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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의 글은 사진 배열과 상관없이 진행됩니다. 사진은 그날의 풍경을 순차적으로 끼워 놓은 것이니 옆의 글의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으니 참고 하셔요.
창경궁 안으로 들다.
들차회 장소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큰 나무들이 곳곳에 알맞게 자리잡고 있고, 그 아래 잔디와 야트막하게 땅에 깔린 풀들이 깔려서 자라고 있었다.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내니 차양이 필요없이 가을 햇볕도 막아주고, 나무가 사방에 있으니 바람도 막아준다. 잘 가꾸워진 궁궐의 정원이지만, 지나치게 인위적인 느낌도 없어서...들판의 나무 그늘에 소풍온 것 같기도 하였다.
창경궁에서 하는 들차회를 준비하면서 부담없이 준비하였다. 그러나 막상 당일이 되니 조금 피로가 몰려오기는 하더라. 준비 실컷하고 본게임에서 지치는 것은 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ㅋㅋ 웃음도 나왔다.
도심이 복잡하다는 것이 피곤함을 부른다는 것을 들차회 가는 길에 다시 느꼈다. 약속 시간을 넘어가니 더 피곤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보다 마음이 더 급한 것은 이스크라님이다. 급하게 가다보니 차선을 지나쳐서 다시 한바퀴 돌았다. 마음과는 다르게 ' 이미 약속 시간은 늦었으니 천천히 운전해... ' 했다. 늦은 것은 나이고 약속한 것도 나인데 늘 이스크라님이 운전하느라 마음종종이다. 이러다 보니 큰소리 칠 기회들이 점점 줄어 들어간다. 그래서 그러다 보니 중간에서 만나는 것인가?ㅋㅋㅋ. 아마도 나에게 미안해 하는 마음을 우러나오게 하려는 것인가? 급한 마음과는 달리 약속에 늦어도 이왕 갈때는 늦어 버렸는데 어쩌랴... 하는 태평한 마음을 갖는다. 그렇다고 미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크라님이 약속시간 맞춰주는라 늘 고생이다. 이번 기회를 빌려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다우님들에게도 한번에 미안함을 전한다. 그렇다고 많이 늦은 것은 아니고 주차장에는 3시에 도착했으니 원래 약속 시간에는 30분 늦었다. 그러나 산울림님과는 2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1시간 늦었다. 굳이 이리 밝히는 이유는 이번에 이스크라한테 미안하다는 마음이 쪼금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ㅋㅋㅋ. 그리고 딱 시간에 맞춰가니 괜히 바쁘기 때문이고 먼저와 기다려준 분들에게 괜시리 더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양해하시오라...서두른다고 서둘러도 조금씩 늦어지더이다. ^^;
들차회 장소에 서둘러 먼저 오셔준 다우님들 덕분에 수월하게 들차회 세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왕소금님이 기다리고 있어서 짐을 운반하려고 하고 있는데 자운님 일행이 알아보시고 오셔서 거들어 주셨다. 이리 반가울데가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에 다 옮길 수가 있었다. 정말 감사했다. 고수사랑님이 마중 오셔서 다시 짐을 나눠 들어 주셨다. 들차회 장소는 창경궁 궁궐내 위치도를 보면 20번이라고 적혀있는 곳인데 정문인 홍화문에서 좌측으로 가는 문을 들어서서 곡선으로 나 있는 길을 쭉 따라 걸어 들어가면 넓다란 정원이 있다. 키 큰 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그 밑에 넒은 공터가 펼쳐져 있는데, 바닥은 잔디와 바닥에 붙어서 자라는 식물이 깔려 있다. 카페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게 한적하게 나무 의자들이 몇명이 둘러 앉을 수 있도록 놓여 있다.
차맛어때가 들차회를 펼칠 장소는 관리 사무소와 가깝고 화장실도 비교적 가까워서 편리한 장소에 위치하고 있었다. 본부석에 가까운 자리를 할려고 했으나 이곳이 더 마음에 들어서 이곳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본부석에 물을 가지러 가기가 조금은 멀었다. 산울림님과 왕소금님이 관리사무소 측과 잘 이야기해서 릴선으로 전기를 끌어 올 수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마무리 하면서 국회차를 우려서 드렸다. 전기를 끌어 올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셔서 감사했다. 뒷풀이에서 자기들 능력이라고 자화자찬했다. ㅋㅋ..그래서 그래그래 모두 인정 ! 했다. 하하^^
물이 원활하게 수급이 되니 다회진행도 한결 수월해졌다. 차맛어때 다회 특성상 물이 많이 소요된다. 오신 분들이 차고파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여기에는 모두 동의하실 것이다. 그리고 찻잔을 씻어야 하고, 차를 바꿔가며 차를 내야 하기에 다기도 간단하게 세척해야 하고, 잎차를 내면 이레저레 물이 많이 필요해진다.
들차회 세팅은 여럿이서 즉석 아이디어를 내어 재밌게 했다. 차맛어때라는 작은 현수막들도 준비하고, 이 현수막은 모두 우리가 다회에서 썼던 것들이다. 빨아서 재활용하니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큰 현수막에서 차맛어때만 잘라서 사방을 박아주니 그 역시 나름대로 좋았다. 나무에 매달아 놓았는데 한참후에 관리 사무소에서 나무에 매달면 안된다고 했다. 넵.
고수사랑님 내외분이 꽃을 준비해 오시고, 꽃사과도 준비해 오셔서 차맛어때 메인 장식을 하는데 긴요하게 사용하였다. 마음거울님이 도자기 차 주전자를 가져 오셔서 꽃병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사용한 다구세트는 내가 맨 처음으로 후박나무님께 선물 받은 도자기이다. 10년을 넘게 썼더니 다관도 세월을 먹어서 반질해졌다. 다구세트를 다른분들께 부탁을 드리자니 필요한 것에 대해 설명하기도 그렇고, 깨질 염려도 있고 해서 부담이 가서 다구세트는 직접 준비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사용하던 다구세트가 좋을 것 같았다. 소박한 다구세트지만 나의 차생활과 쭈욱 같이 흘러 왔으니 이 다구 세트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듯 했다. 수연이 수빈이도 장식하는 것을 도왔다. 같이 그러고 있으니 소꼽장난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많이 컸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오래된 사이라고 말해줬다 ㅎ~ . 마음거울님이 반질반질하게 잘 닦아 놓은 꽃사과를 툭툭 던져 놓듯이 놓아두고, 고수사랑님 내외분이 준비해오신 꽃을 따서 바닥에 흐트려 놓으니 이로서 완성이 되었다. 마음 거울님이 틈틈이 더 빈 곳을 채워 주셨다.
그리고 가을행복님이 말차를 낸 다탁은 나그네스님과 후박나무님이 강원도를 다녀오시면서 가져다 주신 것이다. 작고 아담해서 휴대하기가 그나마 수월하다. 요즘은 가끔 쓰는데 아무래도 다탁이 필요할 것 같아서 가져갔다. 내가 사용한 다판은 산울리밈이 가져오신 것이다. 다탁과 다판이 있으니 차를 내기가 한결 수월했다. 이러한 것을 다른 다우님들께 부탁을 드린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우리가 준비를 해 보았다.
가을행복님은 말차를 내기 위해서 말차다도구 세트와 다식을 준비해 오셨고, 떡도 준비해 오셨다. 다식이 앙증맞고 맛도 정갈해서 다식솜씨를 갖췄다고 생각되었다. 말차를 잘 타서 오시는 분들께 내어 드리고, 옆에서 한 잔 얻어 마시고, 그런데 미처 나는 차를 건네주지 못했는데, 차한잔 못 마셨다고..달라고 하시지... 가을행복님 왈 원래 챙겨주는 거라고...ㅋㅋ...말을 하지 그랬어요.ㅋㅋ...원래 팽주가 체질이 아니라서 미처 신경을 못 써 드렸대나..뭐래나...^^.
여인천하님은 이것저것 돕고 싶어 하셨다. 미리 오셔서 기다려 주신 것만도 고맙지만, 그래도 일거리를 드려야지...ㅋㅋ 옆에서 이것저것 도와주셔서 감사했다. 마음거울님께 팽주를 하시라 했더니 안하신다고, 양말을 안 가져 오셨다고... 사실 이것은 내 잘못이자 우리 잘못이다. 팽주를 해 달라고 말씀을 드렸어야 생각을 하고 오시는데, 그러지 않으셔서 편히 오셨는데 팽주를 하시라고 하시니 놀라실 수 밖에...^^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팽주를 했다. 가을행복님 혼자서 하기에는 무리도 있고, 가을행복님은 말차를 내고 있으셔서 잎차를 내는 팽주가 필요했다.
막판에 차를 마시고픈 사람들이 몰려서 종이컵으로 차를 드렸다. 원래는 시음테이블을 준비하려 했으나 홍화문에서 일반 관람객들은 대체로 직진하여 궁 내부를 둘러 보는 경우가 많고 이쪽의 정원은 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일반 관람객 숫자가 적기 때문에 시음 테이블은 그냥 보조로 이것저것 올려 놓은 용도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앉아서 마시는 것은 부담스럽고 차만 마시고 싶어하시는 분들은 서서 차를 마시고 싶어했기 때문에 종이컵에 따라 드렸다. 그리고 조금은 해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 마음도 앉아서 차를 마시기에는 다소 여유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졌다. 하지만 앉아서 차를 우리는데 서 있는 사람들에게 종이컵으로 차를 돌린다는 것은 조금은 모양새가 그랬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그래서 생각했는데 초반에는 앉아서 차를 마시는 분들도 많지만, 앉는 것이 부담 스러운 사람들도 있으니, 후반에는 시음용 테이블에서 서서 차를 우려서 종이컵에 차를 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되어졌다. 그것이 서로가 차를 주고 받고 마시고 하는 것에 격이 맞는 것 같고 자연스러울 것 같다.
선차대회에 초대를 받은 분들이신지 일본분들이 많이 오셨다. 고수사랑님께서 통역을 하셨다. 차맛 좋다고들 하셨다. 자훈님께서 차를 협찬해 주고 가셨고, 우담바라님께서 국화차를 협찬해 주셨다. 김해 소정님께서도 이미 차를 택배로 보내 주셨다. 정담님께서도 차를 협찬해 주셨고, 마음거울님께서도 침향을 차로 우려 주셨고, 다른 차도 협찬해 주셨다. 산울림님도 차를 가져 오셨으나 시간상 마시지를 못했다.
중국차 계통의 차는 이번에 마시질 못했다. 분위기상도 그렇고 시간상으로도 그랬다. 다음 다회때 감사하게 사용해야겠다. 옆에서는 가을행복님이 다리에 쥐가 나도록 말차를 타고 내고 있었다. 잎차를 우려 내면서 드는 생각은 아! 잎차를 우려내는 곳이 별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다회들이 말차 위주로 하고 있는 듯 했다. 시간이 없어서 자세히 둘러보지 못했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차맛어때처럼 빙 둘러 앉아 차를 마시는 형태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다회를 위해 찻자리를 준비했지만, 지니가는 분들이 앉아서 차를 마시겠다라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차맛어때 다우님들이 모두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감사하면서도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차맛어때 스타일!
지역 카페 차맛어때들 말고 차맛어때가 연합들차회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차맛어때도 차맛어때의 형식이 외부에 노출이 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렇다면 외부에 노출될 우리의 형식은 무엇일까? 어떤 방식이 좋을까? 차를 내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 우리방식 우리가 해온 스타일이 곧 우리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차맛어때 형식이 대중성과 현대성 그리고 파격성을 갖추었다고 생각되어졌다.
오래전에 중국에서 말차에서 잎차로 변모해 왔던 역사적 과정도 이와 큰 차이는 없을 듯 했다. 왜 말차에서 잎차로 역사적 변천과정을 겪었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었다. 말차는 말차의 형식이 그 안에서 조금씩 다양하게 변모하기도 하지만, 그 틀을 크게 벗어날 수는 없다. 즉 파격이 어렵다. 그러나 잎차는 파격이 가능하다. 이번에 차맛어때 들차회도 어찌보면 그런 파격성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기존의 잎차다도도 교육용 위주이다 보니 말차다도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즉 친대중성이 다소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차맛어때의 장점은 애초부터 태생이 친대중성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차맛어때 형식 역시 거기서 나온다. 차맛어때가 앞으로도 다른 연합 들차회에 참여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참여한다면 세가지를 다 갖추어야 한다고 보인다.
기존 들차회 형식을 어느 정도 맞추어주고, 차맛어때 형식을 반드시 넣어야 하고, 시음회 테이블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편하게 오고가며 차를 한잔 받아가서 마실 수 있는 형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들차회뿐만 아니라 뭔가를 더 생각해 본다면 차맛어때는 시음행사가 차맛어때 성격에 부합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또한 차맛어때 다회로서의 들차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존 차맛어때 다회의 연장선상에서 들차회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차맛어때가 추구하는 방향은 열림이다. 이 열림이 대중성과 맥이 통한다. 이 열림을 통해서 차맛어때에는 많은 이들이 거쳐갔다. 그리고 또 함께하고 있다. 이렇게 이 열림을 통해서 새로운 다우님들이 수혈이 되곤한다. 그리고 차맛어때를 유지하고 같이 끌어갈 운영진들을 발굴할 수 있기도 하다.
오고가는 것이 자유로운 곳... 그것이 인터넷이란 공간에 터를 잡은 차맛어때 만의 묘미이자 그 안에서 만들어진 차맛어때만의 스타일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내부에서 갖춰진 형식이 바깥으로 비춰질때 스타일로 나타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내면이 바깥으로 비춰질때 스타일을 통해서 나타난다. 즉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타일이 있다. 단지 그 스타일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차맛어때도 차맛어때 내부 형식이 있다. 단지 내부 형식이 스타일을 통해서 바깥으로 노출되면 조금은 다듬어질 필요는 있다. 우리가 치장하거나 단정하게 하거나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스타일이 매력이 있으려면 이 역시 형식이 나타나야 한다. 즉 보여질 내용이 체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스타일이 매력이 있으려면 그 사람 정신안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듯이 말이다. 차맛어때 스타일이 제대로 서려면 내부의 형식이 먼저 제대로 서야 한다. 다행히 차맛어때는 그동안 10년 넘게 차맛어때 형식을 다듬어 왔다. 다회도 그런 형식을 통해서 치뤘다.
즉 차맛어때만의 분위기가 있다. 차맛어때 스타일에는 차맛어때만의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그 분위기는 열림의 소통이자 대중성과 자유로움이다. 즉 파격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차맛어때는 계속 일관되게 방향을 잡으며 변화에 대응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즉 머무르지 않는 바람과 같다 라는 얘기...ㅋㅋ^^
차맛어때의 대중성은 인터넷 기반이어서 저절로 마련된 것과 같지만, 차맛어때가 흘러오면서 저절로 마련된 것을 의지를 가지고 지켜왔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차맛어때의 현대성은 지금 일상 생활과 대중이 필요한 차생활에 관한 부분들에 대하여 확장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 때문에 차문화와 차산업이 차맛어때에서 공존할 수 있다. 파격성은 언제나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상황에 맞춰서 탄력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이 차맛어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들차회는 미리 준비한 사람들의 기획 의도가 있지만, 차를 내는 사람들과 다르게 참관하는 사람들과 그곳에 오며가며 들른 관람객들은 그 기획 의도를 벗어나곤 한다. 그 벗어나버린 영역을 커버할 수 있는 것 또한 필요한데, 커버가 필요한 이유는 차문화는 어쨌든 알려져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차문화 알림이란 것에 대해서 본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단체나 조직은 그 조직의 형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스타일이 있다. 이 느껴지고 보여지는 스타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소통할 것인가? 단절할 것인가는 이미 스타일에서 결정된다. 생각해보면 많은 다도회들이 회원제를 유지하고 있고, 정예멤버를 고수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단절과 거리감을 두고 벽을 갖고 있는 것 같은 이 방법 역시 소통하기 위함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단절과 차단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부분적인 소통을 하려는 의도이다.
화려하고 예술적 미학을 추구하는 이유는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유혹 되어야만 다가오기 때문이다. 유혹해놓고 거기서 고르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가입을 하면 신선도나 매력이 반감되기 때문에 신비주의를 채택하기도 하지만,이미 그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것은 보아 달라는 의미가 크다고 볼 수도 있다. 호기심을 유발하고 관심을 증폭시키는 방식일 수도 있다. 그 방식으로 소통을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부분적이고 차별적인 소통이기에 소통에 있어서는 완성도가 높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서로가 깊게 갈 확률은 높다.
반면에 차맛어때는 문을 열어 놓고 알아서 들어 오든지 말든지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차맛어때란 카페 자체가 유혹의 도구이기도 한 것 같다. 어느곳이나 모두 유혹의 방식이 있다. 단지 사용하는 도구가 다를 뿐이다. 우리는 인터넷 기반이므로 이에 맞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찾아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을 기점으로 해서 좀 더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아가기도 한다.
어떠한 스타일에 자신이 매혹 당하는가?에 따라서 차를 마시는 방식이나 차생활을 영위하는 방식이 조금씩은 달라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차맛어때를 전체적으로 보자면 몇년을 기점으로 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바뀌게 된다. 그대로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순간에 활동하는 사람들의 절반은 바뀌어 있다. 그러다보면 그런 변화에 적응해야 할때도 많다. 친해진 사람들이 활동을 안하게 되면 마음 한 곳에서 찬바람이 불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빈 곳을 다른 분들이 채우기도 한다. 늘 그렇게 흘러오고 흘러간다. 그래서 그러한 감정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가슴에 아마도 수천개의 구멍이 나 있겠지만, 일일이 그것을 다 의식하지는 못한다. 가장 크게 한 번 의식하고 그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허전함을 허전하다고 계속 안고 있으면 마음 아파서 못산다.
떠난자들과 남는자들..남는자들은 간혹 홀로 남겨졌다는 그런 외로운 경험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런 경험 한번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나 할까?
이 역시 말차타는 법은 훈련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을 크게 먹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게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면 된다. 말차 단체 시연을 보면,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신성의 구현에 대해서 방향성은 잘 감이 오지 않지만, 마음이 흐트러지면 몸도 흐트러지니 몸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말차 타는 법을 훈련하면 그 역시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법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는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사람은 모여서 활동하는 존재이기도 하므로 자신의 마음가는 대로 하면 될것 같다. 말차뿐 아니라 잎차라도 혼자서 자신에게 천천히 차한잔 우려 마시게 하는 이유는 본질에서 서로 같다. 또한 적은 인원이든 많은 인원이든 본질은 소통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관계속에서 자신이 있는 지점이 결정되므로 사람은 관계속에서의 나이기도 하다. 차를 마시고 다회를 하는 이유는 그 본질이 소통임을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회가 이루어지는 토대를 서로 훼손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서로의 소통을 막지 않으려 함이므로, 그래서 조금씩 자기주장이나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회는 소통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된다. 상호교감이 드러나야 하고, 그것이 느껴져야 한다.
다음날 국립국악원 선차공연 단상 - 선차의 방향성은 어디를 보아야 할 것인가?
각 다회마다 스타일이 있다. 다음날 국립국악원 선차공연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그동안 선차 맥이 끊기다 시피( 정신적으로는 이어져 오지만 어떤 행위로서는 약했다고 보이기에...)하여 선차를 복원하려는 시도 속에서 세계선차 대회가 7회를 맞아서 한국에서 개최되었지만, 정작 선차라는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은 약했다고 보인다. 어쩌면 약했다라기 보다는 거의 몰랐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선차를 표현한다라고는 하나, 선차공연이라고는 하나 기존의 말차다도의 한계성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생각되었다.
한국 불교 선차의 현주소
우리나라 불교에서 차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그런 부분들은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많이 무시되어져 왔다. 우리나라 불교 역시 선차에 대해 관심을 가진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선불교이기는 하나 선차 그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정신으로 이어져 오면서 우리의 정서에 이미 선차는 녹아들어 있고, 삶에서도 묻어나오고 있지만, 정작 선차의 핵심은 잘 짚어내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선불교와 선차를 쉽사리 하나라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뭔가 새롭게 다시 알고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불교와 선차는 엄밀히 말해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분리될 수 없다고 보인다.
선다일미는 익숙한데 선차는 익숙하지가 않다. 선다일미와 선차는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다일미에 대해서 일본식 다도의 포장이 너무 심하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행위의 뒷받침이 너무 약하다. 선다일미 사상이 선차의 핵심을 요약하여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도 역시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용어이기는 하나 ' 선차 ' 라는 이름을 다시 찾아낸 이상 한국 선차란 무엇인가? 를 재발견하는 것이 중요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선불교와 선차 ' 가 서로 명칭에 있어서도 궁합이 맞을 듯 하다. 이러한 것에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 것이 우리나라 선불교의 현주소라고 생각된다.
이렇다보니 불교문화 안에도 말차다도가 부분 포함되기도 하지만. 일본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인다. 불교안의 차문화에 대해서 주도적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일본다도 형식을 의지하고 있다고 보인다. 일본다도를 의지하는 것인지, 그 다도를 추구하는 사람을 의지하고 있는 것인지는 애매하지만, 불교문화안에서 선차는 다시 회복되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선차의 방향성을 한국적으로 한 곳에 모아서 다시 창조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된다. 불교의 침체와 현시대에서 대중에게 크게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잘 살펴야 한다고 여겨진다.하지만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본다도 역시 그 뿌리는 선차이다(이 부분은 선과차라는 글을 참고하시면 된다. http://cafe.daum.net/tea3/6EgR/336). 이제는 한국도 한국의 선차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불교 선차 스타일이 회복되면 이를 통해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한국 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왜 이런 비판이 가능한가? 그것은 모든 다회들이 어떤 정신을 구현하려 하기 때문에 그렇다. 대체로 말차를 위주로 하는 다회들은 그 다회만의 형식이 있다. 누군가 창안하거나 스승에게 이어 받거나 하면서 그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조직들은 아무나 받아 들이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고 생각된다. 즉 자격심사가 있다고 보인다. 인원이 한정되어 있다고 보이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또한 이것은 서로가 모일 공간의 한정성에 기반하기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나름대로 정해놓은 기준에 부합된 신분(?)에 관계된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소수정예가 기본적 틀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체성과 단합성, 절제성, 경직성, 수행적 요소, 사교성, 부단하게 숙련하여 호흡을 맞추는 훈련성 등의 요소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공간안에서 규율성도 엄격한 것 같다. 실제 생활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다도에서 보여준 느낌들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도회가 추구하는 바에 대한 설명은 정신성인 것을 구현하는 의미를 넣고 있다.
문제는 ' 정신성 ' 이다. 창의적 요소를 갖고 다회의 형식을 만들어 내어 다회의 회원들의 일체성을 표현해 내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들도 놓이 산다. 이러한 부분은 독창성의 영역이기에 비판의 대상은 아니다. 그 다회가 무엇을 표현하고 어떤 예술성을 갖는가에 대해서는 무어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다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정신성이다. 이 정신성이 일본의 다도에 갇혀 있을 것인가? 한국만의 정신성을 잇고 회복할 것인가? 이다. 그러한 것이 구현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 이다.
다도는 리큐의 스승들로부터 시작해서 센노 리큐에서 완성되었다. 즉 일본안에서 후에 일본 스타일이 된 ' 리큐 스타일 ' 이 탄생한 것이다. 그 리큐 스타일 이후로 일본에서는 리큐 스타일이 정형화 되었고, 모두 그것을 본 받았다. 그리고 간혹 거기에서 어느정도 창작 형태의 다도가 나오기도 했다.
심차회 가게츠행다 [ <가게츠 행다는 꽃과 달의 행다라는 뜻이다. 이 행다법은 패를 돌려 패를 뽑아 주인과 손님을 정하고 123번을 뽑은 사람은 차를 마시지 않는다. 꽃은 주인의 역할이고 달은 손님의 역할이다. 이 꽃을 고른 패를 가진 사람이 주인이 되어 차를 낸다. 그리고 달을 고른 사람이 차를 마신다. 그리고 주인은 앉아서 기다리고 다시 패를 돌려서 주인과 손님이 정해지면 그 이전 주인 역할은 빈자리에 가서 앉는다. 이 행다법은 8폭 다다미 다실에서 다섯 명이 행하는 행다이다. 보기에는 게임과 같지만, 고도의 집중력 이해력 판단력이 요구된다. 일반적 행다에서는 과자를 먹을 시간에 이 행다법은 패를 돌려서 뽑는다. 주인이 ‘쯔끼’ 하면 달을 고른 사람이 차를 마신다.
그리고 다시 패를 돌려 꽃을 뽑은 사람이 다시 주인 역할을 하며 차를 낸다. 여기서는 비단천을 모두 달고 있는데 모두 주인 역할을 할수 있기 때이다. 일반 행다법은 주인만 달고 있다. 일반 행다법 보다 스피드하게 진행이 된다. 계속 이렇게 돌아가고 손님 역할이 네 사람이므로 네 번 차를 내게 된다. 자기역할 타이밍을 놓치면 한 박자씩 어긋나 평정심을 잃게 된다. 한곳에 뺏긴 마음에 흔들리지 말고 금새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을 표현한 행다법이다.
일본의 17세기에 리큐의 후손인 이예모토와 대덕사 승려가 만나서 이런 선차 행다법이 만들어졌다. 음악을 사용하지 않으나 차를 내는 다실 안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차의 음악이다. 마지막 정리는 첫자리에서 주인 역할을 맡은 사람이 정리한다. 그리고 부채를 놓아둔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주인 역할의 일이 없어졌기에 모두 비단천을 내려놓고 한마음으로 마지막 절을 하고 끝낸다. 시작과 같은 형태로 마지막도 끝난다.
일본다도에는 말차다도법, 잎차다도법이 있는데 이 행다법은 말차다도법만 있다. 일본의 다도의 세 유파가 모두 가게츠 행다를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통 25~30분이 걸리나 공연에서는15분에 맞췄다. 그런데도 서두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고도로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흠...이런 행다법은 ...창의해서 창작품으로 해도 될듯. 어차피 다도는 선차를 받아들여 일본에 맞게 일본식으로 창작한 것이다. 다양한 응용이 가능할 것 같다. 선차도 차를 마시는 방식을 무상선사가 ' 선차지법 '이란 형식을 만들어 낸 것이고, 그 후로 여러 선사들이 자신만의 공안을 만들기도 하고 선차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현대에 와서도 일본은 비교적 리큐다도를 고수하고 있으나 세 유파도 조금씩은 형식이 다른 점들이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다도의 방식은 각 파마다 조금씩 다르다. 앞으로도 아마 더 많은 방식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일본다도의 형식과 정신을 따를 것인가? 한국정신을 구현낼 수 있을 것인가? 의 고민은 계속해야 될 것이다.
중국 역시 중국만의 다도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자신만의 다도 스타일은 만들어 낼 수는 있다. 그러나 ' 정신성을 구현한다. ' 라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서로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서 새롭게 다도 스타일을 만든다면, 전통적 방식과 정신을 잇고 거기에 자신이 깨달은 바를 구현해 내는 것이 현대의 또 다른 다도 스타일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차문화가 현재에 와서 박제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다시 살아나서 생명성과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고, 소통정신과 현대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야 할듯 하기도 하다. 그저 개인만의 다도에서 머무르거나 폐쇄적 지향은 한 세대에서만 머무르다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 대표적이라고 생각되어졌다. 그리고 우리나라 말차다도 역시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 다르다. 스승에게 배우고, 제자에게 이어져오고, 또 누군가는 자기만의 다도 스타일을 창안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큰 맥락은 일본다도가 뿌리라는 것이다. 거기에서 벗어난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쉽사리 벗어나기도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미 일본에서 리큐가 다도란 이런 것이다! 라고 스타일을 오래전에 이미 확립해 버렸기 때문에 그보다 더 나은 말차 다도법을 누군가 만들어 내어 확산 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역시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나 일부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 리큐다도 스타일이 젠 스타일 이라는 일본 스타일을 만들어 내었다. 그렇다면 한국 스타일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한국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미 있는 한국적 정서가 선차에 묻어 나와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 한국적 정서를 가진 ' 선차 ' 가 다시 한국 불교안에서 다시 힘을 얻어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로써 많은 사부대중과 소통할 수 있고, 사부대중과 관계를 이어나가며,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된다. 사찰에서 스님께 차한자 얻어 마시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아니라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고, 그로 인하여 삶의 수준과 불자들의 소양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러 종교가 해야 할 일은 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눈높이와 삶의 질을 위한 소양을 높여 주는 것이 큰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로서 서로 원활한 소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다도 문화의 현주소
그렇다면 이제 선차가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를 보자면, 선차공연 역시 기존의 다도를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공연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 가지고 있는 토대에서 선차(선차지법)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주어진다. 문제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기존의 말차다도의 정신구현은 일본다도 형식을 빌려서 구현하고 있다. 그러니 선차나 불교의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것에 있어서도 일본의 느낌이 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저절로 느껴진다.
많은 다도회들이 다도회 스스로 창의한 다회들이 일본보다 더 일본스럽게 여겨진다면 그 부분을 어찌할 것인가이다. 보는 동안 일본다도가 더 자연스럽게 여겨진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은 자신들의 것이니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한국은 다도가 한국화 된듯하나 한국화되지 못했다고 여져졌다.
그 이유는 복색도 한국복색이고 사람도 한국사람이고 언어도 한국언어이지만, 그것 말고 그것을 넘어서는 뭔가가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다. 편안하지가 않다. 정신구현을 일본다도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일본다도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차의 특징은 편안함과 따뜻함과 여유 그리고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불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선차의 특징도 그러한 요소들이 녹아들어가야 하고 그런 느낌이 나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치열하지만 어느 순간에 따뜻함이 묻어 나오는 그런 느낌, 간결하지만 자유로움이 묻어 나오는 그런 느낌, 심플하지만 아름다운 그런 느낌, 강하지만 여린 그런 느낌, 정적이지만 동적인 그런 느낌, 답답하지 않고 시원한 그런 느낌들...뭔가 강하게 대비 되지만 다시 하나로 합쳐져서 뭔가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그런 느낌.... 이러한 느낌의 전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경직되고, 숨소리 하나 내지 않는 그런 답답함만이 선(禪)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람이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를 얻어서 존엄을 얻기 위함이다. 그 자유로움이 바로 파격이 된다. 물론 그 과정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선차란 이미 깨달음이다. 선차란 그 자체로 하나의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일본다도 이전에 이미 그런 깨달음의 스타일은 있었다.
무상선사로부터 시작되는 선차지법은 이미 그 후로 조주의 끽다거로 스타일이 완성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깨달음이 스타일로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뭔가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음이 있어야 어떤 제대로된 스타일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된다.
새롭게 많은 창의적 다회들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무엇인가 느끼고 깨달아서 만들었겠지만, 그것이 한 단체만이 아니라 선차를 대표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지만, 그러한 깨달음에 대한 정신성을 잘 구현하고 있는가도 살펴야 한다고 여겨진다.
이리 본다면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선차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이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그 정신을 이어내고 현실화 시키고, 실천하면 된다. 다회나 공연에서도 그것을 창조적으로 재현하면 된다. 다회나 공연이라는 그릇에 그런 내용을 얼마나 잘 담아낼 수 있는가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근본으로 회귀나 반드시 모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회복된 것에서 창의가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즉 우리만의 것을 찾아서 거기서 다양한 창의로 가야한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에서 가장 선차를 구현하는 공연은 산울림님과 둘이서는 고선다회였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공연들이 다 훌륭했다.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웠고, 경건했고, 절제된 동작들과 불필요한 동작을 배제하여 깔끔한 선을 만들어 내는 것은 꾸준한 훈련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 공연도 훌륭했다. 다만 여기서는 구현하는 정신성에 대해서만 비판적인 글을 썼음을 양해하시기 바래본다. 이 정신성이 방향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미 말차다도 자체가 선차를 잇고 있기 때문에 말차다도가 선차에서 왔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된다. 즉 차가 흘러온 역사성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고 부분 수정만 하면 어느정도는 그걸로 된다. (일본의 다도는 젠 스타일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 되었었다. 일본의 모든 기본 라인과 문화는 젠 스타일이 반영되었다고 해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젠 스타일은 세계를 한바퀴 돌았다. 전 세계에 영향을 주었었다.
선차공연에서 또 한가지 눈에 띈 점은 ' 동선류 전다다도 ' 를 시연한 일본팀이다. 시작전에 나레이션으로 지진해일을 언급하며, 그때 도움을 준 한국과 세계 여러나라에 감사함을 잊지 않겠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여기에 저런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세계선차대회는 문화교류이기도 했다.
문화교류란 무엇인가? 때로는 민간사절단과 같다. 일본정부는 연일 한국속을 뒤집지만 일본공연팀은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개인으로서 일본을 대신해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으로 그 팀의 마음을 받아 들였다.
한편으론 일본이 세계속에서 유지되는 이유가, 2차대전 패전국이면서도 동아시아에서 승전국 행세를 할 수 이유와 또한 세계인들의 대접을 받는 이유가 일본의 국민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본정부의 생각과는 다르게 자신들의 개인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라는 것. 즉 그 순간은 자신이 일본을 대표한다라는 생각을 한다라는 것. 이것은 주인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마도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자신이 그 순간에 한국을 대표한다라는 생각은 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어져..혼자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국제행사 하면 말 한마디 잘못해도 안되고, 어쩔때는 관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도 하고, 개인 생각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아직까지의 현실임을 감안할 때. 한편으론 우리에게 빗대어 보았다. 차맛어때 다우님들은 어디 가시면 자신이 그 순간에는 차맛어때는 대표하고 있다라고 생각하실까...? 나는 그러한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물론 자신 말고 누군가 대신할 사람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때 그 순간 자신이 대표성을 갖는다고 생각해 보실 수 있을까? 자신이 그 순간 대표성을 갖는다고 할 때 생각부터 달라진다고 보인다. 물론 여기서 대표성은 주인정신을 의미하지 어떤 직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음에서 그런 생각이 있는가이다. 우리가 외국을 나가면 그때는 우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것과 같다. 왜? 상대방은 나를 통해서 한국을 보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당신을 통해서 우리를 보기 때문이다. 한국이 앞으로 부단히 깨고 가야할 부분도 이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한.중.일 삼국은 선차로 만날 것인가? 다도로 만날 것인가?
중국은 현재 선차를 복원중에 있다. 불교를 복원함에 있어서 선차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복원하는 것 같다고 생각되어졌다. 중국은 국가 이념이 다른나라들과 다르기는 하지만 상당한 열의가 있는 것 같다. 중국은 어찌 되었든 선차의 시작이 되는 공간을 확보를 하고 있다. 중국을 위대하게 하고 크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복원하는 중국이니 중국에서 선차의 부활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은 차산업의 종주국과 같다. 크게 어려움은 없다.
다만 선불교란 무엇인가? 선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선차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있어서 그들이 깊어지는 것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제대로된 리더 한 사람만 나타나면 더 쉬울 수도 있다. 지금처럼 선차를 접하는 사람이 아직은 소수인 상황에서는... 불교와 선차를 제대로 이해한 한 사람이 절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반면에 한국은 선차를 이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선결과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삼국이 만나려면 한국도 한국의 느낌이 나는 다법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일본식 다도가 추구하는 방식으로는 일본의 정신을 표현하기에 용이하다고 생각된다. 한국은 한국의 방식으로 정신과 정서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한국 방식의 선차도 일본다도처럼 창의하여 형식을 만들어서 세련되고도 수준높은 정신성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선차다회나 선차공연은 앞으로 그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쯤에서 일본다도 그 자체만 계승한 것인지, 차문화 이래로 시작된 선차로부터 이어져 오는 정신안에서 부분적인 일본다도 형식을 도입한 것인지를 분명히 해줘야 할 때가 한국차문화계에도 도래한 것 같다고 생각해보게 된다. 후자라면 많은 다도회들이 선의 깨달음의 표현인 선다일미, 끽다거 사상 그 자체인 ' 선차 ' 를 외면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여겨진다. 한국 선불교는 종교를 넘어서서 이제는 문화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깨달음에 목말라 하는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이미 정서에 그런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하여 선불교의 선사상의 느낌이 한국선차에 제대로 깃든다면 선차의 방향성으로는 아주 좋을 것 같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종교를 떠나서 차문화계에서도 선차의 방향성을 먼저 보고 그 정신을 이해하고 창의를 하여야 예술성도 빛을 발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정신성 구현에 있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어서 언급한 것이니 그리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다도회들이 말차를 주로 하지만, 고려시대에도 말차문화였고 화려한 귀족불교문화가 선불교와 공존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현재의 말차다도회들이 일본식 다도를 떠나서라도 고려시대의 화려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차문화 역시 시대정신이 없을리는 없다고 여겨진다. 현 시대에 맞는, 현 시대가 원하는 정신은 가지고 흘러야 한다고 여겨진다.
선차는 깨달음 그 자체이기도 하고, 때로는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현 시대에 와서도 역시 ' 선차' 는 차문화의 최상위에 포진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 선차 ' 로서 차문화는 비로서 정신문화를 포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약초로만 사용되고 음료로만 사용되던 차가 ' 선차지법 ' 을 시작으로 하여 ' 깨달음의 정신성 ' 을 온전하게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 정신을 포함한 차문화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차문화에 시대정신이 없을리가 만무하다.
선차공연에서 삼국 모두 다법들이 독특했다. 중국은 화려했고 동작이 많았다. 그러나 절제성을 갖추려 하고 있었다. 일본은 정갈하고 절제되었고, 숙련 되어졌고, 한국은 의상들과 색감들이 화려했고, 좀 더 다양한 것들이 많고, 동작들을 모두 맞추어서 한몸처럼 움직였다. 또한 일본의 8폭 다실을 벗어나서 대형 다실을 연상케하는 형태를 보여 주었고, 좀 더 조직적인 형태를 보여 주었다. 이 역시 자주 모여서 서로 맞춰보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숙련되게 말차타는 훈련을 해야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일본은 8폭 다실, 혹은 4폭 반 다실을 기본으로 하지만, 한국의 다회는 회원들이 모두 모여서 한 자리에서 말차시연을 하기 때문에 좀 더 대형화 되고, 조직화 된 느낌을 받게되고, 인원이 많아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좀 더 위압적인 느낌을 낸다고 생각되어졌다. 이런 부분이 일본보다 더 일본같은 느낌과 동시에 훈련된 조직원들이라는 느낌도 받게 하였다. 그래서 구현하는 정신성에 관심이 가기 보다는 위압적인 느낌이 먼저 들어와서 정신성 구현이 조금은 뒷전이 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한몸처럼 움직이고, 절제된 표현과 동작들, 예술성을 구현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였다는 것에서 그 완성도는 높다고 할 수 있을 듯 했다.
다우님들과 같이 보았다면 우리가 나눌 대화들도 더 다양하고 풍성해졌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생겨났다. 공연은 대체로 좋았다. 선차공연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말하자면 ' 느림과 절도 ' 이다. 슬로우 템포와 절도를 갖고 있었다. 느림을 주제로 삼는 다회도 있었고, 절도를 좀 더 상위에 둔 다회도 있었다. 느림을 부각 시키는 다회가 좀 더 우아미는 있는 것 같고, 절도가 많이 들어간 부분들은 어떤 침묵의 경직성과 위압감과 권위를 부각하려는 느낌이 더 커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는 각 다회가 추구하는 성격과 갖는 것이어서 그 다회들만의 특성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대에서 사람의 배치와 사람의 동작이 이런 느림과 절제가 갖는 의미들을 그대로 투사하고 있었다. 투사된 의미들은 그대로 느낌으로 과감없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즉 보여준데로 보는 사람이 느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느낌들을 토대로 소감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은 성격이 다른 다회들을 한데 모아 공연을 성사시키기 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겠는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동안 있기는 하지만 그 실체를 접하기 어려운 부분을 수면위로 드러나게 하였다는 것에 대해서 공연 그 자체는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또한 기꺼이 마음을 내어 여러 다도회들이 한자리에서 공연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여겨졌다.
물론 우리나라에 많은 다도회들이 있겠지만, 그리고 이번 공연에 참여한 다도회들은 그 수많은 다도회들의 일부이겠지만, 모여서 뭔가를 해낸다는 것에서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차문화는 어느 일부분만이 우리차문화다 라고 할 수는 없다. 곳곳에 포진된 다양한 형식을 갖는 차문화들이 모여서 한국차문화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어디는 되고, 어디는 안되고..이것은 아닐 것이다. 좀 더 열림의 소통문화를 이루어서 차문화가 굵은 줄기를 이루어 힘차게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되어졌다. 독창성과 창의성이 제대로 방향을 잡으려면 추구하는 정신성이 먼저 잡혀 있어야 한다. 선차는 그런 부분에서 한국차문화와 한국 불교차문화에 큰 구심점이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다시 들차회로 돌아와서 ...
다시 들차회로 돌아와서 모두가 즐거워 하는 가운데 창경궁 들차회를 모두 마음으로 즐기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짧아서 아쉽기는 했지만, 우리 서로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어쩌면 차맛어때를 또 흘러가게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아름답게 즐겨주는 이들이 있어서 그 공간에서 그 시간들은 아름답게 기억된다.
이러는 가운데...현담님이 오셨는데 어느순간 보니 안 보이셨다. 나중에 문자를 확인하니 먼저 가신다고 하셨다. 뒷풀이로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햇는데, 급하게 바로 들차회를 시작하는 바람에 서로 인사도 제대로 못 시켜드렸다. 다음에 다회에 꼭 오시기를 바래본다. 흐름님이 갑자기 나타나시네. 어~ 온단말 없었는데..서프라이즈를 너무 좋아해..흐름님은...다음날 공연장에서 봤으나 대부도 간다고 갔다. 생각해보니 같이 공연을 못본것이 너무너무 아쉽다. 정말 아쉬웠다.
들차회가 파해갈 무렵 하늘꽃향기님이 오셔서 차 달라고 하시네. 왜 늦게 오셨냐고 하니 일이 바빠서...그래도 오신 것이 어디예요^^. 즐거운님은 선차학술대회도 참여하시고 일찍 오셨다가 차 드시다가 먼저 가셨다. 손한번 잡아 드리고 다음에 뵈요.하고 보내 드렸다. 차연님은 일찍 오셔서 사진도 찍으시고 차를 즐기시다가 먼저 가셨다. 신림동 한번 가려고 해도 좀 멀어서리..ㅋㅋ..안와도 돼요. 하신다.ㅋㅋ. 그리고 들차회가 끝나서 도착하신 무애님(지리산 무애님 아니구요ㅋㅋ^^)은 종이컵 차한잔 밖에 못 드렸네요. 다음에 차한잔 해요.^^.
후박나무님은 오셔서 아~ 저녁을 사야 하는데...하시더니 ㅋㅋㅋ 천장사에 이달 27일날 경허선사 탑비 기념행사가 있어서 사람을 만나셔야 한다고 뒷풀이 같이 못가서 어쩌냐고 하신다. 어쩌긴요. 그러려니 해야지요.ㅋㅋ^^ (혹여 이달 27일에 시간 되시는 다우님들께서는 천장사에서 이달 27일에 ' 경허선사 탑비 건립 행사 ' 가 있으니 찾아가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너럭 바위가 있는 곳에 정자도 이번에 세워졌고, 천장사 불사도 한 것 같습니다. 새롭게 변한 천장사가 저도 기대가 되는데, 시간은 잘 모르겠습니다.^^;)
차맛어때가 참여한 두리차회 들차회는 이러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참여하신 다우님들은 가을행복님, 마음거울님, 고수사랑님 내외분과 수연이 수빈이, 여인천하님, 우담바라님, 자훈님 내외분과 일행분, 송우님, 수진님과 일행분, 즐거운님, 차연님, 현담님, 하늘꽃 향기님, 이스크라님, 흐름님, 왕소금님,후박나무님, 산울림님, 아란도 입니다. 그리고 뒷풀이에 참여하신 쪽빛하늘님이 계시구요. 최행숙님과 일행분, 그리고 공연장에서도 뵙고 같이 공연을 관람한 해완님, 그리고 오신다고 하셨으나 시간상 못오신 다우님들이 마음만 성원을 보내셨네요.^^
서로서로 도와가며 호흡을 맞춰주신 다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차를 협찬해주시고 그 밖에 여러가지를 협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수사랑님 말씀처럼 차맛어때는 전천후다 라는 말씀처럼 차를 내면 찻잔을 씻어 주시고, 물을 보충해 주시고, 통역도 해주시고, 차배달도 하시고, 사진도 찍으시고, 손발을 맞춰 일사분란하게 유쾌하게 재밌게 들차회를 같이 끌어가니 차맛어때는 전천후 아귀가 딱딱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로 입구 감자탕 집에서 저녁도 쏘셨지요. 이런...^^; 정말 감사하게 잘 먹었습니다.
뒷풀이 2차로 차생원에 가서 한잔 했지요. 송우님께서 찍으신 사진도 카톡으로 보내주시고, 뒷풀이 함께 못해서 미안하시다고 문자도 보내 주셨지요. 다음에는 꼭 함께해요.^^ 그런데 산울림님이 조만간 뒷풀이 다회를 다시 한다고 하네요. ㅋㅋ^^
그리고 이번 들차회에 차맛어때 참여를 결정하고 차의세계님과 호흡을 맞춰 일을 진행하시느라 애를 쓰신 산울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들차회를 위해 월차를 내준 왕소금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들차회에 차맛어때를 초대해주시고 자리를 내어준 차의세계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틀 참여하고 나니 몸이 ㅋㅋㅋ 초죽음이 되는데, 이번 행사를 치루시는 것이 보통일은 아니실텐데 정말 체력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아니면 정신력이 강하신 것인지...^^ 어쨌든 행사가 흡족하게 잘 치뤄지셨기를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참여하신 다우님들, 마음으로 성원을 보내주신 다우님들...모두 모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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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고궁에서의 차의 세계와 어울림이 한층 덧보였습니다.
바쁘시게 움직이시는 모습에서 도와 드리지못하고 돌아와서 송구 합니다.
다음 다회때 뵙기로 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함께하여 주신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마음을 내어 주신다는 것이 언제나 큰 것이니까요.
그 자리에 함께하든 하지 못하든...같은 마음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현담님은 아란도님만 이뻐해. ㅠ,.ㅠ
이야기할 새 없이 뒷모습과 옆모습만 어렴풋 떠오르고 있사오니
제 이 주변머리를 어찌할꼬나?
하하 다음엔 두루두루 차한잔해요.~,.^
산울림님!
전 아직 아란도님 말고는 기억속에 있는분들이 안계십니다.
아란도님을 이뻐해서가 아니라 뵈온분이 아란도님뿐이라.....ㅎ
다음 모임에서 기억에 오래 남을수 있게 소개올리겠습니다.
그날은 바쁘셔서 인사 안드리고 오는게 좋을듯 싶어서 그냥 왔으니 용서 구합니다.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 참 멋지시옵니다~
모두를 아울러 담아내시고 살펴주시는 정~
선차와 차맛어때에 대한
현주소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읽어내고 들려주는
깊고 단단하면서도 열린 시선~
함께하고 못하고
마음 하나
이 차한잔의 모든인연을 감사합니다
산울림님이 마음을 가지고 추진한 것이니 그 역시 산울림님의 활동성이 큰 몫을 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모두가 좋은 경험을 하였으니 그 역시 감사한 일이지요.
차한잔 올립니다.^^()
호흡이 척척 잘 맞는 차맛어때~
그래서 더더욱 정겹기만 합니다
오래토록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인연이길 바라며
다시 한번 더 들차회를
알뜰살뜰 도와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차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현명한 시선과 판단과 바램이
행간 행간 잘 뭍어 있습니다
공감이 가는 곳도 있고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아무튼 아란도님의 차에대한 내공은
대단하십니다
저로써는 감히 엄두도 못내는 훌륭한
내용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호흡은 소정님께서 더 잘맞춰 주셨지요. 감사드립니다.^^
저는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 차문화가 거대하게 한 방향을 보고 그 안에서 각자 새롭게 피어나길 늘 희망합니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차문화를 보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차문화 역시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차문화는 흐름의 차문화이고 공간에서 시간으로 이행하는 차문라서 차문화도 진보하고 있으니까요. 그 흐름의 방향성을 잘 보고 우리는 늘 현재에서 그저 합류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감사합니다.^^()
^^;..빠지신 다우님들이 계셔서 다시 수정하였습니다. 글의 일부분도 생각에 대하여 좀 더 설명이 들어가야 매끄러운 부분들을 위하여 설명을 조금 첨가하고 오타도 수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클릭하시면 큰 사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뒷풀이 사진은 산울림님 사진 올리신 것을 보시면 될듯해요. 폰으로 찍었더니 너무 흐려서 안올렸습니다. 그리고 스크랩 해 가신 분이 계시기는 하지만, 복사와 스크랩 금지를 설정해 놓았습니다. 이유는 개인적 소견이 많이 들어갔기에 그렇습니다. 스크랩 해 가셔도 상관은 없지만서두요....ㅋ~^^()
아란도님 차내는 모습..단연 관록이 돋보였지요..고생 많으셨어요...직접 궈오신 쿠키다식 참 맛나더이다..ㅎㅎ 안질리고 고소하고..^^
ㅋㅋ..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셔주셔서요. 송우님께서도 일정이 바쁘셨는데 함께하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잠깐 참석하여 둘러 보았는데.....
차맛어때 사람들이 그중에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 였다고 봅니다.
제가 정의 하는 '禪茶'는 '편안함', '자유로움', '친절'입니다.
불교를 위한 불교, 禪을 위한 禪은 없으며
차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녁이라도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즘 바쁘게 살다보니...같이 하지 못한 점 아쉽게 생각합니다....()
저도 동의 합니다. 참석하여 주셔서 감사하지요.^^
다음에 모두 차한잔 나누면 되지요.
후박나무님께서 이번에 천장사 불사로 많이 바쁘셨는데 찾아 뵙지 못해서 죄송하지요.^^;
탑비 봉행식도 잘 치뤄지시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다음에 저녁 꼭 사주세요. 하하ㅋㅋㅋ^^()
저도 덩달아 "禪茶"를 정의해보거니
"열림과 소통, 잔 하나 오고 가는 자유로움이 절로 한흐름되어 더불어지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 서 이 손아귀 한모금이야말로 자연한 징검다리로세[澄儉茶理路世]"
바쁘신 중에도 그리 오셔서 함께 함으로 더욱 빛났습니다.
그리고 그 번개저녁 뒷풀이 감사드립니다.^,.~
_()_
화창한 가을날 창경궁 들차회!
찬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차맛어때 동참하신 다우님들 수고 많이 하셨어요!()
아란도님 산울림님 넘 고생 하섰슈!!!^&^
우담바라님 께서 멀리서 찾아 주시니 감사했지요. 뒷풀이도 참여 하여 주시니 마음이 훈훈했지요.
삶은 땅콩도 맛 있었고, 구운 계란도 잘 먹었지요.^^
이리 종종 뵈면 우담바라님 보따리만 쳐다보게 될것 같아요. 흠 저기서 어떤 먹거리가 나올까...하는... 하하^^
참여하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창원 멀리서 달려오셧건만
하룻밤 재워드리지도 못하고 보내고말은 심정
그런데도 그리 인심과 덕담을 아낌없이 주시는 정!!!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는데 인내심을 ~~아무튼 고생하셨고요..
서울에 살면 아란도님의 차 한잔 얻어 마실수있는 기회였는데~~ㅎ
차마시고 싶을때 차맛어때란 형식을 빌어 자유롭고 편하게 다회를 할 뿐이고
차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에 서로 얼굴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다회를 할 뿐인데~~이도 차문화라 할 수 있을까요?~~ㅎㅎ^^
ㅋㅋ지송염.^^
우리가 공연 경연 시연 할것은 아니니 차맛어때 스타일대로 쭈욱 다회를 하시면 되겠지요.^^
그것이 대중성이자 현대성이자 파격이지요. 지금을 사는 우리삶에 필요한 찻자리를 열어가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니까요. ㅋ~..감사합니다.^^()
사진 예쁨.. 글도 예쁨..
들차회 참석해 주신 회원분들 모다 고생하셨어요~^^
차 내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가을행복님이 들차회를 같이 치뤄주니 다음에 차맛어때만에 들차회를 할때도 든든해요. 좋은 인연입니다.^^()
말차 맛좋음
내는맵씨도 고움
다리 혹사되는 어려움도 잊고
처음부터 끝까지 차를 내신 정성과 베품에
함께한 모든이들이 여유롭고 햇살 찬란하였음
참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