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韓 중국인만 유리한 ‘상호주의 4종세트’, 총선 쟁점될듯
한중 선거권-건보 상호주의 논란
《“본전을 뽑아 먹어야 한다.”
중국의 한 온라인 플랫폼 영상에 등장하는 한 여성은 “돈을 내는 만큼 한국 건강보험을 활용해야 한다”며 스케일링, 사랑니 발치, 정기 건강검진 등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팁을 알려준다. 영상 제목은 ‘韓國國民保險(한국국민보험) 薅羊毛(하오양마오)’. 양의 털을 뽑는다는 뜻을 가진 ‘薅羊毛’는 최근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본전을 뽑는다’는 뜻으로 유행하는 말이다.
1992년 수교 이래 31주년을 넘은 한중 관계를 두고 ‘상호주의’를 적용하자는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방선거 투표권, 건강보험, 부동산 취득, 담보대출 제도를 둘러싼 양국 간 허용 수준을 상호주의에 입각해 개편하자는 목소리다. 한국은 중국인 등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고 피부양자를 포함해 건강보험을 적용하지만, 중국은 한국에 이를 여전히 허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손보자는 것.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미일 3각 협력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민의 대(對)중국 부정 인식이 높아지는 추세 속에 개정 여론은 어느 때보다 높다.》
● 싱하이밍 사태로 나온 ‘한중 상호주의’ 문제
상호주의 여론에 기름을 끼얹은 건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다. 싱 대사는 지난달 8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 관저를 찾아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는데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라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외교관이 주재국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이례적 장면이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중국대사는 자국 이익을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는데 정작 야당 대표는…”이라며 씁쓸해했다.
이 대표가 싱 대사를 만나러 가기 반년 전, 싱 대사가 제 발로 법무부 청사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직접 만나러 간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법무부가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지방선거 투표권을 엄격하게 개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추진을 발표한 지 불과 열흘 뒤다. 영주권을 받은 지 3년만 경과하면 지방선거 투표권을 줄 뿐 아니라 영주권 유지에 국내 의무 거주 요건조차 없는 상황을 개정하려 나서자 싱 대사가 법무부를 찾은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싱 대사가 자국 이익을 위해 물밑에서 뛰는 가운데 야당 대표가 중국대사를 찾아간 사실이 조명되며 ‘상호주의’ 논란이 크게 일었다. 당장 지난해 말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발의한 ‘상호주의 공정 선거법’에 사실상 당론과 같은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국내 거주 중인 중국인 약 10만 명에게 투표권이 주어졌지만 중국에 있는 우리 국민에게는 참정권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면서 “우리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게는 우리도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이 공정하다”고 했다.
● “외국인 조직표 생기면 선거에 영향 미칠 수도”
한국이 영주권 취득 3년을 경과한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한 것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다. 일본 정부의 재일교포 참정권 부여를 촉구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법을 개정한 성격이 짙다. 우리가 먼저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해야 외국에도 이를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는 논리였지만 1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본과 중국에서 외국인에게 참정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사이 중국 국적의 영주권자 수는 계속 늘어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8세 이상 영주권자(전체 16만1359명)의 81%인 13만1112명이 중국 국적이다. 단일 국가 중 최대 증가세다. 외국인 선거권자도 늘고 있다. 지난해 제8회 지방선거 때 외국인 선거인 수는 12만7623명으로 2018년 10만6205명보다 2만여 명이 늘었다.
이에 외국인 선거권자가 다수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선거 구도가 외국인 인적 구성에 따라 달라지거나 캐스팅보트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일부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득표수 차이보다 외국인 선거인 수가 더 많았다.
경기 안산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이민근 후보는 11만9776표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제종길 후보(11만9595표)를 181표 차로 꺾었다. 당시 안산시장 선거에서 외국인 선거인 수는 8038명이었고 투표자는 662명이었다. 전남 여수시 마선거구에서는 민주당 이미경 후보(2339표)가 3표 차로 무소속 이상우 후보(2336표)를 제치고 당선됐다. 해당 선거구의 외국인 선거인 수는 39명이었고 투표자는 8명이었다. “외국인 조직표가 결성되고 움직인다면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증가 추이가 또렷한 중국 국적 영주권자가 국내 선거나 여론 형성에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 ‘상호주의 4종 세트’ 손질 움직임
정부 여당은 한중 상호주의가 지켜지지 않는 투표권을 비롯해 건강보험, 부동산, 대출 관련 제도 등 이른바 ‘상호주의 4종 세트’에 본격적인 손질을 가할 태세다. 여당은 영주권 취득 이후 5년간 계속 한국에 거주했을 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 대표는 특히 건강보험에 대해 “중국에 있는 우리 국민이 등록할 수 있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범위에 비해 한국에 있는 중국인이 등록 가능한 범위가 훨씬 넓다”고 했다. 건강보험의 경우 중국인 직장 가입자는 한국에서 피부양자까지 혜택을 받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가입자 수 상위 10개국 가운데 지난해 중국인만 유일하게 낸 보험료보다 급여 혜택을 많이 받았다. 적자액은 229억 원을 기록했다. 중국인 건강보험 재정 적자 폭은 2018년 1509억 원, 2019년 987억 원, 2020년 239억 원, 2021년 109억 원이었다. 5년 동안 누적 적자만 3073억 원에 이르렀다.
반면 한국인은 중국에서 직장을 다녀도 가족까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 여당은 이와 관련해 직장 건강보험 피부양자에 대해 ‘입국 후 6개월 제한 규정’을 두는 건강보험법 개정안 등을 발의해 제한을 추진하고 있다.
부동산 취득과 담보대출 범위에 대한 한중 간 차이도 쟁점이다. 중국인은 한국에서 주택 구입에 제한이 없고 부동산 매입 자금도 자국 은행에서 제한 없이 대출 등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인은 중국에서 취업 또는 유학 목적에 한해 1주택만 소유할 수 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미국 등에서도 중국인의 부동산 소유 등에 대한 규제책이 마련되고 있다”며 “선거권과 부동산 취득 등 규정에 대한 보완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 中 상호주의, 日 오염수… 총선 쟁점으로
상호주의 4종 세트의 개정 문제는 국회 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여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를 선거 이슈로도 활용할 태세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반일 감정’을 고조시켰던 것과 달리 현 여권은 중국인에 대한 투표권이나 건강보험 혜택 축소를 적극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한중 상호주의 이슈는 우리로서는 붙어볼 만한 전장(戰場)”이라며 “문재인 정부 시절 대중 굴욕 외교 속에 돌아온 것은 한국 대통령의 ‘혼밥’ 일정이었다”고 했다. 국내외에서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고 있는 여론 조사 결과가 잇따르는 점도 참고하는 기류다.
반면 민주당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일본에 대한 비판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의도적으로 반일·반중 구도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큰 만큼 향후 실제 방류나 수산물 수입 등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중 상호주의 문제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국민 안전 문제가 총선의 쟁점으로 작용해 “총선이 중-일 대리전 양상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상헌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