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KBS가 분리징수 거부땐, 수백억 소송 당해도 계약해지 검토”
KBS, 수신료 분리징수 완강히 거부
협상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 커
한전, 일방적 해지땐 수백억 배상
방통위 “시행령 개정돼 상황 달라져”
한국전력공사가 KBS와 TV 수신료 분리 고지·징수를 위한 계약 변경 협의가 불발될 경우 수백억 원대 피소 가능성을 감수하며 계약 해지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이 분리 징수를 위해 KBS의 동의 없이 계약을 해지하면 한전은 계약 미이행에 따라 최소 수백억 원을 KBS에 배상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전기요금과 TV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는 것으로 관련 법령이 개정됐지만, KBS가 이를 완강히 거부함에 따라 한전은 기존의 천문학적 적자 외에 또 다른 재무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 “KBS와 합의 불발되면 계약 해지도 고려”
서울의 한국전력 영업지점. 뉴스1
한전은 현재 KBS와의 계약에 따라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통합 징수하는 대가로 KBS로부터 수신료의 6.2%에 이르는 수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게 되면 한전이 부담해야 하는 징수 비용은 연간 419억 원(2021년 기준)에서 청구서 제작비, 우편 발송비 등을 합쳐 최대 2269억 원으로 다섯 배 이상으로 뛴다. 이에 따라 한전은 KBS와의 협상을 통해 KBS로부터 받는 징수 수수료율을 현재의 6.2%에서 30%대로 높여 분리 징수 비용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KBS가 수수료율 인상은커녕 개정 시행령에 따른 분리 징수 자체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한 셈이다. 한전은 이 경우 자체로 추가 비용을 들여 TV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기보다는 차라리 KBS와 위탁 징수 계약을 해지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공기업이자 상장사인 한전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의무사항도 아닌 TV 수신료 수취를 대행하는 건 배임에 해당한다”며 “계약 해지 등 모든 걸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한전이 내년 말까지로 돼 있는 KBS와 계약을 임의 해지하면 KBS는 한전에 법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한전이 지난해 8월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해 외부 법무법인을 통해 법리 검토를 받은 결과, 해당 법무법인은 ‘관련 법률이 개정돼도 KBS와 한전 간 합의가 있어야만 TV 수신료의 분리 고지·징수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 양측의 계약에 ‘법률 개정 등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면 계약 내용에 대해 상호 협의해 결정한다’고 명시돼 있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이 법무법인은 그러면서 “그런데도 한전이 계약을 해지하면 KBS에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며 손해배상액은 KBS가 스스로 또는 제3자에게 위탁해 수신료를 징수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 등을 기준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전이 분리 징수에 드는 비용을 연간 최대 2269억 원으로 추산한 것을 감안하면, 손해배상액은 최소 수백억 원, 많게는 2000억 원 안팎에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 방통위 “법령 개정돼 상황 달라져”
현재로서는 양측의 협상이나 법적 대응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단할 수 없다. 한전 관계자는 “지금은 일단 KBS와의 계약 내용 변경에 대해 협의를 진행해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분리 징수를 위한 시행령이 통과된 만큼 KBS가 이를 반대하거나 한전에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작년의 법리 검토 때보다는 한전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개정 전 시행령에 따르면 분리 징수에 따른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시행령 개정이라는 특별한 사유가 생겼다는 점에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밝혔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만큼 법률 검토를 다시 하면 지난해와는 다른 의견이 나올 것이라는 의미다. 앞서 방통위는 6일 “시행령 개정안이 공포되는 즉시 통합 징수의 법적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에 한전과 KBS의 위탁 계약 중 ‘통합 징수’ 부분은 원천 무효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세종=김형민 기자, 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