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모욕"…盧 닮은 드라마 '돌풍'에 극과극 갈린 정치권
대통령 시해라는 충격적 소재가 동원된 넷플릭스 정치 드라마 ‘돌풍’이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한때 같은 뜻을 품었던 대통령 장일준(김홍파)이 초심을 잃고 부패 기업인과 결탁하자, 그의 오른팔이자 검사 출신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가 대통령 시해를 결심하는 장면으로 시리즈는 시작한다. 극중 박동호가 “나의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다”거나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말하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 탓에 일각에선 “보기 불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의 평가도 진영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렸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 측 법률대리인과 소나무당 대변인을 역임한 정철승 변호사는 지난 3일 페이스북에 “현실의 사건과 인물들을 너무 마구 가져와 함부로 짜깁기해서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느낌도 있다”며 “상처받거나 분노하거나 불쾌한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작가의 경솔한 의욕이 너무 과한 드라마”라고 평했다.
박원순 다큐멘터리 제작위원회 공동대표를 지낸 장영승 전 서울산업진흥원 대표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그들(운동권과 활동가)이 살아왔던 삶과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약자를 위해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드라마에서 소비하고 모욕하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넘어 분노한다”며 “나는 보다가 중단했지만 드라마 뒷부분엔 대통령이 투신하는 장면까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침부터 꼭지가 돈다”고 썼다. 이어 “지난 수십년간 생명을 바쳐 민주화를 이루어낸 운동권들을 모욕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민주화운동을 무시하게하는 불순한 의도와 신종 뉴라이트사상이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땅콩회항’ 사건 피해자로 정의당 부대표를 지낸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비례 후보 지원을 할 때 어느 관계자가 말했다. ‘재벌 개혁, 그런 거 이미 과거형 의제 아닌가요’”라고 적었다.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에 공천 신청을 했던 때를 떠올린 것이다. 그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그나마 드라마에서는 통쾌한 정의도 가끔은 실현된다. 하지만 진짜 현실이 더 잔혹하고 진짜 현실은 더 바꾸기도 힘들다”고 썼다.
반대로 보수 진영에선 돌풍을 지렛대 삼아 야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황규환 전 국민의힘 수석부대변인은 4일 “더 이상 586 세대의 정의는 존재하지도, 이뤄질 수도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 드라마”라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중앙일보 2024년 7월 6일
언젠가 이런 기사가 나올 것이라 예감했다. 드라마를 얼마나 시청하고 기사를 썼는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하기야 이 12부작 시리즈를 끝까지 보긴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질어질하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보는 이를 납득시키지 못한 채 너무나 빨리 전개되는 플롯 때문에 현기증이 일 정도다.
나 역시 여러 차례 정주행을 시도했으나 아직 6회 앞부분에서 멈춰섰다. 사실 더 시청할 생각을 접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켜서? 아니다. 운동권과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려는 뉴라이트 사상이 투영돼 있는 것 같아서? 아니다. 586세대의 정의가 존재하지도 이뤄질 수도 없다는 현실을 보여줘서? 아니다. 사법시험의 '사' 자 같은 아주 기초적인 한자를 잘못 표기할 정도로 제작진의 교양 수준이 의심스러워서? 더더욱 아니다.
정철승 변호사가 지적한 대로 현실의 사건과 인물들을 너무 마구 가져와 함부로 짜깁기한 각본이 짜증나서였다. 이 시리즈는 철저히 설경구란 검사 출신 정치인과 김희애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대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둘의 대립에 원인과 과정, 결과가 모두 중요할텐데 과정은 휘황한 속도에 희생되고 지워진다. 둘의 극단적인 선택과 행동만이 전부다. 처음에는 반전이 많아 흥미로웠다. '어 이렇게도 바뀔 수 있어?' 눈이 휘둥그레해졌는데 나중에는 "또? 또야? 에이'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둘은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잡아죽일 듯 대립하고 갈등하며 시쳇말로 '적대적으로 공생'한다. 그런데 핏발 선 설경구의 눈빛과 이따금 빛나는 대사가 자꾸 반복되니 식상해진다. 매회 둘의 대립은 사실 맨날 그것이 그것이다.
해서 이따금 빛나는 대사, 휘황하게 전개되는 오늘의 정치 현실에 비춰 교훈적이다가도 그냥 휘발되는 느낌이다. '카이스트' '태왕사신기' '펀치' 등 굵직한 드라마들을 써온 박경수 작가의 의욕 과잉, 심의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오버더톱(OTT) 플랫폼의 특성을 살려 표현 수위를 자유로이 하다보니 자극적인 표현이 넘쳐난다. 그래서 더 어질어질하다.
그렇지 않어도 어질어질한 현실 정치판에 이 시리즈 12부작을 보면서 현기증을 보태고 싶지 않았다. 대통령에 극적으로 당선된 박동호를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려는 정수진(김희애)과 어느 기업 회장(박근형)이 나오는 6회 초반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더 보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