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운 행위를 분류한다면 다음과 같다. 자발행위(自發行爲)는 다른 능력의 보충이 없이 의지 안에서 일어났다가 없어지는 행위다. 즉 누구를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행위다. 내적 또는 외적 행위는 글자 그대로 내적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 원의 등이고 외적 행위는 육체의 기관에 실천시키기 위해 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걸어다니는 것, 말하는 것 등이다. 다음은 본성과 초성적 행위다. 본성 행위는 본성의 능력으로 하는 행위요 초성 행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한 행위다. 여러 가지 분류 중에 다음과 같이 대상면을 생각해서 사람다운 행위를 볼 수도 있다. 선한 행위 악한 행위 무관한 행위 등이다. 선한 행위라 하면 우리의 행위가 윤리규범에 맞는 행위고 악하다 하면 윤리규범에 맞지 않는 것을 말한다.
윤리규범에 하등의 관계없는 행위를 무관한 행위라 할수 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난다던가 걸어다닌다던가 하는 행위다. 그러나 엄밀한 뜻에서 무관한 행위란 사람다운 행위에 있어서는 없다. 기거동작이 선을 위할 수도 있고 악을 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다운 행위는 지능과 의지의 완전한 사용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람의 주권 안에 있는 만큼 사람은 그 행위와 행위의 귀결에 있어 책임을 져야한다. 책임을 지도록 된 일의 경우와 본질을 귀책성(歸責性 Imputabilitas)이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던지 마지막으로 유효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유의지다.
그렇기 때문에 귀책성의 원리는 자유의지 여하에 달려있는 것이다. 의지가 무엇을 원할 때 의욕이라 하고 의지가 여러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자유의지라 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이 하는 모든 문제를 원칙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한다. 책임을 면한다던가 책임한계가 약해질 수 있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칙적이라 했다.
인간에 있어 단순한 행위란 별로 없다. 무엇인가 우리가 가지는 기관의 욕구와 외적강박, 내적강박 등으로 인해 항상 의욕적인 행위가 단순히 의욕적으로만 볼 수 없는 때가 많다.
또한 그것뿐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는 항상 인식을 전제로 하는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의욕적 행위는 인식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의욕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다음호에 말하겠다.
/김영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