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끝자락에
1.
연말이 다가오면 도지는 병이 있다.
내가 어디서 얼마나 걸어왔는지, 그게 궁금하다.
내 이웃은 또 어디로 걸어갔는지
그게 궁금하기도 한 것이다.
잠시 스치다 사라지는 게 인연이라니
다가가면 비켜갈 터요
비켜 가면 또 다가올 테다.
그래서 스친 자리에 돌아와
가끔은 두리번거려 보는 것이요
이를 일러 연말이 다가오면 도지는 병이라 해본다.
2.
엊그제는 학창시절의 동창녀를 만나봤다.
조신한 남선생과 여선생을 길러내던 사범학교에서
그네는 유난히 반짝거리고 발랄해 남학생들의 로망이었다.
'백설(白雪)에 흐르는 혈(血)을 잡아라.'
이게 졸업문집에 남긴 그네의 손글씨였고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고 남긴 나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기에
무심히 지나쳐버리고 말았는데
지난 가을날 처음 참여한 영릉에서의 동창모임에서
만났다 헤어지는 순간에
갑자기 한 번 안아달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당돌하지 않았던가...
당황도 한지라 엉덩이를 잔뜩 빼고 어깨를 맞대봤지만
지나고 보니 아쉬움도 감돌았던 것이다.
3.
못난 시집 한 권 보내겠다면서
차 한 잔 하자는 문자를 보내봤는데
좋다면서 연락하겠노라 해놓고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 없다가
갑자기 연락이 와서 만나보게 되었다.
인사동으로 나가는 길에 온갖 생각들이 뒤섞였다.
왜 한 번 안아 달라 했었는지...
나에게 궁금한 게 있었던지...
차 한 잔 하자 해놓고 여러 날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가
왜 이제 나타난다는 것인지...
4.
“그동안 훌륭한 제자들 많이 뒀지요?”
나의 첫인사에 그네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네는 나의 근황은 종종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졸업 후 어느 시골의 학교에 배치받아
출퇴근이 괴로웠단다.
버스 타고 오가노라면
집적거리는 남성들 때문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꾀를 낸다는 게 장학사 시찰 오던 날
모두 피하는 연구수업을 자기가 자청했다고 한다.
다행히 호평을 받게 되어
시내의 큰 학교로 전근을 희망하게 되었고
그게 받아들여져 또 욕심을 내봤다고 했다.
그 해 가을 운동회 때 4, 5, 6학년 학생들 마스게임을
자기가 지도하겠노라 했단다.
운동회는 잘 끝났고, 학부모들의 호평도 받았다니
보는 시선들이 얼마나 예뻤으랴.
그 결과인지
어느 재벌가의 며느리로 보쌈되어 들어가게 되어
그런 전차로 학교를 일찍 떠났으니
제자들을 많이 두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5.
행복했던 순간들도 잠시
불행히도 40대 중반에 짝을 잃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색을 할 수 없어 꼭꼭 숨기고 살아갔단다.
유산이야 있어 3남매 교육은 제대로 다 시키게 되었지만
밤마다 살아나는 욕망 때문에 몸부림쳤단다.
가끔은 허벅지를 찔러대며 소리 지르기도 하다가
이게 웬 병인가 하고 의사를 찾아갔더니
지극히 정상이라면서
산으로 들로 땀이 찰 때까지 걸어보라 하더란다.
그러기로 수년이 지난 어느 날 생리가 끝나면서
마음이 그렇게 후련해질 수 없더란다.
그런 평안도 잠시,
어느 날 초로의 허연 남성이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자기 집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노라니
왠지 울컥하고 눈물이 사정없이 나오더란다.
그로부터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에 의존하게 됐다는데
알코올을 조금씩 곁들여보라는 의사의 말에
맥주 한 잔씩 하다가
그게 두 잔이 되고, 석 잔이 되고
그러다가 양주를 찾게 되어
그것도 두 잔, 석 잔이 되더라는 거였다.
글썽이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술 한 잔 더 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우선 나에게 연애결혼이었느냐고 묻는 거였다.
나도 보쌈으로 남의 집 사위가 되었다 했더니
그네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몇 가닥도 되지 않는 자랑거리야 이 판에 어찌 늘어놓으랴.
하여, 회한 가득한 지난날들을 번갈아 풀어놓을 뿐이었다.
어느새 마음도 풀렸는지
정동길을 거닐며 꼭 쥐어본 그네의 손도 퍽 따뜻해졌다.
백설 위에 흐르는 혈(血)에 침묵을 깨고
입김을 불어넣어 그랬다고나 할까?
6.
어느 소년이 하소연하는 글을 써서 보내려니 주소를 몰라
겉봉투에 '하느님 앞'이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고 한다.
우체국에선 그걸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는 일화가 있었다.
꼭꼭 싸매고만 살면 병이 나게 마련이니
그걸 풀어 해결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소연할 데라도 있으면 또 얼마나 좋으랴.
세월 가면 그리움만 남느니
그건 보고픔이기도, 아쉬움이기도 할 게다.
이걸 풀어놓으면 독백이 될 뿐이지만
턱 밑에서 받아 들어주는 이 있으면
힐링이 되는 법이다.
을미년 끝자락에
나는 그런 전차로 그네와 2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내온다.
카페생활을 안 하기에 우리카페 회원은 아니지만
간간 카페모임에 그네를 대동시키고
나의 문학행사에 와서 축가를 부르게 한다.
위 사진은 얼마 전 톡톡 수다방 번개모임 때
함께 어울린 모습인데그네를 소개하라면
나는 으레 '남매' 라 소개한다.
누가 오빠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남남이지만 매우 가까이 지내는 동창관계" 라고.
남성 휴게실의 신사들이시여!
함께 어울리다가 특별히 한 사람과 자별하게 지내게 되면
끝도 아름답게 마무리하시라.
첫댓글 소개 해 주신 그분의 이야기는
언젠가 읽었던 기억이 있는듯 합니다.
남녀가 오랜 시간동안 친구로 지내기가 쉽지 않은데
좋은 관계를 오래토록 잘 간직하고 계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남녀도 그렇고 남남도 그렇고 돌아섰을 때나 멀어졌을 때에도 잔잔한 미소로 여운지게 하는게 좋겠지만 그러하지 못한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데요.그게 비극이겠지요.
젊어서 혼자되어 견디며 살아간다는게 얼마나 힘든일일지 ...
꼭 그렇게 혼자 늙어갈 필요가 있을까요?
젊어서 사랑을 다 해야 하는데 ...
맞아요.
어떤것이든 되도록 즐거움을 찾아 살아가야겠지요.
본글의 주인공은 두번째 사진
좌측 앞에서 세번째 석촌님 좌측 여인 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갑장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