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게임도 없고 해서, 예전 게임 파일을 찾아 보던 중 91-92 시즌 동부컨퍼런스 세미 파이널
불스 vs 닉스 플옵 7차전을 다시 감상하다 4대센터 중 한명인 패트릭 유잉을 회고해 봅니다.
언젠가 유잉의 커리어와 수상실적을 거론하며 4대센터에서 빼야되는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었고..
커리어가 불운하다보니, 이젠 그의 위상과 엄청난 실력마저 폄하당하고 있어 분노했던 기억이 있네요..
09-10 레이커스 백투백 우승 이후엔 가솔이 이제 유잉을 넘은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었으니 ㅠㅠ
(가솔 팬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아직 커리어가 남아있고, 우승팀의 2옵션인 가솔과 전성기 4대센터와 경쟁을
펼치면서 평균 24점, 11보드, 3블락 이상을 수년동안 시전한, 92년 그 유명한 원조 드림팀 주전센터 유잉과의
비교는 정말 어불성설이겠구요..
조던 첫우승 이후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더불어 조던의 시카고를 7차전까지 끌고간 유이한 팀,
90년대 초반기 가장 치열하게 동부 패권을 다퉜던 팀, 뉴욕 닉스의 심장 유잉!
91~92 시즌은 이렇게 7차전에서 패배를 했고, 92-93시즌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디펜딩 챔프
막강 시카고를 상대로 먼저 2게임을 이기고도, 내리 4게임을 내주고 리버스 스윕의 희생양이 되었죠.
당시 뉴욕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건만 ㅠㅠ 자비없는 마사장님 ㅠㅠ
그에게 늘 극복하기 불가능했던 조던이 잠시 리그에 없던 93-94 시즌, 휴스턴과의 대망의 파이널에서
3-2로 앞서다가 내리 두게임 내주고 준우승 ㅠㅠ
특히, 파이널 7차전은 존 스탁스의 3점 0-11, 필드골 2-18의 대왕삽에 발목을 잡혔었구요..
85년도 1번픽으로 그 해 신인왕 수상은 했지만, 조던과 전성기가 겹치는 이 무관의 슈퍼스타는 불운..
이라는 수식어가 아니면 표현이 안되네요.. 운도 실력이라고들 하지만 ㅠㅠ
대학시절 무릎 연골이 닳는 희귀병으로 운동능력을 잃었다는데..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는지)
커리어 내내 두툼한, 그에게 있어 상징으로 기억될만한 무릎 보호대를 차고 플레이를 펼쳤었죠..
아래 대학시절 유잉의 체공력을 보시거나, 대학시절 영상을 보시면 ㄷㄷㄷ 입니다..
(박사님 영상 퍼왔습니다.. 너그럽게 양해를~ 굽신~)
막강한 포스트업, 정확한 미들 점퍼, 턴어라운드 페이더웨이, 훅샷 등 다양한 공격기술을 보유했고,
커리어 50%를 상회하는 필드골%에 슈팅거리도 경쟁 센터들 대비 길면서도 정교했었구요.
(그의 포지션을 보시면 센터-포워드로 표기될 정도였으니까 말다했죠..)
수비로 말하자면 닉스의 그 유명한 "질식 디펜스"를 시전했던.. 커리어 하이 블락이 4.0개, 블락 3개
이상을 무려 5시즌 연속 기록했던, 이 엄청난 선수가 ㅠㅠ
그렇게 염원하던 반지 한개도 없다는게, 몇번을 다시봐도 너무 안타깝네요..
스탯상으로 커리어 하이 28.6점(55% 필드골), 10.9립, 4블락, 2.2어시, 1스틸을 기록한 89-90시즌부터
노쇠화 징후가 보이던 98-99시즌까지 득점, 리바운드, 블락에서 최정상급 기량과 플레이를 펼치고도,
올 NBA 수상이 6회(퍼스트 1회, 세컨드 5회) 올 NBA 디펜시브 3회(세컨드 3회) 뿐이라니..
더구나 저런 활약 속에서도 MVP 쉐어에서는 4위가 최고일 정도로, 당시의 센터뎁쓰는 가히 기형적으로
강해던 시절을 보냈으니 그럴만도 하다 하겠지만, 불운이란 단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죠..
놀라운건, 우리나이로 37세이던 97-98 시절에도 21점 10보드, 2.2블락, 1.1 어시를 기록!!
이 선수가 치명적 무릎부상을 안고도 얼마나 꾸준했고, 성실했으며, 대단한 선수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 싶네요..
정말 이 시대(90년대)가 아니었다면, 물론 스포츠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 하겠지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1) 동시대에 막강한 센터들인 드림과 제독, '신성' 오닐말고 다른 선수들과 경쟁했다면??
2) 조던에게 간발의 차이로 플옵에서 연속 패배를 했고 전성기 또한 겹치는데, 조던이 없었다면??
3) 대학때 치명적인 무릎부상을 당했다는데, 희귀병(부상) 없이 NBA 입성해서 플레이 했다면??
훨씬 몇배는 더 좋은 커리어를 보내고 후한 평가를 받았을 것인데,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은퇴하고
말았네요.. 아래에 그의 커리어 스탯을 붙입니다.. (시애틀로 트레이드된 해와 그 이후는 뺐습니다 ㅠㅠ)
재계약 시점에서 닉스와 유잉 간의 계약조건 기대수준이 달랐고, 당시 닉스는 1년계약, 유잉은 3년 계약을 원했기때문이었던걸로 기억하구요..
이 때문에 재계약 협상은 결렬되었고, 자존심이 상한 유잉이 자신을 트레이드 해줄것을 요청하면서, 다자간 트레이드에 의거 시애틀로 이적했던거 같네요..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서.. 기억나는 대로 말씀드렸구요.. 정확한 내용을 알게되면 다시 말씀 드릴께요)
유잉 갠적으로 투쟁심있어 좋아했고 진짜 멋졌던명센터였죠.. 개인기량은물론 팀성적도좋았던적이많았는데 결론은 우승못한거때문에 많이까이는게 저도가슴아프네요.. 93년피닉스가 94년뉴욕이 우승했어야했었건만 ㅠㅠ..
커리어나 그의 위상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 물론 많지만, 여러분들이 유잉의 실력을 인정해주시니 기분 좋네요.. ㅎㅎ
마지막 사진보니 짠하네요.. 은퇴를 앞둔, 한 때는 리그 정상의 두센터가 다른팀의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하는 모습..
저 사진을 넣을지 말지 고민했는데, 말년에 너무도 처지가 비슷해진 두 노장 센터의 대결사진을 넣어드리면
과거를 회상하는데 여러분들께도 도움이 될것 같아 넣었습니다.. 뭔가 울컥하긴 해요 ㅠ
94년 파이널을 다시 찾아보고 몇 가지 사견을 붙이자면...
94년 파이널은 유잉에게 두고두고 한이 될 겁니다. 팀 전력 자체는 뉴욕이 휴스턴에게 뒤질 게 없었고 뉴욕에게는 정말 모처럼 찾아온 기회였는데 이 파이널 내내 유잉이 부진한 게 컸습니다. 정말 시리즈 내내 부진했죠. 휴스턴은 파이널 내내 롤 플레이어들이 지지부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잉의 부진은 더더욱 뼈아픕니다. 아마 뉴욕이 이겼더라도 파이널 MVP는 시리즈 내내 활약했던 스탁스에게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차전부터 6차전까지 양 팀의 공격은 그야말로 원맨 공격 그 자체일만큼 투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양 팀 모두 엄청난 수비력을 자랑하긴 했지만 역대
최초로 단 한 번도 한 팀의 스코어가 100점을 넘기지 못했을만큼 양 팀의 공격은 답답함도 많았습니다. 휴스턴은 그야말로 올라주원 혼자 공격하는 팀이었고 뉴욕은 스탁스의 외곽포로 꾸역꾸역 득점했고요. 그러다 7차전에서 스탁스가 야투 2/18로 대삽을 뜨는 것도 모자라 하필 7차전에서 잠잠하던 매드 맥스가 터져버리면서 경기가 급격히 기울어버렸습니다. 유잉은 끝내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결국 우승은 올라주원에게 돌아갔죠. 유잉이 평소처럼만 했다면 충분히 뉴욕이 가져갈 시리즈였는데 올라주원에게 막히면서 유잉은 가장 많은 욕을 먹어야 했습니다.
물론 위에 어떤 분 말대로 뉴욕은 변변한 스윙맨 하나 없는 팀이라 공격
루트가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지만 그 답답한 공격을 역사상 가장 터프한 프론트코트의 끈적한 수비로 메꾸면서 결승까지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그 약점이 결승에서 터져버렸습니다. 유잉이 막히자 스탁스가 1옵션이 되어버렸죠. 커리어 역사상 한 번도 시즌 평균 20점을 해본적이 없고 커리어 하이가 평균 19.0점인(바로 이 시즌에 커리어하이였습니다) 스탁스가 더 맨을 맡은 거 자체가 비정상적 일입니다. 그렇다고 휴스턴이 스윙맨이 좋은 팀이었냐, 그것도 아닙니다. 이 팀은 그야말로 올라주원 옆에 슈터들 배치해서 주구장창 그 패턴만 써먹은 팀이었으니까요. 단조롭긴 휴스턴도 매한가지였습니다. 결국에는 유잉과 올라주원 중 누가 더
몫을 하느냐의 싸움이었는데 여기서 갈려버렸습니다. 저는 이 패배가 유잉에게 결정타였다고 생각합니다. 조던에게 플옵마다 무너진 건 큰 흠이 아니라고 보지만 올라주원에게 파이널에서 무너진 게 결정적이었죠. 유잉은 여기서 무너지고 더 이상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해부터 동부 컨퍼런스의 넘버 원 센터는 유잉이 아닌 샼이었으니까요. 올라주원이 2연속 우승으로 확고한 리그 넘버원 센터로 자리잡고 그 뒤를 자연스럽게 샼이 이어가면서 유잉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독의 뒤늦은 2개의 우승반지는 쐐기포였죠. 여러모로 유잉은 커리어 운이 없었습니다. 여하튼 유잉 입장에서 94년 파이널은 천추의 한입니다.
가넷피어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너무도 정확한 당시 상황 분석 앞에 어떤 변명도 낼 수가 없네요.. 유잉이 못한게 사실이니까요.. 천후의 한 ㅠ 맞습니다..
파이널 7경기 동안 유잉은 평균 블락 4.3개, 리바운드 12.4개(공격리바운드가 4.6개)로 수비에서 제 몫을 톡톡히 했었습니다만, 공격에서는 처참할 정도의
부진을 거듭했었습니다.. 38.6% 필드골(58-160), 평득 18.9점으로 시즌 평균을 훨씬 밑돌았고. 시리즈 내내 정말 징그럽게 안들어 가더군요 ㅠㅠ
반면 드림은 50%의 안정적 필드골(75-150), 26.9점으로 공격에서 유잉을 압도했습니다.. 리바운드는 9.1개로 유잉에 뒤졌지만, 올타임 블락 리더답게 3.9개로
수비에서는 그 위용을 잃지 않았죠.. 유잉이 수비에서 거둔 맞대결의 우위는 공격리바운드(4.6 대 1.9), 리바운드(12.4 대 9.1), 블락(4.3 대 3.9) 분명 있었지만,
득점하지 못하는 1옵션은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너무도 안타까운 시리즈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었구요 ㅠㅠ
80년 중반부터 nba를 시청했습니다만 올타임 저의 넘버원 센터입니다 유잉..정말 좋아했엇죠 말년이 안타깝지만 뉴욕의 심장 정말 뜨거웠는데..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올타임 넘버원 센터랍니다.. 뉴욕의 심장을 영원히 잊지 못할껍니다..
적어도 제게 있어서는, 90년대 넘버원 센터는 올라주원이 아니라 유잉이었습니다...
유잉 예전 경기 보다 괜히 울컥해서 다시한번 그를 회고해 보았네요.. ㅎ
'91년에 MBC 장재근의 스포츠 쇼에 나와서 덩크 영상 보여주고 강원도 오지 어디 초등학교에 농구 용품 지원해준 거 기억나는 분 안 계세요?
유잉 내한했던 거 기억하시는 분 뵌 적이 없네요.
제가 기억하는게 그때인지는 모르겠는데, 내한했을때 그냥 팔만 뻗어서 그물 중간까지 닿는 어마어마한 높이를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신적도 있던걸로 기억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