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시집
고향 없는 시대의 향토시
이동재(시인, 소설가)
― 홍경나, 『초승밥』(현대시학, 2022)
― 정성환, 『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문학의 전당, 2023)
― 김대술, 『그 먼 어느 젊은 별에게』(시와산문사, 2023)
― 선종구, 『뿌리를 위하여』(시산맥, 2022)
― 윤동재, 『씨앗 두 알』(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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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도 출생지가 있고 본적지가 있다.
시인 정지용이 해금되기 전의 일이겠다. 술을 마시다가 정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 출신의 어느 시인이 정지용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소릴 들은 박용래 시인이 술자리를 엎어버리며, ‘저따위가 무슨 시인이냐!’며 혼쭐을 냈다는 야사 같은 얘기가 대전과 그 주변의 문단에서 전해져 내려온다는 얘길 소설가 이문구가 쓴 적이 있다. 도대체 고향이 뭐길래 박용래 시인은 그토록 화를 낸 것일까? 박용래는 술자리의 그 시인이 정지용을 몰라서 화를 낸 것일까, 아니면 시인이란 자가 자신의 동향 선배 시인도 몰라봐서 그런 것일까? 그냥 산업화의 끝자락에서 벌어졌을 법한 해프닝인지도 모른다. 고향이 고향 같지 않은 시대에, 더군다나 박용래든 이문구든 이미 다 고인이 됐으니 물어볼 수도 없다. 더군다나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 「향수」 부분) 같은 고향은 진즉에 없어진 지 오래다.
실제로 식민지 시대, 분단과 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농촌공동체는 급격히 해체됐다. 국가통계 포털의 자료에 의하면 2021년 기준 도시지역 거주 인구가 전체 인구의 91.8%다. 같은 해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공동주택 거주 인구가 78.3%이며, 이 가운데 아파트가 81%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도시의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는 본격적인 지방 소멸, 고향 소멸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고향’이란 말은 별 감응이 없는, 이미 죽은 말이 됐거나 박물관으로나 보내야 할 말처럼 보인다. 대도시의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살면서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도 고향이란 말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이거나 먼 과거의 추억으로나 존재하는, 젊은 시인들에겐 문학사에서나 접하게 되는 말일 듯하다. 근대 시가 도시를 탐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근대화의 당연한 귀결이랄 수 있다. 이제 도시화와 아파트는 한국식 근대화의 귀결이자 한국인의 실존적 삶의 표상이다. 그런데 대부분 시인이 아파트에 살면서 쓴 시들이 어쩌면 기존의 체제에 안주해 음풍농월로 일관하다가 정형화되고 식상해진 저 조선조 양반들의 시조를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오늘도 시인들이 평수만 다를 뿐 획일화된 도시의 아파트에 들어앉아 시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시 맛이 떨어진다. 획일화된 주거 공간과 패턴화되고 규격화된 사유와 삶의 양태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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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한국의 시인들이 ‘모던’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시인 백석은 평안도 그 촌구석의 시골스러운 세계를 시골스러운 언어를 통해 표현했다. 일상생활에서의 백석이 누구보다도 모던을 추구하던 모던보이였다는 당시 주변의 증언을 놓고 보면 그의 삶과 시는 상반된 측면이 있다. 단순한 소재나 공간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당시의 모던한 시들보다 그의 시들이 현재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백석의 『사슴』(1936)이 평안도 방언으로 평안도를 중심으로 식민지 근대화가 진행되던 시기, 근대 이전의 농경 사회 정서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면 홍경나의 『초승밥』(2022)은 작심하고 경상도 방언으로 근대화가 완성된(?) 포스트모던한 시기에 미처 다 근대화되기 이전의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한 농경 사회 정서를 형상화한 시집이다. 시인의 유년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여 되살려내고 있는 영남 사투리와 그 시절 그곳의 삶은 새삼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환기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솔가릿불 콩댓불
그을음 앉은 안등천장
드레드레 거미줄
엉금썰썰 냇내 보얗다
쌀뜨물 받아 안친 가마솥엔
무시구디잇 갓 꺼낸 야문 섣달 무시
어슷비슷 삐져 넣은 무싯국이 끓고
채 친 무시서껀 지렁물서껀 다진 마늘서껀
초두루미 막걸리초서껀 놋푼주 가뜩 생나물을 무친다
언 강물이 쩡쩡 살 트는 소리를 내고
손이 드는지 살구나무집 워리는 온 동리가 떠나가게 짖어댄다
- 「소한小寒」 부분
‘눈꼽재기창’, ‘월하감또개’, ‘우세두세’, ‘산대배기’, ‘둔둘배기’, ‘기명물’, ‘씬내이’, ‘돈내이’, ‘꾀치미’, ‘초승밥’, ‘지렁’, ‘움쌀’, ‘둥시감’, ‘줄띠감’, ‘새미놀이’, ‘선내끼’, ‘움파국’, ‘좨기’, ‘곱립든’, ‘앙가발이 소반’, ‘꽃국’, ‘긍거이’, ‘대지비’, ‘손치성’, ‘따뱅이’, ‘모랭이’, ‘뚜께머리’, ‘발탄강아지’, ‘갱빈길’, ‘짱배기’, ‘눈썹담’, ‘철뱅이’, ‘손말명’, ‘무싯날’ 등등. 시집의 곳곳에서 국민화 과정의 표준어 정책과 근대화 과정에서 멀어져간 모국어들이 안쓰럽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우리는 새삼 홍경나의 이 시집을 통해 폭넓은 모국어의 진경과 전통적 삶의 현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성환의 시집, 『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2023)은 부산의 한 동네 이름을 시집 제목으로 내걸고 있는 시집이다.
함께 밥 먹고 사랑하다 뚝 헤어지면
허기져서 쉽게 부서질 텐데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야 했을까
바다가 멀지 않다는 운촌역에 내려
가슴까지 미처 스며들지 못한 슬픔
해풍에 말리며 동백섬까지 쓸려간다
사람과 사람의 온도 차만큼 나는 울었던가
잔물결 모으고 모아
막막한 바다 건너는 파도 소리에
뒤척이다 뜨겁게 피었던 동백
- 「언제나 처음처럼」 부분
이 시처럼 시집 속의 시엔 부산과 그 주변의 풍광을 짐작게 하는 시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시가 딱히 제목이나 부산과는 무관해도 좋은 시들이어서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든다. 시인이 발붙이고 사는 ‘지금 거기’가 나는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의 보편적 가치는 구체적 삶을 매개로 한 것이었을 때 공허한 관념으로 추락하지 않고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김대술 시인은 추자도에서 태어나 강화도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퇴직하게 된 신부인 듯하다. 『그 먼 어느 젊은 별에게』(2023)는 뒷골목 장바닥의 푸념 같고 독백 같은 시들을 묶어놓은 시집이다.
밥 한 그릇 될랑가 앓던 시 두 편 보내도 한꺼번에 배고픈 밥그릇 놓칠 날 언제인지. 좋은 시절 불러주던 놈들다 뒤졌는지 흔들거리다가 강화 풍물시장 어물전 숭어 눈깔 번쩍. 어느 항구에서 왔는지 지도 나도 알 길 없다고
- 「애먼 점박이 숭어」 부분
문창과나 국문과에서 갈고 다듬은 요즘 시인들의 상투적으로 세련된 시어나 시작법과는 거리가 먼, 굳이 시라고도 할 수 없는 투박한 잡설이자 수다가 김대술의 시다.
그가 목회 활동을 하던 강화도엔 한옥 성당들이 남아 있다. 서학이 물밀듯이 몰려들던 시절, 조선조 오백 년 서울의 관문이었던 한강 하구의 강화도를 거점으로 포교 활동을 했던 양이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의 흔적들이다. 그나마 이질적인 천주교가 한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평생을 신부로서 살아왔을 김대술의 시에서 종교적인 냄새나 서학의 양취가 나지 않는 것은 그의 시가 그런 강화도의 한옥 성당을 닮아서일 수도 있고, 그의 고향인 추자도 시절부터 서해 바닷물에 잘 절여진 그의 육신이 뿜어내는 자연의 생명력 탓일 수도 있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나도 문득 박카스나 마시고 온 동네를 쏘다니며, 시인과 함께 외포리쯤에서 새우젓 듬성듬성 넣은 애호박에 막걸리나 한잔하고 싶다.
선종구는 보성 벌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시인이다. 농번기엔 모내기하느라 바빠서 원고 청탁서도 제때 확인하지 못할 만큼 바쁜 천생 농부다. 대한민국 농촌이 다 그렇듯이 점차 빈집들만 늘어나고, 외국인들만 들락거리는 농촌일지언정 그런 시골에서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시를 쓰고 있는 농부 시인의 모습이 안쓰럽지만 미덥다.
3천 평짜리 갯논을
열흘 동안 혼자 매고
논둑에 서서 바라본다
서러움도, 감격도 아닌 뜨거운 것이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온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 「무엇으로 사는가」 전문
“마을회관 마당의 벚 잎 지대끼/쇠시락 쇠시락 노인네들이 죽어간다”. “골목 끝자락 친구 집의 꺼진 형광등은/누가 다시 켤까” (「가을의 문상」 중)싶은, 소진해가는 대한민국의 농촌 보성 벌교의 시인에게 다가오는 농한기엔 꼭 시 청탁서를 제 때에 전달해보겠다. 그것이 내가 시인에게 건넬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일 듯싶다.
달은 누가 충전나
밤마다
온 세상을 환히 밝혀 주는
저 달
- 「달은 누가 충전하나」 부분
나는 윤동재의 동시집, 『씨앗 두 알』(2023)을 읽다가 ‘시는 동시여야 한다’라는 그의 주장에 쉽게 동의한다. 굳이 라캉의 상징계 얘기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말을 배우는 순간부터 오염된 존재다. 하지만 어리다는 것은 미처 기존의 언어와 관념에 완전히 포획되기 전이어서 상대적으로 유연한 사고의 존재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시가 동시여야 한다는 말은 기존의 관념과 언어에 포획되어 고정화되기 전의 동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지겹도록 답답하고 획일화된 현실 세계 너머를 꿈꾸기 위해서 시는 동시의 그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동심이 고향이다.
3
해방 이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입했던 정지용은 그의 친구들이 대부분 월북하고, 대한민국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색깔 공세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결국, 그는 전향자들의 모임인 국민 보도연맹에 가입하게 되고,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한 달 전, 국민 보도연맹 문화부장 자격으로 부산·경남 일대로 선무활동에 나선다. 당시 부산 지역을 돌던 정지용은 ‘무지막지한 부산 사투리’에 강한 인상을 받은 듯하다. 여중생들이 애써 표준어로 연극 대사를 읊조리는 광경을 보고는 애써 웃음을 참기도 한다.
삶의 현장성과 지역성이 강하게 배어있는 사투리는 국어가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모국어를 풍부하게 하는 언어로써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때 우리는 국민화와 표준어란 이름 아래 방언을 타자화했다. 이후 방송 언어의 무차별한 침투와 확산으로 자연스럽게 언어의 지역적 특성이 사라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의 유산 속엔 그 고향 언어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지용이 남쪽 지방의 선무공작에서 녹번리(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집으로 돌아온 그날,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피난을 가지 못했던 그는 인민군 치하에 있다가 한강 이남에서 자행된 보도 연맹원들에 대한 집단 학살 소식을 접했을 터였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서울이 다시 국군에 의해 수복되기 직전 북으로 가다가 소요산 근처에서 미 공군의 기총소사를 받고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 이후 남북 분단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던 ‘향수’의 시인 정지용은 그렇게 절명했다. 객사이자 비명횡사였다. 이미 식민지 시절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고향」)라고 노래했던 시인에게 해방조차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주지는 못했다.
도시를 탐사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근대문학은 이제 그 모던의 모던함을 다시 사유해야 할 때다. 탈근대는 어쩌면 근대가 구획해놓은 도시의 바깥, 아파트의 바깥을 사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세 평 정원을 가꾸면 세상의 범죄와 타락이 반감될지도 모른다고 했던 김상용(1902-1951) 시인의 ‘삼평정원개유론三坪庭園皆有論’이 새삼 눈에 들어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간간이 눈에 띄는 촌스럽고 지방스런 시들을 보며, 그때까지 향수를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