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5월 2일 현재 전체 탑승자 476명 중 174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226명은 유명을 달리했고 76명은 아직 생사를 확인하지도 못했다. 사상 초유의 대참사에 외신들도 ‘한국 여객선 구조에 분노 터지다'(영국 BBC), ‘한국 난파선, 절망에서 분노로’(독일 슈피겔), ‘구조훈련 부재와 인재(人災)가 만든 세월호 참사’(미국 CNN)라며 대서특필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에서 인재(人災)로 인한 대형참사가 일어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에는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있었고 1995년에는 대구 도시가스 폭발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는 다르다. 버젓이 살릴 수 있었던 생명들을 안타깝게 놓쳤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로’ 중 한 사람인 이수성 전 국무총리 역시 이러한 국민들의 정서와 함께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보름째 되던 지난 30일 오전 그의 서울 자택에서 오늘날 우리 현실을 바라보는 이 나라 ‘어른’의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하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참담하다. 너무 아프고 또 괴로운 참사다. 우리 민족, 우리나라가 몇 사람에 의해 최악의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 몇 사람이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이라는 사실이다. 그 몇 명 때문에 대한민국 사람 전체의 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리 민족의 본성은 그게 아닌데…참 슬프다.
문제는 이걸 회복하는데 굉장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어떻게 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다. 국민 전체가 자신의 자긍심, 자신의 참 인성을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 이번 사태를 두고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도 합니다.
“영국에서 난파를 당했을 때 선장이 선원들에게 노약자를 우선으로 승객들을 구조하라 지시를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Be British!’ 나는 영국인이라는 자긍심의 표현이다. 그런데 요즘 누가 ‘Be Korean’이라고 한국사람답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이가 있나? 없다. 언젠가부터 ‘한국사람답다’는 것에서 자긍심이 사라졌다.
슬프지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 과거 우리 민족은 광활한 대륙을 호령했고 세계에 자랑할 만큼 뛰어난 문화유산을 가진 민족이었다. 그 피가, DNA가 고스란히 지금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조선 시대 들어오면서 한민족의 역사를 부정하고 중국에, 일본에 복속하면서 이런 것들이 사라진 것이다.”
- 이번 참사를 보면서 언론들이 이 전 총리께서 취임하기 직전(이 전 총리는 1995년 12월 취임했다) 연이어 일어난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대구 도시가스 폭발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성수대교, 대구 도시가스, 삼풍백화점 사고까지, 이런 것들은 잘못이 누적되어 일어난 사고였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다르다. 이번 참사는 당장에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을 두 눈 뜨고 놓친 것이다. 물론 참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제들이 누적된 것이긴 하지만, 사고 직후부터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는데 해결을 못 했다.
온 국민이 선장, 해경, 정부에 대해서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하지만 잘 봐야 한다. 뭘? 지금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말 제대로 성찰해야 한다. 이번 참사를 일으킨 자들에 대해 ‘도덕성’을 운운하는데, 사실 도덕성까지 갈 필요도 없다. 최소한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 가진 본성, 즉 인간다움, 인성만 제대로 된 사람이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고 해결할 수 있는 참사였다. 인성 회복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 ‘인성교육’은 어제오늘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교육법 제2조 교육이념에는 ‘홍익인간 양성을 목표로 한다’며 교육이 지향하는 바른 인간상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문제는 리더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대대로 ‘경제 살리기’를 말해왔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말해서 ‘경제발전’이 우리나라를 망친 것이다. 그래, 물론 배가 곯았는데 어떻게 인성을 말하고 자긍심을 말하겠나.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비로소 그 지점부터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나타난다. 인성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을 치르고 나서 한때 우리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당당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 되었고 세계에서 11위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다. 이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리더들이 ‘돈 돈 돈’ 하고 있다.”
- 모든 초점이 ‘경제’에만 맞춰지는 시대에 인성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인성이란 샘물과도 같다. 한순간에 쏟아내리는 폭포수가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샘이 솟아나듯이 조금씩 조금씩 흘러가는 것이다. 오랜 기간 점철되어 온 이 사회의 부조리, 부정부패는 절대 한순간 바뀌지 않는다. 이 변화의 핵심은 리더의 인성이다. 인성이 바뀌지 않는 이상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게다가 요즘 역사교육, 인성교육 안 하지 않나. 심지어 방해하고 있고. 이런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인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단군을 신화로 만들어버렸다. 다른 나라들은 없는 역사도 만드는 마당에 우리는 있는 역사도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역사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인성은 가짜다. 인성은 갑자기 ‘짠’ 하고 생기는 게 아니다. 인성은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고, 내가 귀한 만큼 남도 귀한 것을 알 때 생기는 거다. 정체성 교육, 역사 교육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 국무총리로 이 사회를 이끌었던 한 분으로서 이번 참사를 보며 느끼는 바가 더 많으실 것 같습니다.
“나는 참 죄가 많은 사람이다. 우리나라 수재들이 다 모인다는 서울대학교 총장을 했고 국무총리를 했던 사람이니 말이다.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쳤고, 국가 운영을 어떻게 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나…. 그만큼 내게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참사, 슬프다. 참말로 슬프다. 언론을 보니 각 시도에 분향소를 설치한다더라. 온 국민이 슬픔을 나누는 것이니 이도 참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분향소에 가서 조문하고 슬퍼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슬퍼하고 분노한다고 해서 이번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형식을 갖춘 뒤 그다음 우리는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봐야 한다.
세월호 대참사는 대한민국에 울리는 거대한 경종과 같다. 이런 참담한 사건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알아차려야 한다. 살아남은 우리가 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막막한 듯하지만 하나하나 해나가면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말 한마디, 행동 하나부터 바르게 해나가면 된다. 그리고 변함없이, 꾸준히 계속 해야 한다. 내가 대통령과 고위관료, 선장 등 리더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대통령만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이렇게나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는 것은 엄청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렇게까지 되었음에도 정신을 못 차리면 안 된다. 우리 국민들이 분연히 일어나야 한다.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할 수 있다!”
이 전 총리는 사고 직후부터 매일 기도를 하고 있다. 단원고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 배에 타고 있던 많은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천당으로, 불교로 말하자면 극락으로 모두 데리고 가셨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잠자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슬퍼만 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이들을 잃어버렸다. 곳곳에서 이 슬픔을 잊지 않기 위한, 잃어버린 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 움직임의 중심에 인성이 자리하기를, 그 인성의 중심에 또한 대한민국의 웅혼한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