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인가, 음부(陰府)인가?
표준 킹제임스역이라는 불리는 번역본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무덤(grave)으로 표기된 단어들 가운데 상당수를 ‘성경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공간’인 음부(陰府)라는 불교 용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참고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grave는 단수로 67회, 복수로 21회, 총 88회 나옵니다. 사실 grave라는 단어는 중학교 아이들도 무덤으로 알고 있는 쉬운 말입니다.
일단 음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음부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음부(陰府) :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 저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저승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승이 이생[此生]에 어원을 두고 있듯이 저승은 차생[彼生]에서 유래하였다. 저승은 후생(後生) · 타계(他界) · 명부(冥府) · 음부(陰府) · 명도(冥途) · 명토(冥土) · 황천(黃泉) · 유계(幽界) · 유명(幽冥)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가운데 명부와 음부는 이승의 관부(官府, 정부나 관철)와 같은 개념을 저승에 상정한 것이다. 저승에 극락과 지옥이 있다는 관념은 도교와 불교의 저승관이 한국에 도입된 이래 통용된 것이고, 극락과 지옥은 저승의 하위 개념이 된다.
종교마다 나름의 저승관을 갖고 있다. 한국 종교는 다종교 공존의 특성을 지닌다. 여러 종교가 동시에 함께 사회에 존재하면서 신앙되기에 한국에는 여러 종류의 저승이 공존하는 셈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저승
즉 우리말에서 음부는 죽은 뒤에 모든 사람의 혼이 가서 사는 것으로 알려진 불교의 저승을 말합니다.
다음 표에서 보듯이 음부는 개역성경(개정), 카톨릭 성경 등에 주로 사용된 단어인데 표준역 역시 이런 성경들과 궤를 같이 하며 음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글 킹제임스 창37:35, 그러자 그의 모든 아들들과 그의 모든 딸들이 일어나서 그를 위로하나 그가 위로 받기를 거절하고 말하기를 "내가 내 아들을 애도하며 음부로 내려가리라." 하며 그의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왜 grave를 무덤으로 하지 않고 이렇게 음부로 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종교 개혁 이전에 카톨릭 교회는 사후 세계(공간)를 천국, 지옥, 연옥의 셋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런데 종교 개혁과 함께, 특히 영어가 만국의 공용어로 발전하며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이 나오면서 사후 세계는 유대인들의 성경 개념대로 천국과 지옥, 단 두 곳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 두 개의 장소 말고 죽은 사람의 혼이 가는 데는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후 세계입니다.
개역성경의 음부는 샤머니즘(불교) 전통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후 세계를 셋으로 구분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창세기 42, 44장에는 야곱과 그의 아들 베냐민에 대한 기사가 있고 야곱이 베냐민이 죽을까 봐 염려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세기 42장 38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if mischief befall him by the way in the which ye go, then shall ye bring down my gray hairs with sorrow to the grave.
표준: 만일 너희가 가는 도중에 그에게 위해가 가해진다면 그때 너희는 나의 백발들을 슬픔으로 무덤에 끌고 내려가리라.
표준역은 여기서 grave를 무덤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44장 29절에는 동일한 내용을 두고 grave를 음부라고 번역하였습니다.
And if ye take this also from me, and mischief befall him, ye shall bring down my gray hairs with sorrow to the grave.
표준: 그런데 만일 너희가 이 아이마저 나에게서 빼앗고 그에게 위해가 가해진다면 너희는 나의 백발들을 슬픔과 함께 음부까지 데리고 내려가게 하리라.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표준 킹제임스 번역자들은 grave가 무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창세기 42장 38절에서만 이것을 무덤으로 번역하고 다른 데서는 음부로 번역하였습니다. 아니면 부실한 번역으로 인해 같은 단어를 통일시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야곱이 의인이며 분명히 구원받은 성도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표준역에 따르면 의인인 야곱은 음부로 갑니다.
다윗이 기록한 시편 31편 17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Let me not be ashamed, O LORD; for I have called upon thee: let the wicked be ashamed, and let them be silent in the grave.
표준: 오, 주여, 제가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이는 제가 당신을 불렀기 때문이니이다. 사악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그들이 음부 가운데 잠잠히 있게 하소서.
표준역에 따르면 여기에서 다윗은 구원받지 못한 사악한 자들이 음부에 거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의인과 악인 즉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가 동시에 거하는, 음부라는 공간이 있단 말입니까? 이런 데는 성경에 없습니다.
특히 표준역 시편 31편 17절을 그대로 읽으면 천주교의 연옥 교리가 되지 않습니까?
표준: 오, 주여, 제가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이는 제가 당신을 불렀기 때문이니이다. 사악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그들이 음부 가운데 잠잠히 있게 하소서.
한글 킹제임스: 오 주여, 나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주를 불렀나이다. 악한 자들로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개역: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카톨릭: 주님,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악인들이나 수치를 당하여 말없이 저승으로 사라지게 하소서.
결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처럼 gave를 다 정직하게 무덤으로 통일해서 번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성경 내장 사전(Concordance)이 작동을 하면서 무덤의 의미가 무엇인지 누구라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같은 단어 grave를 무덤과 음부로 번역자가 자의적으로 나누면 성경이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게 하는 일이 불가능해집니다. 이것은 특별히 사후 세계 같이 교리적으로 중요한 단어들에 대해 번역자가 일관성 있게 지켜야 하는 번역의 원칙입니다.
물론 무덤은 죽은 사람이 묻히는 장소이지만 은유로는 사망 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grave를 그대로 무덤으로 번역하고 독자들이 앞뒤 문맥을 통해 스스로 이런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영어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음부는 뜨거운 곳입니다.
그런데 무덤 속은 뜨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늘함...ㅎㅎ.
그렇기 때문에 무덤을 음부라고 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