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 / 최순덕
해수욕장인데 놀이공원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송도해수욕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해수욕장으로 일제 강점기 때 개장한 역사 깊은 부산의 명소다. 바다에 설치한 온갖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머리를 치든 돌고래, 물속으로 미처 다 끌고 들어가지 못한 돌고래의 꼬리, 돌고래 쇼를 연상하는 원형의 틀에 붙어버린 세 마리의 작은 고래들이 물속에서 놀고 있다. 꼬마였을 때 넓은 신작로가 어른이 되어 다시 봤을 때는 골목길보다 작게 보이던 고향의 길 같다. 새롭게 단장하여 발길을 끄는 암남공원과 묶어서 옛 영화를 다시 꿈꾸는 송도해수욕장이다. 암남공원 둘레길과 해안산책로를 거쳐 송도해수욕장으로 오는 코스를 택하여 걷는다.
암남공원 주차장에서 신생 엘리베이터로 오른다. 암남(岩南)이라는 이름대로 바다로 향하던 대륙의 남쪽 끝, 해안 절벽의 바위가 절경이다. 옛날에 없던 ‘용궁구름다리’를 건넌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바닷속 용궁에 닿기라도 할까, 바로 옆의 송도해수욕장과 곡선으로 휘어지는 남항대교, 영도의 흰여울마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위치가 달라진 해상케이블카가 머리 위로 지난다. 철썩이는 파도를 대책 없이 덮어쓰고 있는 붉은 바위를 내려다보고 한 바퀴 휙 돌아나간다.
바다를 향하여 툭 튀어나온 용궁구름다리, 철제구조물을 떠받치고 있는 바위가 안쓰럽다. 인위적인 시설에 오히려 자연경관이 훼손될까 은근히 염려스럽다.
길은 끝없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해안 절벽이 명품인 숲길이다.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숲길이지만 오를수록 바짝 곁을 따르는 낭떠러지가 긴장감을 준다. 나무 사이로 슬쩍 보이는 푸른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
계단이 끝나고 폭신한 흙길이 이어지니 비로소 윤슬 고운 푸른 바다가 한가롭게 눈에 들어온다. 한 걸음의 힘으로 오르다 보니 동백 쉼터가 나온다. 한 겹 겉옷을 벗고 숨을 고른다. 잠시 쉬었다가 절벽 갓길을 타고 조금 더 오르락내리락 가다 보니 포구나무 쉼터가 나온다.
쉼터를 지키고 있는 포구나무가 명품이다. 나무 둥치의 뒤틀림이 예술이다. 이곳은 물이 마르지 않아서 외로이 해안 수비를 하던 장병도 물을 찾아들었고, 마을의 아낙네도 물을 길으러 고개를 넘어왔단다. 바다로 고기잡이 간 남정네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던 곳이었다니 왠지 엄숙해진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는 언덕에 야생화 노루귀가 소담스럽게 피었다. 갈맷길 걷기를 하면서 포구나무 사이로 얼굴을 넣고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새롭다.
두도전망대로 간다. 점 하나 똑 떨어진 꽁무니 같은데 섬의 머리란다. 원래 하나였던 곳이 중간에 끊어져 섬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테트라포스가 가득 놓여 물길을 막고 있다. 머잖아 사람의 길도 이어질 듯, 아직 오가지 못하는 섬을 바라보고 전망대에 앉는다. 지나왔던 해안 절벽에 비스듬히 누운 지층과 푸른 물이 만나는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항 묘박지에 멈추어선 배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넓고 푸른 바다는 그저 바라만 봐도 후련해진다.
희망정을 향하여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갈림길에서 잠시, 희망 고문 같은 오르막길을 포기하고 암남공원 후문 쪽 내리막길로 가고 싶은 갈등이 인다. 희망정이 마지막 오르막길이라니 힘을 낸다. 정자에 앉아 멀리 두송반도와 감천항, 서쪽 바다를 좀 더 눈에 넣는다.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데크길은 완전 꽃길이다.
활짝 핀 매화가 뿜어내는 향기가 그윽하다. 언제 이런 매화 동산을 만들었을까. 오르락내리락 힘든 길의 끝에 맛보는 꽃길은 말 그대로 고진감래다. 내려오니 숲속에는 진짜 암남공원이 펼쳐진다. 케이블카가 닿는 지점의 위락시설과 곳곳에 설치된 조각품과 적당한 쉼터를 보니 손녀 생각이 난다. 아이들과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오면서 바다를 보고 이곳 숲에서 놀면 딱 좋을 것 같다.
암남공원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하여 해안 절벽 옆구리를 탄다. 길의 이름은 해안산책길이다. 언젠가 태풍으로 끊어진 길 앞에서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파도를 타고 철썩거린다. 구멍 뚫린 철제 계단과 흔들 다리를 건너자니 마음 편한 산책길만은 아닌 듯, 발길에 신경이 곤두선다. 지질 공원다운 다양한 색깔의 지층과 바위들이 저절로 시선을 끈다. 바닷물이 철썩이는 바위틈에 새까만 생명들이 촘촘하게 들붙었다. 파도를 덮어쓰고 너울너울 바닷물이 건네주는 먹이를 먹으며 치열하게 자라고 있다.
송도해수욕장에 닿는다. 태풍으로 바닷가 횟집이 온통 쑥대밭이 되었던 사진이 생각나는 곳에 역시 테트라포스가 버티고 있다. 철벽수비를 하는 병사처럼 어깨를 맞대고 태풍의 횡포에 맞서서 기를 꺾으려는 테트라포스의 임무이리라. 매립지에 빼곡한대형 버스는 계절과 상관없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음을 자랑한다. 그만큼 해수욕장은 좁아져도 명승지의 영광을 되찾아 가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주변을 둘러싼 언덕에는 하늘을 찌를듯한 고층아파트가 해수욕장을 포위하고 내려다본다. 닻을 내리고 휴식을 취하는 상선들이 지켜보는 듯,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과는 확연히 분위기가 다르다.
송도해수욕장은 60년대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지였다. 한때 전국의 관광객이 모여들었고, 신혼여행지로 손꼽히던 명승지였다. 점점 발전하는 주변에 밀려 해수욕장의 기능이 쇠퇴하는 듯하더니 접근이 쉬운 이점을 살려 해상공원으로 되살아났다. 뿌리 깊은 나무의 위력처럼 유서 깊은 송도해수욕장은 송도의 수호신 거북섬을 에워싼 스카이워크, 해상다이빙대, 휴게소 등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지질공원이라는 이름표를 덧달고 곁에 있는 암남공원을 끼고 다시 옛 명성을 꿈꾼다. 조용하고 아담한 송도해수욕장의 변신을 지켜보는 푸른 바다에 드리운 윤슬이 곱다.
첫댓글 최순덕 선생님 새롭게 단장한 송도 암남공원을 아름답게 표현해 놓으셨네요.
얼마전 오랫만에 송도의 밤 풍경을 구경하며 마치 대만이나 싱가폴 같은 느낌을 느꼈답니다.
옛날 처녀때 친구들과 함께 타던 흔들리는 구름다리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하늘을 오가는 케이블카는 수많은 사람들을 싣고
많은 외국인들이 즐기는 송도를 보았습니다. 언제 그토록 예쁘게 단장을 하고
볼거리와 유람선 그리고 낭만이 흐르는 밤바다의 연인들 가족들 참으로 아름다운 송도를 보았습니다.
감천으로 갓 시집을 가서 송도 고개를 넘어 유엔 호텔 모욕탕에서 모욕을 하고 고신대학 고개를 넘어 다녔습니다.
처녀때 여름이면 밤에 해수욕을 즐기던 곳이며 고향같은 포근하고 다스한 곳입니다.
송도의 정감이 넘치는 아름다운 글 잘 음미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