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바다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또 나흘 닷새 엿새
(3893) 추억(조병화 시, 김성태 곡) - YouTube
이렇게 그 날들의 추억이 생생한데 왜 잊고 싶어 할까요?
아마도 생각나는 사람이 그리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아련한 감정이 벅차오르니 차라리 잊아버리는 것이 덜 아픈가 봅니다
국민학교 3학년쯤 일까 봅니다
무심코 농협창고 앞 감리교회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날 무슨 행사를 준비하느라고
아이들이 두런두런하며 무슨 연극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멍하니 서서 그들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보는데서 저렇게 연극을 할 수 있을까?
저리 말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은가?
나는 무대에 올라갈 용기도 없었고
올라가더라도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놀랍기도 하고 또 학교말고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며 신기해 하였습니다
남학생 여학생이 함께 말하며 지낼 수 있는 곳
설레는 감정을 갖게 하는 교회?
이웃집 친구 일희의 어머니가 성결교회 다니셨는데
추운데서 뛰놀며 소매로 코를 닦는 나를 보시더니
주일날이 되면 교회 나가 보라고
나가면 맛있는 것도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날이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를 마치고 갈 시간이 되었는데
아이들 모두에게 신문지에 기계떡 한 가락씩 싸 주더라구요
추운 겨울이지만 장갑도 없어서 맨 손으로 그 떡을 들고 집으로 뛰어왔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이런 추운 날에 떡을 구워먹을 수 있다니
집에 잠시 있다가 일희집으로 갔습니다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 가깝지요
일희네는 마루에 화로가 있었고, 일희는 안 보이고
마침 일희어머니가 계셔서 맛있게 구워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고소한 맛을 잊을 수 있을까요?
신문지 글자가 새겨진 떡을요
(3893) Memory - Barbra Streisand: with Lyrics
이제는 일희 어머니도 일희도 만나볼 수 없게 되었지요
80년대 초 쯤일것입니다
초창기 충주상고에서 교사생활로 힘들어 할 때 방학을 맞아 서울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우리집은 강남 논현동 일희어머님은 잠실에 사셨습니다
울 어머님이 일희 어머니를 뵈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몸이 많이 아프시니 병문안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일희어머니께서는 혼자 잠실아파트 살고 계셨습니다
광주에서 살때 이웃집에 사시는
일희어머니는 항상 저를 보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울 어머니가 회초리를 들고 나를 좇아 오시면 어머님을 말리셨고
내 생일이면 사탕도 사 주셨습니다
잠실 아파트까지 가자
혼자 사시는 일희어머니 방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나는 그저 젊었을 때의 모습을 하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세월이 흘러서인지 머리가 더 희어보였습니다
이제 임종을 얼마 안 남긴 것 같았지만 그리 많이 아파보이지는 않으셨습니다
안녕하셨어요? 하고 쑥쓰러워서 무슨 말을 못하고 앉았는데
일희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김선생 오셨네
김선생 잘 지내요?
얘들 가르칠만 해요?
나는 그저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코흘리며 떡 구워먹으며 신이 났던 어린 아이가 선생님이 되었으니
일희 어머니도 많이 웃으셨을 것입니다
울 어머님과 말씀을 나누고 일어났습니다
나는 무슨 위로의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일희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와 오면 늘 생각나는 것이
교회와 그리고 일희어머님입니다
오늘은 썰렁한 우리 교회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아직도 성탄절이 먼데도 불구하고
성탄장식을 간단히 해 보았습니다
컴퓨터 여기저기 찾아보니 좀 저렴하면서도 예쁜 것이 있어
주머니 돈을 털어 반짝이 전구와 벽에 불일 장식품을 두어가지를 샀습니다
교회 식당 창문에 하면 좋겠다 싶어
식탁에 펼쳐놓고 이리저리 뜯어 마추다 드디어 마무리를 했습니다
3시간이 너머서야 완성되었습니다
내일부터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됩니다
동창님들 어릴 적 즐거운 기억을 하며 건강하게 삽시다
첫댓글 채일희 잘 알지요.
클라리넷으로 교수까지ㅡ 성공했다 해야하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욕심 때문에 친구와 부모 보다도 성공을 위한 욕망의 결과가......
도토리님~ 크리스마스가 벌써 가까이 왔네요
추운 태백 에서 건강 조심하시고 해피 하세요.
청하님도 해피한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