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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Re:고구려와 백제-신라의 전쟁
SHaw 추천 0 조회 389 07.03.01 19:38 댓글 2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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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3.02 01:29

    첫댓글 개인적으로는 대륙에서의 백제와 북위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병수십만은 과장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며 많아야 수만이겠지요. 또한 수만을 태울 수 있는 선박도 확보하고 있었으 가능성도 큽니다. 그러나 만약 한반도의 백제를 공격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굳이 바다건너 백제를 공격해야 했을까요? 만약 바다건너 백제를 공격했다면 원칙적으로 연안항로를 따라 이동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순순히 길을 내주었을까요? 혹은 2차 고당전쟁과 같이 직접 서해를 가로질러 공격했을까요? 바다를 가로질러 병력을 태워보내려면 선박의 규모가 크고 튼튼해야 합니다.

  • 07.03.02 01:32

    수나라 이후야 많은 기술자를 데려와 기술이 향상되었지만...-황룡이란 배는 800명까지도 태웠다는군요-그 이전에는 그런 능력이 북위에게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꼭 산동지역에 백제가 영토를 확보하고 있어야 대륙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남조와 백제의 관계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 07.03.02 01:34

    예전에 어떤 글에는 이런 반론도 있었죠. 중국측 기록은 자신이 패배한 것을 남기지 아니하는 사례가 많다. 북위는 북방민족임에 반해 남조는 본래 중원세력으로서 남조가 북조에 비해 기록이 소흘할 이유가 없다... 등등

  • 작성자 07.03.02 01:59

    엄연히 백제를 공격하여 그 경계에 들어갔다, 라는 표현이 존재하니, 남제서를 글자 그대로 읽는다면 백제가 먼저 공격한 전쟁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습니다. 臺船이라는 표현도 이 전쟁에서 선박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정 북위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면, 그 다음 순서는 위로가 고구려의 오기라고 보는 것이지 산동에서 백제와 북위가 전쟁을 했다고 보는 것은 맨 마지막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07.03.02 02:02

    중국측이 자신의 패배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고구려도 남기지 않을 수 있겠지요. (실제로 빠진 것들이 있고요) 남조의 다른 사관들이 백제사를 서술할 때 실수나 다른 이유로 이를 누락시키는 경우가 있다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남아있던 백제측 사료에도 이런 것들이 빠져 있었을 수 있겠지요. (실제로 빠져있었으리라는 점이 제 글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지적되어 있습니다...)

  • 07.03.02 04:02

    SHaw 님 바로 밑에 김용만 선생님께서 백제의 북위 원정에 대한 건강실록 사료를 언급하셨습니다. 간단한 문구이지만 선박, 돈대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할 사료라고 생각됩니다.

  • 작성자 07.03.02 11:13

    저는 건강실록은 북위가 백제를 공격해서 깨뜨렸다는 내용으로 해석했는데... 한문 쓰임새상 주어와 목적어를 바꿀수도 있는건가요?

  • 07.03.02 11:31

    백제에 대한 서술이 있은 후에 魏虜征之大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위노가 백제를 정벌하다 격파당했다라고 한다면 魏虜之征大破라고 해야겠죠.

  • 작성자 07.03.02 11:41

    영명 2년 다음에 바로 위로가 나오고 있으니 위로가 주어이겠지요. 之가 백제 아니겠습니까. "위로가 백제를 정벌하여 대파했다" 는 뜻으로 해석함이 자연스럽지 않은지?

  • 07.03.02 11:48

    문장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계속 백제에 대한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 주어는 위로가 아니라 백제입니다.

  • 작성자 07.03.02 11:51

    아니죠. 魏虜征之인데 어떻게 백제가 주어이겠습니까. 征魏虜大破 라고 나와야 백제가 주어임이 드러나는 거지요. 외국에 대한 열전에는 주로 나라이름 주어가 생략되어 있지만, 이렇게 문장 앞에 다른 주어가 엄연히 나오는 경우에는 그렇게 말 할 수 없습니다.

  • 작성자 07.03.02 11:58

    유원재 교수는 위로를 주어로 보았는데, 백제를 주어로 본 연구는 제가 모르겠습니다. 아시면 알려주십시오.

  • 07.03.02 17:26

    그리고,,저번에 SHaw 님이 말씀하시기를 북위가 백제군의 침공이나 반대로 원정에 대한 기록이 남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만약에 북위군이 백제군을 남제군으로 착각햇거나 백제군이 사전 합의 하에 남제군으로 위장해서 남제군의 전쟁에 함께 동원된 것이라면 북조 기록에 백제군이 남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작성자 07.03.03 02:05

    한단인// 흥미로운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백제가 단발적인 전투에 동원되었다면 몰라도(그럴 가능성이 충분함은 저도 인정하였습니다) 뭔가 거점을 두고 주둔까지 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으니, 아무래도 북위가 이런 일을 몰랐다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겠습니까? 개별 전쟁의 담당자들은 몰랐다고 해도 말입니다.

  • 작성자 07.03.02 18:52

    저는 백제가 북위를 칠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남조와 연계되었다면 북위의 수군 기지에, 후대 발해의 장문휴가 가했던 것 같이 치고 빠지는 공격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몇년씩 주둔하여 북위의 본격적인 침략을 격퇴하기까지 하는건 힘들지 않겠는가... 그런 입장입니다. 사실 남조가 엄청난 지원을 해서 그 거점을 유지시켰다면, 남북조사의 다른 부분에 안 나올 까닭도 없고요.

  • 07.03.02 23:48

    다른 분들이 구체적인 상황을 재연하지 않으시니 저도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남제와 백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백제를 불러들인 것입니다.그런데 이 부분에서 예전에 김용만선생님 글을 보며 생각한 것인데, 고구려가 평주를 지배한 것이 아님에도 남조는 고구려의 평주에의 욕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주의 지배자로 공식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연관지어 생각한다면 산동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었더라도 남제서에 북위가 백제를 정벌했고, 그곳이 백제의 경계였다고 기록한 것이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작성자 07.03.03 02:05

    (너무 했던 말 또하는 것 같습니다만)저는 역시 백제와 남제가 연합한 공격이 있었다면 수군 기지에 대한 "우아한" 요격이었을 것 같습니다. 산동의 몇개소를 점거하여 수년간 유지하기까지 했다면(그것도 외국군인 백제군도 참전해서) 남북조 대결에서 실로 중대한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다른 기록에 보이지 않는것은 "좀 빼먹을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 도를 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 작성자 07.03.03 01:19

    동성왕의 책봉직에도 이렇다할 특이점이 없고 말씀입니다.

  • 작성자 07.03.03 01:21

    알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은 문제인데 애초에 얘기를 괜히 꺼냈나 하는 후회도 솔솔 드는군요.

  • 작성자 07.03.03 01:53

    소설 쓰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 저도 마음놓고 한번 써 보겠습니다. 1. 발단... 북위는 남조와 연결되어 세계정복(...)계획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백제를 쳐부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바다건너 있는 백제를 공격하러 가려니 좀 어렵다. 2... 제일 좋은것은 고구려와 동맹하여 백제를 무찌르는 것이다. 그러나 마침 고구려는 백제-신라 동맹군과 맞서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고구려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어서, 대군을 동원하여 백제를 치기도 어렵다. 3. 그래서 제안한다. 북위는 고구려의 연안을 따라 수군을 보내어 백제에 상륙하고, 고구려는 한산쪽에서 공격하여 내려오는 것이다.

  • 작성자 07.03.03 01:56

    4. 이 제안을 받은 고구려는 '무슨 헛소리야'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북위의 제안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도 곤란하다. 제안은 받아들이되, 북위 수군이 갑자기 돌변하여 고구려에 상륙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병력은 백제쪽으로 진군하지 않고 오히려 비사성과 평양성에 배치된다. 5.... 북위군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고구려 연안을 통과하여 백제에 상륙한다. 그리고 고구려가 한산을 공략할 때 같이 공격하기 위해 진채를 쌓고 대기한다. 아뿔사, 그러나 고구려 병력은 북위가 다른 마음이 없다는걸 확인한 다음, 평양에서 이제 출발했다.

  • 작성자 07.03.03 01:59

    6... 고구려군이 미처 내려오기도 전에 동성왕이 용맹한 장수들을 보내어 북위군에 공격을 가한다. 그들은 숫적으로 우세한 편이었지만 익숙하지도 않은 바닷길에 지친 뒤라 손도 못쓰고 발린다. 7... 동성왕이 전면적인 승리를 거두고, 고구려군은 그 뒤에야 어슬렁 어슬렁 국경 인근에 나타났다가 도망친 북위 병사들로부터 패배 사실을 듣게 되고, 돌아가 버린다. 8... 이 훌륭한 승리를 거두고 동성왕은 남제에 사건 정황을 통보한다. 남제 조정에서는 생각한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위나라 놈들 거 참 고소하다. 낄낄"

  • 07.03.03 02:34

    오...이것도 괜찮은 시나리오네요. 진짜로...소설로 써도 적당할 듯...^^ 잘 봤습니다.

  • 작성자 07.03.03 02:39

    (으윽.. 웃자고 한 얘기니 저게 제 견해라고는 다들 믿지 말아주세요)

  • 07.03.03 04:25

    저번에도 말씀드린거 같은데,,고구려가 북위의 백제 침공을 과연 용납할까라는 의문이 발생합니다. 북위와 고구려가 관계상에서 동맹적인 관계라곤 해도 그것은 서로의 영역에 대한 개입,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암묵하에 발생한 관계입니다. 기본적으로 양국은 잠재적인 적성국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자신의 천하에 속한 백제를 북위가 함부로 공격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 07.03.03 04:27

    또한 저 번에 위노지정에 대한 해석이 위노가 백제를 정벌했다라는 표현이 된다라고 하더라도 저번에 했던 토론글에서 북위가 백제와 어떤 이해관계를 가졌어야만 북위의 백제원정이 명분상 가능하다라는 제 말에 의거하면 이 전쟁 이전에 또 한번 백제가 북위의 이해관계에 타격을 주는 행위를 했어야 북위의 전쟁이 발생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 작성자 07.03.03 11:51

    백제가 어떤 뚜렷한 적대 행동을 했는지는 전혀 기록이 없으니... 알 수 없지만 남조를 공격하기 위한 대사업은 수군의 정비 없이는 힘든 것이고, 백제의 해운력(백제가 해군국이었는지는 역시 확실하지 않습니다만..)이 여기에 모종의 차질을 가져오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장수왕의 외교술과 당시 여러 곳에서 어려움에 처해있던 고구려의 군사적 상황으로 보아, 북위가 동맹을 제안했다면 "천하관" 같은 추상적인 이유로 꼭 거부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모든 글을 똑같이 끝내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마단, 역시 여기까지 가면 상상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군요.

  • 07.03.04 08:11

    천하관 문제가 아니더라도 북위가 백제를 치기 위해서 해로로 오던지 육로로 오던지 상관없이 고구려의 영역을 통과하는데 동의를 구해야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북위군이 백제 원정을 위해서 영내 진입을 하게 되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경로에 대한 정보 입수가 가능하고 향후에 군사적으로 실제 이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이것과 직접 연관은 없지만 고구려 장수왕이 북위와 혼인동맹을 맺으려다가 북연과 북위의 고사를 예로 북위가 혼인 행차길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신하들의 간언에 혼인동맹을 철회한 기사도 있는데 하물며 병력 통과라뇨. 고구려가 용납할리 없습니다.

  • 작성자 07.03.04 13:03

    연안 항로는 이미 북위인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군대의 통과를 허용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꼭 정보전 차원의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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