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55m. 대한민국 철도역 중 가장 높은 고지대에 있는 역.
서울/고양의 "북한산", 정읍의 "내장산", 경주의 "토문산" 정상보다도 훨씬 높은 역.
대관령 고갯길과 맞먹는 수준의 고도를 자랑하는 역.
그 어떤 철도역도 추전역의 야성을 넘을 자는 없다.
너무 높아 접근성이 불편해 이 곳에서 열차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어 한 때 여객취급을 중지했던 적도 있었지만,
1998년 눈꽃순환열차가 운행함으로서 그 명성을 널리 떨치게 되어
지금은 관광객들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대한민국 도시 중 가장 평균고도가 높은 태백시.
고도가 가장 높은 태백시 안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차역.
그 재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품는 역이다.
해발 고도 855m에 위치한 역이지만, 역 구내는 의외로 넓다.
하지만 급경사 산악지대 한 가운데에 역을 건설하다 보니 승강장을 정말 좁게 만들었다.
휠체어 하나 들어가지 않을 듯한 크기. 한 사람이 서 있기도 버거운 넓이다.
하지만 이제 정규여객열차가 서지 않는 추전역에게는 오히려 넓은 승강장은 사치나 다름없다.
올라오기도 힘들고 주변에 번듯한 마을 하나 없는 추전역이,
95년 여객취급 중지 이후 98년 눈꽃순환열차가 부활하기 전까지 어떻게 건재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추전역 인근 탄광에서 채취되는 석탄이 있기 때문이다.
사북역과 고한역 일대는 이미 탄광이 모두 폐광되어 석탄을 더 이상 캐내지 않지만,
백두대간 고개 너머의 추전역은 아직 탄광을 폐광시키지 않고 그대로 화물취급을 하고 있다.
이렇게 추전역 구내 너머에는 석탄을 긁어모으는 광업장이 있다.
탄광 위에 달린 천막 덕분에 검은 골프장 같은 분위기가 살짝 나기도 한다.
아직 우리나라의 석탄산업은 완전히 죽지 않았다.
무연탄을 싣기 위해 엄청난 수의 화물열차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해발 고도가 가장 높다는 타이틀 말고도 아직까지 탄광이 살아있는 몇 안되는 태백선의 역이기도 하다.
선로와 선로 사이에 승강장을 내다 보니까 추전역 승강장은 정말로 사람 한명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좁다.
이젠 여객열차마저 서지 않는 곳이지만 얼마 전에 교체된 새로운 추전역 폴사인이 당당하게 서 있다.
어째 역사에 걸린 추전역 역명판은 하늘과 잘 어울려 멋진데,
승강장에 서 있는 역명판은 왜 이렇게 어색하게 보이기만 할까.
기둥에 달린 추전역 역명판도 마찬가지로 교체된 지 얼마 안된 물건이다.
예전의 칙칙한 퍼런 역명판이 훨씬 예쁘고 좋은데...
금지 표지판 위에 달려있으니 더욱 어설프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까지 절벽쪽의 승강장에는 구형 역명판이 그대로 살아있다.
비록 몇 십년의 세월에 의해 시커먼 석탄가루에 뒤덮여 글자 하나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버렸지만,
그만큼 오랜 세월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더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 뒤의 숲, 역목과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인 것 같다.
2001년 여름에 제작한 철도청 정지마크.
굉장히 친숙한 풍경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귀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는 것이 여기에서 느껴진다.
햇빛을 듬뿍 받은 대지는 눈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아직 해의 손길이 덜 미친 음지에는 한 달 전에 왔던 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철길 하나를 경계로 모습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건지, 봐도봐도 신기하기만 하다.
두문동재 정암굴을 지나 추전역에 도달한 열차는 300R의 급곡선을 돌며 태백역으로 내려간다.
바로 다음역인 태백역은 해발고도 700m로 추전역과 약 150m나 차이난다.
고한에서 태백까지 넘어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 길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인다.
25~30퍼밀의 구배. 도로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경사지만,
철도에서는 조금만 흐트러져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난 경사다.
고한으로 넘어가는 길은, 전국에서 가장 험한 길이다.
해발고도 855m의 추전역에서도 또 한번 급경사를 올라가, 정암터널을 넘어야만 한다.
이렇게 높디높은 곳에서도 또 올라갈 길이 있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정암터널의 최고 고도는 약 880~900m. 이 보다 더 험한 산길이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의 추전역은 평화롭기만 하다.
저기 뒤쪽으로 보이는 험한 산세가 해발고도 1000m를 넘어가는 태백산맥이라니.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음에도 믿겨지지 않는 사실이다.
전선 하나 보이지 않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
영원히 이런 풍경을 지우지 않고 간직해 줬으면 한다.
언덕을 넘어가는 구불구불 고갯길이 저 아래에 있다.
아래로 끝없이 이어진 급경사길을 보니 슬그머니 현기증마저 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역, 추전역.
평화로운 추전역의 하루는 오늘도 이렇게 서서히 지나간다.
유명세 때문에 초토화된 정동진역과는 달리 개발의 폐해도 거의 없어 더 없이 아름다운 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역.
언제나 말로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추전역이다.
첫댓글 최근 고유가로 인해 연탄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지요.
2년전에 청량리-묵호를 기차로 왕복하면서 추전역을 잠깐 보기는 했었는데... 상세하게 볼수있었네요..잘 봤어요~
아................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