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본문은 욥이 어느 정도로 말씀의 사람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욥은 순식간에 자녀들 및 대부분의 소유들을 잃게 되었고, 자신의 몸까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들이 날 정도로 망가지게 되었으며, 찾아 온 친구들에게도 진정한 위로보다는 점점 더 그와 반대로 되게 되고, 심지어는 하나님께도 자신을 끊어 버리실 것이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버림받은 듯이 느껴지는 상황들 속에서도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라고 고백하고 있듯이 아래 본문과 전후, 더 나아가 욥기 끝 부분에 이르기까지 세상 다른 그 어떤 이들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의 신앙으로 치열하게 몸부림치고 행했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욥기 38장~42장을 보면 욥도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인생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었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완전하심 앞에서 욥을 위시한 이 세상에서의 인생들의 의와 몸부림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드러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또한 그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어느 정도 선에서는 책망 받는 면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욥과 같이 최악의 상황들 속에서 최고의 믿음으로 몸부림친 자가 그 이상으로 있기 힘들다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욥은 이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우리 인생들이 어느 정도로까지 말씀의 몸부림을 칠 수 있는지, 어느 정도로 치열한 믿음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으로 말씀드리면 욥의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살아 있는 믿음의 몸부림들이야 말로 절망보다 더한 갑작스러운 문제와 불행들, 죽음 이상의 고통과 처참들 속에서 그 자신부터 순간순간 인내할 수 있게 했고 살 수 있게 했으며, 끝까지 감당케 했고 믿음을 잃지 않게 했으며, 그와 함께 하나님의 시간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된 것일 뿐 아니라 실상 그러한 고난 이상으로 영광의 역사들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게 됨에 있어서 직접적, 결정적 힘이 된 것이라 할 수 있고,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일 수가 없는 것인데..
다시 말씀드리면 욥은 욥기 1장 5절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듯이 욥은 구약의 다른 믿음과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아벨의 첫 양의 새끼를 희생으로 드린 제사, 유월절 어린 양, 광야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셀 수 없을 정도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회막과 성전, 믿음의 선배들을 통한 약속과 계시들, 제사장과 선지자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인 것일 뿐 아니라 그와 같은 방법과 통로와 접점들 등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이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바로 그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듯이 거의 유사하게 믿음으로 애쓰고 또 애썼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다른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며, 심지어는 아래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면에서 최악 중의 최악의 상황들, 진정 절망과 불가능과 죽음보다 더 큰 상황들 속에서도 끝까지 말씀으로 몸부림치는 신앙에 이른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이 하나님께야 말로 합당한 것이고 하나님으로 인한 힘과 역사들에 전적으로 직결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잘 통찰해 보면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실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단 한 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특히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 순간순간마다 인내하고 능히 감당하며, 더 이상 약해지지 않고 강인해 지며, 힘에 지나도록 담대하게 되고 지혜를 얻게 되며, 살아 있는 믿음이 되고 합력하여 선이 되며, 때로는 기적을 누리고 이적을 보게 되는 등과 같은 세상이 주지 못할 모든 하늘의 힘과 은혜들, 응답과 능력들 등에 있어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실제가 되고 경험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야 말로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 곧 말씀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도록 기록되게 하신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힘이신 것일 뿐 아니라 그러한 말씀을 말씀대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증거하고, 말씀 그대로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이뤄지며 성취되게 하시는 영, 무엇보다 말씀 가운데,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함께 더욱 기뻐하시고 충만하시며 생생하고 강렬하게 역사하시는 영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기6:1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7월 24일(월)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