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다녔던 목욕탕 건물이 세탁소로 변해 있고 문구점이 중국집으로 변해 있다. 그러면 문득 당신이 살던 옛날의 동네와 지금 새로운 동네가 전혀 별개의 세상으로 느껴질 것이다. 만약 우주가 이런 식으로 완전히 변해 버린다면, 전혀 새로운 우주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간적으로 나란히 늘어선 우주가 아닌, 시간적으로 늘어선 우주 말이다. 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다 같은 차원의 일종이다. 전깃줄에 참새가 줄지어 앉아 있다고 해보자. 1차원 공간(선)에 동시에 여러 개의 다중우주가 존재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만약 전깃줄을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라면 시간에 따라 여러 개가 존재하는 다중우주가 된다.
우주가 태어나 커지고 있다는 것은 크기가 있다는 뜻이고, 경계가 있다는 말이다. 만약 우주에 끝이 있다면 우주의 밖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폴 스타인하르트 교수가 제안한 이 주기적 다중우주(cyclic multiverse)론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주가 완전히 끝났다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우주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우주가 끝났다면 그건 말 그대로 우주가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다. 둘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없다. 그래서 스타인하르트 교수는 끈이론을 통해 자세히 설명했다.
끈이론인 M이론에서는 1차원부터 9차원까지 다양한 차원의 끈이 있다고 본다. 이들을 통틀어 브레인이라고 부른다. 이런 끈이 11차원 공간속을 떠다니며 움직인다고 본다. 주기적 다중우주에 따르면, 우리 우주도 이런 브레인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브레인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브레인 근처에도 또 다른 브레인이 있어 어느 순간 충돌하는데, 스타인하르트 교수는 그것이 바로 빅뱅이라고 봤다. 일단 빅뱅이 일어나면 브레인은 서로 천천히 멀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브레인은 팽창한다. 우리가 지금 보는 우주가 이런 상태다.
이후 브레인이 서로 멀어지다가 어느 순간 다시 가까워진다. 그 결과 다시 빅뱅이 일어나며 우주는 다시 태어난다.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주기적 다중우주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에 따른 다중우주로,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이 이론이 갖는 또 하나의 발상의 전환은, 시간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는 점이다. 기존 빅뱅 우주론에서는 우주가 태어나기 전의 시간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기적 다중우주에서는 대폭발 이전의 시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주 이전에도 시간은 있었고 우주 이후에도 시간은 있다. 전깃줄 위의 참새처럼, 시간이라는 이어진 차원 위에 우주가 참새처럼 연달아 앉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