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부터 설레이며 기다렸건만
얼리버드 티켓팅 시간도 놓치고
전시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몰랐다가 깜짝 놀라 티켓팅하고
일정을 잡았다
입구부터 이렇게 아름답다
앨리스, 그녀의 전망 좋은 집으로 초대되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바닥만한 우산으로도 충분한 보슬비 간간히 내리는 날
비가 있어 오히려 낭만적인 전람회
앨리스의 그림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데
앨리스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런 이미지였다
창과 하늘거리는 쉬폰 커튼,
그리고 창 밖엔 반짝이는 물비늘 가득한 호수나 바다
그런데 이번에 날 반하게 만든 건
꼭 이런 창의 이미지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빛과 그림자를 다루는 깊이있는 솜씨였다
인상파 화가들이
빛을 받은 찰나의 모습을 묘사하느라 사물이나 인물을
모호하게 표현했다면
앨리스는 빛을 오래 관찰하고 빛이 만드는 그림자의 음영까지도
영혼을 불어넣어 섬세하게 표현한다
인상파 화가들이 캔버스에 급하게 빛을 담았다면
앨리스는 느긋하게 관조하며 담아주는 여유
그래서 더 따사로운 빛을 받는 느낌이다
그녀 앨리스는 이번 개인전을 마련하면서
마이아트뮤지엄 커미션으로 3점의 그림을 새로 그렸다
바로 이 작품인데
이 전시회 중 유일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품이다
내가 갖고 있던 앨리스작품의 기본 이미지다
'사진 촬영을 윤허하노라'
하는 의미로
친절하게 카메라 스티커를 붙여놨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하는 기분으로 사진을 참 많이도 찍었다
부분부분까지 쪼개고 잘라서 찍어놓으니
보는내내 감탄스럽다
저 쉬폰 커튼자락 만져보고 싶고
저 창 가까이 다가가 작은 의자 하나 놓고
물멍하는 여유를 즐기고 싶어지는 시간이다
황혼이 물들인 쉬폰커튼이 은은하고 멋지다
밝은 햇살과 달리 황혼녘의 햇살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숨을 몰아쉬지 않고 차분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색감
이 색감 두고두고 잔상으로 갖고 있다
전시 마지막 방에서는 자꾸 뒤돌아 봐지고
나가기 싫어진다
출구가 보이면 어김없이 써 있는 문구
"재 진입 할 수 없습니다"
난 그녀의 아름다운 방에 더 머물고 싶었다
딸들은 벌써 굿즈샵에서 눈이 커졌다
처음엔 이것저것 마구 집어들다가
조금씩 이성을 찾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 내려놓는다
욕심내서 가져오면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어딘가로 쳐박히기 십상인걸 많이 경험한 터라.
난 패브릭 1장
저기요!
뭔가 많이 고르셨나봐요
저기요!
오늘 의상과 우산 컬러가 그림과 잘 어울리네요
난 떠나기가 아쉬워 자꾸만 머뭇거린다
이제 차 마시러 가야죠
코엑스 안에 마련해 둔 찻집이 있거든요
딸들이 내 마음을 끌고 간다
그래, 전시장을 떠날 때는 늘 아쉽지
큰 딸과의 이별 방식은 이젠 익숙해졌다
지하철 반대편에 서서 각자의 방향으로 떠나는 이별방식
테두리 있는 판넬 이었으면 더 선명하고 좋겠다고 짠딸이 아쉬워한다
못을 박기 싫으니 그냥 패브릭으로 하자
다림질 해서 저 선명한 접힌 자국 없애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