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삶의 물총새(Halcyon) >
파라곤
서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할시온(Halcyon)’이라고 불리는 작은 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물총새라고도 불리는 이 작은 새는 동지(冬至) 무렵에 바다 위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알을 깐다고 하는데 이 새가 알을 까는 동지 전후의 2주간은 풍파가 가라앉고 평온한 날씨가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 이 ‘할시온(Halcyon)’이라는 작은 새는 평온과 행복, 번영을 가져다 주는 새로 알려져 있다.
아내와 나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모두 같은 사진으로 되어 있다. 바로 이제 한살 반이 된 아들 호준이의 사진이다. 그리고 그 사진에 대한 나와 아내의 배경화면 문구는 서로 약간씩 다르지만 의미는 비슷하다. 나의 핸드폰에는 ‘My Halcyon, Ho-Joon'으로, 일본어를 전공한 아내의 핸드폰에는 ‘私の宝物 - ホジュン’(나의 보물, 호준)이라고 되어 있다. 나에게 있어 호준이는 삶의 거친 풍파를 가라앉히고 평온을 가져다 준 한 마리 작은 물총새(Halcyon)와 같고, 아내에게 호준이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결혼 전 나는 시추선을 만들던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서울의 한 일본계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서울과 울산은 고속버스로 5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여서 주말마다 이렇게 먼 거리를 고속버스로 달려 와서 짧은 만남을 가진 후 아쉽게 헤어지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그래서 공사 입사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시험에 합격하여 공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입사 후 얼마 안 되어서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우리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결혼 당시부터 부모님은 우리의 결혼에 반대하셨고 부모님의 그러한 불만은 결혼 후에도 쉽게 가라앉지를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결혼하고 나서 서로의 성격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서로 다투는 날이 많았다. 부모님의 반대와 서로간의 성격 차이에서 오는 갈등으로 인해 결혼생활에 위기가 찾아 왔을 때, 아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연일 계속 되는 야근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집에 들어오면 자정이 넘는 날이 많았고 임신 중이던 아내는 혼자서 분식집에 가서 김밥 등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하는 날이 많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정까지 문을 열고 있던 동네 제과점에 들러 아내가 좋아 하는 치즈케익을 사다 주는 일 뿐이었다. 나중에 아기가 태어났을 때 몸무게가 다른 아기보다 적게 나가는 것을 보고 아내를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는데 산전검사 결과 기형아일 확률이 있으니 보다 정밀한 진단을 위해 양수검사를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 소식에 충격을 받은 아내는 하루 종일 식음을 전폐한 채 울기만 했고 나 역시 너무도 충격이 커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아내는 힘든 양수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2주 기간 동안, 나는 매일 새벽 5시 집 근처 작은 교회에 가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제발 아기가 건강하고 아무 이상 없이 태어나게 해달라고. 내가 30여년을 살아오면서 정말 이렇게까지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매일 새벽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모든 것이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그 결과로 아기가 고통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벌을 내리시려거든 아기 말고 나에게 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2주가 흐른 후,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아기가 정상임을 알게 되었고 그때의 기쁨은 내가 세상에서 느낀 그 어떤 기쁨보다도 더 컸다. 또 다시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흘렀고 이 아기를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훌륭하게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아들 호준이가 태어난 후, 그동안 우리의 결혼에 반대해 오셨던 부모님의 오해와 서운함도 말끔히 해소되었고 이제 부모님은 누구보다도 아내를 더욱 사랑하신다. 그리고 신혼 초, 많은 갈등을 빚었던 우리 부부 사이도 지금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다의 풍파를 가라앉히고 평온을 가져다 준 한 마리 작은 물총새, 호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호준이는 한 살 반으로 씩씩하게 뛰어 다니고 벌써 말을 배우기 시작해서 간단한 단어를 말하곤 한다. 가령 신발을 신겨 달라고 할 때는 신발을 가리키면서 ‘바요오~, 바요오~’하는데 이 말이 ‘신발이요’란 의미인 것을 알고 어찌나 신기하던지...
앞으로도 우리 호준이는 우리 가정의 물총새로서,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보물로서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내 아들 호준아, 아빠는 너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한단다.
첫댓글 모든것을 용서하고 안아주는 힘을가진것은 자식이라 하지요....그 짧은만남을 위해서 먼 거리를 마다하지않고 찾아주시는 성의가 대단 하시네요 호준이 아드님이 모든것을 행복으로 되돌려 놓으셨군요 어렵게 찾아온 행복인만큼 언제까지나 건강하시고 두분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자녀는 이땅의 기업이라합니다 ... 바로 그분께서 주신이지요....누구든지 역경이 있고서야 값진 행복의 열매를 거둔답니다...행복하십시요...샬롬