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말시편 - 갯골에서/김신용
소래 포구에서 뱀처럼 꾸불텅 파고든 갯골을 본다
뻘이 제 육신을 열어 터놓은 저 물결
서해에 뿌리 박은 거대한 나무처럼 보인다
느티나무가 고목이 되어서도 힘차게 가지 뻗은 듯하다
한때, 소래 벌판의 염전들은 그 가지에 매달려 푸른
잎 나부꼈을 터
결 고운 옹패판* 위에 희디흰 소금의 결정들을 수확
했을 터
지금은 나뭇잎 다 져 앙상한 고사목 같은 형상으로
놓였지만
해주*도 소금창고도 허물어져 갈대밭에 누운지 오래지만
뿌리는 아직 살아 밀물 때마다 염수를 밀어올린다
스스로 무자위* 밟아 수액을 끌어올린다
뻘밭에 세한도 한 폭을 새겨놓기 위해
바다는 오늘도 묵지(墨紙)가 된다
그 갯골이 커다랗게 입 벌린 상처처럼 보이지만
아물지 않는 손톱자국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뒤틀리고 휘어진 사행(蛇行)의 갯골에는
아직 새 날아온다 뭇 새들 갈대밭에 집 짓는다
뻘 속에는 혈거(穴居)의 게들, 흘림체로 별사를 쓰듯
기어 나온다
저 뿌리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고
묵지(墨紙)가 살아 있는 그늘이라고
* 옹패판 : 항아리 등 옹기 깨진 것으로 만든 염전의 결정지역. 1955년~1980년 초에 제작, 그 이전에는 토판(갯벌흑), 그 이후에는 타일판(타일)이 조성됐다.
* 해주 : 비가 올 때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낮아지지 않게 잠시 염수를 받아두는 창고.
* 무자위 :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기계 = 물푸개,수룡(水龍),수차(水車),즉통
[출처] 섬말시편 - 갯골에서/김신용|작성자 파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