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진행 늦추는 신약, 美FDA 첫 승인
치매 발생 원인 뇌 단백질 제거
초기환자 효과… “치료 이정표”
미국과 일본 제약사가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세계 최초로 미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승인을 받았다. 초기 치매 환자의 진행을 늦출 수 있어 ‘치매 극복의 이정표’라는 평가가 나온다. 6일(현지 시간) FDA는 올 1월 신속 승인을 받은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네카맙-임브루비)가 임상 효과를 입증했다며 정식 승인을 의미하는 통상 승인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레켐비는 일본 에이사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개발한 치료제로, 치매 원인으로 지목되는 뇌 단백질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한다.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18개월 동안 2주마다 레켐비를 투약한 환자는 대조군에 비해 5개월(27%)가량 알츠하이머 진행 속도가 늦춰졌다. 기억력, 문제 해결 등 인지 기능을 평가하는 ‘18점 인지 척도’에서 레켐비 투약 환자들이 위약(僞藥) 투약 대조군보다 점수 하락 폭이 0.5점가량 낮았다는 것. 테레사 부라키오 FDA 약물평가연구센터 국장 대행은 “알츠하이머의 근본적 질병 발생 과정을 표적으로 하는 약물이 임상 효과를 보였다는 것을 최초로 입증했다”며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임이 증명됐다”고 밝혔다.
초기 치매 늦춰… 年 3460만원 약값은 부담
알츠하이머 신약 美승인
레켐비(사진)에 앞서 에이사이-바이오젠이 개발한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이 2021년 긴급 치료를 위한 조건부 승인인 신속 승인을 받았지만 통상 승인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아두헬름은 신속 승인 당시부터 효력 논란에 휩싸인 데다 안전성 우려로 사실상 의료 현장에서 외면을 받아 왔다.
국내 치매 치료 전문가들은 환영했다.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치매학회 명예회장)는 “증상 완화가 아닌 치매 발생의 근본 원인을 억제하는 약이 나온 건 엄청난 발전이며 초기 환자에게 희망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60세 이상 치매 환자는 약 96만 명으로 추정된다.
다만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환자에게는 효능이 입증되지 않았고, 초기 치매 환자도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27% 늦추는 수준이라 효과 자체는 크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환자가 2주마다 병원에 들러 혈관 주사로 약을 맞아야 하는 불편함과 투약 후 뇌부종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점도 약점이다. 이 때문에 FDA는 뇌출혈 뇌부종 같은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며 가장 높은 위험 경고인 ‘블랙박스 경고’를 내렸다. 연간 약값이 2만6500달러(약 3460만 원)여서 국민건강보험 적용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공적 건강보험 메디케어에서 가격의 약 80%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이건호 조선대 아시안치매연구단장(의생명과학과 교수)은 “과학적으로 큰 성과인 건 맞지만 실제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조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