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野서 시비 ‘양평고속道’, 백지화 아닌 사업 중지”
“아예 안하긴 어려워… 여론도 감안”
與 “민주당이 사과하면 정부 설득”
野 “책임 면피하려 군민 볼모잡아”
대통령실은 7일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설사업 백지화 문제와 관련해 “29km에 이르는 고속도로 사업을 아예 안 한다거나 백지화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런데 이 상황에서 사업을 할 수는 없는 만큼 ‘사업 중지’를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전날 백지화 선언으로 촉발된 이번 논란에 대해 “(부처 등 당사자들이) 풀어갈 문제이지, 대통령실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가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려고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더불어민주당이 어떤 형태로든 쟁점화해 나갈 것인 만큼 대통령실이 사업 재추진을 언급하거나 의견을 낼 뜻이 없음을 내비친 것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사업 재추진 가능성은) 민주당이 하기 나름이고, 지역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서 물론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통령 처가까지 끌어다 특혜 시비를 거는 현재 상태에서는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여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숙원 사업의 중단이 민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사업 재추진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야당의 선(先)사과를 조건으로 내거는 기류다.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은 통화에서 “지역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당에서 적극적으로 정부를 설득하겠다”면서도 “그러려면 ‘백지화 선언’의 단초가 된, 김 여사 일가 특혜 의혹 괴담으로 선동한 데 대한 사과와 책임자 문책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치기마저 느껴지는 원 장관의 백지화 선언은 바로 백지화돼야 한다”며 “(책임을) 면피하겠다고 애먼 양평군민을 볼모로 잡는 것 아니냐”고 했다.
백지화 선언 하루만에… 與, 주민 반발 커지자 출구전략 모색
국책사업 백지화 논란
원희룡도 “고집은 안해” 물러서
野 “백지화 선언을 백지화해야”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오른쪽)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전날 국토교통부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 것에 대해 “국책사업이 정치적인 선동으로 중단됨으로써 지역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긴 데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국민의힘 지도부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 ‘백지화’ 선언 하루 만에 “일시적 중단” “재추진 건의” 방침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의 김건희 여사 일가 관련 특혜 의혹 제기에 대한 사과를 전제로 내걸었지만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것. 양평 주민들의 반발 등 후폭풍이 커지자 총선을 앞두고 경기 북부권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해 ‘출구 전략’ 모색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원 장관의 ‘백지화’ 발언의 뜻은 ‘중단’의 의미”라며 “민주당의 악의적인 선동 공세로 사업을 진행할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중단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백지화’ 대신 ‘중단’이란 표현을 쓰며 사업 재개 가능성을 열어놨다.
친윤(친윤석열) 핵심으로 꼽히는 이철규 사무총장도 통화에서 “고속도로 사업의 장애 요소는 민주당의 괴담뿐”이라며 “민주당이 괴담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면 양평군민들의 (사업 재개) 요청을 정부 측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원 장관도 ‘백지화’ 발언 수습에 나섰다. 원 장관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인사권의 책임까지 각오하고 제가 고뇌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파기 논란까지 불거지자 대통령실과 사전 교감 없는 독단적 결정이란 취지를 강조한 것. 원 장관은 “(민주당의) 책임지는 사과가 있다면 저희가 그때도 (백지화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물러서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백지화’ 선언 수습에 나선 것은 총선 9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수도권 민심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민심이 있는데 국책 사업을 어떻게 중단하겠느냐”며 “민주당의 공세를 종식하기 위한 충격요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전면 백지화로 인한 주민 피해 책임을 두고 ‘네 탓 공방’도 벌였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의 아니면 말고식 의혹 제기로 최대 피해는 양평 주민이 보게 됐다”며 “고속도로 건설 사업 중단 책임은 오롯이 민주당 져야 할 것”이라고 민주당을 탓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오른쪽)이 7일 오전 국회에서 당내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진상규명 TF(태스크포스) 및 국토위 소속 의원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 백지화 결정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라며 “원안대로 사업을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뉴스1
이에 맞서 민주당은 ‘원안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사업 백지화 취소를 촉구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백지화를 한다고 해서 오염된 진실이 사라지겠느냐. 백지화 선언이 바로 백지화돼야 한다”며 “민주당은 양평 고속도로 원안 추진을 위해 원안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고 원안대로 추진되도록 힘을 싣겠다”고 했다.
여야는 오는 17일 원 장관 출석하에 관련 현안질의를 위한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장관석 기자, 권구용 기자, 윤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