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간 목요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025. 3. 12.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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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간 목요일 강론>(2025. 3. 13. 목)(마태 7,7-12)
<기도는 ‘이미’ 주신 것을 잘 받으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7-12).”
1)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는, “아버지께서 ‘이미’
주신 것을 청해서 받아라.”이고,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는, “아버지께서 ‘이미’ 자물쇠를 풀어 놓으신
문을 열고 들어가라.”입니다.
‘기도’는 안 주시는 하느님께 달라고 떼를 쓰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주신 것을 잘 받으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안 주셔서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받으려고 하지 않아서 못 받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내가’ 바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그것과 내가 바라는 그것이
일치하는 사람은, 또 아버지께서 정하신 ‘그 때’와
내가 생각하는 ‘그 때’가 일치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또 언제가 가장 좋은 때인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모를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로마 8,26-27).”
성령의 도움을 잘 받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이고, 그것이 무엇이고,
그 때가 언제인지를 알려 주시는 분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올바르게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끝까지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면서, 겸손하게,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우리가 바라고 있는 것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되, 결과는 하느님께 맡겨 드리면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6-7).”
기도하는 동안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평화와 힘과
용기’를 얻는 체험을 하는 신앙인들이 실제로 많이 있습니다.
소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평화와 힘과 용기를
얻는 체험을 한다면, 그것은 소원이 이루어진 것보다 더 큰
은총을 얻은 것이고, 그 힘을 통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또 주님께서 언제 주시든지 간에, 주시는 그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수많은 신앙인들의 생생한 증언입니다.>
3) ‘황금률’은 신앙생활의 ‘기본 원리’와 같은 계명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일은, “하느님은, 인간들이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라시는 그대로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당신이 먼저 인간들을 사랑하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먼저 인간들을
사랑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내가 너희를 사랑하니 너희도 ‘나를’ 사랑하여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9-11).”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로 실현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하느님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입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이지만, 실천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한다.” 라는 계명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황금률은, “다른 사람이 너를 사랑하기를 바란다면,
‘네가 먼저’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하기를 기다리면 안 됩니다.
언제나 항상 ‘내가 먼저’ 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사순 제1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