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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곤명. 여강 여행기
오랫동안 벼르고 미뤄왔던 중국 곤명을 23회 거북회 회원 16명<어부인포함>이 주)노블리아 라이프 부금을 활용하여 3박5일 일정으로 저녁 8시4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였다.
5시간 정도 지나니 창밖 아래쪽에 불빛이 보인다. 능숙하고 부드러운 착륙이다. 트랩을 내리는데 좀 썰렁하다.
입국장에서 단체 비자는 서류기재 순서대로 서야한다.
입국을 마치고 짐을 찾아 나오니 노블리아여행사 피켓을 든 가이드가
꽃다발을 각자에게 건네며 맞이한다.
20분 정도 이동하여 호텔에 도착. 지진으로 인해 당시 예약됐던 호텔이 아니고 준5성급의 다른 호텔이란다.
방은 보통 수준. 욕조는 없다.
씻고 나니 2시가 넘었다. 시차는 한 시간.
좀 춥다. 침대바닥이 이상하게 차다.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무렵 잠깐 잠들었다가 8시에 일어났다.
첫날.
날씨가 좋다.
아침식사는 뷔페식. 날아가는(?) 쌀밥에 계란 프라이, 구운 소시지, 토스트 한 조각, 주스 등을 골라서 대략 먹었다. 그런대로 다행이다. 해외여행은 첫날음식이 중요하다. 전혀 입에 맞지 않으면 기간 내내 고생하기 때문이다.
늦은 식사를 마치고 금전을 향해 버스를 달린다.
중국은 대략 14억 인구(공식적으로 13억). 56개 민족. 그중 한족이 92%. 열두 번째가 조선족이란다. 23개 성. 4개 직할시. 특별행정구역 2개......어쩌고저쩌고....가이드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
운남성은 닭 모양의 중국 지도상 서남쪽 내륙으로 닭의 궁둥이 위치. 해발 0미터부터 6000미터 사이에 있다고. 4800만 인구. 우리나라면적의 4배 크기.
곤명시는 해발 평균 1800미터. 영상 2도에서 38도 사이. 봄의 도시. 꽃의 도시란다.
지나치는 길가의 광고 입간판이 대형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변에 설치된 크기의 입간판이 시내 길가에 즐비하다.
금전은
청나라 초기 무렵 유명한 장군 오삼계가 지어 살았다는 궁전이다.
높이와 폭이 각각 7미터 가량으로 총 250톤의 무게. 구리로 지었다. 노랗게 번쩍여서 금전이라 했다는데 지금은 시커멓다. 오삼계는 무예가 출중하고 키가 아주 크고 힘이 센 명장이었는데 황제와의 알력으로 내시에 의해 독살 당했다고. 그가 몹시 총애했던 애첩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만화로 그려져 있는데 마지막 장에 개에 물려서 옷을 찢기는 장면이 이채롭다. 그가 사용했다는 엄청난 크기의 창과 칼이 보존되어 있다. 사후에 도교신도들이 도교사원으로 만들었다고. 뜰에는 묘한 나무가 한 그루. 건드리면 간지럼을 타는 나무다. 정말 건드릴 때마다 바람도 없는데 나무가 흔들린다. 참 신기했다.
점심은 원통 현지식. 음식점 규모가 대단하다. 우리나라 중국음식의 코스요리 같이 10여 가지가 차례차례로 나온다. 좀 비릿하지만 입맛에 맞는 것도 있다. 괜찮다. 이빨 빠진 그릇은 별로 신경 쓰지 말란다. 나이든 그릇이기 때문에 거기에 담아 먹으면 오래 산다고.
또 중국 사람들이 못해보고 죽는 것이 세 가지란다. 1)자기나라 구석구석 다 못 가보고 2)자기나라 음식 가지가지 다 못 먹어보고 3)자기나라 글자 한 자 한 자 다 못 써본것이란다.
점심을 마치고 용문석굴을 향한다.
거슬러 올라오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말소리는 와글와글 표정은 즐거운 데 동작은 느긋하다. 옷차림이 참으로 재미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거의 꼬질꼬질한 구식 양복차림이고 아주 어린 꼬마아이들도 있으며 젊은이들의 복장만 현대판이고 중 장년층도 트레이닝복이나 낡은 점퍼, 양복윗도리에 허술한 운동화 등등 중구난방.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들은 입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단다. 그저 걸치기만하면 되며 모양을 내지 않는다는 것. 마음 느긋하고 자유롭게 단지 자기만 행복하면 된다는 것. 음식도 여러 가지를 실컷 먹고 남기는 게 대접하는 측이나 초대받은 측 양쪽의 예의라고.
겉으로 드러난 석굴의 규모는 그리 대단치 않다. 드디어 용문에 도달한다.
문설주에 달랑 거꾸로 붙은 여의주를 누구나 다 한번씩 만지며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므로 반짝반짝 윤이 난다. 나도 만진다.
길옆에 호랑이 상의 입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뺀다. 호랑이의 기를 가져오면 재물복이 붙는단다. 물을 가득 채운 큰 항아리 속에 돌 거북이 보인다. 동전을 던지며 운을 시험하기도 한다.
대단한 절벽에 대단한 실력으로 돌을 깎아 대단한 길과 굴을 만들었고 내려다보이는 곤명호수 또한 대단한 절경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20:25분 여강행 비행기를 탔다.
생각과는 달리 정확한 운항이다.<소요시간 50분>
여강공항에 도착하니 역시 현지 가이드가 나와 안내를 한다.
발마사지를 받으러 간다. 16명이 같은 방에 들어가 처녀 아이가 13명, 총각아이 3명이 마사지를 한다. 영어는 전혀 모른다. 간간이 한국어를 쓴다. 아파? 시원해? 살살? 반말을 찍찍 던지며 상당히 열심히 한다. 옆에서 몇사람은 아프단다. 아파요? 시원해요? 살살해요? 라는 경어를 가르쳐준다. 저희들끼리 웃어가며 중국어로 중얼거린다. 기분 나쁘다. 우리도 우리끼리 한국어로 중얼거린다.
맛사지를 마치고 숙소로 가서 일행이 한방에 모여 준비한 양주 서너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방에 들어오니 피곤함과 함께 뚝 떨어져 잤다.
곤한 잠을 자고나니 머리가 한결 가볍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옥룡설산을 향한다.
*여강 3대유산
자연유산 - 삼강병부, 차마고도
문화유산 - 여강고성
기록유산 - 상형문자
옥룡설산(玉龍雪山)
동양의 알프스라 불리는 이곳은 샹그릴라에서 여강까지 뻗어있는 해발 5596m의 설산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인 이곳은 아시아판과 인도양판이 접하고 있는 곳으로 현재도 지각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해발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1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의 눈이 한마리 용이 누워있는 모습같다 하여 "옥룡설산"이란다.
기기묘묘한 자태가 수많은 등반대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지만 쉽게 정복을 허락하지 않는 처녀봉이다. 지형을 이루고 있는 암석이 비교적 부서지기 쉬운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옥룡설산 기슭에서 중턱 쪽으로 리프트를 탔다.
리프트를 타고 오를 때 갑자기 높아진 고도 때문에 두통 등의 고산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리 높은 고도는 아니므로 시간이 지나면 곧 적응될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산은 산소가 부족하니 휴대용 산소통을 챙겨가면 도움이 된다.
리프트에서 내려 30분 정도 걸으면 해발 3,208m 지점에 삼나무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야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산 속 오아시스로 잘 알려진 '운삼평'이다. 운삼평은 푸른 하늘과 만년설, 원시림이 어우러져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풍취를 보여준다. 이곳에서 전통 복장을 한 나시족과 이족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대여한 전통의상을 입고 모두들 사진 촬영에 한창이다.
운삼평 아래로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백수하를 볼 수 있다.
옥색의 백수하 표면은 하얀 설산이 투영되어 신비로운모습이다.
또 고원산림 풍모도 볼 수 있다. 희귀한 식물이 많아 '현대의 얼음하천 박물관' '식물의 왕국'이란다.
점심을 거나하게 먹고
옥수채, 흑룡담, 여강고성을 찾았다.
여강 고성(麗江古城)世界文化遺産 1997年 指定
麗江古城은 따옌쩐(大硏鎭)이라고도 불리우며 宋나라때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이미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체 면적은 7,43 ㎢ 로 인구는 대략 30만명이며 이 가운데 소수민족인 나시족(納西族)이 전체인구의 58%를 차지하고 있다.
여강 고성에는 별다른 외부의 성곽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동서남북 어디로나 통해있는 작은 길을 통해 고성을 둘러볼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풍차와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알리는 붉은색 기념건축물이 있는 곳에서부터 여강고성의 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여강고성의 1997 년12월 4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고성의 북쪽에 위치한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 흑룡담(黑龍潭)이란 작은 연못을 지나 고성의 수로를 따라 흐르면서 이름 모를 꽃들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고 맑은 물에는 고기들이 한가로이 움직이는 풍경들은 주위의 낡은 목조 건축물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여강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된장국, 김치찌개를 맛보고 여강 공항으로 향한다.
23시에 곤명공항에 도착하여 이화국제호텔에 오니 자정이 다되었다.
이호텔이 첫날 지진으로 못잔 호텔이다.
시설은 우리나라 4성급 호텔 수준이다.
아침 6시 기상을 하여 아침을 마치고 7시 30분 구향동굴을 향해 출발하였다.
구향동굴까지 약 2시간 정도.
사 오십 분후 고속도로에서 벗어난 중간 길 이십여 분간의 공사구간은 차가 몹시 흔들거린다. 개천을 오른 쪽에 끼고 들면서 길이 좀 괜찮다. 시골이든 도시든 도랑이나 하천, 개천은 하나같이 물이 더러워 보인다. 마을을 관통하기도 한다. 논밭들은 거의 계단식이다. 이따금 동네근처의 좀 넓은 밭도 다 조그맣게 구불구불 나누어져있다. 신식농사가 아닌 구식 농사다. 트랙터 같은 장비는 안 보이고 물지게 같은 걸로 나르며 대부분 곡괭이로 밭을 다듬고 있다. 가끔 지나치는 차들 중에는 개조한 소형삼륜차들이 많다. 반시간쯤 후에 동굴입구에 도착.
장식된 꽃 화단과 무척 웅장한 대문을 들어서니 아래쪽으로 까마득히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양쪽 돌벽과 위로 보이는 깎아지른 절벽 숲을 지나니 풍경이 기가 막히다.
6억 년 전에 백운암으로 이루어진 중국 최대의 종유석 동굴로 백여 개의 동굴이 있다. 그 규모가 엄청나다. 종유석모양이나 폭포 같은 굴속의 내용물들은 우리나라의 환선굴이나 대금굴 비슷한데 그 크기나 넓이 량 등이 수백 수천 배에 달하는 것 같다. 돌이나 대리석으로 잘 다듬어진 길이 소형 리어카가 지나다닐 만큼 시원시원하다. 우리나라는 머리를 숙이고 몸을 줄여 지나다니는 좁은 공간인데 이 곳은 천정까지의 높이와 좌우 폭들이 수십 미터에 이른다. 폭포도 크다. 굴속이 아닌 바깥 같은 크기. 쌍폭이다. 넓이가 오천 평이나 된다는 아주 대단한 광장.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너무 심할지 모르지만 개미와 킹콩을 비교한다고나 할까?
종유석의 크기 역시 웅장하고 크다. 꽤 커다란 무대가 만들어져서 원주민이 공연을 하고 관람객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다. 굴의 규모가 워낙 어마어마하니 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나보다. 흡연을 해도 말리지 않는다. 사진도 번쩍번쩍 자유롭게 찍는다.
신기한 사실은 수많은 쓰레기통들이 여기저기 놓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 깊은 동굴 속에 일정한 거리마다 쓰레기통을 놓아두다니. 담겨진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인력을 상상해 본다.
내려간 만큼 다시 삼백 수십여 개의 계단을 오른다, 여기에 가마꾼들이 있다. 우리 돈 만원이란다.
가운데 사람을 앉히고 앞뒤에서 가마꾼이 어깨에 끈을 걸어 들고 올라가는 것이다. 굴속에서 가마와 그냥 걷는 사람이 함께 지나칠 수 있는 길이니 얼마나 넓은가?
몇 개의 가마가 우리를 추월해 올라간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중국 사람들은 힘도 좋은가 보다.
굴 밖으로 나온다.
다시 리프트를 타고 산을 넘어 처음의 입구로 오는 데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또 멋지다. 왼쪽 아래로 까마득히 처음 들어간 구향동굴의 입구가 보인다.
식당으로 한 이십분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서서히 돌 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좌우로 나타나는 돌 숲의 모습이 경이롭다. 점심은 오리구이..
중국 고량주에다 점심을 마치고 석림에 들어선다.
2억 8천 만 년 전에는 이곳이 바다였는데 지각변동으로 인해 바다 속 암반들이 겉으로 드러난 것. 소석림에서는 전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나무숲이 아니라 바위로 이루어진 숲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광대하게 펼쳐진 바위 숲의 장관에 기가 막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석림은 걸어 들어간다. 소석림에 비해 바위가 아주 크고 오밀조밀 붙어있어서 들고나는 길이 복잡하여 미로다. 바위산이다. 자칫하면 길을 잃는다고. 팔각정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이 참 경이롭다. 죄 많은 사람은 밑으로 지나가지 못한다는 허물어져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거대한 바위 덩어리. 두들기면 북소리 나는 바위. 차렷 자세로 옆으로 잘 통과해야하는 바위골목. 나는 여기서 모가지가 두꺼워 그만 걸리고 말았다. 바위침대와 각종 동물모양의 돌 등등. 좌우지간 사방이 다 돌 돌 돌이다.
정말 대단하다.
돌아오는길에 라텍스매장에 들렸다.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곳인데 이곳 말고도 중국에 4군데나 있단다.
옆에 짝퉁집에 들리다. 비교적 물건이 제법 깔끔해 보이지만, 옷 지갑 벨트 가방 시계 안경 골프채 등등 그러나 자세히 뒤집어보면 바느질 마무리와 세심한 뒤처리가 역시 좀 다르다. 값은 싸다.
이어 진주판ㅁ장에 들려 이것 저것 구경하다 모두들 몇가지씩 구매하였다.
저녁식사는 버섯 샤브샤브.. 여기에다 송이버섯 2kg을 주문하여 곁들여 먹으니 술맛이 일품이다.
식사를 마치고 곤명공하을 향한다.
현재 곤명 시내는 아주 부산하다. 여기저기 뜯어 고치고 파헤치고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도 금방 발전하리라 기대된다.
곤명거리의 가로등은 원기둥 형태의 꽃등으로 특이하다..
아쉬움을 남기고 가이드와 이별한다. 단체비자 출국수속은 간단했다.
중국은 모든 것이 다 크고 많고 넓다. 그리고 느릿느릿 완만하면서도 적당히 흘러간다. 국민 각자 나름대로 자기처지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안다. 밑바닥 깊숙이 음흉하고도 엄청난 저력을 꾹꾹 눌러 감추고 있다. 이제 슬슬 마각을 드러내 조금씩 휘젓기 시작했지만.
아무튼 이겨야 한다. 작은 땅 작은 인구라고 우리가 기죽을 필요는 없다. 전 세계를 통해 최고로 두뇌가 우수한 우리민족 아니더냐? 항상 자신을 가지고 정정당당히 맞서서 중국을 발로 딛고 씩씩하게 일어서야한다고. 엊그제 우리 모두의 가슴을 뭉클게 하였던 김연아의 저력을 보지 않았던가?
아침 7시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광주까지 대절한 버스에 몸을 싣고 광주에 도착하여 갈비에 그간 못먹어본 소주를 마시니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엄습해 온다.
그래서 집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틀림없다.
첫댓글 앙~~~부러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