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참석자 (9명)
정혁현 목사, 박성호, 박연옥, 서선미, 서은혜, 안태형, 정단희, 정명수, 이샛별
ㅁ 예배
- 본문말씀 : 마태복음 5, 7 <유기된 자기>
- 시 기 도 : 서선미 / 박두규 <오월 껍데기>
- 대표기도 : 이샛별
- 헌금기도 : 서선미
ㅁ 알림과 나눔
1.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2. 다음주는 교인말씀묵상예배 입니다. 예배 순서 담당하신 분들 정성껏 준비합시다.
*묵상말씀_ 사무엘상 3:1-10, (11-20) / 신명기 5:12-15 / 시편 139:1-6, 13-18. 81:1- 10 / 고린도후서 4:5-12 / 마가복음 2:23-3:6 중 택일.
*특별히 주보와 시 담당 하시는 교우님 수고해주세요.
3. 이번 주 수요일 저녁 8시 한병철의 <리추얼의 종말> 성경공부 2회 zoom으로 진행합니다.
2회_ 맺음 리추얼/축제와 종교
발제_ 박성호
4. 이샛별 개인전 소식 알립니다.
글리치 파라다이스 Glitch paradise
2024. 5. 29 – 6. 29
갤러리 SP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44가길 30)
* 화요일 – 토요일 / 오전 10시 – 6시 / 일요일 예약 후 방문 가능
*주차장 협소.
ㅁ 예배 담당
기도: 정단희
시기도, 헌금기도 - 서은혜
ㅁ 말씀 후기
<유기된 자기>, 마태복음 5장7절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를 받을 것이다.”
긍휼=자비
자비는 사랑할 慈 슬플 悲.
슬픔에 빠진 사람을 사랑한다. 슬픔을 사랑한다는 뜻.
긍휼은 불쌍히 여길 矜 구할 恤. 휼에는 근심하다 동정하다란 뜻이 있다.
자비란 말에는 사랑이란 말의 깔끔한 의미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있다. 비명을 지르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고통에 빠진 자가 외치고 울부짖을 때 드러난다.
자비한 사람은 슬픔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자비함을 입은 사람은 자기가 슬픔에 빠졌을 때 누군가 공감하고 함께 슬퍼해주는 사람과 같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자비가 사라져간다. 특히 한국.
OECD 17개국 조사에서 14개국 나라 사람들이 삶의 의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족”. 한국은 14위 밖이고 1“물질”, 2건강(나), 3가족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 순위의 가치 지향이 뜻하는 것은 가족, 공동체, 타인에 대한 관심 등이 물질적 성취에 방해가 된다는 것. 비혼, 비출산과 특히 공동체 문제인 ‘돌봄’이 대부분 여성에게 주어지므로 한국에서 출산율이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자비한 사람, 슬픔에 빠진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다. 슬픔에 빠진 존재는 자신이 불쌍하고 처량하고 사랑할 만한 대상이 아닌 존재로 생각한다. 우리를 슬픔에 빠트리는 것은 대개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온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며 자기를 학대하고 자학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내가 나를 슬픈 존재로 바라봤을 때 나와 분열된 나만 있는 게 아니다. 나를 누구의 시선에서 바라보느냐는 질문이 따른다. 즉 자아이상과 이상적 자아란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자아이상-나를 불쌍히 여기고 우울증과 학대로 이어짐. 사회적으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다른 사람과 관계하기를 꺼리고 심지어 두려워한다. 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대타자의 시선이고 그 시선을 나와 다른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 남의 눈에도 내가 불쌍해 보이므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들과의 만남을 회피한다. 이것이 가족해체의 또 다른 원인이다. 또한 고독사에도 대타자의 시선이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불쌍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에 저항한다. 이 저항의 형태가 오늘날 반려동물 인구 천오백만 명 시대인 상황과 맞물린다. 이상적 자아의 거울 대상으로써 나에게 충성하고 나만 믿는 존재,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다는 자존감을 확보하게 해주는 존재이지만 건사하는 게 어려워지거나 그 동물이 예상 못한 모습으로 드러날 때 손쉽게 유기한다. 유기 동물들은 어떤 면에서 이 세계에 개인들이 버린 자신이다. 자신으로부터 발견하기를 꺼려 하는, 한사코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의 또 다른 형상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위대함을 반영한 바람직한 존재라서 그럴까? 전혀 반대다. 유대인은 스스로의 비루함과 사악한 모습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하며 자기와 같이 견딜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다른 인간을 새롭게 발견한다. 공동체로 이웃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발견한다.
오늘날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자비를 입을 것이란 말씀이 약속하는 축복과 관련해서 우리 시대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불쌍한 자기가 아니라 남이 볼 때 그럴듯한 존재인 자신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자비를 베풀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베풀지 못한다. 대타자의 시선은 성공하고 승리한 자의 시선이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타자를 억누르는 존재들의 시선이다.
자비로운 사람은 복이 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가 견딜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견딜 수 없는 나 자신이기도 하다. 이것을 우리는 유기했다. 무엇에 대해 자비할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 우리 영혼에서 떠오르기를 바란다.
첫댓글 제가 지금 교회 카페 들어와서 글 읽고 답글 쓸 수 있는 여건이 아닌데요. 이걸 읽고도 답글을 안 남기고 그냥 나가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ㅠㅠ 함께 드렸던 예배 시간을 소중히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읽고 또 생각할 시간이 되심 보람짐~~
잊어버린 기억에 다시 입력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재입력 고맙습니다~저도 정리하면서 재입력^^
고양이 귀엽네요. 밥을 주는 정성스런 님 덕에 이년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건강해보여요.
앗! 역시 집사님 눈이 예리하심ㅎㅎㅎㅎ
정리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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