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셔스(Mauritius, 모리셔스 공화국, Republic of Mauritius)
마스카린 제도 중앙에 있는 독립된 섬나라.
1598년 원주민 없이 네덜란드 식민지로 있다가 1715년부터 프랑스 식민지가 되며 인도 이민자가 생겨났고, 1810년 영국이 점령하여 1814년부터 영국 식민지로 지내다 1968년 3월 독립하였다.
산호초로 둘러싸인 화산섬인 본도(本島)와 로드리게스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행정구역은 9개 구(districts)와 3개 속령(dependencies)인 아갈레가제도(Agalega Islands), 카르가도스 카라조스 숄스 제도(Cargados Carajos Shoals), 로드리게스섬(Rodrigues)이 있다. 남위 20°18', 동경 57°36'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는 포트루이스이다. 남북길이 61km, 동서너비 47km이며, 553km 동쪽에 로드리게스 섬, 402km 북동쪽에 카르가도스카라조스 제도, 933km 북쪽에 아갈레가 제도가 있다. 면적은 2,040㎢이다. 화폐는 모리셔스 루피이다.
자연환경
모리셔스는 굴 모양의 화산섬으로 주변이 거의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다. 북부는 평원이며 중부로 가면 해발 270∼730m의 고원이 나타난다. 이 고원은 고대 화산의 가장자리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최고봉은 남서쪽에 있는 프티트리비에르누아르('작고 검은 강 봉우리'라는 뜻. 820m) 산이다.
2개의 대표적인 강, 즉 그랜드리버사우스이스트 강(약 40km)과 그랜드리버노스웨스트 강은 동부와 중서부에서 흘러나온 물을 인도양으로 흘려보내며, 수력발전의 주요동력원이기도 하다. 마르오바코아는 대표적 저수지의 하나로 중요한 급수원 역할을 한다. 고원의 그랜드 분지와 몇몇 인공호수는 관개용으로 쓰인다.
기후는 연중 거의 일정한 기온을 유지하는 아열대 해양성 기후로 평균기온은 해안지대가 23℃, 고원지대가 19℃이다. 덥고(12∼4월) 추운(6∼9월) 두 계절로 나뉘며, 연간강우량은 서해안이 900㎜, 남동해안이 1,524㎜, 중부 고원이 약 5,080㎜이다. 지금은 원시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600종에 이르는 이 지역 원산의 식물이 자라며, 삼바(꼬리가 길고 암갈색 털을 가진 사슴)·텐렉(가시로 뒤덮인 식충동물)·몽구스 등의 동물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새와 곤충이 살고 있다. 국토의 1/2 이상이 경작지이며, 주요작물은 사탕수수로 설탕 수출의 약 90%를 차지한다.
역사
모리셔스가 아랍 선원들에게 알려진 것은 10세기 또는 그 이전으로 보인다. 16세기초에 포르투갈인들이 찾아왔지만 정착하지는 않았으며, 그뒤 1598∼1710년에 네덜란드인이 점령하여 나소의 모리스 총독 이름을 따서 모리셔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1638∼58년, 1664∼1710년에 정착을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떠났으며 해적이 섬을 차지했다.
1721년에는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모리셔스를 점령하여 프랑스 섬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그후 40년 동안 서서히 정착이 이루어졌다. 이 섬은 1767년에 프랑스 해군부가 행정을 맡게 될 때까지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다스렸다. 이 식민지는 설탕산업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중이던 19세기 초 영국과 인도 상선들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받았다. 1810년 영국이 이 섬을 점령하고 1814년에 평화를 되찾자 파리 조약으로 정식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관습·법규·언어는 프랑스식으로 남아 있지만 이름은 네덜란드가 붙였던 모리셔스로 바뀌었으며, 1835년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인도 노동자들이 노예를 대신했다. 모리셔스는 1850년대에 번영을 누렸으나 사탕무 생산경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한편 1866∼68년에는 말라리아가 돌아 포트루이스에 선박들이 접근하지 못했으며, 포트루이스는 1869년 수에즈 운하 건설 후 더욱 쇠퇴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중에 설탕값이 올라 경제가 활성화되었으나 1930년대 공황이 닥치면서 상황이 급변하여 1937년에는 노동분규가 절정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경제를 호전시키지 못해 1945년 이후 경제개혁을 시도했으며, 정치와 행정제도를 개편하여 마침내 모리셔스는 1968년 영연방 내에서 독립을 맞았다. 1979년말에 불어닥친 사이클론 '클로데트'와 1980년대초 세계 설탕값 폭락 등에 자극을 받아 정부는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다양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농업다양화 정책을 펼쳤다.
국민
모리셔스 인구는 133만 9827명(2015년 현재)이며, 세계 최대의 인구조밀지역에 속한다. 2020년 기준 622명/㎢의 인구밀도를 기록하고 있다. 1960년대 말라리아가 근절된 이후 인구과잉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으며, 1970년대말에는 인구 1,000명당 자연출생률은 약 27명, 자연사망률은 약 7명이었고 따라서 인구의 자연증가율은 1,000명당 거의 20명이나 되었다.
1972∼82년에 이민으로 연간 인구증가율이 1.4%로 줄었으며, 이후로도 꾸준하게 1%대 미만을 유지해왔다. 인구수는 꾸준하게 증가하여 1980년 96만 명에서 2000년 119만 명, 2020년 기준 126만 9,668명에 이르렀다. 15세 이하가 전체인구의 약 19%를 차지하고 있으며, 약 40%의 인구가 도시에 거주한다.
인구의 3/5이 인도인이며, 2/5가 크리올인이거나 프랑스계 후손이고 그밖에 중국계 소수민족들이 가장 작은 지역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주 언어는 모리스얀어, 영어, 프랑스어이다. 영어가 유일한 공용어이나, 여러 인종집단 사이에 다양한 언어가 쓰이고 있다. 크리올어는 모리셔스의 국제혼성어가 되었다. 종교는 인구의 절반이 힌두교도이며 약 1/3이 그리스도교도, 나머지가 이슬람교도이다.
경제
모리셔스는 농업에 기반을 둔 발전도상의 혼합경제체제를 취하고 있다. 정부가 농업다양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여전히 설탕생산에 의존하고 있는데, 세계 설탕가격의 심한 변동과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강한 열대성저기압(사이클론) 때문에 경제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연간 40%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은 아프리카에서도 최고이며, 실업률이 20%에 가깝다. 1980년 26억 53,48만 달러에 불과했던 국내총생산(GDP)는 2000년 100억 367만 달러를 넘어섰다. 2017년 기준 GDP는 132억 6,643달러이다.
농업은 국민총생산(GNP)의 약 1/5을 차지하며 전체 노동인구의 1/3이 이에 종사한다. 수출액의 3/4을 차지하는 설탕생산에 전체 경작지의 90% 이상이 투입되며, 식량(특히 쌀)의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다. 한편 차(茶) 생산이 크게 확대되고 있고, 감자·토마토·코코넛·바나나 등도 재배되고 있다. 일본이나 러시아의 기술 원조로 어업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공업은 GNP 및 노동력의 약 1/4을 차지한다. 건축경기가 불황을 겪고 있는 반면 제조업은 꾸준한 성장을 보이는데, 이것은 모리셔스 수출가공단지에서 수출시장을 겨냥하여 수입원자재와 반제품의 노동집약적인 가공·처리에 주력하여 외국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주산품으로 직물·전자기기·플라스틱·가죽제품·모조보석 등이 있다. 연간 전력생산량은 1980년대초 약 4억 3,800만㎾h에 달했는데 이는 주로 수입석유에 의해 발전되었다. 정부는 석유수입에 드는 점증하는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수력발전 및 설탕생산 부산물을 재활용하는 연료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서비스업은 GNP의 약 1/5을 차지하며 인구의 2/5가 이에 종사한다. 1970년에 관광업이 크게 성장하여 모리셔스 제2의 외화수입원이 되었다.
주로 석유제품·기계류·식품류를 수입하고 설탕·직물·차·어류 등을 수출하며, 대체로 수입이 수출을 초과한다. 1980년대초 모리셔스는 외국원조에 크게 의존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엄격한 긴축재정안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출품의 2/3 이상이 보호무역조치를 취하고 있는 유럽공동체(EC) 시장에 들어가며, 가장 중요한 무역상대국은 영국·프랑스·일본이다.
정치와 사회
모리셔스는 독립국으로 1968년에 채택된 헌법에 따라 영국 왕이 국가 원수의 자격을 가진다. 입법권은 5년 임기로 구성되는 입법의회에 있으며, 총리가 이끄는 각료회의가 행정권을 지닌다. 대법원이 최고 사법기관이다. 사회복지제도 실시로 병원과 진료소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사회복지회관이 없는 지역에는 시민문화회관이 건립되어 있다. 모리셔스는 의원 내각제 국가이며, 남아프리카 개발 공동체, 동남아프리카 공동시장, 아프리카 연합, 프랑코포니, 영국연방의 회원국이다. 외교정책은 비동맹주의를 취하고 있으나, 아프리카모리셔스공동기구(OCAM)에 가입해 있고 유럽연합(EU)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밖에도 노후연금·가족수당과 기타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해 놓고 있다. 정부는 도시지역의 일반적인 인구과밀에 대응하여 도시 주택건설 계획을 맡은 지방자치체에 자금을 대출해준다. 초등학령 어린이의 거의 90%가 초등교육을 받고 있으며 중등교육 수준은 매우 높다. 모리셔스대학교에는 농학·공학·교육학·행정학 등의 학부가 있다. 학교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며 인도 방언은 선택과목이다. 성인교육 과정도 여러 문화회관에 마련되어 있다.
모리셔스방송공사는 외국의 라디오·TV 프로그램을 내보낼 뿐 아니라 자체 제작물도 방송하는데, 교육방송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9개의 일간신문과 20개의 주간지가 영어와 프랑스어를 비롯해 다른 여러 가지 언어로 발행된다.
문화
자영 단체들이 미술·문예·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유능한 시인·소설가들이 배출되는 한편 구상화와 추상화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립문화기관으로 '모리셔스 협회'와 '모리셔스 문서국'이 있으며, 연극이 널리 보급되어 지방 아마추어 연극단체들이 상당히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준다. 5개의 시립도서관이 있고 학회도서관도 많이 있다.
한국과의 관계
외교
모리셔스와 한국은 1971.7.3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모리셔스는 대외적으로 비동맹중립노선 및 남북한 간 등거리 외교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친한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 남북한 UN동시가입 동의 결의안에도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했고, 한국의 국제기구 이사국 진출에도 호의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1996년 5월 김영수 대통령 특사가 모리셔스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모리셔스에서는 2002년 11월 가얀 외교부 장관, 2012년 10월 시타람 기업부 장관, 2013년 12월 본 말리 수산부 장관이 내한한 바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18년 기준 모리셔스의 대한국 수출액은 598만 달러, 수입액은 5,276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폐건전지, 직물제의류, 어류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 건설중장비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주요 협정으로는 문화협정(1987)과 투자보장협정(2007)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모리셔스에서는 태권도 진흥을 위해 한국에 태권도 사범 파견을 지속적으로 제안해왔고, 2016년에는 이재석 태권도 사범이 모리셔스에 진출해 모리셔스인들의 태권도 지도 서비스를 수행하게 되었다. 2017년 기준 모리셔스에는 41명의 재외동포가 있고, 한국에는 2018년 12월 기준 19명의 모리셔스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