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기 부태식
비원 옆 우체통 1
비원 옆 우체통 2
비원 옆 우체통 4
비원 옆 우체통 6
11기 신윤철
떠돌이 봄
홀로 섰던 바다에는
11기 손상백
바다
현실 속에서
12기 이승일
나비베
풍경
12기 안두환
가난에 대하여
꿈, 서른 여섯
길에서 사랑을 잃다
13기 박성일
배꼽
고등어
13기 조유덕
책방 골목
버스. 이어폰
14기 김동섭
행복
사과나무
14기 김재희
가을연서
묘지에서
14기 정현석
광인
14기 최근배
태안 모항리에서
모래가 되어가는 시각에
15기 송은영
거꾸로 동물원
나는 없어졌다
16기 김춘종
세월
외사랑
16기 이현주
흔적
16기 장인우
어머니
16기 장윤화
작은 어깨
16기 김병철
젖은 바람이 불었다
16기 김혜정
고속도로 2
17기 이정민
폭우
스승의 날
습작기
18기 이난영
선인장
18기 백보경
가을의 향기
18기 백혜경
먼 길
19기 이신성
기억1
기억2
20기 전보경
박하사탕
20기 강지나
파도처럼
21기 이재민
길 위를 지배하는 것은
22기 김희곤
기억의 시간
22기 이호섭
유영
22기 서유찬
작은 소망
22기 오태경
난
22기 박은주
삶의 나무
22기 이현균
최씨
23기 이윤경
하루
환상
23기 김봉주
삶
23기 이상훈
유화
23기 김명준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지도교수 손달례
千年古木 아래서
나무야 너는 모든걸 알고 있겠지
거기, 그 자리에서 스쳐간 세상사를
슬픔도 기쁨도 난리도 평화도
몇 개의 나라가 사라지는 세월을
날벌레같은 무리들의
허무한 짓거리들을
듣고 또 들으며 버텨온 굳센 덩치.
오늘도 너와 함께 살아가는
하잘 데 없는 우리들
너의 둥치를 안고 숨소리를 듣는다.
진한 진동의 맥은 따뜻하구나.
너그러운 할배의 품처럼.
너를 심었다는 먼먼 조상님은
흙이 되었지만,
너는 한 해에도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으면서
천 년의 청년을 자랑한다.
혹시, 너의 그늘에서 쉬어간 자들의
얘기 속에서 그네들의 가슴을 구경했는지
아름다운 이의 가슴과
변덕 심한 가슴의 색깔을.
글과 사람은
글과 사람은
또는
말과 사람은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을 거라고,
비 오는 날
빗물은 낮은 곳으로
낮은 데로 흘러내린다.
폭우가 쏟아져도
그릇대로 받을 수밖에,
잘난 척 못난 척
어릿광대 놀음을 일삼아도
눈빛 하나로 전해진다.
수많은 시간과 세월 속에
크고 작은 끈과 줄로
매고 풀고 하지만,
끝내는 한 가닥 줄에 기대어
한 선으로 끝나는 것을.
1기 임민호
비가 있는 날은
오늘같이 비가 있는 날은
보고 싶은 님이 있어라
한올 한올 사랑 스미는
촉촉한 흙과 만나고
큰 아픔 곱게 심어
먼 날을 사는
그리움이 새로와라.
설렘
눈 마주친 일밖에 없은 그리움이
밤새도록 가슴 떨린다.
이미 하나 남지 않았다고
그렇게 머무르고 있었는데
보골보골 살아와서 시간시간을 놀래고
솟는 해님이 반갑다.
눈에 무지개 뜨는
춥도록 상쾌한 아침을 만나고
마주칠 눈자락 잠글
큰 호수 마음에 담는다.
호수에 어린 눈망울 아롱아롱
사랑을 짓고
이젠 땅거미지는 저녁이 무섭지 않아라.
혼자 사는 방
1.
거울을 가져다 방에 걸어두렴
문 걸고 집 나설 때의 공복감보다
어둠 채워진 더 커 보이는 방에
다시 들어설 때의 고독이
무서워
오른손 들어 얘기하면 왼손 흔드는 개구쟁이
언제나 내 옷을 뺏어 입고 있어도
그래도 둘이 살고 있음 좋아
밉지 않은 친구를 데려오렴
2.
깨어지지 않을 거울을
혼자 사는 방에 걸어놓고 싶어
때때로 가슴이 허해지면
돌아서서 가만히 꿈을 그릴
커다란 것이면 더 좋지만
소롯한 정 비췰 수만 있으면
손바닥만해도 깨어지지 않을 것이면 될 것 같아
어디로 가볼까
혼자라는 생각을 버릴 곳이 마땅찮아
맑은 냇가를 찾는다.
졸졸 흐르는 냇물에 마음 실어볼까 하고
조용히 굽어진 자갈밭이
냇물을 안고
손가락만 한 은어들은
냇물과 어우러져 하얀 배 뒤집으며 즐겁고
초록으로 빛나는 버드나무 자락은
그늘 드리우는
그들의 세계가 너무 어울려
괜한 방해꾼이 되질 못한 채
한참 동안이나 흐르는 냇물 바라보다
망연히 돌멩이 하나 휙 던지고
돌아서려는데 툭
발에 채이는 눈물 방울
어디로 가볼까
어디로 가서
함께 어우러질까
작은 가슴의 노래
1.
밟지 마세요 밟지 마세요
밟을수록 잘 자란다지만 거짓말인걸요
찢겨지고 곪아터져 구멍이 나는 것을
나는 어떡해요
밟지 마세요 밟지 마세요
나는 살아있어요
해도 보고 별도 보고 살고 있어요
2.
이제 하나는 싫어요
하나는 아무리 노래해도 소리가 나지 않아요
성대잘린 강아지마냥 허공 가르는
밭은 기침만 되풀이 할 뿐인걸요
소리나는 노래를 듣고 싶어요
소리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3.
흙냄새 맡으러 갈래요
사방이 세련되게 화장을 했어요
따각따각 자국없는 걸음소리
비와도 눈이 와도 젖을 줄 모르는
슬프다는 것을 몰라요
같이 눈물 흘릴 줄을 알아야지요
질경이 사랑 나누는 흙길 냄새 만나러 가야겠어요
3기 최우근
기다림
1
흐느낌으로 들어 찬
2월의 呻吟
바람 가득히 붙잡던
한 나절
슬픔처럼 서성이다
남몰래
사알짝
너를 만나면
홀로 하릴없이
피우는 아지랑이
빈 마당을 돌아
내게로
접히지도
포개지지도 않아
日常 나와는
이만큼 두고
보일까
잡힐까
문득, 불안한
겨울 가슴
2.
버린 풀꽃들이
버린 대로 자라면서
겨울 난간에
조심스레 숨이
숨쉬다
엎어지며
자빠지며
어우러져 일어나는
秘密이 있어
모올래
사알짝
너를 만나면
習慣의 때로 두터워진
담장 한 모퉁이
속삭임
“그래, 나는 꽃이란다.
네 오면 담박 피어나는
꽃이란다.”
이름
1.
내 안에
있으면서
너를 모른다
어디선가
본듯한
낯선 얼굴로
기억 속에
들어선
새로운 他人
내게서
나서
나로 죽는다
나는
이름이기 위해
나를 버리고
넌
지금 어디선가
표류하는
낯선 이름
2.
한 밤에
일어나
등을 켜면
내 몸에
수억의 그물로
피를 토하고
뻣뻣이 달아나
버려도
내게서
나서
나로 죽는
애초의
계율이 있어
옛날 이맘때부터
내년 이맘때까지
너와 함께 가야 한다지-
자꾸만 서러워
노여운 눈물이 핑 돌았다
3.
벗기면
더욱 두꺼운
가난을 안고
그래도
이제껏 살아
함께
뒹굴고 있음은
한사코
깊은
너와의 정 때문에
까닭없이
서러워
물구나무 서면
아침을
닮은
망설임으로
나는 늘 숲을 생각하고
너는 늘 바다 속에 있다.
5기 유창언
체념에 대하여
1
현란한 루즈빛이 가물거리는 거리에서 팽이처럼 빙빙거리는 풀리지 않고 질질 끌려나가는 하루하루가 걸을 때마다 스폰지 모양 푹푹거려요 누르면 하늘 저만치 생리 같은 핏물이 고이고 쥐어짜면 대로변의 눅눅한 바람에도 눈물, 눈물이었죠 나이처럼 커지는 체념의 다리만큼이나 까마득한 걸식의 청승맞음. 남자라는 거미줄에 엉켜 불투명한 존재의 막연함에 우산을 쓴다고 음모가 도움이 되랴마는 기적 같은 헛웃음이 눈빛에 살비늘 같이 일어나면 실핏줄을 꽉꽉 누르고는 가만가만히 얼룩진 낯짝을 닦아내요 그게 시한폭탄인가요 아님. 아님. 난간에 엇비슷이 선 숙명인가요 푹 매인 삼십몇년 애야. 여보. 엄마. 아아 앵무새여 바닷물이여 바닷물이여!
2
시체처럼 차가운 소심증은 모래알되어 낮게 낮게 가라 앉고
잠만 자는 도시에서 너가 죽고 너의 기압골이 죽고 그래서,
그렇게
백지장 같은 얼굴로 하늘에 신물을 뱉으면 떨림만이, 지독한 떨림만이 눈망울에 휘날립니다.
두부야. 두부야. 조개 속에 살아라, 왔다가 그냥 가거라
길게 길게 출렁거리는 체념의 화두 속으로 내리는 육십년
네가 내가 우리가 고작 지옥에 갈 준비뿐이라면
아아. 生을 마셔버린 사랑을 하고 싶어요 미친여자같이 모두에게 버림받고 싶어요
3
수양 버들처럼
눈물이 흐릅니다.
절구를 든 여자
그러나, 그렇게
추억을 먹고 살 나이가
물렁물렁하게 녹아내리는
성당과 늦가을 사이로
끝없는 목졸림같이 흐른다
절구에 담겨 썩어가는 빗물과 감나무 잎처럼
미천할 수 밖에 없는 우리가 보이고
소금빛 죽음이 그렇게 다가오면
시큼한 무우 깍두기 맛으로
살다, 살아 보다
너여 나여 하고
손이라도 내밀까
물방울
물방울 속의 은빛 아픔을
세월의 손톱으로 긁으면
피라도 쏟아질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 숙이면
그 여름의 끝에서 텅 비고
미루나무같이 길고 긴 숨을 몰아쉴 때면
불현듯. 불현듯
뒤척이는 긴 사랑
비정한 가을날
마약 같은 마약 같은
그런 침묵을 절구에 담는다.
5기 강재성
가슴 깊이 묻고
오늘
하얗게 꿈으로 메꿔진 수첩을 펼치고
아직도 그 곳에 머물러 있는 그를 위해 한 줄 편지를 써볼까.
지워버릴 수도 없어
그 모습 그대로 가슴 깊이 묻었는데
가을은 사람을 생각케 하고
내 노래는 다시 그를 향한다.
예전엔 몰랐던 것이 그리움이 되고
그를 쫓는 꿈으로 탕진해 버린 숱한 시간들.
가슴에 닿는 아릿함은 여전한데
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고,
이젠 돌아볼 수도 없는 허탈감을 안았다.
오늘, 그리도 연연하며 쓴 편지를
한 줄로 줄여
그저 가슴속에 묻어 버렸다.
에피소드 1
세상에 쉬운 건 詩를 쓰는 일
생각없이 사는 것보다 더 간단하게
私念의 片鱗들을 이리저리 부풀려 모아
사랑 한 구절, 고민 한 구절
그러다 생각이 미치면 美辭麗句로 두루뭉실하게
잡탕처럼 섞어 내놓으면 그건
하
나
의
視….
7기 강동순
가족
새벽 첫차의 기침소리에
가만히 팔을 빼어본다
멍한 머리속
담배 한 개비 빼어물면
아련히 파고드는 그리움들
투둑 핏방울의
정겨움이 채 사라지기 전
하나의 형상으로 자리할까
어느새
어깨 위엔 짐들이 가득하고
길을 내딛는 걸음 하나는
끝이 없을 것 같은
희망을 찾아 나선다.
지쳐가는 몸
잠깐 숨돌려 보면
저만큼 보이는 고마움
작은 몸뚱이에 기대어
물기 어린 눈길 전해오면
긴 한숨 허공에 던져버리고
새 걸음 하나
다시 내딛는다.
흐르는 눈물 닦아 주며
간이역 2
드물게도 눈이 내린다
얼쑤 바람질은 추임새 있고
허한 입김은 손잔등 닿기도 전에
눅눅한 등 뒤로 전해주는
애비의 안쓰러운 쿨럭임
삼남지방의 일기예보엔 눈사람이 없다.
가로수 따라 구색 맞춘 적사장만
싸락눈의 무게로 대신할 뿐
발자국에 남겨우진 우리네 허상
무심한 눈길 돌려보면
훅, 짧은 탄식음은
애비의 날들의 흔적인가
다시금 눈이 내린다.
내 일상 속의 역은 저기였었는데
그렇게도 왔는데…
거부하는 손짓들의 흩어짐으로
난
무너져
내린다.
7기 김관옥
섬
늘
기다리는 섬은
간밤에 보았던
새벽이면 밀려오는 뭍으로 떠난
바다를 못 잊어
밤마다 뒤척인다
아직은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은 파도를 위해
하얀 모래밭을
정갈한 바람으로 재워 두고
행여 잠이 들 새라
늘 기다리는 섬은
떠나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은 바다를 위하여
문을 잠그지 않는다
외사랑
바람이 자리하여
아늑한 황혼
산들이 둘러앉아
귀를 모은다
더러는 별 속으로
더러는 별 저편으로
영원을 향하여
살며시 사라져 간 그 큰
눈물
밤은
한없이 넓기만 한데
한 뼘 속
깊은 사랑
목울음진 풀섶마다
왜 이리 타드는지
겨울 그리기
이젤을 준비하는 겨울이기로 했다
그래서
生의 고통
끝간 그곳에서
겨울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흐려질수록 또렷이 드러나는
眞實의 마디
잊혀졌던 言語의 생채기들을
옮길 수 있는 그림
조그마한 마음으로
겨우내 한장의 겨울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겨울 그림이 이루어지는 날
겨울도 끝날 것이고
나는 또 다른 겨울을 위해
기다림을 키워 갈 것이다.
8기 서용균
행복 예감
앞마당 초록들은 성숙한 분위기에
젖어 땀흘린 만큼의
높은 하늘로 퍼져갑니다.
장마와 무더위를 지나 비로소 열리는 결실
소꿉장난이 되지 않게끔
할머니의 초연한 말씀
“올해는 반찬값 덜 들겠다”
그렇습니다. 땡볕더위
잔디와 필요없는 나무 죄다 뽑아버리고
열무씨 한봉지 사서
뼈만 남은 앙상한 손으로
땅에 곱게 묻어 두셨습니다.
밥상에 있는 우리 열무는 억시지만
장차 나의 자식들에게
직접 만든 채소를 먹여 볼 겁니다.
초롱초롱한 눈빛들, 제비같이 작은 입들
“꼭꼭 씹어 먹어라”
높은 하늘 보라는 듯이
채소들은 싱싱한 소란을 피우며
날아오릅니다.
새벽길
문을 열고 달린다.
길목을 가로막는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어제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그윽한 향기를 따라
슬픔으로 무너져 버린 어젯밤
지울 수는 없어도
뛰면서 맞바람으로 씻으리라.
별빛, 아름다운 시절 사라져도
어둠을 씻으며
아득한 저 끝에서
세상을 밝히는 태양을 향해 달리리다.
9기 이동배
소심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본 시린하늘
보름달로 가득 찼네...
달이 물처럼 흐르고...
상념도 따라 흐른다.
아지랑이 피워 오르던
그 해 따스한 봄날...
벙거지모자와
친구 하얀 웃음소리
내 귓가에 왁자한데...
걸어온 자욱자욱
하나 둘... 세어보니...
삼월눈꽃 마냥
무상함 그지없네...
내 달빛... 이리도 차가운데...
네 달빛... 얼마나 시려울까...
오십을 바라보며...
올려다본 하늘에
시리도록 날세운 달이여...
시린 겨울지나...
따스한 봄이오면...
피어라 친구여...
가득찬 소심으로...
월출
투명한 가을바람 나를 깨우니
이밤, 기지개와 함께 화아를 올리다…
내 살던 고향
늙은 적송의 노래소리와
갈대숲의 사각거림
귓가에 맴돌지만
두 팔 베고 누운 베란다
푸른 가로등 불빛
고향의 향기 멀기만 하네…
초저녁 찾아온
친구 발자국 소리에
술잔 마주하고
밤새 지새우고 싶었지만…
분주한 발자욱 멀어져가고…
깜박 잠에서 깬 이 한밤…
못내 잠못 이루다…
목마른 외로움이 사그러 들때쯤
겨울이 지나 봄이 올 게고…
눈 덮힌 봄의 문턱에서
내꽃 피워내며
고향의 향기 맡으련가...
10기 김진아
겨울 여정
겨울 바다는 조용하다.
방파제의 바다 내음도
포구의 뱃고동 소리도
겨울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든든히 자리잡은
사랑이 쌓여있는
내 눈 가까운 곳엔
붉게 수줍은 누군가가
고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쉽게 슬퍼하지 않으면서
비원 옆 우체통 4.
마음속에 담아서 가슴아픈 사랑을
종이에 다 적어넣지 못했습니다.
흰 종이엔 글자보다 떨어진 눈물자국이
더욱 선명해져 떠 있고
밤하늘 별 되어 접혀져 앉았습니다.
음각으로 시작한 사랑은 이미 양각되어
그늘을 만들고 모서리를 세웁니다.
모서리에 생긴 생채기 보다
더욱 마음 아픈 것은 두려운 이별입니다.
만남과 동시에 이별의 초침도 움직이니
기쁨과 동시에 슬픔에도 강해야 하나요?
가슴 속에 남아 아픈 것은 그리움이고
못다해 목마른 한마디는 사랑이였지요.
오늘 또 혼자 남아 슬픈 것은 기다림 맞죠?
오늘 비원 옆 우체통엔 아무 이름도 없네요.
비원 옆 우체통 6.
어부는 그 동안 노트에 적어 둔
사랑하는 감정을 눈에다 옮겨적고는
밤새 읽다가 잠 들었습니다.
아침에 보니 편지는 눈물되어
망망대해로 한 방울씩 떨어졌습니다.
블루노트엔 인어가 살고요
어부는 며칠째 슬퍼 지친 가슴을
노질하며 소금빛 인어 찾아
블루노트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
고운 인간을 닮아 슬프고
사는 위치가 달라 힘들며
자라온 환경을 등지기엔
아픔이 너무 큰 까닭에 바다는
인어를 닮은 채 거울인 하늘과
어디선지 매일 울고 있습니다.
어부가 바다에서 죽는 날 되야
인어가 어부를 안아 줄까요.
인어는 어부와 바다에 떠있는
죽음을 함께하는 동반자입니다.
블루노트엔 인어가 살고요
사랑하는 남녀의 이야기가 있으며
죽어도 같이하는 짧은 사랑이지만
보석보다 더 귀한 진실이 되고
인어의 슬픈 이야기가 더 이상 아닌
시공을 초월한 바닷소리 된답니다 .
11기 신윤철
떠돌이 봄
어둠을 몰아오는 딱딱한 바람을 비껴
깡통불에 둘러앉은 공사장 인부들의
한껏 움츠린 어깨가 갈라진 입술보다
먼저 떨리운다.
메운 연기에 눈물을 닦아내는
그들의 묵묵한 손엔 삶이
거치른 세월로
이맛살 깊어진 주름 고랑에 굳어버린
봄의 앙금이 가만히 가라 앉았다.
갈비뼈 사이사이 숨막히는 몸살이 피어나와
휘어진 등골 속 이끼의 사신이
해마다 늘어난다.
벌써
광고에는 비린 내음을 토해내는
향연들
흙먼지로 말라붙은 따까리를
소주로 적셔보지만
오늘 올라간 A동 철근보다 더 무거운
허리의 비명
작업복을 뚫어오는 바늘 바람이
아직도
홀로 섰던 바다에는
허위와 가식이 물들어 버린
고목이 파도의 일렁임에 흘러가고
잃어버린 마음은 재가 되어 날려간다.
빈 가슴을 내민 소주병이
모래밭을 뒹굴고
지쳐버린 몸뚱아리는 잔속 깊이 묻혀진다.
저만큼 물러섰다 하얗게 밀려오는
움직임들에 영혼은 산산이 부서진다.
지금은 버려야 할 시간
모든 것을 떠나 보낸다.
달빛 고요히 흐르는 바다에서
닻을 내리고 홀로 춤추는 빈 배를 본다.
무겁게 짓누르는 허무함에
한숨만 쏟아지고 차갑게 부딫히는
바람이 작은 조각들을 날린다.
11기 손상백
바다
파도랑에 이끌려 바다에 다가가네
자르륵거리는 물살 소리
머리수 만큼 많은 거품이 일면
젖가슴처럼 풍만한 바다소리가 들리네
여인의 주름살 치마자락 쭉 뻗어 나가고
뒤따라 뛰는 아이마냥
이러저리 바위살에 노래하네
하얀 속살이 비치는 그녀가 아름다워라
따뜻한 손길이 길게 뻗어 오르고
잔잔히 숨결에 기대면
터질 것 같은 고요함에
연인들은 밤을 찬양하네
멀리
젖가슴처럼 풍만한 바다소리가 들리네
현실 속에서
황당한 옛 추억은 그저 지난 일의 미련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추억의 파괴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지금
모두 작은 눈의 환상이었다
존재 속에 퍼져오는 이야기 속엔 광적인
파괴뿐
때때로 잊혀져 있는 조그마한 추억의 덩어리
어릴 때 보였던 모든 사람이 없어져 버려
수긍할 수 있는 자체는 나약함이었다
몸부림쳐 일어선 자신의 옛 길을 걸어갈 뿐이다
지금 나만이라도
12기 이승일
나비베
민들레 씨 날아 오르는
풀섶 사이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색동고무신 한 쌍
성황당의 새벽은 잠들어 있다.
밤새 슬피 울던 귀뚜라미 한 쌍도
이슬 사이로 스며나오는 안개에 밀려
잔주름 가득한 산등성이 위로 날아가 버리고
버선 발에 당산나무 아래 서 있는
아랫마을 어여쁜 색시는
이불보 안아쥐고 노을을 만든다.
밭 두 마지기 몸뚱이에
수줍던 첫날 밤도
성황당 돌무더기 속에 묻혀 버리고
조막만한 손 끝에 곱게 접힌 나비베는
눈멀은 3년 만에 날개를 펴고선
고갯마루 건너로 날아오른다.
먼길 행상에 새벽잠을 버렸던
더벅머리 소금장수는
손 끝에 날아앉은 하얀 나비베를
품 속에 끌어안고
육자배기 한타령에
고개를 넘었고
성황당 고목 아래
아스라히 남아있던 수줍음은
사라지는 안개속에 스며들어 버렸고
어느 박복한 아낙이
치성으로 쌓아올린 돌멩이만
속절없이 굴러 떨어지고 있다.
풍경
기차 밖 세상은 너무 빨랐다.
저마다 제 모양새대로 자라나는
저녁노을은 저수지 가장자리에 황홀하게
타오르는 모래알들을 시샘한다.
저 멀리 산허리에 숨어 있던 황혼은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린 밥 익는 연기가
자꾸만 그리워지고
밭두렁 옆에 자란 소담스런 쑥을 캐는
아낙의 허리는 펴질 줄을 몰랐다.
밭 한복판에서 저녁햇살에 졸고 있는
경운기는 제 주인 오기만 기다리며
귀찮게 날아오는 빵봉지를 쫓고 있었고
작년엔 배추가 유난히 아름답게 피어있던 땅엔
올해는 Coca-Cola 캔들만 무성히 자라
처마끝에 매달린 옥수수 씨앗들은 제 집 찾을 걱정에
한숨만 늘어버렸다.
12기 안두환
가난에 대하여
마당에 뒹군다 쥐며느리처럼 몸을 만 오뎅이 마당을 뒹군다 어머니가 퍼질고 앉아 엉엉 운다 어머니는 어린애처럼 천사처럼 어머니의 콧물과 침물이 오뎅에 뒹군다 울지 마세요 어머니 아버지도 오뎅처럼 말아버리세요 어머니의 콧물과 침물이 아버지를 뒹굴면 아버지도 이해하실 거예요 하지만 막내야 아버지는 우리처럼 울지도 못한단다 그 한밤에 대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등뒤로 설탕가루 같은 별이이
꿈, 서른 여섯
아버지가 깨진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운동장은 봄이다 개나리다 아버지의 목이 깨진 유리에 피가 흐르고 있다 운동장은 꿈이다 운동회다 아이들이 뛴다 뒹군다 나도 아이들과 같이 뛴다 뒹군다 웃는다 아버지가 깨진 창문 너머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나도 울고 싶었고 울려고 노력했다 사라진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깨진 유리파편이다 깨지고 일그러진 웃음을 봄볕 운동장에서 나는 웃누나
길에서 사랑을 잃다
가로수가 휘청 물속에 잠긴다
누군가가 세상의 볼륨을 조금씩 줄인다
끝끝내 추억이 되지 못하는 사건이 있음을
그대 혀끝으로 사건을 접고
뺑소니치듯 떠나시는구려
달빛마저 물속에 잠기니
세상은 온통 슬픈 은빛이라
물속에 잠긴 그대 뒷모습
물속에 잠긴 그대 목소리, 냄새
마침내 나는 사랑을 잃었다
13기 박성일
배꼽
어두운 공간 속의 기생생활 10개월
나는 어머니께 아픔과 고통을 안겨주며
이 빛바랜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렸다
기생 생활의 표기로
배꼽 하나 얻었지만
나는 언제나 어머니를 방패삼아
이 한 세상 사려 한다
자꾸만 쳐져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나는 오늘도 배꼽을 잡고 웃으며
또 하루를 접는다
쇠퇴해져만 가는 나의 오래전 기억들
잊어서는 안 되는데…
여전히 보이지 않는 탯줄로 이어진 어머니와 나
노오라기 한토막 놓치지 않으려
더욱 더 뻗쳐오는 마디마디의 손끝들
또 다시 잊고 만다
언젠가는 또 한 번 끊어질 탯줄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다시 기생인으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
고등어
다가설수록 희미해져 간
어제의 빈 추억
이제 등 뒤 한 웅큼의
시간 속으로 흘러 들고,
저 건너
고통의 쾌락 속에
소외되어 버린
나의 반쪽 몸뚱아린
제 위치를 구하지 못한 체
버둥거린다
눈 앞의
소금에 절어버린 고등어
아픔에 취해
썩지도 못하고
도마 위,
또 하나의
몸뚱아린 마냥
길게 늘어져 있다.
13기 조유덕
책방 골목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회색 하늘을 바탕으로
두 마리의 비둘기는 날고
좁은 골목을 떠돌다 어느 이름있는 책 속으로
사뿐이 숨어드는 쓸려가 버릴 먼지
빗방울이 천막을 스쳐 흐르는 곳은
둥그런 우물이 되었다
체크무늬 자동 우산이 작은 크기로 누워서
쓸모없이 사람들의 손에 매달려 다니고
분별없이 달려가는 흠뻑 젖은
여학생의 단발머리를 타고
나는 껌을 씹으며 웃고 있었다.
오늘은
최신가요를 틀며 시끄럽게 지나가던
`농협’ 동전 교환원도
`오늘의 명언’ 한 장의 쪽지를 돌리며 다니던
임신 8개월의 보험 아주머니도
이 거리를 지나가지 않았다.
내용을 알 수도 없는 수만 가지의 새 책과
그 밑에 누런 종이로 썩어드는 헌 책의 제목만큼
각자의 이름을 걸고
사람들은 오늘의 자서전을 또 한 장 넘기며
그들만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버스. 이어폰
행로에 들어서면 왠지 창 밖을 주시하게 된다.
버스의 뒷자리는 가방에 걸려 처진 어깨들이 무겁게 발을 내리고
불안정한 흔들림에 익숙한 버릇으로 손잡이를 잡는다.
시끌한 그대들의 생활을 피해 이어폰을 끼면
앞머리는 늘어지고 고개 숙이며
독백의 음성으로 버스 안을 훔친다
대머리 아저씨 둘. 보기 좋을 아가씨 넷이다.
노란선을 벗어나지 못해 이 시간에 갇힌 모습은
생김의 구별을 고쳐 그리듯 정적(瀞寂)으로 굳어
비틀. 쓰러지지 않는다
농담인지 너저분한 소리들로 자기 방어의 벽을 접어들고
철저한 타인의 신분증을 주머니에 꽂은 채
제발
아무 생각없이 거리를 질주하다
신호대기에서 한 숨 끌어올리고 나란히 선 버스에
무관심한 자신을 비추어 `품세 교정’
미처 소개 못한 내 명암의 한 줄이 정류장에 멈춰선다.
앞문 승차 뒷문 하차
또 다시 기다려야 될…
버스의 출발을 보지 않는다.
날고 싶다. 빨리
14기 김동섭
행복
늦 해거름 접을 무렵
고무신 가득 쑤셔넣은 미꾸라지
혹은
모심기 달음박질 지르고
네잎크로버 찾아 분 보리피리 소리
어느 때부턴가 뻗으면
닿는 수북한 정보지
또는
서른을
남겨둔 어색한
귀성길의 가벼움
(간밤에 술이 과했다.
무슨 억하심정의 분노가 있었는지..)
빈 베게 대신
머리맡에 따스한 꿀물 한 잔
사과나무
눈 내리는 전날 밤
베어낸 고목나무를 뒤로 한 채
때아닌 사과나무를 아이는 한 어른과 함께 심었었다.
그 해 내린 눈을 보며 그들은 되돌아가고…
이듬해 아이는 두 손 가득 향기를 가졌고
다음해에는 열매를 맺으리라 확신을 가졌었다.
문득
그 해를 생각하면
그 향기는
삼십줄의 아들만이 맡을 수 있는
젖내음이었고, 흙냄새였음을….
하루를 이틀로 밤지새운 여인은
이틀을 하루처럼
14기 김재희
가을 연서
그리움이 깊으면
세상에 모든 것이 예사롭지 않아라
이름없는 들꽃 하나 피고 지는데
언제 내가 눈시울 붉혔었나
찬 하늘 시림 바람 가슴에 아려
언제 먼저 내가 고개를 돌렸었나.
그러나,
그대를 알고부터는
세상에 모든 일이 예사롭지 않아라.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고
하늘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니고
바람은 그저 바람만이 아니다.
그리움이 깊으면
사랑이 깊어지면
묘지에서
이승과 저승은
어디서 갈리는 건가
수많은 봉분들 속에
이렇게 일괄적인 모습으로 남게 된다면,
목련 가열 3호 아니며 다열 4호
이런 묘지의 마지막 주소를 걸고
끝없는 기다림에 오롯이 남게 된다면.
차라리 나는
흩뿌려지기를
아무데로나 닿는 바람이 되어
이승과 저승 아니면
영 닿지 못하는 無心 끝을 날아
사라지기를,
사라지기를.
14기 정현석
광인
어둠이 자리잡은 어느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불모지지
헤어나지 못하고 양팔에 달린 힘없는 열 손가락
앞이 보이지 않는 절벽에
달아나야 했다 허기진 목청으로 헐떡이는 숨, 초췌한 모습
그러나, 남은 건 오기
갈라진 입술을 깨물었었지 눈물을 흘리는 건 진실을 깨달았기에
애정어린 손보다 피를 부르는 주먹이
그의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기에
더욱 더 깊어가는 그의 존재 속에 두 눈은 살기를 띄우며
자신마저 잊은 채 구겨져가는 육신
이제껏 흘린 눈물과 피를 보아야 살아가는 육식동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
그는 이제 狂人이 되어가고 있는 거다.
14기 최근배
태안 모항리에서
-1박2일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벌써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나 보다
검게 탄 바위
해안을 따라 머리띠를 둘렀고
얼어버린 바위 틈새에는 닦아도 지지 않은
단벌신사의 얼룩만 남아있었다.
하얀 방제복과 얼음같은 고무장화가
삭풍이 몰아치는 해변에서
홑겹의 양말을 원망하지만
호미 한 자루와 부직포 한 묶음에
뜨거워지고
간간히 뜨거운 커피 한 잔에
내 몸도 녹아 들었다.
양수기로 바닷물을 퍼 올리고
퍼 올린 바닷물은 뜨겁게 데워져
바위를 두드리고
헤어진 부직포로 닦고 또 닦고
호미로 골을 파고 구덩이 만들면
하얀 부직포에 검은 타르꽃을 피워냈다
하얀 방제복이 물결은 타는
해안가 돌무더기에선
간밤 신두리 해변에서 웅성거리던 바다소리가
건너편 방파제 경사면에 하얀 눈으로 내리고
썰물진 모래밭엔
파도가 모래알을 읽는다.
얼마나 읽어야 해초가 자라나고
얼마나 읽어야 집 떠난 고기가 돌아올까
모래가 되어가는 시각에
1
전에는 바위였었다. 뙤약볕에 내 몸은 뜨거워지고 했고
몰아치는 비바람을 정신없이 맞기도 했다. 아주 오래 전 새들이
쉬어가다 물어다 준 씨앗이 이제는 높이를 알 수 없는 나무로
자라면서 날카롭게 날이 선 내 몸을 갈라놓고 말았다. 간밤에
내린 비로 무섭게 몰아치는 물살에 떠밀려 뒹굴기 시작하여...
때론 쉬고도 싶었다. 흐르는 물살은 나를 부지런히 옮겨 다녔다.
부딪히는 곳마다 상처의 흔적은 남았고, 지나가던 황톳물이
어루만지고 지나가면 그 뿐이었다.
시간도 기억나지 않을 시간이 갔다고 느꼈을 때 엄청나게
큰 돌을 만났다. 그리곤 지나간 시간은 그 돌이 큰 게 아니라
너무나도 작아진 나를 보게 했다. 세상의 귀퉁이에서 한가로이
햇볕을 느끼고 있을 때 이젠 바람이 나의 손을 잡는다.
2
긴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바람으로 흐트러지는 곳
지나간 발자국 만큼이나 흐릿한 잃어버린 기억만
남겨둔 채로 내 조각조각들의 생명은 알 수 없는 움직임으로
그렇게 그렇게 덮혀 가고 있었다. 또다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나를 둘러싼 조각조각은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어딘지도 모를 그곳을 위해 그러나 신경쓰지 않아도 지나간
소나기만큼이나 선명한 들어선 곳에 길을 찾아서 한알 한알
나를 덮어가고 있는 것은 언제나 내 자신임을.
15기 송은영
거꾸로 동물원
세상 잘 살려면
세상에 맞추라했지
4년 버티어 대학도 졸업하고
적성과 상관없이 취직을 하고
안 된다는 사람과 이별도 했어
그래야 한다기에
세상에 관심없이
가지런히 앉은 동물들
배고픈 만큼만 먹고
한가히 몸 다듬고 있구나
그럴 자신이 없어
한 발은 땅에
한 발은 하늘에
두발 모을 자신도 없어
네 발 모두 하늘로 뻗고
울 안의 자유를 누리는 동물들
한 발로 간신히 서 있는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는 없어졌다
나는 없어졌다 기억할 수 없는 어느날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내 얼굴이 녹아내리더니 어두운 방에 갇혔다 특징없는 탈이 씌워지고 나는 멈출수 없는 춤을 추었다 감정마저도 사라진 그래서 아무 소리조차도 없는… 그 방은 점점 줄어들더니 춤동작마다 벽에 부딫혀 온몸은 피멍이 드는데 아픈 줄도 모르고 춤을 추다가 방이 점점 줄어 내 몸 크기가 되었을 때 춤은 멈춰지고 나는 없어졌다
내가 없어진 지금, 모든 게 의미없다.
16기 김춘종
세월
어머닌
더 이상 꾸지람을 않는다
어릴 적
세 끼 밥보다 더 많은 꾸지람을
먹고 자란 내가
이젠 다 컸다고 생각해서
한 번의 꾸지람을 위해
어머닌
밤에도 베틀 앞에 허리를 얽어매야 했고
하루에도 더 호미를 잡아야 했고
정당함을 부여받기 위한
주름을 늘려야 했다.
세월 앞에 고개 숙인 어머닌
이젠 침묵을 지킨다.
나의 타지 생활 7년이 남긴
빈 공간 만큼의 정당함을
잃어버린 탓이겠지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내 홀로서기 시간들에 대해
꾸지람의 자격을 상실한, 그래서
침묵으로 일관할 당신
이젠 다 커버린 내가
꾸지람이 고프다
외사랑
받아들여지지 못해, 내팽개쳐진
쓰레기더미에 묻혀버릴 장미는
볼품없는 내 그리움을 닮았다
그녀에게서 캔조각처럼 일그러진 내 무수한 그리움들은
어떤 형태의 재활용품으로도
내게 되돌아오진 않았다
두려운 건
사랑을 먹지 못함보다
그 집 앞에서의 막막한 어둠처럼
끝이 보이지 않던 기다림
허기져 쓰러져 버리는
내 그리움들이었다
공유할 기억 하나 없는
지독히도 가난한 그리움은
사랑도 남루해질 수 있었다
16기 이현주
흔적
감당하기 벅찬 긴 겨울을 견뎌낸
메마른 가지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혹은 누군가에 의해 알아차려져 버린
애틋한 슬픔으로
혹은 낯선 타인의 모습으로
가늘게 매달려 있는 단단한 아스팔트 위
내 손바닥만큼의 폭으로 다가오는 하늘 아래
어지럽게 내리쬐는 햇볕을 쫓아
부끄러운 추한 모습의 흔적을 드러내는
나뭇가지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지러운 도시 안
작열하는 태양 아래
부끄럼없이 온 몸을 드러내는-
(이윽고) 흔적을 털어버린 시간이
잔인한 어둠으로 채워지고
희망 또한 거추장스러워지는 밤이 되면
마침내는 스스로의 몸을 분질러
몇 개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마는
나 여기 낯선 타인의 모습으로
서 있으매
내 것이 아닌
그 흔적들의 아픔을 느낀다.
16기 장인우
어머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당신에게
당신의 존재를
못난 제 유언장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약한 존재에 대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산과 같은 사랑을
아들을 위해
산을 오르시는
사랑을 보았습니다.
허연 눈동자엔
당신의
깊은 미소가
지난 날의
아름다운 미소는
자식 걱정 속에
퇴색되고
옛날이 되어버린
아름다운 미소를
다시 한 번.
16기 장윤화
작은 어깨
늘 보아왔을 뿐인데
그저 스쳐 지나는 시선에 머문
내 두 손에 꼭 쥐어진 어깨
사십여 년의 생의 무게가
혼돈의 멍에로
보잘 것 없는 어깨로 하여금
무얼 그리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하셨나
오늘도
애물단지 짊어지고 가야 할 당신
지구를 떠받친 아트라스의 어깨보다
더 위대한
당신의 어깨는
작으시더이다
16기 김병철
젖은 바람이 불었다
오늘 비 내리는 날 젖은 바람이 불었다
아직 밤도 오지 않았는데 바람은 구석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석으로 몰려갔던 뫼르소
나는 잠시 이런 생각에 빠졌다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었다
2층 창밖의 관상수는 낮게 웅크렸다
때때로 사람들이 뛰어다녔고
천조각 하나가 제멋대로 흔들거렸다
건물 현관으로는 바람이 숨어들었다
그래 그 여자의 집으로 가는 길은 자주 비가 내렸고
하릴없이 바람은 낡은 삼단 우산을 뒤집어놓곤 했다
어둡고 가파른 언덕에는 뿌연 오수가 넘쳐 흘러
헐렁한 구두를 질척이게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던 그 여자의 집
불켜진 창만이 쓸쓸히 비에 젖어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발걸음 돌리는 길
가슴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다
비는 좀체 잦아들지 않는다
무성의한 나의 생활 습관은 일기예보를 거르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이
곧 비가 그치리란 당연한 이치를 고집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석으로 몰려갔던
뫼르소를 다시 생각하며
내가 비에 젖는다
16기 김혜정
고속도로 2
빨랐다
바람이 풍경들을 지워버리고
엔진소리는 생각을 흩어버린다
섞여버린 색깔 속으로 초점을 잃어버리고
꽉 찬 좌석, 그 속에서 혼자가 된다
시속 백 사십 킬로미터
이제부턴 대화 단절이다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는
언제까지나 독백에 불과하다
짧은 순간 진공을 맴돌던
사념의 조각들도 이제 깨져 버렸다
그늘진 도시 사이를 비집고
사람들은 늘 멈춰 있지만
아직도
고속도로 위에 산다
17기 이정민
폭우
잔업을 마치고 온 어머니는 서둘러
밀린 빨래를 끝내고 잠이 들었다.
비는 낡고 오래된 세로읽기 시집
아랫목 배를 깔고 누워
밤새워 축축한 시들
세상으로 흘려 보내었다.
밤새 비가 오지 않을까
가벼운 걱정이 창문 두드리는
소릴 들었다.
고인물 살짝 뒤집으며
참빗 같은 빗줄기
귀속으로 쏟아질 때쯤
창문 너머
잠든 어머니 눈 속에
힘찬 기립박수 소리를 보았다.
스승의 날
창원 공단 어디쯤 특례병으로 일을 하다
왼손을 잘린 친구는
가지런히 접은 흰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스물새해 동안 꽉 조인 마음은 운동화 끈처럼 풀기보다
이젠 구두가 다 편하다고
3년간 교문을 지나가던 것은 입사원서 한 부가 아니라
기름 띤 손이라고 그는 기억할까
꿈은 너와 어울리지 않아 깃발처럼 날리어 하늘로 사라진다
그 때도 저 오르막길을 밀물처럼 천천히 걸었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손끝을 꼭 쥐지 않아 바람이는 너의 손은 얼마나 깨끗한가
사방에 흩뿌려진 봄을 피해 굳게 닫힌 창문을 두드렸다
회안에 벽을 딛고 일어서는 그림자는 악수를 하고
우리는 가슴 속 촌지 한 장을 꺼내 봄날 햇살에 비추어 보았다
습작기
버스를 타면 전신주를 넘는 상상을 하거나
매일 밤 당구장에서 본 머리 큰 여자와 자는 꿈을 꾸는
그런 일은 체로 건져 버리라고 늘 말해왔지
다시 우리는 어두운 방안에 모여 앉아 절망이라
불리는 것들에 대해 주섬주섬 긁어 모았지
근시처럼 바닥을 더듬거리면 철지난 얘기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저 멀리 앞서가는
심장 소리를 쫓아갔지
한 선배는 누구도 처음의 하늘을 본 적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지만
밤새 우리의 목소리는 빈 병속의 바람과도 같았지
나는 무리에서 혼자이지 않으려
애써 모진 기억을 창문 틈새 끼워놓고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으면
빈 술병처럼 방바닥을 뒹굴면 그만이었지
누구도 끼워있는 시간을 깨우려 들지 않았어
처음의 하늘을 볼 필요조차 없었어
그저 담배연기 가득한 방 안에서
누구의 벽에 금이 더 많이 갔을까 하는 것뿐이지
18기 이난영
선인장
오랫동안 그대를 잊고 지냈습니다.
그대 잊고 지내는 동안
나는 싸움 한 복판에 섰습니다.
숨막히는 열기와
모진 모래 바람
그것은 인내이기 보다는
날마다 죽고 깨어나는
내 자신의 무거운 짐임을 깨달으며
참으로 진실되게 감당하려 했습니다.
세상 모두 다 그만한 아픔 가지고 살아가기에
다만 잊은 듯 씻은 듯 그렇게 살아감을 알기에
그 아픔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뿌듯한 환희입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대에게 자랑하고픈
진실되고 순한 믿음 때문에
수십년 세월만에
내 살 뚫고 나온 그대로 인해
내가 살아 움직이고 더욱 아름다워 보임을 알는지
풀씨 하나로 남을 때까지
뜨겁게 살자고
숨막히는 싸움 한 복판에서
불러보는 그대
18기 백보경
가을의 향기
오랫동안 잊고 지낸 소녀를 보았다
값싼 향수에 짙게 묻혀
더 이상 어릴적 소녀가 아닌
꿈을 잃어버린 소녀를 보았다
때론 사랑하는 그를 얘기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조금, 아주 조금
가슴 아리게 했던
어릴적 그 소녀의 모습을 보았다
지나온 세월을 얘기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만남
추억을 뒤로하고
길을 거닌다
파랗게 단풍든 하늘
아직도 짙게 남은 그녀의 향기
나는 세월을 가로질러
길 대신 그녀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18기 백혜경
먼 길
아직,
비는 그치지 않았는데
저 높은 하늘 위로
싱그런 달이 뜨지 않았는데
비에 젖은 길을 걷는다
이 먼 길, 멈춰 서서 바라보며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고,
아무런 연습 없이 만나는 사람들은 만날수록 가슴의 빈자리만
보여져 그 자리 채우려는 서툰 몸부림은 그저, 시시한 표정으로
길 어귀에서 서성이곤 했다 정거장마다 서 있는 사람들은
계획 없는 방향의 길 위에서 아무 일 없는 듯 길을 가고, 철 이른
낙엽위로 뒹굴고 있는 젖은 발자국위로 마음 잔해처럼 묵 울대를
타고 비가 내린다.
19기 이신성
기억1.
비가 추적추적 내리다
밤중 지나 새벽 무렵 개인다
정갈하고 촉촉한 거리
안개에 휩싸인 젖은 가로등
젊은 엄마 품처럼 아늑하다
순환버스를 타고 다대포에 내려
무거운 발목을 움직이면
초등학교 담장 너머 향긋한 아카시아 내
코를 간질이더니
갈매기 울음소리 등 위에 올라 타
동무동무 부르는 듯
현관 앞까지 희뿌연 안개에 휩싸여
걷는 듯 나는 듯
우는 듯 웃는 듯
산 듯 죽은 듯
검은 파도 요란하게 들썩인다.
기억2.
마른 입사귀가 떨어지는 순간처럼 불현듯 떨쳐내려고 해도 질기게 뇌리를 휘감는 언어가 있다. 내게서 뿜어나오지 못하고 갇힌 말들, 그러나 숨통이 막혀오는 건 나다. 내 몸집보다 커다란 폭풍을 안은 채 바둥대다가 물이 새어날 것 같은 입구는 모두 막아버린다. 숨이 막혀 사장되나 폭풍에 휘말려 사장되나 결국은 같다. 폭풍에 휘말려 바둥대나 죽은 채로 사나 내게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나일 뿐이다.
1
자전거를 타고 느티나무가 양 갈래로 늘어선 길을 지났다. 눈 언저리에 뿌연 안개도 걸려 있었고 황톳길 접하는 자전거 바퀴는 무거웠다. 쩌억쩌억 흙이 놓지 않는 바퀴를 두 발로 힘껏 떼어내면서 마른 입술을 핥았다. 개똥 냄새 실은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훑고 지났다. 코를 벌름대며 오염 없는 공기를 들이켰다.
2
기억 속의 시간은 늘 어두웠다. 빛이 싫기도 했다. 두리뭉실하고 작달막한 몸집은 어느 공간이든 집어넣고만 싶었으니까. 그곳은 어디든 눈에 띄지 않는 곳이어야 했다. 가능한 데까지 몸을 낮추고 숨을 골랐다. 주머니 속에 있는 것들, 부적처럼 외로움을 단단하게 딛고 웅크리게 한 파이나 캬라멜들이 연신 입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20기 전보경
박하 사탕
딸이라는 말에
먼저 거두어들이신 외할머니
더 이상
부르지 않는 노래 소리에
박하 사탕은 속절없이 녹아만 간다
장대비가 무던히도 내리던 늦은 밤
위독하다는 전화 한 통에
잠이 채 가시지 못한 옷 꿰어 입고
뛰쳐나가신 부모님
젖어드는 커텐 자락이 자꾸만 무거워진다
서투른 재롱에
외할머니는 주머니 속 박하 사탕을 꺼내셨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진득 배어있는 박하사탕
그 향, 그지없다
20기 강지나
파도처럼
파도처럼
누굴 닮았다
외딴 방파제는
하얀 바다
검은 하늘을 웃으면서
모래 틈에 버려진 껍질 마냥
아른아른 숨쉬려
울렁거림은 파도가 된다
마음마다 고인 생명의 물줄기
일상의 행렬 속에 빛은 잔가지를 펴
잠시 하늘은 나를 불러
파도처럼
바다는 의미 없는 폭풍을 속삭인다
21기 이재민
길 위를 지배하는 것은
잡초로 자랄 수 없는 아스팔트에
자동차가 굴러간다
그곳은 그들이 혜택받은 곳
굴러다닐 수 있는 것만이 지배한다
그들은 창을 깨는 음악과
따뜻하고 검은 냄새를 만들며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경쟁을 할 뿐 이다
새빨간 불길이 그들을 쫓아와도
미꾸라지 같은 곡예를 부리며
달아난다
그들은 빠른 다리를 자랑하지만
언제 피를 토할지 모를
전율을 느끼며 달리고 있다
22기 김희곤
기억의 시간
눈을 감는다
하늘은 낮아지고 숨소리는 거칠어지는데
어둠이 밀려와 사라지는 내 그림자
풀을 뜯는 나는 무엇을 되새김질하는지
아!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있었구나
초원이라는 공간을 자유롭게 누볐던 그때의 기억은
작은 바위 위의 모래가 되어간다
계속되는 되새김질은 기억 속의 나를 깨우고
과거로 가고 싶은 욕망은 나를 채찍질하지만
눈을 뜨면
더 이상 반추할 수 없는 나
22기 이호섭
유영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수천 가닥 실타래 하나를 뽑아
운명이란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부터
한 달간의 짧은 생을 위해 인고하는 매미인양
나는 그렇게 기다렸다
부드럽게 감싸오는 세상이 좋아
노련한 어부조차 퍼 올리지 못할
저 푸른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물고기처럼
생동 어린 유영을 한다
놀이가 끝날 쯤의 푸르른 고통 속의 나
눈부신 빛에 끌려 굳센 어부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해
드러낸 그 부끄러운 자태
바라지 않던 세상 밖 그곳으로 나와
싸구려 코인 박스 안에 온몸을 짓이겨 넣는 그 미칠 듯한 압박에
움직여지지 않는 몸으로 발버둥치다 지쳐버려
끝내 터트리는 울음
22기 서유찬
작은 소망
길 위의 소나무
매연으로 숨을 쉬고
초록의 머리카락
바래진다
검게 물든 대지 위
그림자를 바라보며
생명이 요동치던 시절을 그려본다
바람의 몸짓
사막이 되어버린 대지에
희망을 숨쉬게 하고
희망이 만발하면
떠나간 이들이 돌아올 것을 알기에
소나무는 말없이 초석을 다진다
22기 오태경
난
귓볼 밑을 스쳐 가는 간지러운 봄바람과
폭발 할 듯한 여름날의 열정
바람조차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가을의 충만함
손끝에서 쌩쌩 거리는 겨울 눈발
이 모든 것
가슴뿌리 끝에 심어둬야지 할수록
바람 살랑 실바람 되어버리지
조롱조롱
유혹하는 보랏빛 포도
애써 외면해 보지만
어느 샌가 흔들리는 까만 눈동자
이번만은...다짐하며
손을 한껏 뻗어 잡으려 하지만
․․․휘리릭 한 줄기 허공의 일렁임뿐인걸
표정 없는 얼굴에
생명의 태양 비추어올 때
붉은 입술엔
옹아리가 맴돌고 있다.
22기 박은주
삶의 나무
저물녁 들판에
한 자락 나무 우뚝 솟아
나그네 구슬퍼 숨어든
메마른 뿌리
들바람에 휘갈겨
앙상히 뒹굴은
영혼의 조각
삶은 놀이같이
오랜 시간 키운 이삭
숨어든 대지의
앙상한 줄기
계절이 숨을 쉬는
첫눈을 반기우는 가지 끝에
놀빛 희망이 싹트기 전
끊임없이 서리 내린다
22기 이현균
최씨
모두 그를 최씨라 부른다
일단 3만원에 하루를 저당 잡힌
그에게 이름은 하찮은 몸치장에 불과하다
오참 시간에 나온
먼지 쌓인 빵 한 조각을
짠내 나는 입 속에 털어 넣고
싸구려 담배 한 모금에 나오는
딸자식 자랑은
파스냄새 베인 어깨를 가볍게 한다
가슴을 조여오는 지하터널에서
기름진 장갑위로 떨어지는 땀방울들은
곰팡이 핀 철근과 같은 삶의 후회이다
사슴을 향해 달려가는 맹수와 같은 그대 눈빛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 한 가운데의 길 잃은
자아의 모습이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짐승의 처절한 울부짖음은
눈가에 핏줄이 선 포식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들의 분노 아닌 분노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원초적인 것
지상의 모든 생명들은 오늘도 처절한 전투를 한다.
23기 이상훈
유화
얼기설은 이젤 위에 창백한 켄트지를 올리고
주사 같은 네 입술 떠올라
피 한 방울 홑 뿌려 너를 그려본다
떠나는 모습이 무척이나 향기로와
흐트러진 머릿결처럼 물감을 풀어
네가 남긴 향을 그리려 붓을 옮겨 보지만
선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유화라서 인지
원래 향은 그릴수가 없어서 인지
너는 마블링처럼 이지러지고 만다
지하실 가득 매운 물감 내음에
혼미해진 마음 담배 한 모금으로 추스려 보지만
이미 조각나버린 너의 상념들...
엎드려 너를 주워 뭉쳐보면
일그러진 나의 조각상
스며드는 바람에 문득 정신이 들었는데
내 앞에는
어지러운 유화 한 장에
피인지 물감인지 붉은 게 한 방울
떨구어져 있었다
23기 김명준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사욕에 치우치지 않고
소유하려 하지 않는 지혜를
배우고 싶습니다.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삶의 비를 내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남겨 놓은 의자처럼
언제나 마음을 비워둔 채
기다리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보잘 것 없는 나의 인생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남는
시 한 귀절이고 싶습니다.
나이테처럼 차분하게 늘어만 가는
자아의 결실을 보면서
나 오늘도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싶습니다.
삶에 지친 내가 마음의 칼날에 베인다 해도
전 묵묵히 견뎌내는 땅이고 싶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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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임민호 김해 055-325-3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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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기 강동순 부산 011-597-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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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배..고생많네요~전..모임일자..9일이 좋아요~^^;;
3월8일 토요일 오후에 모입시다..다음날 좀 쉬고..ㅋㅋ 장소는 서면정도로..푸하하
근데, 20기 뒷 기수 중에 동아리 나간사람들의 글도 있네용? 상관없는건가요?
호기 시도 빠졌네용. 23기 이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