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쏠리고 달관하는 건 원래 다르다네 (鍾情達觀元相異)
내가 안인의 〈도망시(悼亡詩)〉를 읽어 보니 / 我讀安仁悼亡詩
산새와 물고기에 깊은 슬픔 붙였고 / 林鳥川魚托深悲
또 장자의 고분(鼓盆)이란 말을 읽으니 / 又讀南華扣盆語
처음을 생각하다가 문득 무형(無形)에 이르렀지 / 念始却到無形時
두 사람의 말이 각각 의미 있으니 / 二子之言各有意
정이 쏠리고 달관하는 건 원래 다르다네 / 鍾情達觀元相異
[주-1] 안인(安仁)의 …… 붙였고 :
아내의 죽음에 슬퍼함을 말한 것이다. 안인은 서진(西晉) 때의 저명한 문학가인 반악(潘岳, 247~300)의 자이다.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도망시(悼亡詩)〉 3수가 있는데, 그 첫 번째 수에 “저 높이 나는 새가 짝지어 깃들었다가 하루아침에 홀로된 듯하고, 저 내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나란히 다니다가 도중에 헤어진 듯하네.[如彼翰林鳥, 雙棲一朝隻; 如彼遊川魚, 比目中路析.]” 하였다. 《文選 卷23 悼亡詩》
[주-2] 장자의 …… 이르렀지 :
아내의 죽음에 달관한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장자(莊子)의 아내가 죽어, 혜자(惠子)가 조문을 왔는데, 장자가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하고 있었다. 혜자가 노래까지 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묻자, 장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네. 아내가 처음 죽었을 때야 난들 어찌 슬프지 않았겠나? 하지만 그 처음을 살펴보니 본시 삶이란 없었던 것이고, 삶만 없었던 것이 아니고 형체마저 없었던 것이네.” 하였다. 《莊子 至樂》
위는 한포재 이건명 선생이 지은 명암 이해조의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시(挽詞)에 나오는 대목으로 부부간의 사별과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우리는 비록 사랑하는 배우자의 죽음에 임할지라도 깊은 정에 쏠려 몹시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을 깊이 하여 달관의 경지에서 이를 바라보아야 부족함이 없고 앞날에 두루 서광(瑞光)이 비칠 것이다.
성경에서는 인생을 말하기를 아침에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로 묘사하였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장 14절).
그러므로 비록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임하여서도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누리게 될 내세에서의 영생(永生)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永生)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니...” (디도서 1장 1-2절).
2023. 2.24. 素淡
한포재집 제1권 / 시(詩)
이 진사해조 아내 만사〔李進士 海朝 內室挽〕
············································································· 한포재 이건명 선생
내가 안인의 〈도망시〉를 읽어 보니 / 我讀安仁悼亡詩
산새와 물고기에 깊은 슬픔 붙였고 / 林鳥川魚托深悲
또 장자의 고분이란 말을 읽으니 / 又讀南華扣盆語
처음을 생각하다가 문득 무형에 이르렀지 / 念始却到無形時
두 사람의 말이 각각 의미 있으니 / 二子之言各有意
정이 쏠리고 달관하는 건 원래 다르다네 / 鍾情達觀元相異
지금 그대가 아름다운 배필 잃고 / 今者李子失嘉耦
친구에게 만시 부탁하는 편지 보내왔네 / 乞挽親朋書以致
유인은 시집온 지 십여 년간 / 孺人于歸十年餘
맑은 덕으로 일찍부터 집안에 칭찬 흡족했지 / 淑德早洽宗黨譽
난초 싹 해마다 자라 줄을 이뤘고 / 蘭芽歲茁已成行
자형나무에 봄이 깃들어 새로 거처 지었네 / 荊樹春移新築居
자리에 있는 금슬이 고요하고 좋아 / 琴瑟在御靜且好
해로하자는 맹세 영원하길 기약했건만 / 偕老之誓期永保
방태 갈라졌는데 달이 바다에 잠기니 / 蚌胎乍剖月沈海
축하와 조문이 어지러이 뒤섞여 오는구나 / 賀弔紛紛任顚倒
떠난 자는 그만이지만 시일 바삐 흘러가 / 逝者已矣日月忙
소거 출발하려니 바람이 슬프고 처량하네 / 素車欲發風悲涼
가장 슬픈 건 어린 자식들 앞자리 가득 곡하며 / 最是群孩滿前哭
혹 일어나서 혹 앉아서 모두 어미를 부르는 것 / 或起或坐皆呼孃
길 가는 사람도 보고 눈물 훔치니 / 行路見之尙掩泣
세간 사람 몇이나 마음 굳건히 할 수 있으리 / 世間幾人有剛腸
하물며 나는 전에 현을 끊은 사람이라 / 況余前度斷絃人
부음 듣고 문득 더 슬프네 / 聞此便覺增悽傷
무슨 말로 그대 뜻에 답할까 / 爲將何語答君意
위에서는 반악을 아래서는 장자를 말하여 / 上言潘郞下言莊
한편으론 그대 슬픔 조문하고 한편으론 그대 마음 위로하니 / 一以弔君悲一以慰君懷
칠원의 우언은 지금 맞지 않는다 말 마오 / 莫謂漆園寓語今無當
[주-1] 이 진사(李進士) :
이해조(李海朝, 1660~1711)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동(子東), 호는 명암(鳴巖)이다. 1702년(숙종28)에 알성시(謁聖試)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였고, 응교(應敎)ㆍ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이해조의 초취(初娶)는 군수를 지낸 윤이건(尹以健)의 딸인 남원 윤씨(南原尹氏)이니, 1690년에 별세하였다. 《屛山集 卷10 監司李公行狀, 韓國文集叢刊 177輯》 한국문집총간 175집에 수록된 《명암집(鳴巖集)》 권6에 이해조가 소상(小祥) 때 지은 〈제망실소상문(祭亡室小祥文)〉이 보인다.
[주-2] 안인(安仁)의 …… 붙였고 :
아내의 죽음에 슬퍼함을 말한 것이다. 안인은 서진(西晉) 때의 저명한 문학가인 반악(潘岳, 247~300)의 자이다.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도망시(悼亡詩)〉 3수가 있는데, 그 첫 번째 수에 “저 높이 나는 새가 짝지어 깃들었다가 하루아침에 홀로된 듯하고, 저 내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나란히 다니다가 도중에 헤어진 듯하네.[如彼翰林鳥, 雙棲一朝隻; 如彼遊川魚, 比目中路析.]” 하였다. 《文選 卷23 悼亡詩》
[주-3] 장자의 …… 이르렀지 :
아내의 죽음에 달관한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장자(莊子)의 아내가 죽어, 혜자(惠子)가 조문을 왔는데, 장자가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하고 있었다. 혜자가 노래까지 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묻자, 장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네. 아내가 처음 죽었을 때야 난들 어찌 슬프지 않았겠나? 하지만 그 처음을 살펴보니 본시 삶이란 없었던 것이고, 삶만 없었던 것이 아니고 형체마저 없었던 것이네.” 하였다. 《莊子 至樂》
[주-4] 유인은 …… 년간 :
증(贈) 정부인(貞夫人) 남원 윤씨는 1658년(효종9)에 태어나서 1675년(숙종1)에 이해조에게 시집왔고, 시집온 지 16년 만인 1690년에 별세하였다. 《鳴巖集 卷6 祭亡室小祥文, 韓國文集叢刊 175輯》 《芝村集 卷22 贈貞夫人南原尹氏墓誌銘 , 韓國文集叢刊 170輯》
[주-5] 난초 …… 이뤘고 :
훌륭한 자식을 두었음을 말한 것이다. 백거이(白居易)가 58세의 늦은 나이에 아들 하나를 얻고서 지은 시에 “가을 달 아래 늦게 나온 붉은 계수 열매요, 봄바람에 새로 자란 자줏빛 난초의 싹이로다.[秋月晩生丹桂實, 春風新長紫蘭芽.]” 하였다. 《白香山詩集 卷30 予與微之老而無子發於言歎著在詩篇今年冬各有一子戲作二什一以相賀一以自嘲》
[주-6] 자형나무에 …… 지었네 :
형제간에 한집에서 우애 있게 지냄을 말한 것이다. 이해조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큰형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우애가 돈독하였다. 《屛山集 卷10 監司李公行狀, 韓國文集叢刊 177輯》 한나라 때 경조(京兆) 사람 전진(田眞)이 형제들과 부모의 재산을 나누어 갖기로 의논하고 전부 고르게 배분한 뒤에 집 앞에 자형나무 한 그루만 남았는데, 세 동강으로 잘라 갖기로 하고 이튿날 나가 보니 불에 타 버린 것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전진은 깜짝 놀라며 “나무는 본디 한 뿌리인데 동강낸다는 말을 듣고 말라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나무보다 못한 것이다.” 하자,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 그에 감동한 형제들은 재산을 도로 합치고 우애 있게 살았다고 한다. 《續齊諧記》
[주-7] 자리에 …… 좋아 :
부부간에 금슬이 좋음을 말한 것이다. 《시경》 〈여왈계명(女曰鷄鳴)〉에 “자리에 있는 금(琴)과 슬(瑟)도 고요하고 좋지 않음이 없도다.[琴瑟在御, 莫不靜好.]” 하였다.
[주-8] 방태(蚌胎) …… 오는구나 :
방태는 조개 속에 구슬을 품은 것이 마치 사람이 애를 밴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文選 卷5 吳都賦》 방태가 갈라졌다는 것은 부인이 애를 낳음을 말한 것이고, 달이 잠긴다는 것은 부인이 죽음을 말한 것이니, 길흉이 뒤섞여 온다는 것은 부인이 애를 낳고 죽었음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주-9] 소거 :
상례(喪禮) 때 사용하는 수레로, 백토(白土)를 칠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10] 나는 …… 사람 :
현을 끊었다는 것은 상처(喪妻)를 말하니, 이건명도 1684년(숙종10)에 부인 광산 김씨(光山金氏)를 잃었다. 《兼山集 卷14 左議政寒圃李公行狀, 韓國文集叢刊 續74輯》
[주-11] 칠원(漆園)의 우언(寓言) :
칠원은 장자를 가리키니, 칠원의 우언은 곧 앞에서 인용한 장자의 고사를 말한다.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전형윤 황교은 (공역)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