성성 적적하다." "맑고 깨끗하다." "여유롭다." "한가롭다." "편안하다."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하는 단어들이랍니다.
그리고 이 법을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이런 마음으로 바뀐답니다. (진실)
그리고 이것이 깨달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런 마음을 공(空) 또는 무(無)라는 표현으로 쓰고 있답니다.
마음 상태가 공(空)이고 무(無)라는 뜻이지요.
마음이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육조 혜능도..
"그대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라는 표현으로 답변을 한 것이랍니다.
이렇게 그 자리는 서로 다를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꾸준하답니다.
마음이 한결같이 일정하지요.
그래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즐거울 수박에 없답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마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도 질리지가 않지요.
왜냐하면 지금 6조 혜능과 남악 선사의 대화처럼 서로 같은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이 통하는 것이지요.
음..
우리 불교문화에서는 깨달은 사람들끼리의 대화를 선문답만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그건 그렇지 않답니다.
마음 이야기란 자신이 느끼고 있는 마음 이야기를 하는 것이랍니다.
불교의 참 의미는 선문답 같은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 이야기에 있는 것이랍니다.
선문답은 그냥 그 당시 사람들이 하는 대화 문화에 불과한 것이랍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 당시 사람들의 대화 문화가 있었다면 우리는 우리 식으로 대화를 나누면 되는 것이랍니다.
본인의 현재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랍니다.
절 안이나 절 밖이나, 스님들 끼리나 재가자들 끼리나, 스님과 재가자들 끼리나, 일반 중생들과도 쉽고 편안하게 마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참 불교랍니다.
저도 선문답 같은 것은 곧잘 하는 편이지만 지금 시대에는 선문답 같은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답니다.
그 대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마음 이야기를 주고받는 선 문화로 바뀌어야 한답니다.
그래야 한국 불교가 훨씬 더 부드러워지고 친근감을 느끼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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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대로 수행자들의 마음이 더럽혀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 결과는 폭망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마는 경우인데요.
대표적인 나라가 인도불교와 중국불교가 그렇답니다.
이 두 나라는 [돈]과 [주술]로 인해 폭망한 나라들로 꼽히고 있는데요.
특히 중국은 돈도 돈이지만 천도재나 제사 등의 주술 등에 빠져있는 중국 불교를 정부 차원에서 말살하다시피 한 경우인데요.
지금도 중국의 절들을 가보면 알게 모르게 주술이나 제사 등이 성행하고 있답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불교에서는 마음이 더럽혀진 경우라 할 수 있답니다.
특히 수행자들이나 종교 집단들이 [돈맛]을 알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점차적으로 막장으로 가는 역사적 자료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 이유는 종교적 특성 때문에 그렇답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종교적인 특성상 누가 보더라도 순수한 모습들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 중생들이 등을 돌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히 지금의 중생들은 종교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깨여있고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러하답니다.
특히 젊은 층들은 더 그러하고요.
옛날에 캬톨릭에서도 면죄부(免罪符)와 신비주의에 일환인 주술 등으로 인해 폭망하기 직전에 루터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있은 후 가까스로 살아난 캬톨릭은 그제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금처럼 되살아날 수 있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불교도 지금 이들 나라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역사는 왜곡할 수 있어도 사실에 입각한 자료들은 왜곡할 수가 없거든요.
여기에 대해서 역사학자들이 밝힌 자료인 동영상 하나를 같이 보겠는데요.
저는 스님은 아니지만 이 내용은 불교 쪽 관계자분들이 많이들 보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인데요.
특히 큰 스님들과 일반 스님들이 다 함께 모여서 같이 많이 보시고 정신들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인데요.
어떻게 인도 불교가 망해갔는지 함게 보시지요.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제목: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유. 불교와 힌두교가 대립하던 인도에서 이슬람은 불교의 완벽한 대체재였다.
https://youtu.be/oq8ey-jqYZI
동영상 자료에 이런 내용이 나온답니다.
(1)
[돈]이 사찰로 몰리게 되어 부유해지면서 스님들의 나태함으로 인해 수행은 멀어지고 형이하학(形而下學) 적 유물론과 철학과 사상 등으로 흐르게 되면서 불교의 본질을 잃어버렸다는 내용, (현 한국불교도 점점 더 이러한 길로 가고 있지요.)
(2)
부처님이 그토록 싫어하셨던 형이상학(形而上學) 적 주술(呪術) 행위와 같은 신비주의와 무당처럼 점(占)을 쳐주거나 제사(祭祀)를 지내는 등의 행위로 부를 축척하는 일 등으로 다른 종교와 별반 차이를 못 느낀 중생들이 스스로 힌두교나 이슬람교 쪽으로 떠나가는 내용, (우리로 치면 불교에서 기독교 쪽으로 빼앗긴 것과 같습니다.)
(3)
부처님이 중생들의 수준에 맞게 쉽게 설명해 놓은 것들을 후대 사람들이 학자들만 알아볼 수 있도록 철학적이거나 학문적으로 부처님 말씀을 어렵게 만들어 중생들의 마음을 떠나가게 하는 내용, (이 내용도 우리 불교가 미련하게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내용인데요. 이로 인해 점점 불자들이 줄고 있는 추세임.)
동영상 내용이 현재의 한국불교와 많은 것들이 닮아있지 않은가요?
혹시 여러분들은 사람들 마음을 가장 빨리 더럽힐 수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나요?
그것은 바로 [돈] 이랍니다.
돈보다 빨리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물건도 없지요.
여러분들은 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제 경우는 거의 평생을 돈놀이 아니면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공무원들과 거래처 직원들에게 뒷돈을 찔러주면서 먹고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경우인데요.
그래서 돈에 대해서는 그 특징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랍니다.
제가 그동안 돈에 대한 철학 하나가 생겼다면 사람들 마음을 가장 빠르게 파고들 수 있는 것이 돈이라는 것인데요.
어느 나라나 돈으로 해결 안 되는 일은 거의 없지요.
돈이라는 물건은 사람들을 모이게도 할 수 있고 내 쫓을 수도 있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요 여러분들은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나요?
왜 기독교는 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데 불교 쪽은 그 반대일까요?
특히 기독교 쪽은 젊은 층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드는데 반해 불교 쪽에서는 젊은 사람들 마음을 거의 못 얻고 있는 실정일까요?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돈을 어떻게 다루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특히 불교는 동영상에서도 나오지만 돈을 멀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공(空)의 종교이고 무(無)의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공(空)을 가르치는 종교이고 무(無)를 가르치는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공(空)을 증득하기 위한 종교이고 무(無)를 증득하기 위한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한국불교가 조선 시대 때 그렇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혹시 아시나요?
그것은 바로 배가 고프고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랍니다.
여러분들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시대 때 일반 불자들이 아니었으면 스님들은 남아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불자들이 스님들에게 먹을 것이며 입을 것이며 때로는 노동을 통해 스님들과 같이 밭을 개간하고 논을 개간하면서 그런 가운데에서도 스님들이 피나는 수행을 하는 모습들을 불자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모진 탄압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랍니다.
스님들이나 불자들이나 어떡해서든지 살아남아야겠다는 오기가 뻗쳤기 때문이랍니다.
일반 불자들이 스님들이 수행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스스로 마음들이 우러나와 팔을 겉어 붙이고 도왔던 것이랍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는 데로 당연하다는 듯이 받고 있지요.
자료들을 찾아보면 조선시대 때 불교가 엄청 어려웠답니다.
저는 불교 쪽으로 입문한지는 얼마 안 되지만 평생을 돈놀이 아니면 기독교 쪽에서 일을 한 사람으로서 한 말씀 올린다면..
어느 단체든 돈은 필요하지요.
불교나 기독교나 돈이 있어야 운영을 할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돈을 벌어도 지금처럼 벌면 욕을 먹는답니다.
돈을 써도 지금처럼 쓰면 욕을 먹고요.
돈이라는 것은 베푼 만큼 되돌아오는 법이랍니다.
받기만 하고 내놓을 줄 모르면 누가 거저 주겠습니까?
이것은 기독교가 참 지혜롭게 잘하고 있는 편인데요.
분명하게 제 눈에 보이는 것은 불교 쪽 사람들은 돈을 전혀 못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모아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특히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쪽으로는 전혀 모르고 있답니다.
돈을 운영하는 기술은 불교 쪽이 기독교 쪽에 많이 배우셔야 한답니다. (진심)
기껏 해봐야 몇백억 가지고 싸울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가 사채업을 오래 하면서 제 눈에 보였던 것은 돈을 만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 돈을 만지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돈을 만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 돈을 만지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는 이들은 돈이 없어도 탈이지만 돈이 있어도 탈인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리고 돈을 만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 돈을 만지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이 돈이 없어도 싸우고 돈이 있어도 싸우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입만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 입만 아는 사람을 수전노(守錢奴)라 하지요.
그러나 돈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의 특징은 골고루 나누어 줄 줄을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열 개 중에 다섯 개만 취하고 나머지는 떡밥으로 쓸 줄을 알지요.
그리고 다음에도 다섯 개만 취하고 나머지는 중생들을 위해 씁니다.
그리고 중생들은 더 많은 재물들을 교회에 바치지요.
이렇게 몇 번만 굴리면 금방 백이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식 방법이지요.
그들은 처음에는 절반 이상을 중생들을 위해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신도가 점점 늘어나고 수익도 늘어나면서 번창해 갑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불교는 어디 그런가요?
한번 자기 입으로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인데요.?
거기다가 염치까지 없습니다.
이런 곳에 어떤 젊은이들이 모여들까요? ^^~
그리고 돈을 만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 돈을 만지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들 중에 또 하나는 반드시 돈 때문에 부정부패가 일어나서 조직이 와해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돈을 걷어들일 줄만 알고 베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일러 수전노라 합니다.
그래서는 안된답니다.
제가 한국불교에 방법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해보십시오.
(1)
제일 먼저 하셔야 할 일은 부유한 절에서는 가난한 절을 위해 가지고 있는 재물들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십시오.
(2)
그리고 만 원이 모이든, 십만 원이 모이든, 백만 원이 모이든 모이는 돈의 절반은 무조건 불교라는 이름 아래 모여드는 사람들(새로운 신자들 포함)을 위해 지출을 해보십시오.
(3)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중생들이 찾아오면 친견비나 천도재나 제사 비용이나 명패 등은 일체 돈을 받지 말고 무료로 정성껏 해주십시오.
이렇게 하면 처음에는 좀 어려워도 반드시 무수히 많은 불자들이 모이게 될 것이고 절 살림 또한 어느 절이나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어른들이 부모 제사를 절에서 모시는데 기독교인인 아들이나 며느리들이 절에 안 오고 배길까요? ^^~
그리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에게 너무 길게 설명을 하지 말고 아주 간단하고 부드럽게 부처님 법의 핵심만 5분 정도 설명을 해주고 자꾸 가르치려 들지 말고 나머지는 절 안에서 편안하게 떠나가신 부모님을 기리면서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보십시오.
절은 이렇게 어느 중생이든 모든 중생들의 모여서 대화하고 토론을 하는 분위기로 놀이터가 되어야 한답니다.
즐거움이나 당장 마음에 와닿는 것이 없는데 중생들이 모이겠습니까?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큰 스님들이나 일반 스님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로 바꾸어 나가야 한답니다.
"나는 스님이다."하는 이런 자세는 아주 잘못된 문화랍니다.
지금의 한국은 많이 부유해진 나라가 되었답니다.
지금이야말로 국민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신들을 바짝 차려야 할 시기랍니다.
이럴 때 수행자들이나 한국불교는 어느 길을 선택해서 가야 할지?
잘 생각하고 선택하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어설프게 돈맛에 들리시면 수행은 고사하고 그 속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려운 것이 돈이랍니다.
특히 수행자들은 더 그러하고요..
왜냐하면 오늘날의 출가자들 대부분은 가장 힘들게 세상을 살아오시다가 출가를 하신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이때다 싶은 그 유혹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을까요? ~
그러나 아무쪼록 지금은 불교를 사랑하게 된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모범이 되는 한국불교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제 마음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도 한국 불교가 한 번 마음만 제대로 먹고 개혁을 한다면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 보고 있는데요.
그것도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믿고 싶은 마음이 제게는 있답니다. ♡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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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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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제가 쓰는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그리고 글귀가 너무 길어질 것 같은 내용들은 "아무튼" 이란 글귀로 처리하고 있는데요 다른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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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질문을 주셨는데요.
간단한 질문들은 바로바로 답변을 드리고 있지만 간단하지 않은 질문들은 바로 답변을 못 드리고 모았다가 틈 나는 데로 답변을 보내드리고 있답니다.
오늘은 이렇게 묵혀두었던 질문 중에..
"깨달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려요?"
라는 질문이 젊은 층에서 많았는데요.
오늘은 여기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질문은 맞지 않는 질문이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이미 깨어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신이 깨어 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지요.
이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랍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는 방법이 현재 이 순간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이고요.
이번 질문은
"깨달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려요?"
라는 질문 보다
"성불을 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려요?"
라고 질문하는 것이 맞답니다.
그래서 "성불을 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려요?"라는 질문으로 고쳐서 답변드리겠습니다.♡
이번 내용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믿거나 말거나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제 자신이 스님이 아니다 보니 믿기지 않는 이런 내용들은 그동안 자제를 해왔었는데요.
그러나 질문이 있는 경우에는 답변을 드리고 있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불하기까지의 기간은 수십 억겁이 걸린다."
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는 분명히 전생에 수도 없이 깨달으신 분들도 많이 계실 겁니다.
자신이 전생에 얼마나 큰 도인이었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의외로 아주 많다는 점입니다.
다만 자신이 지금 깨어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지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어느 누구나 그동안 수십 억겁 동안 수행을 해오신 분들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이랍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은 아직 모르고 계시는 것이고요.
이 내용은 세존과 사리불과의 대화에서도 나오는 내용인데요.
깨닫게 되면 사리불처럼 여러 가지 과거 생들을 알게 된답니다.
그중에 하나가
"아 내가 오랫동안 수행을 해오던 사람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고요. (진실)
깨닫기 전에는 전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답니다.
그래서 어리석다 하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자기가 늘 쓰고 있고 자기가 늘 들고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지금 다른 곳을 찾아다니면서 헤매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어리석다 하는 거랍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오른손에 하드를 들고 있으면서도 "내 하드 어디 있지?" 하면서 우는 것과 같답니다.
그만큼 가까이에 있는 것이랍니다.
이런 내용을 먼저 이해하시고 이번 내용을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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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여러분들이 알고 계셔야 할 큰 틀은 두 가지인데요.
깨닫고 보면 누구나 아실만한 내용이지만 그전에는 믿고 들을 수 박에 없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이 안에 속해있고 저도 이 이야기 속에 속해 있답니다.
그 두 가지는 중생(衆生)과 윤회(輪廻)입니다.
수행에 관한 첫 번째 단계는 고(苦)를 알아차리는 단계로 시작을 하지만
깨닫고 성불을 하는 과정은 당연히 중생이 그 주인공이고 수십 억겁의 윤회를 통해 점차적으로 성불까지 이르게 되는 거랍니다.
물론 저 또한 그 과정에 있는 사람이고요.
아무튼 중생(衆生)의 뜻은 이렇게 생각을 하십시오.
전 우주에 있는 전부라고요. (※)
전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이 중생 아닌 것이 없다고 보십시오.
먼저 우리 몸만 해도 수많은 중생들과 함께하고 있답니다.
우리 몸 안에는 수많은 세포들과 미생물들이 같이 살고 있지요.
그들도 모두 중생들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들뿐만이 아니라 나무나 돌에도 수많은 중생들이 같이 뭉쳐 있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도 과거 생에는 바로 이런 단계에 계시던 분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실)
아무튼 이들 각자 각자를 소우주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요.
왜냐하면 안이나 박이나 같은 원리로 윤회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윤회는 한 치 오차도 없이 흐르고 있답니다.
작게는 우리 몸이 반복적으로 윤회를 하고 있고 좀 더 크게는 대 자연이 봄여름 가을 겨울 등으로 윤회를 하고 있고 더 크게는 우주의 횡성들이 주기적으로 윤회를 하고 있고 더 크게는 전 우주가 이 마음 법 하나로 굴러가고 있답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앞날을 내다 보기도 하셨고 구름의 이동 경로를 보고 앞날을 대비하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수많은 중생들은 알게 모르게 인연 따라 서로 합치기도 하고 서로 분리되기도 하면서 윤회를 하고 있답니다.
부처님 표현대로 하면..
어느 것은 생명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고 또 어느 것은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들도 있답니다. (진실)
이번에는 윤회(輪廻)에 관한 내용인데요.
이 윤회는 그냥 무량겁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무량겁이란 시작과 끝이 없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깨닫고 보면 이것은 도저히 없어질 수 없는 그런 거랍니다.
마치 허공과 같거든요.
의식이 깨어서 안으로 살짝만 돌려보십시오.
내가 나를 보듯이.. 그러면 알 수 있답니다.
아무튼 저나 여러분들이나 끊임없이 윤회를 반복하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가운데 어느 중생이든 미생물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점차 점차 높은 수준의 단계까지 수십 억겁을 거치면서 올라왔답니다.
사실은 올라온다는 말 자체도 맞는 얘기는 아니지만 표현상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높은 단계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실 건데요.
마음 법으로 보면 어마어마하게 높은 수준이랍니다. (진실)
다만 너무 높은 수준이다 보니 여기저기 쓸데없는 곳에 의식들이 가 있어서 그것이 문제인데요.
여러분들도 의식만 마음 쪽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충분히 견성성불을 할 수가 있답니다. (진실)
왜냐하면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 짐승들이나 동물들도 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그 의식을 내 마음대로 부릴 수가 없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랍니다.
아무리 똑똑한 개라도 아무리 의식이 발달된 원숭이나 고양이나 박쥐라 하더라도
의식을 마음 쪽으로 돌이켜보라 하면 쉽게 돌이켜 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동물이라 하는 거랍니다.
혹 가다가 모르지요?
동물들 중에서도 마음을 보고 깨닫는 경우가 있을지도..? ♡
이렇게 저를 포함해서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은 각자의 인연에 따라 수십 억겁 여러 단계를 거쳐서 미생물 이전 단계에서부터 지금 여기까지 오셨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래서 본래 어느 중생이든 나라고 하는 것이 없다 하는 것이고요.
여러분들은 아직 몰라서 그렇지 전생에 나를 나라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지금의 나를 나라고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의 내가 나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이 자리에서 보면 전체가 나랍니다. (진실)
우리의 몸은 그저 서로 수많은 세포들과 물질들이 인연이 돼서 뭉쳐 있는 하나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여기서 진짜 나라고 굳이 말한다고 하면..
육식 안에서 알아차리고 있는 놈을 나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육식의 입장에서 봤을 때나 그렇지 마음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전 우주가 한 통이랍니다.
흔히 이런 얘기들을 하잖아요?
"죽으면 영혼이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라는 얘기요?
이것은 로마의 [천동설]과 같은 얘기랍니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하늘에 떠있는 별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그러나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끼리 인연 따라 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주도 그대로의 그 공간만 있듯이 본성도 늘 그 공간에서 알아차리고 있고 모든 것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진실)
본성의 알아차림은..
배고프면 배고픈 것을 알고, 화가 나면 화가 나는 것을 알고, 들어가고 나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을 아는 바로 그놈. !
이것을 확실히 보고 느끼고 아는 것을 견성이라 한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닦고 말고도 할 것이 없답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스스로 들고 있어서 문제인 것이지요.
그것만 놔버리면 끝나는 것인데 그것이 아까워서 못 놓고 계시는 거랍니다. (핵심)
이 상태가 중생들의 마음이라 생각하시면 된답니다.
자기가 자기의 마음에 연기를 피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즐거움이 올라오면 그 즐거운 것이 자기 마음이라고 착각을 하지요.
그리고 그 즐거움이 마음에 안착되고 그 즐거움에 유혹을 받습니다.
즐거움뿐만이 아니라 괴로움이나 슬픔이나 화냄이나 모든 것들이 그러하지요.
이것을 정확히 알려면 의식을 마음 쪽으로 돌려야 한답니다.
그리고 깨어서 보셔야 하고요.
그리고 의식을 안으로 돌려서 알아차리고 있는 놈을 조용히 느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있을 겁니다.
그것을 깨닫고 보면 마치 허공과 같고 거울과 같고 구슬과 같답니다.
아무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연 따라 사람 단계까지 올라왔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 윤회를 지구 한 곳에만 연류 시키면 안 된답니다.
전 우주로 보셔야 한답니다.
윤회에 관한 인연법은 수도 없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랍니다.
아무튼 여러분들은 그냥 지금 사람 단계까지 와 있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사람 단계는 수십 억겁의 인연법으로 보았을 때 어마어마한 단계라고 보시면 되고요.
그리고 이 단계를 마지막 단계로 보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지금도 무수히 많은 축생들이 사람 단계로 올라오는 경우랍니다. (저도 많이 보고 있는 경우임.)
그리고 중생들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도인(보살)들이 있답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전생에 큰 도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지요. (진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를 들어 전생에 큰 도인이 이번 생에도 큰 도인이 되라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자기가 예전에 큰 도인이었는지 걸뱅이 였는지 전혀 모른다는 뜻입니다.
어느 생이든 이법을 만나지 못하면 전생에 아무리 큰 도인이었다 하더라도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경우가 허다하답니다.
이렇게 몇 생을 거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경우는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이법을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그냥 돌아서는 경우가 허다하답니다.
왜냐하면 굳이 이 법을 만나지 않더라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법 만나기가 어렵다 하는 것이고 맹구우목(盲龜遇木) 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느 생애에서 이법을 다시 만나든지 마지막에 이루었던 수행 단계를 그대로 이어서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1~2~3~4~5~6~7~8~9 생이 있다고 했을 때 3생에 터득한 깨우침과 도력을 4~5~6 생에 이법을 못 만나 건너뛴다고 해도 7생에 다시 이법을 만나서 깨우치면 3생에 터득한 깨우침과 도력은 그대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번 생에 깨우치면 다음 생에도 반드시 깨우친다는 내용들은 모르고 하는 소리랍니다.
문제는 본인이 깨닫기 전에는 전생에 내가 어떤 단계였는지?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보고 내가 수행자였는지 아닌지도 절대로 알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주리반다가처럼 바보일 수도 있고,
앙굴마라 처럼 살인귀 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현재의 생이 아무리 바보라 해도, 아무리 살인귀라 해도 전생에 오랫동안 수행을 해오던 사람이 이법을 만나게 되면 금방 깨달을 수 박에 없는 것이라..
"성불을 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려요?"
라는 내용의 답을
"수십 억겁이 걸린답니다."
라고 대답을 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이것은 열심히 하는 길밖에는 없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방법만 알려주고 지켜볼 뿐이지 그 이상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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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보자 내용
이 글은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한 내용이랍니다.♡
오늘도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내용 중 고성제(苦聖諦)를 끝내고 집성제(集聖諦)의 수행 방법인데요.
사성제의 전체 내용을 한문식으로 표현하면..
고(苦)·집(集)·멸(滅)·도(道)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네 가지의 수행 방법은 해탈로 가는 수행 순서를 말하는 내용이랍니다.
고(苦)와 집(集)은 깨어서 알아차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말씀드렸고,
멸(滅)은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말씀드렸고,
도(道)는 이 모두를 성공시킨 후 [팔정도]나 [바라밀]등을 기준으로 행하면서 후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간화선도 이 사성제를 응용해 중국인들에게 맞게 수행 방법이 개발된 것이라 말씀드렸답니다.
사성제를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1)
고통과 괴로움(즐거움도 포함) 등을 깨어서 알아차려보아라,
(2)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 원인을 알아차려보아라,
(3)
마음에 것들은 욕망의 완전한 소멸이며, 버림이고, 포기이고, 그것으로부터의 해탈이며, 초연함이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마음에서 들고 있지 말고 내려놓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4)
도(道)는 깨닫고 증득을 했으면 [팔정도]나 [바라밀] 등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가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지금은 이러한 것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마시고 열심히 나와 내 마음과 현재 이 순간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일에만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간화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화두를 열심히 깨어서 알아차려보시고요.. (고와 집)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수행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답니다.
그리고
초보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1)(2)랍니다.
(1)과(2)가 숙달된 분들은 (3)으로 들어가시면 된답니다,
(3)을 이루신 분들은 (4)는 한결 수월하게 이루어 나갈 수 있답니다.
그러나 바로 (3)과 (4)로 들어가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건데요.
그러나 (3)은 바로 해보시는 것은 의미가 있답니다.
그 이유는 과거 생에 수행을 오래도록 하셨던 분들은 가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바로 (4)를 통해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랍니다.
왜냐하면 (4)는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팔정도 등을 기준으로 오후 공부에 해당하는 것들이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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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2)를 하라는 이유는 예를 들어 비유를 하자면
마른 땅에 박힌 잡초를 뽑을 때에는 물을 주고 갈아엎어야 잡초가 잘 뽑히고 곡식을 심기가 좋은 것과 같답니다.
고(苦)의 알아차림을 통해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저도 이것을 거쳤답니다.)
그러면 한결 수월하게 멸(滅)을 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1)(2)를 거치지 않고도 (3)이 되시는 분들은 바로 (4)로 들어가십시오.
참고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고통이란 즐거움과 행복도 포함이 된답니다.
한번 즐거움을 맛보면 대부분이 또 그 즐거움을 맛보려고 다시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 안에 엄청난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밖에서만 즐거움과 행복함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지요.
부처님이 했던 방법은 이렇게 네 가지의 순서로 수행을 해나가는 방법인데요.
말만 어렵지 마음먹고 실제로 해보면 쉽답니다.
다만 방법을 모르고 하거나 하고자 하는 의욕과 성의가 없으면 정말로 힘만 들고 어렵지요.
(수행자들 중 이런 분들이 정말로 많음)
간화선도 사성제의 수행 방법을 그대로 응용한 수행 방법이랍니다.
고(苦)는 화두로 대신한 것이고,
집(集)은 의단(疑團)을 말하는 것이고,
멸(滅)은 화투 타파를 이르는 것이고,
도(道)는 도인의 길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우리들도 오늘 내용을 잘 듣고 부처님 식으로 따라 해 보겠습니다.^^
(※)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나의 몸을 포함해 마음 밖의 모든 것들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먼저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어보겠습니다.^^♡
(※)
들으실 때 각자가 본인들 마음과 연관시켜서 들어보십시오.
그러면 한결 이해하시기 좋고 어쩌면 중간에 깨달으시는 분들도 나올 수 있답니다.(진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I9V6YYR96JCtEaMZJYfcrU6eEYW3u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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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을 깨어서 알아차리란 뜻이랍니다..)
대념처경.15법념처 E4성제 2집성제
2.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 집성제
(저번 주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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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시각 대상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소리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향기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맛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촉감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마음의 대상(법)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일어나고 거기서 자리 잡는다.
~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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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계속해서 비슷한 내용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당시의 표현 문화가 이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모든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후대의 중생들에게 남기기 위해서 기록해둔 것인데요.
당시 사람들의 수준에 맞게 기록해둔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처럼 배운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언어를 많이 썼답니다.
그래야 그나마 기억들을 하고 따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반복함으로 해서 기억되게 함이지요.
오늘 내용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눈] [귀] [코] [입] [몸/피부] [마음] 등을 통해 들어온 정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면 눈과 귀를 통해..
"보기 좋고 듣기 좋은 것들은 유혹적이고 즐거운 것이다."
하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기 좋고 듣기 좋은 것들이 다시 나타나면 유혹을 받고 즐거워하지요.
그리고 그쪽으로 몸과 마음이 끌려갑니다.
술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그 술의 유혹에 다시 끌려가기도 하고..
돈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그 돈의 유혹에 다시 끌려가기도 하고..
향락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그 향락의 유혹에 다시 끌려가기도 합니다.
제 경우는 예전에 일반 사람들보다 특히 더 그랬답니다. ^^" (진실)
오늘 부처님 말씀은 이러한 것들을 알아차리라는 얘기입니다.
즐거운 것이든 슬픈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그 어떤 것이든 내 마음을 알아차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수행의 기초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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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행자 내용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네 분을 위해 신설된 글이랍니다. ♡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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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갈호 안에 넣겠습니다.^^)
37:28~
★ 여래의 몸
(여기서 말하는 여래의 몸이란 본성(불성/성령/마음)을 뜻한답니다.)
★ 벗들이여, 여래의 몸이란 곧 법신(法身)을 말함이니 이는 바른 앎으로부터 생긴다.
(늘 깨어있음에서 생긴다는 뜻)
★ 여래의 몸은 공덕에서 생기고 보시에서 생긴다.
(본성의 마음에서는 늘 배푸는 마음이 생긴다는 뜻)
★ 또한 계를 지키는 데에서 생기고 삼매에서 생기고, 지혜에서 생기고, 해탈에서 생기고, 해탈을 자각하는 앎에서 생긴다.
(본성의 마음은 늘 계를 지키려 하고, 삼매에 들려고 하고, 깨어 있으려 하고, 마음을 비우려 하고, 내 마음이 비워져 있는지? 항상 점검한다는 뜻입니다.)
★ 또한 자비[慈]와 동정심[悲]과 기쁨[喜]과 평등심[捨]에서 생긴다.
(본성의 마음에서는 늘 이러한 마음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 또한 보시와 규범과 자제(自制)로부터 생기고, 십선(十善)을 실천하는 데에서 생기고, 인내와 온정에서 생기고, 굳게 노력하는 선근에서 생기고, 네 가지 선정과 여덟 가지 해탈과 세 가지 삼매와 네 가지 마음을 집중하는 데에서 생기고, 많이 듣는 것과 지혜와 방편에서 생긴다.
또한 서른일곱 가지 깨달음으로 이끄는 적절한 방법으로부터 생기고 고요한 마음[止]과 명확한 관찰[觀]로부터 생긴다.
여래의 몸은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부처님에게만 있는 열여덟 가지 특성에서 생긴다.
모든 바라밀다로부터 생기고 여섯 가지 신통력과 세 가지 앎[三明]으로부터 생긴다.
갖가지 악을 끊고 모든 선을 끌어모으는 데에서 생긴다.
또한 진리로부터 생기고, 옮음으로부터 생기고, 게으르지 않는 데에서 생긴다.
벗들이여, 여래의 몸은 한량없는 선을 실천하는 데에서 생긴다.
그대들은 마땅히 이와 같은 여래의 몸을 믿고 따르는 마음을 길러야 하며 특히 모든 사람들의 번뇌라는 병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이같이 바르게 완성된 깨달음을 향해 크게 발심해야 하는 것이다.”
릿차비족 사람 유마는 자신의 문병객들에게 이와 같이 법을 설했으며 그 결과 8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고자 크게 발심하였다.
(본성의 마음에서는 늘 이러한 마음들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39:40
(보충 설명)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유마경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마음과 유마거사의 마음을 비교해 나가면서 수행을 해가시면 틀림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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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이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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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세존께서 어느날 빛을 따르는 마니주를 오방천왕들에게 보이시고 물으시되 "이 구슬이 무슨 빛깔이냐? 하시니 오방천왕들이 제각기 다른 빛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세존께서는 구슬을 소매 속에 숨기시고 손을 흔들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구슬은 무슨 빛깔이 냐" 하셨다. 이에 천왕들이 대답한대 "부처님의 손에는 구슬이 없거늘 어디에 빛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세존께서는 탄식하시기를 "그대들은 어찌 그다지 심하게 미혹 한가. 내가 세간 구슬을 보일 땐 제각기 청, 황, 적, 백, 흑 등의 빛이 있다고 우기더니, 내가 참 구슬을 보이니 전혀 모르는구나" 하셨다 이에 오방천왕들이 모두 도를 깨달았다.]
라는 선문이었는데요.
(답)
마니주
이 내용은 참으로 세존께서 기상천외한 비유로 본성(마음)을 표현한 내용인데요.
세존 깨서는 마니주를 마음에 비유한 내용이랍니다.
우리들 마음을 한번 살펴보면 본문 내용처럼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지요.
때로는 즐거운 마음..
때로는 슬픈 마음..
때로는 괴로운 마음.. 등..
우리들 마음은 수도 없이 많은 색깔을 가지고 있고 수시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나의 마음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본래 마음은 그 어떤 색깔도 없는데도 말이지요..
그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랍니다..
이번 선문의 세존의 말씀을 요즘 말로 바꾸어서 말한다면..
[내가 일반적인 마음을 보여보라 할 땐 제각기 즐거움, 슬픔, 괴로움, 등의 마음이 있다고 우기더니, 내가 너희들에게 참 마음을 보여주니 전혀 모르는구나]라고 말씀하시는 내용과 같답니다.
쉽게 말해 괴롭고 슬프고 즐거운 그런 마음들이 참 마음이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그 마음이 참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깨닫고 보면 그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답니다.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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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다음 주에도 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려 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14
[세존께 오통선인이 묻되 "부처님은 여섯 신통이 있으시고, 나는 다섯 신통뿐이니 어떤 것이 나머지 한 신통입니까?" 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선인아!" 하고 부르시니 선인이 대꾸하거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 한 신통을 그대는 나에게 물었는가?" 하셨다.]
이번 내용도 참 재미난 표현인데요.
부처님이 콕 집어서 재치 있게 에둘러서 하시는 말씀이랍니다.
이번 내용에서도 마음을 뜻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잘 알아차려 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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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음 주 선문염송
뜻을 아시는 분들은 간단히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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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20편)
20211224
양 화상에게 어떤 중이 "거울을 녹여 형상을 만드는데 형상이 이뤄진 뒤엔 밝음이 어디로 갑니까?" 하니 화상이 말호대 "마치 대덕이 어릴 때의 얼굴과 같으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였다. [법안이 다르게 말호대 "어느 것이 대덕이 부은 형상인고?" 하였다.] 중이 다시 묻되 "형상이 이뤄진 뒤엔 어째서 미치지 않습니까?" 화상이 대답호대 "비치지는 못하더라도 한 점도 속이는 것은 안 되느니라" 하였다.
("대답호대" 라는 글자는 원본 그대로 옮겨서 그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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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용에도 아주 깊은 뜻이 들어있는데요.
여러분들도 재미 삼아 한번 보시고 답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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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법문 동영상
제목: 생사법과 열반법 _ 종범스님 [큰 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저는 개인적으로 스님들 중에서 한문 풀이로 제일 설법을 잘 하시는 분을 한번 들어보라고 하면 종범 스님을 들고 있는데요.
첫판부터 잘못된 해석을 지적하고 계시는데요.^^
같이 한번 들어보시겠습니다.
이 외에도 설법을 들어보면 잘못된 한문 표현으로 설법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답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uxJ-5iNC6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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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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