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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0장 19절 ~ 24절
감사와 즐거워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그들 가운데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그들은 적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또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그들은 하찮게 되지 아니하리라. 19)
And out of them shall proceed thanksgiving and the voice of them that make merry: and I will multiply them, and they shall not be few; I will also glorify them, and they shall not be small. 19)
민족이 번성하고 숫자가 늘어나는 일은 역사에서 나타났던 일입니다. 그중에서 그 번영이 말씀의 회복됨과 일치하는 때가 위 말씀에 해당되는 경우로 보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말씀이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적용이 된다면 그 외의 사람들에게 읽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게됨은 그 말씀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일어남을 의미하며, 그러한 적용은 시대와 민족과 지역을 초월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이 각 세대에 영향을 미치고 민족에게 영향을 미치고, 전세계의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번성케되고 그 숫자가 많아지는 예는 종교개혁이후의 유럽의 번영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프로테스탄트 퓨리탄(저항 청교도)들의 미국에서의 번영이 그 예입니다. 그리고 70 ~ 80년대 북한보다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복음이 널리 퍼져서 지금의 경제적인 번영과 숫자가 늘어난 것도 비슷한 예입니다. 동 시대에 천주교와 공산주의가 들어간 곳은 비참하게 바뀌었습니다. 남미와 필리핀 그리고 동유럽 소련 북한등이 그 시작부터 학살이 발생하였고, 지금은 그 체제가 붕괴되었거나 유지되어도 비참한 상황입니다. 이것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역사의 모습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그대로 다시 지금의 미국과 유럽과 한국이 다시 말씀에서 멀어지고 있기에 몰락의 길로 접어들어 하찮게 되고 숫자가 줄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성도들이 말씀을 읽지 않고, 목사들을 추종하는 결과로 재앙이 백신 접종으로 불일듯 일어나 인구가 줄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호렙산에 올라간 40일동안에도 이스라엘이 멸망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리더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문제이며, 지금의 백신사태또한 한국사람들의 무지와 악함의 결과인 것입니다. 무지하고 악한 사람들이 그런 목사를 추대하고 그 목사를 타락시키고 같이 타락한 것입니다. 백신사기극에 있어서 누구를 탓할 상황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무지와 아집의 문제인 것입니다. 다행이도 백신은 예행연습이지만 짐승의 표에서도 무지와 아집으로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는 일보다 더 극단적인 선택은 없습니다.
그들의 자녀들도 이전과 같을 것이며 그들의 회중도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니 내가 그들을 압제하는 모든 자들을 벌하리라. 20)
Their children also shall be as aforetime, and their congregation shall be established before me, and I will punish all that oppress them. 20)
aforetime ① (문어) 이전에 ② 이전의 ③ 원래의
congregation ① (예배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 ② (단수·복수 취급) (예배의) 모인 사람들 ③ 신도단 ④ (the congregation) 전 이스라엘인
번영이 한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세대를 유지하는 것도 역사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미국도 수세대를 번영하였지만 그 번영을 수세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변질되어 이제는 망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과거에 반복되었듯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를 압제하는 일루미나티 예수회 천주교등도 그들의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귀족들은 자기들 안에서 나올 것이요, 그들의 통치자도 그들 가운데서 나오리라. 또 내가 그로 내게 가까이 오게 할 것이며 그러면 그가 내게로 다가오리라. 내게 다가오려고 그의 마음에 서약하는 자가 누구겠느냐? 주가 말하노라. 21)
And their nobles shall be of themselves, and their governor shall proceed from the midst of them; and I will cause him to draw near, and he shall apporach unto me: for who is this that engaged his heart to approach unto me? saith the LORD. 21)
귀족들이 자기들안에서 나온다는 것은 민족이 노예에서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우리민족이 아닌 만주족 유목민출신의 이성계가 조선의 정권을 잡게 되면서 조선민족전체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는 것이 노예이며, 자기들의 민족가운데서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 지배를 받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 자기 민족에서 나온 지도자가 주의 뜻을 자신의 민족에게 가르친다면 그 민족이 주께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도자 한 사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결정에 따른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고려의 호족세력은 이민자 이성계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다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속임수에 타협하여 그들이 용비어천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성계에 대한 속임수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백신사기극은 문재인때문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이 미련하고 어리석었습니다. 진리는 상황에 따라서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그때의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진리를 편리하도록 받아들이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백신을 접종하는 것과 백신을 권유함이 결코 사랑일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언론과 정부가 바람을 잡아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어두운 사람들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소경은 앞을 보지 못하기에 소경인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지 못하여 그 자신과 그의 주변을 위험하게 방치하는 목사는 소경입니다. 이러한 영적소경들이 이번 백신 사기극에서 실체가 다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추종하는 사람들도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모습이 지금의 한국사회, 한국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너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22)
And ye shall be my people, and I will be your God. 22)
번역이 조금 이상합니다. my people은 복수이므로 ye를 너희로 하는 것이 맞고, your는 복수가 아니므로 너의 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고 여겨집니다. And, 그리고를 굳이 생략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렇게 하는 것이 번역본의 올바른 자세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다른 성경을 찾아보니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개역개정 예레미야 30장 22절
그리하여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킹제임스 흠정역 예레미야 30장 22절
my people로 수식되는 ye는 다른 성경은 모두 공통으로 너희로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을 모두 역본으로 본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말씀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이지 역본의 단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번역이라도 전체의 의미에서 받아들이고 그 본질의 뜻이 희석되지 않도록 한가지에 집착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위의 말씀은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고난도 주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그리고 당신의 하나님이십니다.
보라, 주의 회오리바람이, 계속적인 회오리바람이 진노와 함께 나가니, 그것은 고통과 함께 악인의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라. 23)
Behold, the whirlwind of the LORD goeth forth with fury, a countinuing whirlwind: it shall fall with pain upon the head of the wicked. 23)
축복과 진노는 동시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과 달리 느부캇넷살은 멸망하고,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공하고, 천주교는 더 깊은 사악함과 고통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번영하였다가 다시 쇠락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백신의 고통이 다가오고 악한 자들의 압제의 그림자가 비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끝이 있으며, 그 끝이 있음을 아는 것이 우리가 소망을 가지는 일입니다. 백신패쓰가 한창일때에는 이것이 영원하게 유지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절망속에서 백신을 맞기도 했습니다.
진리로 고난이 끝이 있음을 아는 소망을 가진 사람은 절망으로 고난을 영원하게 보는 사람이 절망에서 사망으로 나아간 것과 다른 결말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경주로 짐승의 표라는 고난이 끝이 있음을 아는 저와 당신이 그것을 인내하는 결과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그가 그것을 이루고 자기의 마음의 의도를 이루고 나서야 주의 분노가 돌이켜지리라. 훗날들에 너희가 그것을 숙고하게 되리라. 24)
The fierce anger of the LORD shall not return, until he have done it, and until he have performed the intents of his heart: in the latter days ye shall consider it. 24)
역사는 고난을 인내함으로의 번영과 그리고 다시 말씀에서 벗어남으로 다시 주어지는 고난이 반복되온 것입니다.
백신의 사기극이 끝나는 지금의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의도가 이뤄지고 우리가 지금의 모습을 숙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백신은 하나님의 테스트였습니다. 이 테스트의 모습으로 우리는 주의 분노를 숙고하여야 것입니다.
만약 백신이 사탄숭배자들의 침략이었다면 지금 처럼 이렇게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짐승의 표는 백신에서 나타난 것처럼 철저하게 우리 스스로에게 선택하도록 하면서 압박할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선택함이 없이 강제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권세잡은 것이 사탄이라면 우리모두에게 강제로 백신을 맞추고, 짐승의 표를 강제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백신에서부터 아주 집요할 정도로 스스로 선택하여 맞도록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사탄이 이 세상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보다 우리가 죄로 하나님의 심판에서 우리가 정죄와 고통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도록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스스로 선택하여 먹도록 유인한 것과 같은 일이 짐승의 표에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짐승의 표에 대한 달콤한 말이 나올 것이며, 우리가 신이 되는 것같은 유능감을 줄것처럼 설득할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되는 줄을 하나님께서 아심이라." 하더라.
창세기 3장 5절
짐승의 표는 스마트폰에서 나타난 편리와 기능을 뛰어넘는 기능을 보여줄 것으로 느껴집니다. 디지털 아이디의 활용은 금융, 치안, 자원배분의 효율등에서 혁신이 나타는 것처럼 화려할 것입니다. 마치 하와가 선악과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는 표정을 우리는 우리 이웃이 짐승의 표를 바라볼때 나타나는 표정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음직하고 보기에도 즐겁고 현명하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인지라, 그녀가 거기에서 그 열매를 따서 먹고 그녀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도 주니, 그가 먹더라.
창세기 3장 6절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에 일어난 일들처럼 짐승의 표를 받는 순간 하와처럼 사람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확장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고통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로 선과악을 알게되어 신들처럼 된것이 아니라 벗은 몸의 수치에 숨기에 바빴던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없습니다.
영원한 고통이 열리게 되는 것이며, 그때에는 백신처럼 후회하는 여유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요한계시록 13장 11절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신들과 같이 된 것이 아니라 발가벗은 자신의 몸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이 탐했던 신들과 같은 유능은 없고, 벗은 수치를 발견하고 숨기에 바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짐승의 표도 인체가 온라인에 접속되게함으로 금융, 통신, 자동화, 치안등에 있어서 매유 유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는 밤낮쉼을 얻지 못하는 육체의 고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인체가 온라인에 접속함은 곧 24시간 켜져있는 서버와 연동된다는 의미이고, 인체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어떠한 불이익보다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 것이 더 큰 고통입니다. 수십억 수백억의 재산이 있다고 한들 쉼을 얻지 못하는 혼은 죽기를 바라겠지만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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