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청284 김삿갓.hwp
방랑시인 천재시인 김삿갓
- 김병연(金炳淵 1807.순조7~1863.철종14) 조선후기 방랑시인, 해학과 풍자를 통해 민중과 함께한 시인
-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 / 술 한 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조선 철종 때 방랑시인 김삿갓의 삶을 유행가 가사에 담아 현재까지도 국민들에게 가슴 한 켠에 애잔하게 다가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이다.
천재시인이며, 제도권에서 벗어난 일탈자이며, 방랑자로 일생을 살았던 김삿갓, 당시 서민들은 그의 시에 울고 웃었다. 그는 1807년 3월13일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 본명은 병연(炳淵),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이며, 일명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이라 불렀다. 그의 운명은 1811년(순조 11)에 일어났던 홍경래(洪景來)의 난으로 인해 송두리 째 바뀌어 버렸다.
당시 그의 조부였던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 난 때 투항한 죄로 멸족을 당하다 시피 되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김병연이 강원도 영월에서 치러진 백일장에서 장원급제 하였으나, 당시 백일장의 시제가 홍경래 난 때 투항한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을 꾸짖고, 그와 반대로 결사 항전하여 죽은 가산군수(嘉山郡守) 정시(鄭蓍)의 충절을 찬양해 장원급제 하여 집으로 돌아왔으나, 과거시험의 시제를 묻던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그의 조부라는 말을 듣고 그 충격으로 인해, 조상을 욕하고 합격했던 자신을 죄인이라 하여, 붓을 꺾고 일생동안 삿갓을 쓰고 주유천하 하면서,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했다고 전해지는 사실인데, 위의 내용은 주로 소설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1925년에 간행된 조선시대 인물에 대한 기록 등을 담은, 대동기문(大東奇聞)에는 이와 다른 사실을 전하고 있다. 김삿갓의 실력에 미치지 못한 평안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시인 노진(魯禛)이라는 사람이 김삿갓을 조롱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김삿갓이 22세부터 방랑의 길을 걷는데, 백일장 시험을 치를 때는 자신의 조상이 누구인지 당시의 나이로는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또 김병연은 관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당시 서울의 세도가 집안의 인물들과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어울리다가 나중에 자신의 신상이 탄로 나서 그들로부터 배척당하자, 더 이상 자신의 신분 상승이 불가함을 깨닫고, 한동안 고뇌하다가 방랑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김병연은 시를 짓는데 있어서도 천재적 자질과 함께 당시의 한시의 격식을 깨뜨린 시를 많이 지어 조선의 한시가 김병연에서 망했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이십수하삼십객(二十樹下三十客,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사십촌중오십식(四十村中五十食, 망할 놈의 마을에서 쉰 밥을 주네)
인간기유칠십사(人間豈有七十事,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다 있는가)
불여귀가삼십식(不如歸家三十食, 집에 돌아가 설은 밥 먹는 것이 낫겠네)
집 떠나면 고생이고 서러움 많은 것인데, 어느 고을에서 푸대접 당한 것을 숫자를 가지고 절묘하게 시를 지어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전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양반들과 시를 주고 받으며 시사를 풍자, 조롱하고 또한 객수를 달래기 위해(?) 기생 가련(可憐)을 비롯한 수많은 여인들과의 로맨스도 풍류남아의 멋을 더해준다.
특히 단천에서의 곱단과의 하룻밤에 노처녀의 그것을 의심스러워하자
후원황률불봉탁 (後園黃栗不蜂坼)
뒷동산의 누런 밤은 벌이 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벌어지고
계변양류불우장 (溪邊楊柳不雨長)
시냇가의 버드나무는 비가오지 않아도 잘 자란다
라고 곱단이가 시를 지어 천하의 김삿갓을 KO패 시켰던 것이다.
또 어느날 해가 저물어가는 때 지친 심신을 달래고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
서당에 들러 훈장에게 하룻밤 먹고 재워줄 것을 청하자
남루한 모습의 김삿갓을 쳐다보면서 내가 운자(韻字)를 부를테니 시를 지으면 하룻밤 재워준다고 하는게 아닌가
김삿갓이 그렇게 하자고 말하고 운자를 부르라고하자
서당훈장이 멱(覓)자를 부르자
허다운자하호멱 (許多韻字何呼覓)
허구많은 운자중에 하필 멱자인가
피난유멱황차멱 (彼難有覓況此覓)
저 멱자도 어려웠는데 하물며 또 멱자인가
일야숙침현어멱 (一夜宿寢懸於覓)
오늘밤 먹고 자는데 멱자에 달렸구나
산촌훈장단지멱 (山村訓長但知覓)
산촌훈장은 단지 멱자밖에 모르는구나
이라고 시를짓자 서당의 훈장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그도 그럴것이 여태것 글을 꽤나 했다고하는 했다고 하는사람들 그 누구도 이 멱자의 운으로 답을 하지못했는데 김삿갓은 단숨에 이를 지어버렸던 것이다.
사면기둥붉게타
석양식객시장타
네절인심고약타
지옥가기꼭좋타
위의 시는 어느 절에 들러 굶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절간에 있는 주지스님에게 밥을 좀 달라고 했다가 거절을 당해 한글로 지은 시이다.
또 어떤 시골총각이 재색을 겸비한 이웃집 양반가 처녀를 사모해서 그 처녀의 시녀를 매수하여 편지를 5일마다 보내었는데 10번째에 답장을 보내왔는데 그 처녀가 四書등을 읽은 재원이라 적(籍)이라는 글자한자만 편지의 중간에 쓰여 있어서 아무리봐도 해석이 되지 않자 김삿갓을 찾아서 자문을 구하자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대나무 숲에서 21일날 저녁에 보자고 해석을 해주었다.(竹來卄一日)
어느 고을에 進甲을 맞이하는 양반이 사또를 초청했는데 來不, 往來, 不往
편지를 보내와서 해득이 되지 않자 김삿갓에게 해석을 부탁하였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김삿갓이 오지 말라고 해도 가겠는데 하물며 오라고 하는데 왜 가지 않겠느냐 고 풀어주어 진갑을 맞는 양반을 기쁘게 하였다.
어느 노인이 아들을 낳을 요량으로 처녀에게 장가들어 나이 80세에 아들을 낳고 그만 죽었다. 八十生男 非吾子 라는 글을 남겨놓고서
유족 측-80에 생남했으니 내 아들이 아니다
애기엄마-80에 생남했던들 어찌 내 아들이 아니리오 (反語法)
요새 롯데가 형제처럼 재산을 놓고 유족 측과 아들을 낳은 처녀 측과 분쟁이 붙었다. 이때 김삿갓은 딱한 처녀편을 들어 해석해 주었다.
세상이 말 때문에 어수선하다. 남을 배려 할 줄 모르고 시정배 보다 못한 언어폭력을 넘어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우리조상들은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그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해학적이고 풍자를 통해 주변을 감동시켰다. 김삿갓을 통해 바쁘고 지친 일상사를 한번 쯤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봄도 좋을듯하다.
< 다음 주 강의 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