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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여행] 수경대 와 쪽 동백나무, 학소대 ,덕주루.........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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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여행] 수경대.바위와 쪽 동백나무, 학소대 ,덕주루.........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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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流浪者[유랑자]는 정처 없이 유랑의 길을 걷는다. ‘보름달이 뜨면 영봉 바위에 달이 걸리는 산'이라 月岳[월
악]이라는 이름이 붙은 月岳山[월악산] 계곡길을 말이다. 월악산은 1984년 우리나라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으며 소백산을 지나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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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은 계곡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 월악산의 험준하고 독특한 산세가 마치 무릉도원에 온 듯 신비로움을 더
한다. 월악산은 뛰어난 경관과 아름다운 계곡의 정취를 간직한 곳이 많아 ‘제2의 금강산’, 또는 ‘동양의 알프스’로
불린다. 그만큼 산세가 험하고 기암절벽이 끊임없이 펼쳐져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신성한 정기를 담고 있다고 여
겨지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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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 숨쉬기조차 버겁다. 라고 생각이 들 때 또는 밤잠까지 설치게 만들어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하
다 싶을 때엔 모든 것을 접고 찾는 이 많지 않아 언택트로 푹 쉴 수 있는 충북 제천시 월악산 송계계곡으로 떠나보
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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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주봉우리를 신령스러운 산봉우리라는 뜻을 담아 ‘靈峯[영봉:1,097m]’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 산 중에 주봉
이름이 영봉인 곳은 남한에서 월악산, 북한에서 백두산 정도다. 월악산은 만수봉, 금수산, 신선봉, 도락산 등 22개
가 넘는 크고 작은 산과 봉우리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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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다. 그래서 일까 각 골골마다 기암과 어우러진 沼[소]들이 계곡 곳곳에 자릴 잡고
있어 아름다운 風致[풍치]를 더한다. 오늘은 덕주 산성 동문으로 오르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수경대 바위, 와 쪽 동
백나무, 사연을 들어보고 이어 학소대 ,덕주산성 동문, 의 스토리텔링 있는 길을 따라 그 절경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들으며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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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면 송계리 송계계곡 에서 장쾌한 물소리가 시원하게 가슴을 뻥 뚫어 줄 것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흐른 물
살은 암반을 깎아 넓고 평평한 반석과 신비로운 깊은 소를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때 묻지 않은 태고의 신
비가 가득해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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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미륵송계로 길에서 갈라져 나간 미륵송계로 2길로 들어선다. 이 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월악산 덕주사 분
기점이 나온다. 우측 분기점인 데크길로 오르면 산책로 길이고 좌측 도로는 차량이 덕주사로 오르는 일반 도로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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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기점에서 150m여만 오르면 척번째 만나는 수경대가 우측 계곡 아래로 펼쳐진다. 오늘 유랑자는 이 수경
대 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겹겹이 쌓인 넓은 반석 맨 위 돌에 ‘水鏡臺.’[수경대]라 적힌 글자
가 또렷하다.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이 취기에 한껏 글 솜씨를 부렸나 보다. 주변에 흐르는 물이 ‘거울처럼 맑고 깨
끗하다’는 뜻을 담아 이런 이름을 지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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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계곡 자체가 해발고도 500m 정도로 높아 물은 더욱 맑고 깨끗하며 공기도 아주 상쾌하다. 건강한 삶을 살
기에 아주 좋은 곳 같다. 사람들이 깊은 소를 헤엄치며 한가로이 물놀이를 즐기는 풍경이 아주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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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정말 풍덩 뛰어들어 한바탕 휘젓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소[沼]이다. 아무튼 신라시대부터 이곳에
월악신사를 설치하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 물이 깊어 위험하니 들어가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즐겨야 한다
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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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둘러본 계곡의 각종 소[沼]들을 보면 위에 그물망을 처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아마도 물이 깊기
때문에 혹시라도 사람이 잘못해 떨어질 경우 안전상 그물망을 처 놓은 듯하다. 수경대의 안내판을 보면 삼국사기
권32 제사지에서 "국가에서 제사하는 것에 대하여 대사[大祀]인 삼산[三山]과, 중사[中祀]인 오악[五岳]에 이어 소
사[小祀]를 올리는 산으로 금강산, 설악산 등과 함께 월형산[月兄山]이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월악산이 신라 때의
월형 산으로 불러온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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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깨끗한 계곡 물. 낮 최고기온에 상관없이 잠시만 발을 담그고 있자면 금세 땀이
쏙 들어가 버린다. 1급수에서만 산다는 송사리는 손님이 반가운지 꼬리치며 인사하니 유혹을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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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대[水鏡臺]는 신라시대부터 월악신사[月岳神祀]를 설치하고 제사를 지낸 던 곳으로 주변의 넓은 암반이 자연
의 소[沼]를 만들어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른다. 라고 적혀있다. 여기에서 부연 설명을 좀 하자면 여기에서 말하는
대사삼산은 첫째가 경주에 있는 내력산[奈歷山], 둘째가 영천에 있는 골화산[骨火山], 셋째가 청도에 있는 혈례산
[穴禮山]이다. 신라는 수도 경주를 방어하기 위한 주변 3개의 산을 삼산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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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악은 동악 토함산, 서악은 백제 지역이었던 계룡산, 남악 지리산, 북악은 고구려 지역이었던 태백산, 중악은 공
산(지금 팔공산)으로 지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시대 당시 기존 지배세력들을 다스릴 수 있는 전략적 요충
지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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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소사[小祀]는 삼국통일 이후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월래 신라의 소사를 지낸 곳은 고성 상악[霜岳], 북한산주 부아악[負兒岳], 청주(지금의 고령) 가량악[加良岳, 현재
가야산], 무진주(지금 광주) 무진악(무등산) 등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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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골 계곡에서 바라보는 맑고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 피어오르는 낭만적인 풍경은 그 자체로 한폭의
그림이다. 특히 차가운 물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은 만화의 한 장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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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수경대 에서 200m여를 오르니까 우측으로 바위와 하나가 된 쪽동백 나무를 볼 수 있다. 오랜 풍상을 겪
으면서 신기 하게도 바위에 달라붙은 모습이다. 본시 바위와 나무는 서로 가까이는 있지만 바위는 무생물, 나무
는 생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기엔 둘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인 듯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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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가 캄보디아 타프롬 사원 여행 때 보았던 유적과 자이언트 팜 나무가 서로 엉켜있는 모습처럼 말이다.
아무튼 큰 바위의 무게를 작은 나무 하나가 어찌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쓰럽 다는 생각
도 든다. 나무의 입장에서는 수십 년 세월을 바위와 함께 살고 있어 오히려 서로 한 몸인 듯이 상대방을 감싸주며
끌어안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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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나무 와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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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 쪽에서 바라보는 월악산은 영봉,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암봉의 능선이 장엄하며 특히 제일 오른 쪽 영
봉은 100여m의 깎아지른 벼랑을 드러낸 풍경이 아찔하다. 송계 계곡에서는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아도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금강산을 닮은 월악산의 산수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여름나기에 아주 좋은 피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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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서로 생존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여 서로간의 질서를 잘 지키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신기한 모습이 어쩌면 좋아 보이기도 한다.
본시 쪽 동백나무는 아카시아 꽃의 진한향이 사라질 무렵 은은한 향기를 쫓아가면 새 하얀 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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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뿐만 아니라 잎 향기까지도 좋다. 쪽 동백나무는 5월~6월에 하얀색의 꽃이 아래로 고개를 숙인 채 금낭화
같이 매달려서 핀다. 쪽동백나무 꽃말은 '잃어버린 추억을 찾아서'이다. 넓은 잎에 하얗게 늘어진 꽃은 마치 수줍
은 시골 아낙네의 모습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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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나무 와 바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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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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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는 예쁜 꽃이 있지만 커다란 잎 속에 자꾸만 숨으려 드는 쪽동백 나무는 최근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
지고 있으며 쪽동백, 개동백 나무, 물박달 나무, 산아주까리 나무, 정나무, 넙죽이 나무, 옥령화[玉鈴花]라 불리기
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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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에서 기름이 나온다고 산 아주까리 나무, 잎이 크다고 해서 넙죽이 나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은 중부 이북의 산간 지방에서는 동백기름대신 쪽동백 나무 열매를 기름으로 짜 불을 밝히고 양초나 비
누를 만드는데도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쪽동백 나무의 기름은 머릿니를 완전히 없앨 수 있을 정도로 효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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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나무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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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쪽 동백나무 맞은편에 보면 안아주고 싶은 느티나무도 있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느티나무가 서
로 안고 있는 듯 한 형상의 느티나무를 볼 수 있다. 알다시피 느티나무는 주목, 은행나무와 더불어 오래 사는 나무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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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소나무 문화였지만 그 이전엔 느티나무 문화였었다. 회화나무 등과 함께 옛 문헌에서
한자 이름을 괴[槐], 거[柜], 규[槻], 괴목[槐木] 이라 하였다. 우리나라 3대 우량 목재로 오동나무, 먹감나무[감나무],
그리고 느티나무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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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주고 싶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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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주고 싶은 나무(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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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지나 덕주사 방향으로 200여m쯤 오르면 일주문격인 덕주산성 동문을 지나기 직전 좌측으로 鶴巢臺[학
소대]와 德周樓[덕주루]를 동시에 만난다. 먼저 보이는 게 ‘학소대’이다. 단애(절벽)로 층층이 쌓인 바위와 주변의
작은 소나무가 운치 있게 어우러지는 ‘학소대‘는 鶴[학]의 둥지라는 뜻으로 한 쌍의 학이 월악산을 오가며 살았다
는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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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깊은 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감도는 곳으로 절벽을 따라 긴 덕주 산성이 자릴 잡고 있으며 덕주 산성
과 동문과 학소 대 위 망월대가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룬 곳인데 덕주사 불경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고 예부
터 학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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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대 밑 벌통은 누구의 것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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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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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로 가는 등산객들이 즐겨 찾아 쉬어가는 안식처로 여기에 앉으면 신라 천년 사직의 비운을 회상케 한다.
사실 학소 대라는 명칭의 이름을 가진 곳은 전국에 수십 군데가 있다. 조금 멋진 장소에서 깎아지른 절벽을 만나
면 조선의 선비들은 학소 대라는 이름을 많이도 가져다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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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성리학의 결과물들이다. 송나라 때 시작된 성리학은 원나라 때에는 특성상 유학자
들이 등한시되어 쇠퇴하는 듯하였으나 원나라 말기에 고려의 학자 안향에 의해 처음으로 도입된 성리학이 소개
되면서 우리 조선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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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안향, 이 제현, 이 색, 정 몽주, 정 도전 등을 통하여 신진사대부라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였으며 이 황,
이이를 거치면서 인조반정 이후 서인, 노론 송시열에 의하여 성리학은 조선에서 또 다른 옷을 입게 된다.
아무튼 학소 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세상 태평한 시간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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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산재 되어있는 학소대의 유래는 각각의 이름을 달고 수많은 설화들과 이야기들로 점쳐진다. 이곳 또한 학
들이 오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천연기념물 제202호로 지정된 학이라는 새는 본시 갈대가 우거진 곳에
둥지를 튼다. 조선시대 산수화 같은 그림들을 보면 학이 소나무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民畵[민화]와 歲華[세화]에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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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은 발가락 세 개가 앞으로 뻗어 있어 나뭇가지 위에서 앉아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나무 위에 올라가
서 집을 짓고 사는 황새를 학으로 혼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시 학은 천년을 장수하며 신선이 타고 다니는 영물
로 알려졌다 예로부터 신성시하여 이슬을 먹고 산다고 생각했다 천 년 된 학을 靑鶴[청학]이라고 하고 2천 년 된
학을 玄鶴[현학]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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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선시대 선비를 상징했던 백로는 왜가리과 조류이며 희고 깨끗하여 예로부터 선비의 상징으로 여겼다 흰
색 왜가리를 백로라고 부른다. 백로는 네 번째 발가락이 길고 나무 위에 집단으로 둥지를 만든다. 백로는 남쪽에
서 사는 여름 철새이며 봄이 되면 찾아와서 가을이 되면 떠난다. 본시 백로는 ‘학‘과 황새에 비해 훨씬 작다 부리
와 다리가 길고 검은색이다. 그러니 混同[혼동]해선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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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 산성은 둘레가 약18km에 이르렀던 성이다. 성벽은 거의 무너졌으나, 조선시대에 쌓은 남문인 월악루, 동
문인 덕주루, 북문인 북정문의 3개 성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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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周樓[덕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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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학소 대와 붙어있는 德周樓[덕주루]라 현판이 붙어있는 동문이다.
덕주사로 오르는 계곡 주변에는 덕주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송계계곡은 문경에서 하늘재[계립령]을 넘어 남
한강으로 통하는 가장 짧은 길목이어서 오래전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쌓은 덕주 산성은
이 길목을 차단하는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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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험준한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했지만, 돌로 쌓은 성벽만 9.8㎞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큰 성이었다. 그러
나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조선 시대에 세운 남, 동, 북 3개 성문을 복원해 놓았다. 덕주사 가는 길에 수경 대와
학소 대와 동문을 함께 볼 수 있고, 동문이 있는 곡선의 성문 사이로 월악산 바위 능선이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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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대왕의 가호가 있다고 전하는 덕주 산성에는 얽힌 이야기가 많다. 신라 경순왕의 첫째 딸 덕주 공주가 월
악산에 머물면서 지세를 이용하여 쌓은 성이라 하여 덕주 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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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그 성곽이 얼마나 견고하게 쌓여졌는지 알 수가 있다. 기초 넓이가 10m가 넘
는 아주 튼튼함을 자랑한다. 월악산에 있는 덕주사를 오르다가 만나는 덕주 산성 동문은. 월악산의 남쪽에 있는
이 산성인데 돌로 쌓은 통일신라시대의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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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대왕의 가호가 있다고 전하는 덕주 산성에는 얽힌 이야기가 많다. 신라 경순왕의 첫째 딸 덕주 공주가 신라
말에 월악산에 머물면서 지세를 이용하여 쌓은 성이라 하여 덕주 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덕주 산성은 덕주
사를 오르는 길목에서 만날 수가 있다. 덕주골로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성벽이 외성이고 하덕주사에서 마애불을
향해 올라가다가 도중에 보이는 성벽이 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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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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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는 명성왕후가 흥선대원군과의 권력다툼에서 패배할 것을 예상하고 은신처를 마련하려고 이곳에
성문을 추가로 축조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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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덕주 산성은 문경과 충주를 잇는 도로를 차단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덕주 공주는 이곳 덕주사에 마
애불을 조성했다고 해서 항간에는 마애불이 덕주 공주를 닮았다는 설도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 마애불은 보수
중이라 볼수가 없다. 아마도 올 12월 쯤에나 실물을 볼수 있을 거라는 덕주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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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고려 고종 43년인 1256년에 몽골군이 충주를 공략하게된다. 그러자 이 지역 사람들은 급하게 덕주 산성
으로 피난하여 가는데 이때 몽골군이 피난 행렬을 뒤 쫓아 산성에 다다랐을 때 쯤 날씨가 갑자기 사나워져 구름,
바람, 우박이 쏟아져 내리자 몽골군들은 신이 돕는 땅, 월악산의 신령이 노했다 여기고 추격을 포기 하고 급하게
달아났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본시 몽골 기마 민족은 텡그리즘, 즉 샤머니즘을 믿는 민족이라 하늘에 대한 숭배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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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周樓[덕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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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에서는 문화재 복원 사업으로 성곽 2,560m, 초루 3동을 복원하였으며 현재는 안팎으로 5겹의 성벽이 남
아 있는데 그 축조 연대가 각각 달라 성을 축조하는 방법에 관한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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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랑자가 방문한 덕주골 입구에 서 있는 동문인 德周樓[덕주루]는 남문과 비슷하며, 덕주 산성은 내외 5겹의
성벽으로 쌓여있다. 아는 축조연대가 각기 달라 시대에 따른 성을 쌓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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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싼 상성[내성으로 제1곽], 상, 하 덕주사를 감싼 중성[제2곽 동문주변], 그 외곽으로 하성
이 있으며[제3곽]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제4곽]
등 첩첩히 쌓여진 철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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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의 주봉이 영봉은 험준하고 가파르며 높이 150m, 둘레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신령스러운 봉우리라 하여 영봉(靈峰)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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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 산성은 길이 좁고 험준하여 가히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명의 사람이 와도 열 수 없다’ 하여 “一夫當
關 萬夫莫開[일부당관 만부막개]”라 할 정도로 철통같은 요새였다. 주변에 논과 밭이 있어 식량도 충분했으므로
유사시에 몇 천 명 정도의 군대를 데리고 들어와 막으면 몇 년은 넉넉히 버틸 수 있었다. 사실 ‘일부당관 만부막
개‘라는 문구는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이라는 시에서 ‘일부당관만부막개’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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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周樓[덕주루]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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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이기 때문에 명성황후는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하여, 성문을 축조한 것일까? 권력이 무엇인지 참 슬픈
우리 역사의 한 면을 보는 것 같아, 유랑자의 마음 또한 씁쓸하다. 아무튼 德周樓[덕주루]라고 현판이 붙은 동문
은 보기에도 견고한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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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루 위로 올라가면 주변으로 쌓여진 성곽이 얼마나 첩첩이 쌓았는지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단단하게 쌓은 성곽
이 어떤 일로 다 무너져 내렸을까? 역사란 이렇게 모든 것을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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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과 충주에 걸쳐있는 월악산은 삼국시대에 영봉 위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월형산(月
兄山)이라 불렸고, 고려 초기에는 '와락산'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도읍
을 정하려 할 때, 개성의 송악산과 중원의 ‘월형산’이 경쟁하다 개성으로 도읍이 확정되는 바람에 도읍의 꿈이 와
락 무너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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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기[수경대. 학소대 ,동문,]
수경대: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122
학소대: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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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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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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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대에서 바라본 德周樓[덕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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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나들이 홈클릭👍
▶https://tour.jecheon.go.kr/base/main/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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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나들이 홈페이지 클릭 ✌
▶ https://tour.chungbuk.go.kr/www/index.do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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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클릭👌
*https://cafe.daum.net/b2345/9toB/2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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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1:당일 여행 코스= 송계계곡 8경(자연대,망폭대,덕주산성 남문, 망폭대, 와룡대, 팔랑소)
→덕주사(수경대, 학소대, 덕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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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박 2일 여행 코스=의림지→박달재→(숙박)→송계계곡→덕주사→신륵사 → 하늘재
→귀가 → PS~1박2일 산책길=월악산 만수계곡길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1143,~ 걷기
좋은길 7선/거리2.0km/만수교~마의태자교~만수교[소요시간: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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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박 3일 여행 코스
★.해설사가 직접 동행하는 가스트로 투어.[제천미식이와 떠나는 셀프맛여행]★
►체험안내: 가스트로 A, B코스 (각 코스별 식당 5곳)~사전예약 필수
-A코스 : 관계의 미학 -덩실분식 찹쌀떡 -마당갈비 영양밥 -빨간오뎅 -샌드타임
-B코스 : 대장금식당 -상동막국수 -이연순사랑식 -제천 맥주 -빨간오뎅
👉
1일차:삼한의 초록길→의림지→역사박물관 →솔밭공원→비룡담 저수지(생태숲)→ (숙박)
2일차:가스트로 A.B →중앙시장→달빛정원 → 교동 민화마을 →관란정 → (숙박)
3일차:한방엑스포공원 →탁사정 →배론성지 →박달재 →목굴암(박달과 금봉이사당)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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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찾아 가는길
▷*버스=서울-제천,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30분 간격(06:30~21:00) 운행, 약 2시간 소요.
▷*열차[Itx.]무궁화=청량이-제천역 청량리 역에서 2시간 견격, [KTX 는 1시간 간격 운행]
약 1시간 53분 소요.[KTX는 1시간 소요]
►철도고객센터는 1544-7788,1588-7788이다.
▷*자가정보= 경부(중부)고속도로→영동(중부내륙)고속도로→평택제천고속도로→중
앙고속도로 → 남(북)제천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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