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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and See!(와서 보라)
참고말씀: 삼하13:3-36; 잠13:20; 미5:2; 마2:22,23; 4:13-16; 10:2-4; 막2:3,4; 요1:40-44,49; 7:52; 21;1,2
읽을말씀: 요1:45-46
주제말씀: 요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첫째, 가까운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빌립은 누구와 한 동네 사람이었습니까?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두 형제입니다. 어느 동네 사람이었습니까? 뱃새다입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뱃새다 사람이라.”(요1:44) 이 세 사람 중 누가 제일 먼저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안드레입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요1:40)
안드레는 누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까? 그의 형 시몬입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 오니...”(요1:41,42) 빌립도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1:43) 누구를 찾아가서 그분을 소개해드렸습니까? 그의 친구 나다나엘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모든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되, 우리의 가까운 사람부터 그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들부터 인도해야 합니까? 안드레가 그의 형제인 시몬을, 빌립이 그의 친구인 나다나엘을 데리고 왔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형제나 가족, 친구 등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실 누구를 그나마 데려오기 쉽습니까? 또한 사람들은 흔히 누구를 따라서 교회에 나가곤 합니까? 친구(親舊)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주로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며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를 잘못 만나면 어떻습니까? 한 번 뿐인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리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 대표적인 경우가 누구입니까? 다윗의 아들 암논입니다. 그에게는 어떤 나쁜 친구가 있었습니까? 요나답입니다. “암논에게 요나답이라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삼하13:3) 즉 그는 요나답의 간교에 빠져 그의 이복누이 다말을 범했고 결국 이로 말미암아 그녀의 오라비인 압살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삼하13:3-36).
이로 보건대 우리는 누구를 잘 만나야 합니까? 친구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습니까? 우리의 친구를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할 책임입니다.
혼자서 힘들면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여럿이 함께 한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워서 예수님께로 데려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막2:3,4)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안드레나 빌립처럼, 우리도 우리의 형제나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려오고 있습니까? 혼자서 힘들면 여러 친구들이 함께 한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려오고 있습니까? 아직 그렇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기를 원합니다.
둘째, 와서 보라고 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1:46)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소개하자,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나다나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긍정적이었습니까? 아니면 부정적이었습니까? 안타깝게도 후자였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선입견 때문입니다. 즉 가난하고 못 사는 동네인 나사렛에서 어떻게 메시야와 같은 훌륭한 분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 상)
실제로 나사렛이 속해 있던 갈릴리 지역은 그리 평판이 좋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걸출한 인물이 배출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요7:52) 나다나엘도 이 점을 잘 알았기에 이처럼 빈정거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본래 어디에서 태어나셨습니까?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5:2)
사실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자라나 갈릴리에서 전도 활동을 하신 것도 다 무엇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습니까? 예언입니다.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2:22,23) /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 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4:13-16)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사람들은 종종 지역에 대한 선입견이나 출신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많은 것들을 놓치면서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갈릴리면 좀 어떻고 나사렛이면 어떻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얼마든지 뛰어넘어서 생각지도 못한 크고 놀라운 일들을 잔뜩 해내실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나다나엘이 부정적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누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까? 우리가 데려오려는 친구들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단념하고 돌아서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래도 끝까지 권면해야 합니다.
이 경우에 빌립은 어떻게 했습니까? Come and See!, 즉 와서 보기만 해봐! 라고 말했습니다.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1:46 하)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듯이, 매번 안 된다고 말하지만 말고 한 번 와서 보기만 해! 네가 직접 와서 한 번 봐봐! 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까? 나다나엘은 빌립을 따라나셨고, 예수님을 만났으며 빌립과 함께 영광스러운 열두 사도의 수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 그런데 아무리 봐도 사도들의 명단에 나다나엘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고요? 바돌로매가 곧 나다나엘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10:2-4) /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 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요21;1,2)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예수님께로 데려오고자 친구가 부정적이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권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1:46)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부정적인 친구일지라도 계속해서 권면하되, Come and See!(와서 보기만 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매번 안 된다고 말하지만 말고 한 번 와서 보기만 해! 네가 직접 와서 한 번 봐봐! 라고 권면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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