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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나님 뜻과 세계 P.495 P.492
하나님의 섭리역사
1977.5.1
선생님은 학생시절 남을 공부시키기 위해 야간일은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의 학비를 댔습니다. 그 학비를 대주려면 한푼 두푼 모아야 합니다. 왜 이러한 일을 했느냐 하면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길을 가지 않았으면 세상 사람으로서 오늘날 당당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어느 사회에 가든지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한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갔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내가 일생 동안 누구를 위해서 눈물을 흘렸느냐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핍박을 받는 것도 레버런 문이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더욱 더 고난의 길을 가신 것을 알았기에 참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인들 개인적인 희망과 욕망이 없었겠습니까? 청춘시절에는 아름다운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잘라 버린 후에는 다시 개인적인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과 같은 레버런 문이 되었고, 당장 천만 달러라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돈 한 푼 없는 사장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돈을 쓰더라도 여러분을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어디에 가도 다방에 들르지 않고 점심때도 밖에 나가 사서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옷을 사 입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에게 돈이 있으면 나 자신을 위하여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생을 하면서도 선생님에 대해서 불평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어렵지만 복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여러분이나 나나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 참기 어려운 모함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한 두번 겪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기도를 하게 되면 눈물이 한이 없습니다. 내가 당하듯이 하나님이 당해 오신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당해 온 것을 압니다. 그런 길을 부모도 모르고 형제와 처자들도 모릅니다. 나는 약하다면 지극히 약하고 못났다면 지극히 못났지만, 크게 나를 믿으려고 하고 세상보다도 우주보다도 더 크게 믿으려고 하시는 하나님을 볼 때에 몸 둘 바를 모릅니다. (93-64~66)
悲しい神の友になりたかった
御旨と世界 神を知る者の道 612頁 608頁
先生が生来の実力を伸ばして世俗的な分野に応用していったなら、偉大な実業家にでも、大政治家にでもなれるし、様々な分野で大いなる名声と尊敬を勝ち得る人物になれるでしょう。しかしそれだけの能力や実力をもっていながら、そういう方向には行かなかった先生です。そして、生涯において、先生より多く涙を流した者がいるでしょうか。苦難の道は避けられないものではなかったのですが、神のために、無条件に、涙の道を選びました。人々から尊敬と讃美を受けつつ歓迎される道もありました。しかし先生は、神御自身がそういう立場におられないことをよく知っていたのです。
では、先生は初めから何の個人的願望も、青年のもつ青空のごとき夢も希望も、もっていなかったかというと、そうではなく当然、大志を、夢を抱きながら、それらをすべて自ら捨てて、いつの日かこういうふうに、という希望の扉のすべてを、自らの手で閉じて、人生の最も悲惨なる道を選んだのです。
ただ悲しい神の友になりたかったからです。あなた方もまた、ある意味では同様に苦難を負って歩んでいるわけですが、それは過去において先生が既に通過してきた道を引き継いでいるだけです。そして私たちがこのように自ら進んで苦難を引き継ぎ、それを負っていくのは、ただただ神を知ったがゆえであります。
神様は泣いておられる
先生は共産陣営のみならず、自由主義の韓国においてさえ、刑務所生活を体験しました。西大門刑務所に行ったその日のことは、永遠に忘れることができないでしょう。その日、刑務所に引かれていく時、一人の教会から去ったかつての食口が先生に駆け寄ってきて、侮蔑に満ちた嘲笑を浮かべながら言ったのです。「あんたはまだそんな馬鹿なことをやっているのかい、俺のように早く卒業することだな」と……。先生は永遠にその男のことを忘れることはできません。一言も語らず黙然として彼の前を引かれていきましたが、心の中で神に向かって叫びました。「神よ、今こそあなたの義と、私のあなたに対する従順を証させ給え」と。
このようなことを一度ならず幾度となく味わってきたのですから、目を閉じて祈り始めると、いつも涙を止めることができずに痛哭する先生です。神のそういう悲しい内情がよく分かるからです。そして同じ事情を味わい、その心情を知ればこそ、そういう神の心情を誰よりも慰め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親はもちろんのこと、妻も子供も分かってはくれない、一人として理解する者もない、そういう時こそ、孤独なる神の友とな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一人の男がこんなにも弱くなり得るものか、と思ったこともありました。ある意味では同じ弱き一人の人間に変わりないのです。しかし自分をそんなにも頼りにしている神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から、そういう神の心情を思うと、いても立ってもいられなくなり神の願いを果たして神を慰めたいという思いにかられます。
I Wanted to Be a Friend of God Who is Lonely and Suffering
God's Will and the World
God's Preparation for Our Church, and Its Early Days
May 1, 1977
(Unofficial Translation)
The path that you must follow if you Know God
If I had developed my natural abilities and applied them in a secular way, then I would have been a successful business man, great statesman, or man of renown and fame in any field that I would have endeavored. I would have been successful and respected in an entirely different manner, but I never undertook that direction. Is there anyone who has shed more tears for God than I have? I could have avoided a path of suffering; but, I willingly chose the course of suffering for God's sake. There were many ways where I would have been welcomed by people with esteem and praise. However, I knew God Himself did not stand in a position to receive praises and esteem in such places.
Do you think that I actually did not have personal ambitions? As a young man I certainly had ambitions and dreams, but I cut them off and closed all those doors. Then I chose the most miserable path for my life. I only wanted to be a friend of God who is lonely and suffering. I understand that you too are walking a path of hardship like me. But I tell you that you are following the path that I already pioneered in the past. More importantly, we all chose the path of suffering; and are walking the path carrying heavy burdens, only because both you and I came to know God too well.
God is weeping
I have tasted prison life, not only under the communist regime but also in free Korea. I can never forget one former member who came up to me when I was being taken to the West Gate prison in Seoul. He looked at me and laughed scornfully, "You fool! Are you still doing this stupid thing? Why don’t you graduate from that like me?" I can never forget that man, eternally. At that moment I walked by him in absolute silence, but in my heart I was shouting out to God, "Let me testify to Your righteousness and my obedience to You right now."
This is just one instance of personal betrayal; there are too many to count. When I close my eyes and start to pray, tears always come forth. I cannot stop sobbing; then I just weep with tremendous pain in my heart. It is because I know the innermost suffering and agony of God. I have experienced so much agony and pain and heartbreak that I know God, and I am in a position to comfort Him. No one understands me. My parents never understood, even my wife and children can never really understand. When no one understands you, you are totally alone in understanding God. You also can be a friend to that lonely God.
I thought so many times how vulnerable and weak a man I became. From some people’s point of view, I am no different than a weak man. However, I know that God trusts and is depending on me. When I feel God's heart, I just have no way to sit still but am overwhelmed with yearning, to comfort God’s heart by fulfilling His Will.
我要站在孤獨的神的這邊
統一教第23屆建教紀念日和神的攝理歷史
1977年5月1日
紐約貝爾維迪
如果我以世俗的方式發揮我的長才,我現在早已是許多公司的董事長了。我早在不同的領域成功立業受到敬重了,但是我從來不曾行走那個方向。沒有一個人流過的淚水比我多,神知道我是為祂流的淚。我樂意為神選擇那條受苦的道路。
我曾經受到許多人無理的對待,受到他們的迫害。沒有個人的理由要歷經那種痛苦。我從來不需要讓自己承受那些痛苦。但是我知道神立場,相反於受到別人的敬重和愛戴,我要站在孤獨的神的這邊。你們認為我個人沒有雄心大志嗎?做為年輕人,我絕對有雄心大志、各種的夢想,但是我都切斷了那些念頭,關起門來。
我嚐過牢獄生活,不僅是在共黨政權下,也在自由韓國政權下。我從來不曾忘記當我被到首爾的西大門監獄時,有一位前會員跑了過來。他看著我,很嘲諷地笑著對我說:「你這笨蛋!你仍然在做這種蠢事?」我永遠無法忘記那個人。在那一刻,我沒有回嘴,但是我心裡向神祈求:「神啊,請賜給我一個向他證明您是多麼公義的機會,證明我是多麼地順服您?」這只是個人報復的一個例子而已;多的實在數不清。當我閉起眼睛開始禱告時,淚水就掉了下來。我體會過太多的那種憾恨、痛苦和心碎,因為我瞭解神,我是站在安慰祂的位置。
沒有人瞭解我。我的父母永遠不瞭解我,甚至我妻子和子女也永遠不會真正地瞭解我。我對神的瞭解是一個孤獨的瞭解。你們也可以是那位孤的神的朋友。我總是感到自己很容易被擊打、很軟弱,但是我知道神信任我,倚靠我去完成。當我明白神的期待之後,我沒法靜坐下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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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